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해당되는 글 16건

덕질 :: 2017/11/27 00:07

어떤 단편소설을 읽는데 거기 한국 아이돌의 덕후가 등장한다.  일본인인데 한국 아이돌이 너무 좋아서 아예 한국에 와서 직업을 구했고 한국어를 배우는데 여념이 없다.

덕후..
덕질..

왜 하는 것일까.

정말 타인이 궁금해서
관심 가는 타인의 모든 것이 알고 싶고 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소중한 것
그게 전부일까.

진짜 궁금한 것은 뭘까
진짜 몰입하고 싶은 대상이 뭘까.

궁금해하고 몰입하는 과정 속에서
잊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 덕질하는 덕후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지켜 보면서
난 덕질할 거 뭐 없나? 하고 찾게 된다.

난 덕질할 대상이 있나?
없다면 앞으로 무엇을 그 대상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까?


나는 어떠한가?

내가 나를 대상으로 덕후가 되어 덕질을 수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 덕질은 그야말로 해볼만한 덕질 아닐까?

나를 이해하기 위해 나를 알아가는 시간에 집중하고
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부하고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하루 하루를 성과로 축적하고
그런 흐름이라면 한 번 시도해 볼만 하지 않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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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향 :: 2016/01/08 00:08

나는 나인데
나는 나인데도
나는 나의 취향을 맞추는 게 참 힘들다.

내 취향에 맞춰가는 건 참 고역이다.
취향이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자꾸 진동하고 춤을 추고 흘러가는데 도통 그것을 따라갈 재간이 없다.

이렇게 힘든데
나인데
나인데도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의 취향에 맞게 뭔가를 추천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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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2015/11/13 00:03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변지영 지음/비즈니스북스


이 책에서 매우 맘에 드는 문장이 있다.

'삶은 자신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이 있다.

벗어나기 힘든 것을 직시하는 순간

그런 시간을 만나게 해준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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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변화 :: 2014/08/01 00:01

타인이 변화하길
뭔가가 변화하길
바란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타인을 바꾸려 하고
뭔가를 바꾸려 한다.

내 자신이 바뀌지 않는데
뭐가 바뀔까?
아무것도 바뀔 수가 없다.

변화를 원한다는 건,
내 자신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이지
타인에게 문제가 있거나 뭔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결국 나 자신으로부터 발생된 문제일 뿐이란 거다.
변화를 갈망하는 자는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심대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는 그런 거다.
외부를 바꾸고 싶다는 신호가 발생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나의 문제가 뭔지를 파악하는 것.
그렇게 하면 변화에 성공할 가능성이 올라간다.

남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건 남을 위한 에너지를 남에게 퍼주는 거다.
그리고 그거 남들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도 않은 거다.
왜 그런 개고생을 하는가?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면 나를 위한 에너지를 나에게 퍼주는 거다.
그리고 그거 내 입장에서 매우 달가운 거다.
그걸 왜 안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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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4/08/07 13: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짜변화란 무엇인지 진심으로 깨닫고 공감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4/08/07 18:45 | PERMALINK | EDIT/DEL

      잊지 않고 방문해 주시고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무더운 여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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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로그인하고 있는가? :: 2014/01/31 00:01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회원가입을 종종 하게 된다. 아이디, 비밀번호를 정하고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회원가입이 완료된다. 그리고 나서 그 서비스를 반복적으로 이용하면서 그 서비스에 engaging이 되고 그 서비스와 일상을 함께 하게 된다. 나는 네이버, 다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밴드, 인스타페이퍼 등의 서비스에 아이디/비번을 등록하고 그 서비스에 회원자격으로 로그인해서 서비스와의 관계를 심화시켜 나간다. 여기서 아이디는 해당 서비스와 나와의 관계를 생성하는 중요한 key 값으로 기능한다. 서비스가 나를 인식하는 값이자, 내가 서비스에 회원자격으로 진입하기 위한 key이다. 아이디는 정체성(identity)의 약자이다. 정체성. 참 무거운 단어이지만 웹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참으로 스스럼 없이 마구 사용하는 개념이자 도구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마구 사용하는 '아이디'란 개념을 이제는 함 진지하게 다뤄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간다. 인생은 거대한 서비스이다. 인생에 회원 자격으로 가입하고 인생이 제공하는 각양각색의 서비스 경험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어떤 아이디(정체성)으로 가입했는가? 인생을 향한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세상은 나를 어떤 key 값으로 인지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명확할 수록 나는 인생이란 서비스에서 겉돌지 않고 나만의 색깔을 발산하며 활동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 사고 싶은데 회원이 아니라고 가정해 보라. 매번 구매할 때마다 이것저것 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물건을 구매해도 회원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비회원은 받지 못하게 된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개나소나' 급으로 푸대접을 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사고나 행동을 하게 될 때, 인생은 나에게 아이디를 물어본다. 비밀번호를 요구한다. 아이디는 내가 세상을 향해 "나는 타인과 이렇게 다릅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핵심 문장이다. 비밀번호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눈이다. 그 눈이 없으면 나는 세상에 로그인할 수 없다. 만약, 내가 타인의 시선만을 의식하며 타인의 기대치나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세상이란 서비스를 아이디 없이 이용해야 하는 비회원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고, 세상은 비회원인 나에게 이렇다 할 대접도 혜택도 제공하지 않은 채 나를 온전히 겉돌게만 할 것이다. 타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 좋아하고, 타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노력만으로 일관하고, 타인의 시선에 들기 위해 안타까운 몸짓을 지속하고.. 이런 흐름 속에선 나만의 아이디가 생성되기 어렵다. 평생을 살았는데 아이디 없이 비회원 활동만 지속했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을까?

온라인 서비스에서만 로그인하지 말고 인생에 로그인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아이디로 인생에 로그인하고 있는가? 혹시 로그인도 하지 못한 채 비회원처럼 인생 주위를 병신처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밀번호를 까먹고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인간은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제 맛을 보는 것이다. 타존의 삶을 사는 자들은 정체성 없음의 대가를 언젠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다.

인생에서..
나는 회원인가?
비회원인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보자. 여기서 답을 섣불리 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타존의 삶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타인과 무엇이 다른가? 남들 다 하는 것 말고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가? 설마 남들보다 공부 잘하는 것을, 남들보다 외모가 뛰어난 것을, 남들보다 돈 많은 것을,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등과 같이 타존의 삶 속에서나 빛을 발하는 비회원적 가치에 집착하느라 정작 나만의 아이디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어여 인생 회원가입 신청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근데.. 아이디를 뭐라고 적을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깨어나는 좀비
아킬레스건
만물은 태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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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시선 :: 2013/11/11 00:01

시간
과거는 집착이나 후회의 대상이기 쉽다. 미래는 불안과 걱정의 대상이기 쉽다. 하지만, 과거나 미래는 그렇게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건 아닐 것 같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미래는 현재를 가늠하기 위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현재에 맞추어 보자. 모든 것이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현재 중심적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과거는 쓸데 없는 집착과 후회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현재를 반추하기 위해 존재하는 현재 서포터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미래는 영양가 없는 불안과 걱정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현재를 다각적으로 읽어내기 위한 흥미진진한 만화경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과거에 집착하기 위해 현재를 소모하고 미래를 걱정하기 위해 현재를 낭비한다면 현재를 심하게 오용하는 것이다. 포커스를 현재에 맞추고 과거나 미래를 현재를 위한 도구의 포지션을 부여하자.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스치듯 지나 미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현재에 의해 역설계된 과거와 현재에 의해 축조되는 미래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경쾌하게 흘러가는 한 판의 춤인 것이다.

시선
시선은 나로부터 타인을 향하고 타인으로부터 나를 향한다. 그럼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의 질문이 생겨나게 되고 시선과 시선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각양각색의 어우러짐은 시선을 살아 숨쉬게 한다. 하지만, 나의 시선과 타인의 시선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타인의 시선에만 관심과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면 시선은 인간과 함께 호흡하기 보다는 인간을 압박하고 지배하는 포지션을 취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나의 모습을 가다듬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면 나의 시선은 존재감을 잃어가게 되고 그런 시선의 불균형 속에서 타인의 시선은 온전히 나를 삼키게 될 것이다. 나의 시선에 얼마만큼의 관심과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는가? 나의 시선을 보듬어 줄 수 있도록 타인의 시선에 대응하는 나의 시선을 강화시켜보자. 타인의 시선에 좋게 비쳐지기 위해 살아가지 말고 타인의 시선을 나의 시선을 가다듬기 위한 단순 참조 데이터로만 활용해 보자. 타인의 시선을 응시하고 그 시선에 깃들어 있는 타존의 몸짓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타인의 시선은 나를 조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나다운 것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서포터로 존재하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걸맞은 포지션을 부여할 수 있다면 시선은 타인으로부터 나를 향해서만 흘러가는 일방향성 통제에서 나를 중심으로 여기고 나를 풍요롭게 하는 촉매제 작용에 만족하게 될 것이다.

시간과 시선
시간은 시선을 형성하고 시선은 시간이 되어간다. 현재로부터 과거를 향한 시선, 현재로부터 미래를 향한 시선, 과거와 미래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전해주는 시간의 메세지, 나의 시선이 타인에게 전달하는 시간의 음성. 시간과 시선은 그렇게 서로 연결되고 교차하고 투과되면서 서로에게 깊이 투영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PS. 관련 포스트
시선과 시선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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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근중 | 2013/11/16 09: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늘 아침 입을 옷을 고르면서 시선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렇게 또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흥미호운 포스트를 보게 되니 참 신기하군요. 항상 즐겨보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11/18 20:58 | PERMALINK | EDIT/DEL

      시선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생각이 성장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하루 시선에 대한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왔는데 중요한 시점에 다시 리마인드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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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빚 :: 2013/10/18 00:08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적정한 수면량이 있다. 적정량의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수면빚으로 체내에 축적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수면량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평상시에 잘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적된 수면빚이 피로와 스트레스로 전환되어 결국 나를 괴롭히게 된다.

성찰도 마찬가지다.
적정량의 성찰을 꾸준히 수행하지 않으면 고스란히 성찰빚으로 체내에 축적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찰은 선택이 아니다. 필수다.
성찰을 하지 않으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된다. 나의 눈은 바깥을 향해 있어서 끊임없이 나를 향한 성찰의 시선을 가져가지 않으면 나의 눈은 타인을 판단하고 타인을 오해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성찰에 일정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나의 '관'은 자꾸만 편향성을 더해가게 되고 균형감각을 상실한 나의 프레임 속에는 왜곡된 쓰레기 정보들이 가득 유입되면서 나는 성찰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대규모 성찰 채무자로 전락하게 된다.

나에게 성찰빚이 얼마나 존재하는가를 체크하고 싶다면 아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된다.
"최근에 한 비판 중에서 나를 대상으로 한 비판이 몇 %나 되는가?"

만약 나를 향한 비판이 0%라면 성찰빚은 어마어마한 규모가 될 것이다. 나는 무조건 옳고 타인에 대해서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댔을 테니 말이다. 나를 스스로 꾸짖고 자발적인 반성을 최근에 한 경험이 없다면 성찰로부터 멀어진 일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찰을 지속하지 않으면 성찰빚은 서서히 늘어나게 되어있고 늘어난 부채는 더욱 성찰로부터 멀어진 삶을 나에게 강요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적정한 성찰량이 있다. 적정량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취하지 않으면 그것은 고스란히 성찰빚으로 축적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적합한 성찰량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평상시에 잘 지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축적된 성찰빚이 삶의 품질 저하로 이어지면서 결국 나에게 독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삶의 품질 지수를 측정하고 싶은가?  분자를 분모로 나누면 된다.
  - 분자: 나를 성찰하고 나를 비판하고 반성한 것
  - 분모: 타인을 비난하는 마음을 먹거나 말을 뱉은 것

1을 훌쩍 넘는가?  아님 0으로 수렴하는가?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제허, 알고리즘

로망과 속도, 그리고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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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란을 대하는 태도 :: 2013/08/14 00:04

타인의 이야기?
뉴스 가십란엔 수시로 황당한 사건,사고들이 실린다. 그것을 보면서 마치 남의 일인 양 그것을 비웃고, 씹는 행위는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되고 있다. 그런데 가십란에 올라오는 사건/사고들이 나와 완전 무관한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과연 그럴까?  인간이 아무리 뛰고 날아봐야 거기서 거긴데 말이다. 그것과 나와의 공통점을 찾고 그걸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것.
남의 일이라 여기고 그것을 나로부터 분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속성 중의 하나가 발현된 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내 안에 그것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결국 타인의 일이라 여겨질 수 있는 것 속에 나와 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것, 외면하지 않는 것.

저마다 다르면서도 결국 모두가 같을 수 밖에 없는 포괄적 동질성.
인간은 각기 자신 만의 DNA 구조를 갖고 태어나 자신 만의 환경 속에서 자신 만의 삶의 경로를 걸어간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국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라고 남의 일처럼 거리를 두고 언급하지만 실은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고 나는 그것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모두가 같은 삶의 질곡 속에서 거대한 흐름의 형태로 휩쓸려 가고 있다는 것.

내가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존재로 작동하려면
존재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인정하기 어려운 그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존재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인간답지 않은 사건,사고를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걸 애써 외면하고 망각하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그걸 인생 막바지에 가서 인정하려 하니까 인생이 추해지는 거다. 그걸 지금 당장 인정하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객관의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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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시간 :: 2013/07/19 00:09

시간은 흘러간다. 하염없이 흘러간다.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시간은 나와는 상관없는 듯 그냥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의 의식을 날카롭게 정립하고 흐르는 시간의 조각들에 의미를 새길 수 있다면 시간은 마냥 흘러가진 않고 내가 부여하는 의미와 어우러지면서 나와의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많다. 그래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해야 하는 것을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해야 하는 것들이 밀리게 되면 시간은 참 허망하게도 흘러간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밀린 일들이 줄어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소비되어 버리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흐릿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기 쉽다.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특정 시간대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면, 뭔가에 떠밀려 시간을 보내지 말고 그 시간대를 놓치면 안 되는, 그 시간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정의하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닌 의미를 생성하는 시간.

정의하지 않으면 정의 당하고, 관찰하지 않으면 관찰 당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의미를 부여 당한다. 시간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수동적 스탠스는 시간에 의해 삼킴을 기꺼이 당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나를 감싸며 포진하고 있는 시간을 관찰하고 그것의 의미를 정의하고 시간의 결에 나의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자세를 시간에게 전달하면, 시간은 섣불리 나를 삼키려 하지 않고 내 곁에 살포시 다가와 나의 친구,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시간을 대하는 나의 눈빛이 시간이 나를 대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우린 대부분의 시간을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되는 것들을 하면서 보낸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충분히 대체 가능한 일이다. 나만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보내는 시간. 그게 내 시간이다. 만약 내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100%를 타인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보낸다면, 나는 타인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나의 시간을 리뷰해 보자. 내가 보낸 시간의 몇 %가 나의 시간인가? 만약 0%란 답이 나온다면? 끔직한 상황 속을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시간. 나의 시간. 단 1%라도 그런 시간을 확보해 보자. 그건 나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 선물은 나의 의지와 선언으로 형상을 띠기 시작하고 나의 결행으로 실현된다. 나의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 나는 시간과 온전히 마주한 채 '나'라는 정체성을 시간에 투사하게 되고 시간은 대체될 수 없는 '나'를 온전히 마주한 채 시간의 결을 '나'에게 새기게 된다. 시간 속에 투영된 나, 나에게 새겨진 시간. 나와 시간이 마주보면서 생성되는 유니크한 '나-시간'의 링크. 나의 시간은 그렇게 창조된다.

시간은 흘러간다. 하염없이 흘러간다. ^^



PS. 관련 포스트
새벽을 정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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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3/07/19 10: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7/19 20:52 | PERMALINK | EDIT/DEL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는 게 불가능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느끼는 건 언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시네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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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순간 :: 2013/06/14 00:04

사람들은 흔히 최고의 순간을 꿈꾼다. 최고의 순간, 과연 그게 뭘까?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주입된 것을 나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특별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 그 특별함이 나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나를 도구화시키는 어떤 거대함을 신봉하고 있다면 그 특별함을 내가 얻었을 때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순간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데 막상 그것을 얻었을 때 거대한 허망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오진 않을까? ^^

속물적 특별함에 대한 강박을 살짝 떨쳐 버리고 '나'를 중심에 놓고 오직 나만의 관점에서 최고의 순간을 정의해 보자. 남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순간 말고 내가 나 혼자 즐겨라 할 수 있는 그런 순간 말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영위하는데 에너지를 온통 소비하지 말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해 보자. 그건 정말 매혹적이고 짜릿한 도피가 될 것이다.

속물적 시선에서 비껴난 삶을 가정해 보면, 최고의 순간은 얼마든지 내 맘대로 정의할 수 있는 환경을 상정할 수 있겠다. 아침 출근 길에 문득 예전에 너무나 즐겨 들었던 멋진 노래 구절이 떠올라서 그걸 흥얼거린다고 생각해 보자. 바로 그 순간은 오늘 아침에 맞이한 최고의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뭔가가 나의 뇌 속에 찾아와 나를 즐겁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겐 특별함 아니겠는가. 퇴근 길에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e-book을 읽다가 마음을 강하게 울리는 문장 하나를 발견했다면, 그건 저녁 최고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은 일상 속을 살아간다. 일상은 특별함이 부재하는 시공간이다.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1개월 전과 같은 지금, 지금과 같은 1개월 후, 뭐 이런 식으로 쳇바퀴를 굴려가면서 무심코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일상에 대한 인상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특별함'에 대한 강박이 낳은 환상일 뿐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를 온전히 타인의 시선에 맡기는 순간, 나의 인생은 자존이 아닌 타존의 삶이 된다. 타인의 시선이 이끄는 속에서 타인이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함을 스토킹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일상 속에서 수시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을 아무 것도 아니라 무시하게 되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일상의 피로가 발생하고 그런 피로가 누적되면서 자존은 더욱 약해지기 마련이다. 충분히 자존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오직 타인의 시선만을 바라보는 타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삶. 안타까운 것이다.

일상이란 이름의 보석이 나의 발걸음을 방해하는 돌부리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어떤 하루에도 반드시 최고의 순간은 존재한다. 단, 그 감도의 높낮이가 있을 뿐이다. 매일 매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최고의 순간을 기억해보자. 감도의 높낮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일상 속에서 최고의 순간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고의 순간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것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고 그것과 대화를 해보자. 하루 중 최고의 순간을 알아보고 그것을 간직하고 수시로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차곡차곡 모이면 어느덧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행복이 된다.

일상은 피로가 쌓이는 시공간이 아니다. 최고의 순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보물찾기 시공간이며 그것을 찾았을 때의 희열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거나 설명해 줄 수 없기에 나 자신에게 더욱 소중한 그런 축복의 장이다. 일상 속에서 피로를 쌓아갈 것인가, 일상 속에서 수줍어 하면서 자신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최고의 순간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쌓아갈 것인가. 이는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자들의 선택과 결단에 달린 문제일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나를 찾아온 기적을 알아보는 것
현재는 행복이다.
바다가 읽어주는 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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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 2013/01/28 00:08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권력/지위/명예와 같은 속물적 덕목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아니 심지어는 그런 속물적 스펙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원래 생명 위협 상황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기제인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수시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도 '두려움'은 인간 사회를 강하게 압박하며 인간들을 두려움 숭배 로봇으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만약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합당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던지듯 로봇처럼 살아가는 행태가 과연 이렇게 만연했을까?

부,권력,지위,명예는 유한 자원이라서 그걸 남보다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속물적 덕목을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마냥 인간은 인생 전체를 걸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대장정에서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정말 우주적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런 개그적 대서사시를 누가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상황을 주재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보면 볼수록 놀랍고 그 안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놀랍고 이런 체계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초대형 블록버스터 판타지 무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이 이렇듯 거대한 영화관인데 뭐 하러 극장에 가는가? ^^)

무엇보다도 이런 놀라운 상황을 가능케 하는 동력인 '두려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려움'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무한 경쟁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소외적 행위, 몰지각한 행위를 당연시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다니, 도대체 두려움 너는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가관을 보면서 두려움에 최상급 찬사를 보내지만, 이 게임에서의 승자는 두려움 하나라는 게 참 안타깝다.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인간들은 두려움이라는 유일한 승자의 발 밑에 엎드려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비참한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두려움은 계속 즐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경배를 드리면 경배 드린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인간은 두려움에 인생 전체를 건 경배를 드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한 희롱을 당하는 것일까?

경쟁의 결과는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일개 범용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범용품으로 살아가는 한 승리도 패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아뿔싸~ 여기엔 '나'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인만 존재한다. 이게 나 자신을 위한 삶일까? 아니면 남을 위한 삶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타적인 존재였을까? 그리고 이게 과연 이타적 삶일까? ^^  

경쟁의 결과는 인간소외이고 완벽한 범용품으로의 전락이다. 그게 경쟁의 본질이다. 경쟁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경쟁에서 중요시 하는 스펙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일상 속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설사 거기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곧 또 다른 갈증이 찾아오고 근원적 두려움은 점점 나의 목을 조르며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 들어올 뿐이다.

결국 "내가 중요시 하는 덕목 속에 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란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고 그 질문 속에 내가 없고 온통 타인이 가득하다면 나는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두려움이 이끄는 삶.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유린 당하는 삶. 그리고 그걸 인지 못하는 삶. 참 허무한 거다. ^^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올 때, 아래와 같이 자문해 보자.

"나는 살아가면서 경쟁 말고 한 게 뭐가 있는가?" 

이 질문에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게임만을 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비참한 것이다. 왜? 경쟁은 이겨도 지는 게임이니까. 왜 지는 게임을 하는가? 왜 유일한 승자인 두려움에게 퍼주기만 하는가? 왜 승리와 패배만 존재하는 유아적이고 치기 어린 이분법 논리가 지배하는 저급한 프레임에서 평생을 보내는가?  과자 하나 주면 헤헤거리고 과자 안 주면 앙앙 우는 유아. 그게 경쟁 프레임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인 건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과자 하나 얻어 먹으려고 떼쓰고 헤헤거리고 앙앙 우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인간이 그렇게 병신 같은 존재인 건가? 두려움을 숭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인간. 그건 노예다.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 노예들이 가득한 세상.  나 자신이 노예임을 일단 인지라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노예스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말 나 자신을 아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들과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은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다함께차차차를 하듯 걍 가볍게 즐기고 말면 되는 게임이고 그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두려움인 것인데 경쟁의 결과를 놓고 왜 웃고 우는지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두려움의 지배력을 키워주기 위해 웃고 우는 에너지를 다 허비하면 정작 나를 위한 에너지를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인간은 정녕 두려움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 태어났고 한 평생을 오직 두려움만 경배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개그적 스펙터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난 지금도 여전히 경쟁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



PS. 관련 포스트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욕망은 수동태이다.
사라진 원인, 좀비가 된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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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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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허,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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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1/28 1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두려움은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공산 사회, 독재 사회, 유목 사회, 봉건 사회 등 체제와 시대를 초월해서 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해온 '존재'인 거죠. 애초에 신의 관념이 생긴 이유도 두려움 때문일텐데, 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현대 문화권에서 이제 두려움은 자기 자체를 신격화함으로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인 듯 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글자들의 어지러움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시네요. ^^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이다."

      존경스럽습니다. 넘 감사드리고 싶구요~

  • 휘리릭킴 | 2013/03/11 15: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열등감과 오기로 쓰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실제 적은 우리보다 더 커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특히 저 같은 경우는 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그 벅샷님이 말한 그 두려움을 무작정 이기려만 하다보니, 또 정작 타인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보는 나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하...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3/11 19:50 | PERMALINK | EDIT/DEL

      두려움은 인간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코드이기도 하고 인간소외의 경쟁시스템을 서포트하는 거대한 동력이기도 해서 감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하지만, 매번 두려움에 맥없이 제압당하기 보다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두려움을 상대로 멋진 저항, 또는 가벼운 승리를 거두는 경험을 지속하게 된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로깅은 두려움 희롱 놀이를 지속하기 위한 좋은 시공간이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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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원하는 것 :: 2012/04/20 00:00

혼자 사는 즐거움
사라 밴 브레스낙 지음, 신승미 옮김/토네이도


내가 원하고 바라고 꿈꾼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내가 아닌 남이 원하는 것이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그것에 대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정말 그것을 원할 것인가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된다.

원한다는 것, 바란다는 것, 꿈꾼다는 것.
그것의 뿌리를 따라가 보자.
그것이 얼마나 타인 의존적인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걸 안다는 것은 혼자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중요하지만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지 여부도 매우 중요하다. ^^




PS.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왜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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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자존감을 존중한다는 것 :: 2011/08/10 00:00

부하를 움직이는 말 한마디
지적생산연구회 지음, 박명숙 옮김/비즈니스북스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책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제1장 긍정 마인드를 이끌어내는 말 한마디
제2장 적극성을 이끌어내는 말 한마디
제3장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말 한마디
제4장 결정적 순간에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
제5장 열정에 불을 붙이는 말 한마디
제6장 숨은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말 한마디

결국 부하를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부하의 자존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부하의 자존감을 극대화하면서 부하가 스스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리더십의 요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실행이 쉽진 않겠지만 말이다. ^^

타인의 자존감을 극대화한다는 것. 타인의 자존감을 극대화시키면 나의 자존감은 심연으로 가라앉게 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자존감을 극대화 해준다는 것은 '나'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의미한다. 나에 대한 자신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자존감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자존감도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은 '나'를 높여서 키운다기 보다는 '타인'을 높이고 타인에게 뭔가를 주는 과정에서 커지는 것이다. 타인을 높일 수 있고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내가 높은 곳에 있고 내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하를 움직이는 말 한마디'와 같이 특정 세그먼트를 대상으로 한 책들은 의외로 넓은 유형의 독자들에게 교훈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난 이 책을 직장상사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자존감을 키워나가고 싶은 분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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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sdom of Forgiveness] 달라이 라마의 '용서', 그리고 연결 :: 2007/05/15 00:01



용서
텐진 갸초(달라이 라마).빅터 챈 지음, 류시화 옮김/오래된미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있고 나와 타인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항상 과거,미래와 접속하고 나 자신과 타인과 접속한다.  그렇다면 증오도 무의미한 것이고 용서도 불필요한 것이다.   '독립된 나'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연결된 나'라는 관점에서 나를 바라봐야 한다.

과거와 현재, 나와 타인은 마음이든 몸이든 실제로 연결되어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 된다.  용서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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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snowall | 2007/05/15 12:4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영도씨가 쓴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 "나는 단수가 아니다"와 마주치는군요.

    • BlogIcon buckshot | 2007/05/15 12:51 | PERMALINK | EDIT/DEL

      전 판타지소설에 대해 잘 모르지만 snowall님의 댓글을 보니 갑자기 드래곤라자가 굉장히 궁금해 집니다. 전 '연결'이란 단어를 개인적인 키워드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결'을 주제로 여러가지 생각과 글쓰기를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snowall님 블로그는 구글리더에 RSS 등록해 놓고 열심히 볼 계획이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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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로버트 그린은 역시 쿨하다! :: 2007/04/23 00:02


유혹의 기술 다이제스트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이마고



권력을 경영하는 48가지 법칙, 유혹의 기술, 전쟁의 기술을 통해 쿨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Robert Greene.. 

유혹은 영향력의 또 다른 표현이고 그것은 결국 권력을 지향할 수 밖에 없다는 그린의 정의에 동감이 간다. 또한, 뛰어난 유혹자는 자기 도취에 빠지지 않고 시선을 항상 밖을 향해 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결국, 나라는 틀을 벗어나서 자기 밖의 세상에 몰두하면서 자기 불안감을 씻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 이것 만큼 나 자신을 키워주는 레버가 또 있을까?
결국 나의 한계를 벗어나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일 때 매력적인 유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ower, Seductino, War에 이은 Robert Greene의 네번째 작품이 언제 나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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