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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 :: 2017/01/13 00:03

나의 생각이라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나의 생각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입된 생각인 경우가 많다. 아니 대부분일 수도 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외부로부터 나를 향해 주입된다.
특히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폭증하는 정보를 관리해 주는 피드(FEED)라는 개념이 일상 속으로 침투하면서 더더욱 그런 현상이 심화된다.

내가 찾아서 나만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정보의 깊이를 다져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얼마든지 주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마련인데..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나를 향해 정보가 맞춤형으로 제공되는 흐름이 지속된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입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시간 속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나는 주체가 되어 생각하기가 힘들다.
나는 내 자신이 생각의 주체가 되어 사고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생각을 지배하는 정보들이 있는 것이고
나는 내 취향에 맞는 정보들로 내 주위를 꾸민다.
내 주위에 있는 내 취향의 정보들은 스스로 나의 생각 체계를 구성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지배한다.

그렇게 통제당하는 나의 뇌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정보 시스템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그걸 나 자신의 것이라 은연 중에 믿게 된다.

결국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을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전문화된, 정제된, 권위있는,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그런 정보들이 온통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흐름이 탄생한 것이다.

그게 FEED이다.
피드는 내 자신이라는 존재는 엷어지고 나를 통제하는 외부 기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표상하는
2017년 1월 현재의 정보 플로우를 지칭하는 단어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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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편의성 :: 2017/01/11 00:01

스케일링도 하고 치아 점검도 할 겸해서 몇 년 만에 치과에 갔다.

치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나로선
의사가 하는 얘기에 대해서 토를 달 수가 없었고
그냥 의사의 얘기대로 나의 치아를 맡길 수 밖에 없았다.

완벽한 무기력함인 동시에
더할 나위 없는 전문화의 향연이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편안함

무기력하다는 것은 편하다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편리함이 있다는 얘기다.

사람은 편리함에 끌리게 되어 있다.
편리하면 편리한 쪽으로 기울게 되어 있고
그렇게 기울어진 필드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계속 기울기가 유도하는 낮은, 편안한 지점으로 이동하게 된다.

특히 전문화에서 비롯된 무기력함은
권위에 대한 존중, 아니 복종에 근거하고 있는지라
더욱 더 편의성과 맞물리면서 위력을 더하게 된다.

위력적인 무기력함의 세계

그렇게 치아 점검, 관리, 치료의 시간은 흘러갔고
나는 거기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날 하루 중에서 가장 무기력한 시간을 치과에서 보냈다.
그 기간 동안에 철저히 무기력한 신체가 되어 멍한 상태로 입을 벌리고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렇게 흘러가는 무기력의 시간.
내가 의도한 무기력이 아니라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무기력
내가 의도한 무기력은 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력함이겠으나
나에게 주입되는 무기력은 내 외부의 강력함과 비견되는 나의 왜소함을 극명히 드러내는 시공간.

그런데..
치과에서만 무기력이 주입되는 건 아닐 듯 하다.

결국 포트폴리오의 문제다.
나에게 주입되는 무기력의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으니
나는 어떻게든 내가 의도하는 무기력의 시간을 늘려갈 수 밖에 없다.
누가 누구의 무기력을 주도하는 가??   ㅋㅋ



PS. 관련 포스트
힘있는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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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부터의 소외 :: 2012/10/12 00:02

얼마 전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지인의 아버님에 대한 얘길 듣게 되었다. 지인의 아버님께서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데 프로페셔널 싱어가 부른 노래가 아닌 본인의 노래를 직접 녹음하고 그것을 매우 행복해 하시며 들으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듣고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게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왜 자신의 노래를 듣지 않고 남의 노래만 듣고 사는가?  
내가 부른 노래를 내가 즐기면 안 되는가?

분업에 기반한 전문화는 모든 영역을 잠식한다. 전문화는 전문가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을 전문화된 영역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누구나 부담 없이 행할 수 있는 영역도 전문화에 잠식을 당하면 아무나 하면 안 되는 행위로 규정된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전문화 자체가 자체 증식의 욕망을 갖고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전문화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전문화되는 현상은 BM과 기가 막힌 시너지를 내면서 공생 관계를 거듭하게 된다.

음악을 전문 음악인만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프로페셔널만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를 수 있다. 그걸 하면 왠지 안될 것만 같은 강박은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분업/전문화가 가져다 준 '소외'란 이름의 차가운 선물일 뿐이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얼마든지 자신 있게 자신의 취향대로 자신 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분업/전문화가 지나치게 고도의 경지에 이른 것일 뿐.

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기가 막힌 가창력을 가진 싱어는 노래를 부르기만 하고 우리는 그 노래를 듣기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지를.  우리는 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지, 불필요하게 전문화되어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잃어버린 영역을 우린 어떻게 다시 찾아와야 하는지. 나를 소외시키고 나를 소외시킨 대가를 달콤하게 향유하는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어 보자. 거대한 소외에 대한 응전을 소박하게 나마 준비하기 시작할 때,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나의 모습을 되찾고 희미해져 가던 자아를 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PS 1.
한 곡의 뮤직만 주구장창 들으면 왠지 지루한 느낌이 드는 것. 정말 지루해서일까. 아니면 지루해야 한다고 누가 개념 주입을 해서일까. 정말 전자라면 상관 없지만 후자의 영향력을 간과할 순 없다. 한 곡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것. 소비의 자유.

PS 2. 관련 포스
분업
강박과 BM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욕망은 수동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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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렌즈캣 | 2012/10/12 12: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눈팅하던 독자입니다. 정말 맞는말인 것 같아 댓글 하나 날립니다. 노래는 듣는것도 좋지만 자기가 직접 해보는게 노래를 즐기는 영역중 하나이죠. 자기가 직접 노래를 즐기고, 부르고, 연주를 해 봤어야 콘서트나 공연에서 보고 듣는 맛이 살아나듯 말이죠.

    저도 노래만드는 취미를 갖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재개할거긴 한데 요즘같은 시대는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기도 쉬워서, 모르고 돈없어서 못했다는 변명이 안통하죠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0/14 17:17 | PERMALINK | EDIT/DEL

      분업의 함정 속에서 빠져 나와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습관이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전문영역이 거의 없던 아주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의 통찰을 점점 더 배워나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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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수동태이다. :: 2012/03/19 00:09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핍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욕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한 나의 결핍감이 아닌 것 같다. 결핍감은 나의 외부에서 내게로 주입된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로 하여금 결핍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욕망을 자가생산하며 그 욕망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이 뭔가에 의욕과 시간과 돈을 투입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나의 욕망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 스스로가 생산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 받는 경우가 많다. 주입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망 BM'이 굳건히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 BM의 서식처이자 번식처이다. 내 안에서 욕망 BM의 서식/번식이 활발할 수록 나의 욕망은 더욱 요동을 치며 욕망과 결핍감의 뫼비우스 띠는 증폭에 증폭을 더해간다. 거대한 욕망 BM의 쓰나미적 물결이 인간 무리를 덮치면 덮칠 수록 욕망은 인간 관점에선 철저히 수동태적 양태를 띤다.  


욕망은 수동태이다.

욕망이 수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인정할 때
질문은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은 누가 주입한 것일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누가 입력한 정보일까?
나의 욕망과 결핍감은 무엇을 향해 디자인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나만의 욕망과 결핍이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얼마나 속절없이 의도된 욕망/결핍감을 주입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수동태적 욕망 메커니즘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만의 욕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위욕구와 백야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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