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동'에 해당되는 글 7건

존재부재 :: 2017/02/03 00:03

존재를 부재하다고 생각하는 것
존재와 부재는 백지 한 장 차이

부재를 존재라 생각하는 것
부재에서 존재로, 존재에서 부재로의 흐름은 파동과도 같은 것

존재라는 허상
부재라는 환상

존재와 부재는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 의존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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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2016/06/06 00:06

흥미로운 내용의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책을 사려고 도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책은 품절이었다.
허탈한 마음에 책 소개 내용을 자세히 읽어본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이 진해지면서
책을 향한 갈망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책이 만약 품절이 아니었다면 그 책을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품절이란 걸 알게 되니까 없던 결핍감마저 생겨나는 지경이다.

만약 그 책이 품절이 아니었다면..
내가 그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았다면..
내게 있어 그 책은 수많은 책들 중 하나 정도에 불과한 그런 밋밋한 존재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품절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존재감.
부재는 존재만큼이나 강력한 이벤트이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존재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애처로울 정도의 몸짓을 지속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표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런 무리수들이 겹겹이 남루한 층위를 이루면서 존재는 더 이상 존재답지 않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냥 살아가는 것.
그냥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결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티를 내려고 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과정 속에서 죽어가는 게 아니라 존재를 굳이 증명하지 않으려 하는 태연함.
그 속에서 존재감을 스스로 느끼는 것.

존재라면, 이 세상을 존재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존재가 존재를 알림으로 인해, 존재를 돋보이게 함으로 인해 증명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하면 할수록 존재감은 희미해진다는 것.
존재는.. 표현하려고 애쓰는 허무한 몸짓들을 제하고 남은.. 표현하지 않아도 저절로 표현되는.. 그런 자연스러운..
밖을 향하지 않는.. 그런 것들로 구성되는 듯 하다.

품절된 책을 접하게 되면서,
굳이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그 책을 존재로 인지하는
나 자신이 존재임을 인식하는 시간들.
책 한 권의 품절을 통해 존재를 어렴풋이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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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화다. :: 2012/06/18 00:08

신의탑을 읽다가 느낀 점.

만화는 '칸'과 '사이'로 이뤄진다.

만화를 읽는 독자는 만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칸'들을 본다. 칸은 정지된 '상'이다. 정지된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면서 flow를 표출하게 된다. 독자는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토막그림들을 보면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면서 만화를 소비한다. 정지된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상그림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연속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심대하다. 어디 만화만 그럴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만화의 '칸'과 '사이'처럼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텍스트도 만화와 같다. 독자는 글자와 글자로 이어지는 토막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가상의 텍스트를 생성한다. 저자의 토막 글들과 독자가 생성하는 가상의 토막 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속된 스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독서다.

세상은 텍스트다.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모두 텍스트이다. 사람은 칸과 칸 사이를 호흡하고 칸과 칸 사이를 걸어가면서 칸과 칸 사이에 숨겨진 코드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한다. 사이는 일종의 진공이다. 진공은 텅 빈 공간으로 일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거대한 진공 속을 유동하는 칸들. 칸과 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공은 만화 속에도, 텍스트 속에도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진공의 색깔, 진공의 냄새, 진공의 소리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진공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밖에 없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이'에 집중하는 경험. 사이를 보면서 칸을 지워나가는 경험. 사이를 들으면서 칸에 둔감해지는 경험. 사이를 관찰하면서 사이의 존재감을 느낄 때 칸은 파동이 되고 사이는 입자가 된다. 입자를 파동으로 보고 파동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만화는 칸의 구성체가 아니라 칸,사이가 모두 가시화된 구성체가 되고 칸,사이가 모두 흐릿한 구성체가 된다.

만화를 보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화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매체임이 분명하다. 제약은 한계를 낳고 한계는 내공을 낳고 내공은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만화에 내재한 한계가 만화에 본질이 착상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사이'를 인지하게 해준 만화에게 감사를 느낀다. ^^




PS. 관련 포스트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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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6 | DEL

    Remarkable! Its really remarkable Read & Lead - 세상은 만화다., I have got much clear idea concerning from this articl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I am from Australia, this time I am watching this cooking related video at this %title%, I am in fact delighted and learning more from i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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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기와 담기기 :: 2011/06/15 00:05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이 담기이기 때문에,
관찰은 대상과 거리를 두고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기 보단
대상을 컨테이너 안에 끌어들여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더 가깝다.

언제부턴가 세상 전체가 나에게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컨텐츠가 더 이상 컨테이너 속에 박제된 형태로 존재하기 보다는 컨테이너라는 '막'을 끊임없이 투과하고 유동하는 동적 평형 상태에 놓이게 됨을 의미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견고하게 가두면서 가치를 발현한다. 컨텐츠는 컨테이너를 자유롭게 투과할 수 있는 '막'으로 정의하는 순간 강력한 가치를 획득한다. 컨텐츠와 컨테이너의 관계가 atom적이면 컨테이너가 돋보이고, quantum적이면 컨텐츠가 돋보인다.

언어도 일종의 컨테이너다. 안개와도 같이 뇌리를 맴돌며 말로 잘 표현이 되지 않는 그 무엇. 그건 언어라는 컨테이너 안에 담기 어려운 양자(quantum)적 컨텐츠를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인 동시에 무엇에 담길 수 있는 컨텐츠이기도 하다.
내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나는 무엇 안에 담길 것인가를 정의하고 그것을 관리해 나가는 것.

내 안에 무엇을 담지 않고 그저 무엇 안에 담기기만 한다면 '나'는 입자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담기는 동시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 널린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기는 안습을 면할 수 있다.

구글이란 '검색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페이스북이란 '소셜 네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기술/미디어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자본 컨테이너 안에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 Quantum-Self. ^^

관찰은 담기이다.
나만의 생각 프레임(컨테이너) 안에 관찰 대상을 담는 것이다.



관찰과 상상 (2011.5.6)

관찰력은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관찰을 잘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역동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관찰은 상상과 재구성(일종의 창조)의 영역이다.

관찰은 현상을 사진 찍듯이 내 머리 속으로 입력시키는 것이 아니다.
현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을 내 머리 속에서 구성해 내는 것이다.
관찰은 입력 보다는 생성에 가까운 개념이다.


무엇인가를 관찰할 때,
관찰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나만의 해석 간에는 반드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 간극의 유형이 관찰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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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 2011/05/20 00:00


트위터, 모바일 등으로 인해 실시간 웹/커뮤니케이션의 묘미를 느끼게 된 듯 하나, 오히려 난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참 맛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뭘까? 허상이 아닐까? 세상에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린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시공간 속을 살아가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근접성에 대한 착각(?)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일 뿐.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노드들 간의 거리는 그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양자에 가깝지 않을까?

시공간 상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생각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가 '생각'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우주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광물/식물/동물/인간은 거기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만물은 진동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파동의 형태로 우주 만방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신호를 송신하고 시공간을 흐르는 수많은 신호를 선별 수신한다. 만물의 진동은 곧 의도이다. 만물은 의도를 송신하고 의도를 수신한다. 파동과 파동의 중첩 속에서 패턴은 의도되고 구현된다. 의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 아닐까?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인간 인지구조의 한계로 인한 뒷북형 학습 해프닝 때문에 고전물리학 이후에 '양자'를 다룬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일 뿐, 현대물리학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궤적을 현대 물리학은 이제서야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란 무엇일까?
언어야말로 개인화의 표상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해와 오해의 역동적 믹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 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random한 생각의 파동을 블로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
파동하는 인간. 나는 파동인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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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8=5840H | 2011/05/20 23: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소 추상적인 이야기가 올갈때는
    당연히 언어의 한계를 많이 느끼죠.
    인생력이 부족한건 말할것도 없구요.ㅎㅎ
    가끔 아바타의 교감촉수가 있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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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퀴아오에게 배우는 리듬 :: 2011/05/09 00:09

어제 파퀴아오 vs. 모슬리 경기를 보았다.

미구엘 코토를 박살낸 마가리토를 사정없이 두들겨 팬 모슬리였기에
마가리토를 KO로 제압하지 못한 파퀴아오가 모슬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역시 경기는 3회에 모슬리를 다운시킨 파퀴아오의 압도적 리드로 시종일관 흘러갔다.
모슬리가 넘 도망 다니고 파퀴아오가 나름 조심하는 스탠스여서 결국 경기는 판정으로 끝났다.

어제 경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

파퀴아오는 리듬을 장악하고 있다.
상대방을 어정쩡한 스탠스로 옭아매고 자신만의 스텝과 펀치의 흐름으로 공기를 지배하는 모습.


생각을 파동에 비유한다면,
파동의 리듬이 공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니 파퀴아오는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생각 재료도 파동이요, 나의 생각도 파동이다.
생각 재료의 흐름을 나의 리듬으로 컨트롤할 수 있어야
생각 재료는 나의 생각 프레임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나만의 리듬감으로 공기를 부유하는 생각 재료들을
날카롭게 베어낼 수 있는 생각 발전소가 되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튓잼, 알고리즘
조월,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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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알고리즘 :: 2008/11/12 00:02


전 세계를 대상으로한 금융자본의 인질극 (프레데릭 로르동)
- 르몽드 티플로마티크 2007년 10월호
금융의 세계화인가, 금융오류의 세계화인가 - 새사연 블로그



1925년 미국 플로리다에 Charles Ponzi (찰스 폰지)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찰스 폰지는 "90일만에 원금의 2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매력적인 투자 제안으로 8개월 만에 4만명으로부터 1500만불을 끌어 모은다.  하지만 찰스 폰지는 가치를 창출하는 어떤 사업도 벌이지 않았다. 단지, 투자 받은 돈의 일부를 떼어 먼저 투자한 사람들에게 수익금으로 제공했을 뿐이다.  수익발생을 믿는 투자자가 계속 늘어나는 한 찰스 폰지의 사기행각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폰지 게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자유주의의 총아인 파생상품들이 탄생하고 분화/확산되는 모습은 폰지 게임에 내재하는 버블 메커니즘을 많이 닮아 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금액이 계속 유입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가계들이 담보대출 시장에 집결해야 한다. 하지만, 가계들이 모이면 모일 수록 신용도가 낮은 가계들이 참여할 확률은 계속 올라간다. 결국 신용도가 낮은 가계들의 부동산 투자 시장 참여를 자극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탄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위험도가 높은 대출상품이다. 돈을 꿔주는 은행 입장에선 투자 포트폴리오의 위험확률이 올라가는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 이 때 파생상품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주택담보대출이 유가증권으로 상품화된 RMBS(Residential Mortgage Backed Securities: 주택담보대출채권)이란 이름의 파생상품은 위험자산의 압박으로 고민하는 은행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며 헤지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 산하로 편입되며 은행이 갖고 있던 위험이 극적으로 분산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은행은 이런 고맙디 고마운 파생상품 형성/확산 메커니즘 속에서 계속 대출을 퍼줄 수 있는 상황을 만끽하게 된다.  

자산이 유동화되어 전 세계로 위험이 분산되는 파생상품 메커니즘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모습을 취하게 된다. RMBS(주택담보대출채권)에 기반한 새로운 유가증권인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부채담보부채권)이 탄생한다. 파생상품의 태생적 유동화 본능이 금융의 세계화를 리드하는 동안, 파생상품에 내재한 레버리지/버블 메커니즘은 점점 복잡도를 더하게 된다. 투자자들은 디테일한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난 수익성만 바라보고 믿게 된다.

파생상품은 일종의 메타상품이다.  금융상품에 대한 상품..  또 그 상품에 대한 상품이 만들어지고..  또 그 상품에 대한 상품이 만들어지고..  상품에 대한 상품, 위험에 대한 위험.. 파생상품은 최고의 메타 상품이다. 계속되는 메타의 연쇄 고리는 초절정 복잡도를 지니게 되고 어느 순간 메커니즘을 들여다 보는 것을 자연스레 포기하고 표면이 주는 수익 미학에 매혹되어 입체적인 사고가 마비되게 된다.

찰스 폰지가 벌인 초대형 금융 사기극..  투자자들이 버블 메커니즘을 직시하지 못하고 버블이 주는 짜릿함에만 몰입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다양한 형태로 반복될 것 같다. 상품에 메타를 먹이고 그 메타에 메타를 더하고.. 메타가 메타를 낳는 흐름 속에 원래 분명한 모습으로 존재하던 위험이 흐릿한 확률적 존재로 파동하고 사람들은 위험을 망각하게 된다.  

금융산업에서 일어난 버블과 메타의 극적인 만남은 폰지게임과 확실히 차별화된 합법성,세련됨,울트라 복잡도를 무기로 결국 전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초강력 알고리즘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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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구월산 | 2008/11/12 07: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Money Game에 선량한 사람들이 같이 피해를 볼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좌절감과 무력감이 드네요. 빨리 정상회복 되었으면 좋겠는데 언제쯤 좋아질런지 걱정이네요.

    • BlogIcon buckshot | 2008/11/12 08:56 | PERMALINK | EDIT/DEL

      가늠하기 힘든 버블 메커니즘의 가공할 파괴력에 혀를 내두를 따름입니다.. 검은백조도 이런 검은백존 없습니다. 정말 경제공부하기 싫은데 경제공부를 자꾸 하게 만드네여.. ㅠ.ㅠ

  • BlogIcon 엔김치 | 2008/11/12 22:0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나 거시적으로 변해가는 금융시장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한낯 범인이 판단할수는 없지만, 그 메카니즘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궁금하네요. 그들의 손을 벗어 난건지, 아니면 아직도 조종가능한 것인지에 달렸지만 말이죠..
    항상 좋은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09:02 | PERMALINK | EDIT/DEL

      범람하는 메타와 환원의 홍수 속에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요즘 절실히 느낍니다. 위험을 아무리 화려하게 메타/패턴화시킨다 해도 결국 위험은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

  • BlogIcon 토마토새댁 | 2008/11/13 13: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전 요즘 님의 글을 날로 먹고 있습니당.
    글은 자~~~알 읽고
    댓글은 걍 안부만 물어영..^^;;
    지금은 수업하다 쉬는 시간!
    블러그 가을 소풍다녀요~~~

  • BlogIcon 대흠 | 2008/11/13 17: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경제는 워낙 깡통인지라 관심없이 살았는데... 메타에 메타... 그걸 계속 파고 들면서 우려 먹다 보면...
    道術을 부리는 것도 대자연의 메타를 건드리는 행위란 생각이 드네요.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면 우주의 메타들이 톱니바퀴 처럼 돌아가는 블랙 박스의 뚜껑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때 사사로운 욕심으로 거길 조작하면 천벌을 받는다고 하지요. 경우가 좀 다르기는 합니다만 겹겹의 메타를 꽈서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행위 역시 업이 만만치 않겠죠. 즉, 메타의 메타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신(대자연)의 영역에 접근할 것이라는 비약을 하네요. 이건 너무도 직관적인 생각이라... 틀려도 책임 못집니다. ^^ 암튼 벅샷님 글이 제 사고의 메타를 자극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11/13 19:06 | PERMALINK | EDIT/DEL

      아.. 심오함이 가득한 댓글이십니다. 메타의 궁극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는 그 무엇일 수 있겠네요. 대흠님의 댓글이 저의 사고를 또 한 번 강타하는 순간입니다. ^^

  • BlogIcon 데굴대굴 | 2008/11/30 11: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중학교때인가 사회시간에 금융기관에 대해서 배울때 가졌던 의문이 이와 비슷한 부분입니다. 금융기관에 돈을 맏기면 현실적인 총량에 대한 자본이 늘지 않는데 (이론상) 무제한의 금융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신용이 신용을 낳고 계속 효과가 올라간다는...)는 내용이었지요. 나중에 커서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파생상품이라는 걸 알게되면서, 처음 상품이 망가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갖었는데, 그게 버블이 아닐까 싶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11/30 18:24 | PERMALINK | EDIT/DEL

      예.. 가치를 창출한다기 보다는 가치에 대한 가치.. 메타 가치의 흐름 속에서 풍요의 느낌을 창출하는 것 같습니다. 버블 메커니즘이 점점 생활 속에 침투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에 대한 이해를 게을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無爲之治 | 2009/09/14 11:1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 잘 보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글을 남기네요..
    지금까지 올리신 글들 먼저 읽고 댓글 달려고 햇는데..ㅋㅋ
    암튼 고마워용 좋은 글..

    • BlogIcon buckshot | 2009/09/15 09:06 | PERMALINK | EDIT/DEL

      많이 부족한 글을 긍정적으로 보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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