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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헙, 알고리즘 :: 2010/05/17 00:07
크리스 앤더슨은 아마존 판매 데이터 등을 통해 '롱테일'이란 개념을 언급했다. 롱테일은 태생이 의존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롱테일은 필연적으로 숏헤드(허브)를 전제하기 마련이다. 롱테일이 사용자의 '주목(attention)'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허브가 네트워크 상에서 발휘하는 막대한 연결의 힘 때문이다. 허브가 존재하기 때문에 롱테일이 존재하는 것이다. 구글이 있기 때문에 듣보잡 웹사이트가 사용자의 시야에 노출되는 것이고, 아마존이 있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이름 모를 책이 판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롱테일'과 '허브'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이다.
네트워크 세상에서 허브는 등장하기 마련이고, 허브의 등장과 성장은 롱테일의 탄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네트워트계에는 구글, 이베이/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허브가 존재한다. 그 중에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트위터에 대한 생각을 문득 해본다. 트위터를 하면서 follow를 하고 follow를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follower 숫자에 눈이 가게 되고 그것에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트위터 사용자에게 follower 숫자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트위터 follower가 많은 자가 영향력이 높은 것일까? 아니다. 그건 트위터의 영향력일 뿐이다. 팔로워가 100만명이 넘든, 1명이든 트위터 상에선 트위터 사용자는 일개 롱테일에 불과하다. 팔로워 많은 자가 허브가 아니라 트위터 자체가 허브인 것이다. 100만명 팔로워가 있어도 트위터 네트워크 상에선 일개 CP이다. 한 번 가정해 보자. 100만명 팔로워가 있는 파워 트위터 사용자가 어느 날 트위터에서 사라졌을 때, 트위터 네트워크가 붕괴되거나 심하게 흔들릴까?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한 개의 커다란 노드가 없어졌을 뿐, 트위터 네트워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유유히 네트 성장의 길을 갈 것이다. 자신이 없어졌을 때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가 붕괴되어야 허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팔로워 1천만명이 넘어도 허브가 되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트위터란 거대한 맥락 속에서 활동하는 한, 아무리 팔로워가 많아도 일개 롱테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트위터 팔로워 수가 많다고 흐뭇해 하거나 적다고 우울해 한다면,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거다. 팔로워 숫자는 트위터의 영향력을 가리키는 수치일 뿐, 트위터 사용자는 팔로워가 많건 적건 트위터 네트를 성장시키는 무료 봉사 요원에 불과한 것이다. 먼지면 먼지인 거지, 작은 먼지가 큰 먼지 보고 부러워 하고 큰 먼지가 작은 먼지 보면서 귀여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 아니겠는가? ^^ 팔로워 수에 울고 웃는 트위터 유저는 트위터의 이기적인 확장욕망 알고리즘에 지대로 lock-in된 것이다. 트위터를 대하는 자세를 짚어봐야 한다. 난 단순 트위터 에이전트인가? 아님 팔로워수를 초월한 나만의 알고리즘을 갖고 있는가? 허브에 종속된 롱테일은 허브가 제공하는 트래픽을 자신이 창출한 트래픽이라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롱테일에 공급되는 주목(attention)은 허브에 종속된 대가로 주어지는 것일 뿐이다. 그게 롱테일의 법칙이다. 팔로워 수의 차이가 은근 네트워크 상의 위계구도 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의 기저에서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네트 성장의 속도를 키워가는 허브의 모습. 넷헙(네트워크 허브) 알고리즘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브, 알고리즘 파레토 경제 - Super Head, Fat Tail 창발의 기반 (승자독식, 롱테일은 모두 파레토 경제 안에 있다) 세상을 좁게 만드는 허브의 힘을 이용한다는 것..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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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알고리즘 :: 2010/05/10 00:00
수평적 관계에 대한 표현으로 participation & reception도 있습니다. 리드/팔로우를 상당부분 대체할 수 있을 듯. CSR 공부를 하다가 stakeholder engagement를 심도있게 해석한 자료를 봤는데, 단순 참여에서 더 나아가 partcipation+reception을 합한 의미로 engagement를 사용하더군요. Lead와 Follow가 타이트하고 역동적인 역할을 표현한다면,, participation(적극참여)과 reception(소극참여)은 느슨하고 유동적으로 보이는 차이가 있긴 하네요. 후자가 트위터설명에 더 적합.
마케터 vs. 소비자 진정한 마케터는 소비자 안에 잠재하는 마케터 본능을 일깨우는 자이다. 진정한 소비자는 마케터 안에 잠재하는 소비자 본능을 일깨우는 자이다. 마케터와 소비자 간의 공진화를 통해 마케팅과 소비는 하나가 되어 간다. '마케터 vs. 소비자'에 대해 트윗에 올린 글에 대한 @SuSuAct님의 트윗 글이 매우 인상적이다. '책'은 이제 '저자 vs. 독자'의 수직적 이분 프레임'으로부터 패러다임 전환 되어야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의 반응을 읽고, 독자는 책을 통해 또 하나의 책을 써야 한다. 저자는 책을 매개로 해서 독자가 되고,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되는 것이다. 전략/기획 vs. 실행/운영 '전략/기획 vs. 실행/운영'의 수직 이분법 사고는 전략/기획 단계에서 가치가 모두 생산되었고, 실행/운영 단계는 전략/기획이 생산한 가치를 기계적으로 확인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환상 때문에 전략/기획은 실패한다. @tjkit님의 트윗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 ^^ 리더와 팔로워의 위치는 수시로 바뀐다. 소비자는 마케팅하고 마케터는 소비한다. 독자는 리뷰를 쓰고 저자는 리뷰를 읽는다. 전략/기획을 능가하는 가치를 실행/운영이 생산할 수도 있다. 필립 코틀러의 '마켓 3.0'을 읽고 '수직적 이분법' 프레임의 한계에 대한 보다 명확한 감을 가질 수 있었다. 마켓 참여자 간의 수평적/역동적 상호작용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시공간은 제품의 일방적 공급과 피상적 소비자 지향을 넘어 새롭게 펼쳐지는 역동적 가치 순환 기반의 마켓 알고리즘이다. ^^ PS. 관련 포스트 웹혁,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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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알고리즘 :: 2009/08/28 00:08
'다윈의 식탁'을 유독하지 못하고 재미있게 싹 다 읽었다. 이 책은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진화론을 둘러 싼 생물학계 최고 지성들이 펼쳐내는 가상 논쟁을 재미있게 읽으면서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이 현실 세계에서 제대로 한 판 붙고 있구나란 느낌이 수시로 들었다. 그만큼 저자는 현역 생물학 거성들의 이론을 절묘한 대화적 맥락 속으로 탁월하게 녹여 내면서 한 편의 멋진 가상 대담을 엮어 내었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책이다. 저자의 내공 덕분에 재미있는 책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 저자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이 펼쳐가는 가상 토론의 향연. 이것은 비단 장대익의 '다윈의 식탁'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흡수하고 응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윈의 식탁'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동안 내가 읽은 텍스트의 저자들은 이미 내 안에서 '다윈의 식탁'을 세팅하고 대토론의 장을 펼쳐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아마 모든 사람들의 뇌 속에 그들만의 '다윈의 식탁'이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을 것이다. 와.. 도대체 세상엔 얼마나 많은 다윈의 식탁이 존재하는 건가! ^^ '다윈의 식탁'은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에겐 그렇게 느껴진다) 리더십은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다. 리더가 영향력을 행사할 때, 그 영향력은 단순히 일방향/단선적 흐름으로만 전개되진 않는다. 리더로부터 나온 영향력이 follower라는 플랫폼 속에서 변주를 거치고 그 변주가 리더에게 다시 영향력을 행사한다. 세상엔 온전한 리더도, 온전한 follower도 없다. 모두 리더와 follower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1인 2역 연기자들이다. 작년 7월에 아래와 같이 이진경의 노마디즘을 인용한 적이 있다. ( http://www.read-lead.com/blog/654#comment23900 ) 니체는 철학사를 뒤적이며 마음이 끌리는 철학자를 만나면 그를 뒤에서 덮쳐 계간을 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철학자를 뒤에서 덮쳐서 사생아를 만들어내는 것이 자기가 철학사를 가지고 사유하는 방식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들뢰즈는 니체에 대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니체의 뒤를 덮쳐 사생아를 만들려고 보니까, 어느새 니체가 자신을 덮치고 있더라" 그만큼 자신의 사유에서 니체의 영향이 지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겠지요. 모든 생물학자가 다윈의 말을 믿는다 해도 모두 다윈의 말을 정확히 그대로 머리 속에 새겨 넣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윈의 이론에 대해 독자적인 해석을 내리고 독자적인 재정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윈이 남긴 이론의 집합은 때로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도 하고 때론 파기되기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들의 이론과 리믹스되면서 영속적인 진화의 행진을 하게 된다. 즉, 진화를 논했던 다윈의 진화론 자체가 진화를 한다고 봐야 한다. 리더십은 리더와 follower가 서로 주고 받는 영향력의 자기장이다. follower의 뇌 속에서 리더들 간의 대화/논쟁이 전개되고 그 결과물은 부메랑이 되어 리더를 변화시킨다. 내 마음 속 '다윈의 식탁'은 오늘도 나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세팅되고 슬그머니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가끔은 그 식탁에 '서기' 역할이라도 맡아서 의식적 관전이나 좀 해봐야겠다. ^^ PS. 관련 포스트 buckshot과 로버트 그린 태그, 알고리즘 원격, 알고리즘 상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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