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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창조 :: 2018/02/16 00:06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작가에 의해 저마다 각자의 캐릭터를 타고 태어나듯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가공의 actor들은 저마다 각자의 캐릭터를 갖고 있다.

검색랭킹에 상위 노출되기 위해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 캐릭터 기반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간헐적으로 광고 포스팅을 해서 돈을 버는 케이스가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 어뷰징 블로거가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는
드라마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와 하등 다를 게 없는
가공의 인물이고, 가공의 공간에서 가공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살아 숨쉬는 인조 인간이다.

특히 블로그 포스트를 보는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매우 섬세하게 직조된 생생한 멘트들을 내뱉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진짜 인간의 글이라 오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런 사람들의 오해가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가공의 인물은 더욱 더 실체에 가깝게 된다.

생생한 허구가
밋밋한 실재를
능가하는 상황

그게 현실이다.
그렇게 허구에 실재가 밀리는 상황이 늘어날 수록
허구에 의해 가리워지는 실재가 많아질 수록

창조된 캐릭터들이 세상의 주인 행세를 해나가면서
실제 캐릭터(?)들은 허구 캐릭터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게 된다.

창조한다는 건
기존의 존재를 위협하는 뭔가가 생겨난다는 것이고
창조된 캐릭터가 성장할 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선
밋밋한 실재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캐릭터(?)들은 이렇다 할 인지나 각성 없이
시간은 지금 이 순간도 생생한 허구들에 의해 직조되고 재단되고 유린되고 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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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입 :: 2016/08/31 00:01

TV 드라마를 볼 때
대개는 감정이입의 대상을 선정하고 그 인물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본다.

때로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한 편으론 주인공과 대치 관계에 있는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도 한다.

어느 편에 서든,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는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에게 초점을 맞출 때도 있다.

그 경우엔
등장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보다는
등장인물의 대사를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는 작가의 손 끝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드라마의 전개가 멋스럽고 깔끔하게 느껴질 때는 작가의 손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열을 느낄 수 있고
뭔가 드라마의 흐름이 어색하고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산으로 가는 느낌이 들 때는 작가가 겪고 있을 고충이 매끄럽지 않은 TV 스크린에서 그대로 전달되어지는 느낌.

드라마작가에게 감정이입을 하다보면
드라마 자체의 재미 보다는 드라마를 쓰는 작가 관점에서의 생각 흐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건 일종의 견학이다. 드라마 작가의 일상 체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비자가 생산자의 입장에 서보는 경험이 이색적이다.
소비자가 소비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생산자의 입장에 서볼 수 있다면 소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런 변화는 소비자를 예전과 다른 존재로 이끌게 된다.

소비자가 생산자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변화할 때,
소비자는 소비와 생산 간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것을 보게 되고
경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소비자와 생산자 구도가 아닌
경계가 허물어진 어딘가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한 곳을 바라보면서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의 전개를 논의하고 공감하면서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이색적인 장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드라마에서의 감정이입 앵글에 살짝 변화를 주었을 뿐인데
그런 감정이입 포커스의 이동을 통해서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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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대화 :: 2016/04/29 00:09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들리지 않는 대화 속에서 읽혀지는 뭔가가 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람 간 대화의 모습만이 유일한 단서가 될 뿐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채워야 하는 여백 많은 캔버스인 것이다.

모든 정황이 포착될 수 있다면 그걸 묘사하면 된다.
묘사의 깊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제한된 상황만이 나에게 재료로 주어진다면
나는 밑바닥부터 플롯을 짜야 하고 캐릭터를 내 의도대로 정의해야 하는 소설가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대화도 소설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scene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긴장감을 견지한 채,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관찰한다.

명품을 자꾸 쳐다봐야 명품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생성되듯이
대화를 자꾸 쳐다보면 대화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만들어진다.

대화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보면 대화가 읽혀진다.
들렸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묘사를 위한 정보만 많아졌을 듯.

하지만 대화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기관이 본격 작동하게 된다.
대화를 그저 보게 되는 것이고, 보다 보면 대화를 읽게 될 수 밖에 없다.

대화를 읽는다는 건
대화를 작성하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표면적으로만 다르게 보일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결을 띠고 있는 행위다.

대화를 읽는다.
대화가 더욱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각과 독각은 더욱 첨예해진다.
캐릭터는 스스로 살아움직이는, 대화를 둘러 싼 공기가 자연스럽게 플롯이 되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때
나의 소박한 창작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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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확률계산기.. 바둑.. 인간.. 기계.. :: 2016/03/14 00:04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느낀 점.

알파고는 확률계산기이다.
그저, 바둑판의 비어있는 점들에 돌을 놓았을 때 이길 수 있는 확률을 각각 계산할 뿐이다.

바둑은 확률계산 게임이다.
19X19=361로 구성된 각각의 점에 경우의 수를 감안한 확률을 부여하면서 상대방보다 확률계산을 더 잘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

인간은 확률계산기이다.
바둑을 둘 때만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매사에 확률을 계산한다.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나의 뇌 속에선 항상 확률 계산이 수행된다. 지금 무엇을 하면 나에게 이로울 확률이 몇 %인가. 그에 대한 계산을 끊임없이 수행할 뿐이다. 

알파고는 차가운 확률계산기이다. 그리고 방대한 정보처리 역량을 갖고 있다.
감정이 없이, 서사도 없이 그저 최적의 위치를 찾기 위한 계산을 한다. 인간이 계산기보다 숫자 계산을 더 잘할 수 없듯이, 알파고는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연산 능력을 바탕으로 정교한 형세 판단을 한다. 바둑에서 흐름을 읽고 형세를 판단하고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생각했지만, 알파고는 그것도 결국 계산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인간은 상상한다.
기계는 주어진 데이터를,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계산을 한다. 기계는 아직 상상하고 이야기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면, 인간은 확률계산과 함께 상상도 할 줄 안다.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감정의 곡선을 따라 자아와 개성을 표출하고 색깔을 뿜어내면서 자신 만의 서사를 끌고 갈 줄 안다.

인간은 작가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생성하고 이야기와 이야기를 연결하여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인간은 작가이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자신 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간다. 공식적으로 특정 인물에게만 부여되는 '작가'란 타이틀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작가라는 엄연한 현실을..

단, 스토리텔링조차 계산의 영역으로 포괄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야기라는 건 결국 주어진 정보 기반으로 상상을 하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행위 조차도 결국 존재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기계가 이야기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계산 프레임에 넣게 되는 순간, 기계가 작가의 일을 수행하는 날이 결국은 올 것이다.

인간은 계산기가 되어가고 있다.
확률계산을 하든, 창작을 하든 그건 계산 행위이다. 결국 인간은 계산기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알려준 현실은 매우 간단하게 요약된다. 모든 인간은 계산기에 불과한 존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사실.

인간은 기계를 만들었고, 기계는 인간이 기계에 불과한 존재란 사실을 알려준다. 그건 인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기계는 아니었다. 기계의 속성을 갖고 있었을 뿐, 기계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로 진화할 가능성을 분명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를 만들고 그것에 의지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기계 이상의 존재가 될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기계 이하의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알파고는 그런 인간 노력의 산물이다. 스스로를 기계 이하로 규정하게 될 수 밖에 없는 프레임 속에 빠진 것이다. 문명은 그런 것이다. 인간 삶의 질을 높이려는 지향점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결국 인간 존재를 격하시키는 흐름을 타고 있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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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휴재 :: 2015/09/09 00:09

꼭 찾아서 보는 웹툰이 어느 날 작가의 사정으로 인해 연재가 중단된다.

휴재.

예전엔 휴재 공지를 보면 살짝 화가 났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업데이트.
기껏 웹툰 사이트 찾아갔는데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느낌.
짜증이 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내가 업데이트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의 웹툰이면
그리 가볍지 않는 내용의 웹툰인 게 분명하다.
심지어 소중히 아껴 읽는 문학 작품에 준하는 위상을 내 맘 속에서 갖는 웹툰이라면.
그 웹툰의 휴재를 은근 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아끼니까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
작가의 스토리라인 외의 내 마음 속 나만의 스토리라인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

휴재를 통해 오히려 다른 작동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
그래서 이젠 휴재를 만나면 화가 나기 보단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시공간 속으로 여행을 살포시 떠나게 된다

작가도 쉬고
나도 쉬고

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고

휴재는 새로운 즐거움
또 다른 놀이 공간으로의 진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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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09/09 07: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장편소설 읽다 중단하기"와 연결된듯 하지만, 다르네요 ㅎㅎ
    웹툰작가로부터 강제 중단을 받으면 저도 괜히 화가났었는데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5/09/14 07:42 | PERMALINK | EDIT/DEL

      휴재도 스토리의 일부분인 듯 해요. 공백이지만 공백이 아닌 듯한 그 느낌이 좋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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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의 9월16일 :: 2014/01/03 00:03

작년 가을에 하루 휴가를 내고 집에 있었던 적이 있다.  

온종일 소설과 시를 읽었다.

다양한 작가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흠뻑 감상했다.

커피를 곁들였고 빵 한 조각을 초대했다.

하루가 나른하게 흐르는 흐뭇 속에서 이야기와 커피가 어우러졌고 빵을 흡입하고 텍스트를 소비했다.

충만을 온전히 인지하는 순간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음악이 플레이되는 순간

내 주위의 공기가 나에게 착한 듯 집중하기 시작한다.

텍스트

커피, 빵

음악

편안함 속에 존재하는 나

2013년 9월16일은 나에게 '포만'으로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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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과 자각 :: 2013/03/13 00:03

인생은 한 편의 소설과도 같다고 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도 같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실제로 그렇다면 어떨까?
만약 내가 누군가가 써놓은, 써내려 가는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내 인생이 누군가가 구성한, 구성해 나가는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시나리오 작가가 부여하는 스토리라인에 자로 잰 듯 맞춰서 살아가야 할까?

내가 나를 규정하는 시나리오를 자각하게 되면 나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물며 TV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도 작가의 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구상하고 연기하면서 자신이 생각한 컨셉에 맞지 않는 캐릭터 묘사가 있을 경우 작가에게 그것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실제 인생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대본을 기계적으로 모사하기만 해선 안 되는 것 아닐까? ^^

나는 수많은 대상에 대해 상상을 한다. 나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인물, 환경, 상황은 정말 가공의 것에 불과한 걸까? 나의 상상 속에 등장한 인물은 가공의 것이고 나는 실재하는 것이라고 정말 단언할 수 있을까? 상상 속에서 사고/행동하는 인물과 실재 속에서 사고/행동하는 인물 간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저 모두가 자신의 몸 속 깊숙히 장착된 대본에 맞춰서 움직이는 로봇들에 불과한 것 아닐까? 결국 상상 속의 인물이든 실재 속의 인물이든 스스로 자각하는 자만이 자신을 규정하는 대본과 대화하고 대본에 씌어진 내용에 대해 협상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대본이 주어진다는 것. 상상 속이든 현실 속이든.
대본을 자각하게 된다는 것. 상상 속이든 현실 속이든.

나는 상상한다.
나는 상상을 당한다.

나를 매개로 현실과 상상이 만나고
나를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것이 나로부터의 이야기이든 나를 향한 이야기이든.

평행우주는 물리학 용어가 아니다. 일상 속에서 활발하게 생성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의 상상 속에서 수백 개, 수천 개의 평행우주가 생성되고 운영될 수 있는 것이고 나를 상상하는 누군가에 의해 나에 관한 수백 개, 수천 개의 평행우주가 생성/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상상은 대본을 낳고 대본은 자각을 낳고 자각은 상상을 확장시킨다. 초보 연기자는 대본을 기계적으로 모사하지만 중견 연기자는 대본을 분석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정립하기 위한 커스터마이징을 할 줄 안다. 연기의 고수는 작가를 컨트롤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작가로 하여금 자신에게 특화된 대본을 작성하도록 무언으로 압박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연기자가 작가의 대본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의 행동을 보고 작가가 대본을 작성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된다.

처음엔 대본을 읽고 대본을 이해하는 '대본 따라가기' 수준에 머물지만, 자각의 성장이 궤도에 이르면 어느덧 '대본이 나를 따라오게 됨'을 목도하게 된다. 대본을 자각하고 통찰하게 되면 대본이 나에게 끌려오게 되는 것이다.

대본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자각' 놀이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자, TV 드라마가 제공하는 스토리라인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고 이 세상 어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나' 드라마를 시청하도록 하자. 그리고 나를 규정하고 있는 대본을 통찰하고 내가 대본을 규정하는 경지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이제 시작해 보도록 하자. ^^





PS. 관련 포스트
연기, 알고리즘
대본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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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서사, 졸음 :: 2013/02/15 00:05

지난 주말에 영화 베를린을 봤다. 도입부를 경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코를 골며 퍼자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꿈까지 꾸다가 영화 중반부 즈음에 이르러 계속되는 액션 굉음에 그만 잠이 깨버렸고 구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충 감으로 영화 관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극장에서 잠을 푹 자면 피로도 풀리고 끊어진 스토리를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재미가 있긴 하다. ^^

예전에도 영화 보다가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잔 적이 꽤 되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 익숙한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나는 왜 영화를 보면서 잘 조는 것일까?  영화관 의자가 너무 편안해서 그런가?  극장 안이 어둡고 따스해서 그런가?

서사를 느끼지 못할 때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멋진 허구적 서사를 기대하곤 하는데, 영화의 서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졸음이 쏟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매력적인 서사는 멋진 장면들을 무작정 늘어 놓는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존재하는 빈틈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제각기 쉽게 간파 당하지 않는 역동적인 서사를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뻔한 프레임, 빤히 들여다 보이는 패턴 내에서 로봇처럼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장면과 장면 간 빈틈의 부재 속에서 건조한 동선 주행만을 반복하게 되면 나는 급격한 졸음의 침공을 받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베를린은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긴 하다. 흥미로운 서사가 보이진 않았으나 씬 자체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진 스텝으로 일관하는 씬 흐름에 부합하는 사운드도 잘 들려왔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고 영화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발걸음은 제법 경쾌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질주형 전진 스텝과 액션의 동선, 배우들 간의 포스 충돌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영화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화면/사운드 전개에서 이미 이 영화가 서사엔 그닥 신경 쓰지 않고 잘 짜놓은 액션 동선 상의 강력한 질주로 일관할 것이라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전달 받고 졸음이 스르륵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영화의 서사는 결국 관객 마음 속 서사와의 밀당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관객의 마음은 영화를 보면서 나름의 서사를 예상하고 기대한다. 그 기대치에 부합하는 서사의 매력도를 확보할 수 있어야 관객이 영화의 서사를 따라오게 되는 건데 베를린은 나를 끌어당길 수 있는 서사를 확보하진 못한 것 같다.

사람의 서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의 서사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서사에 대해서도 함 평가를 내려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서사적 매력을 갖춘 사람인가? 아님 그닥 흥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루함/졸음을 유발하는 서사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해진 액션의 동선 위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인가?

자신 만의 서사가 없는 인간은 마치 좀비와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한 (주입된) 욕망을 갖고 균질하게 정량화/상품화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좀비스런 몸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 간다는 것은 난이도 높지만 보람이 매우 큰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베를린을 보다가 졸면서 꿈 속에서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가다 쾅쾅거리는 소음으로 깨어나 액션 씬의 수려함에 잠시 나만의 서사를 잊고 영화의 이미지를 감상한다. 이미지는 순간이고 서사는 지속된다. 잠깐 잠깐 이미지를 맛 보는 건 좋다. 하지만 항상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이름의 서사를 시종일관 잊고 있으면 안 된다. 세기의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우주적 스케일을 갖고 있는 '나' 서사의 매력도를 잘 챙기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 서사를 나의 맘 속에서 상영하다가 그만 확 졸아버릴 수 있다. 그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다.  잘 짜여진 액션 동선 위를 로봇처럼 질주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멋있어 보일 뿐이다.  영화는 서사 대신 오직 액션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내러티브를 내려 놓고 주구장창 스타일에만 전념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차마 그럴 수 없는 것 아닐까?  아무리 로봇스런 액션 동선이 멋있어(?) 보여도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참치 캔의 상태로 무심하게 방치하는 건 넘 비루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세상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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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 2012/12/12 00:02

배명훈 매뉴얼(3)

재미 있는 글이다. 소설이 만들어지기 위한 생산공정을 매우 알기 쉽게 전달해 주고 있다.
비현실 경제연구소에서 의미와 필터를 생산하고, 용접라인에서 이야기 덩어리들을 연결하고, 영감 대기실에서 영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브레인스토밍 작업대에서 이야기/소재를 모아서 맞춰보고, 품질관리실에서 제품의 품질을 검사하고, 자재창고에서는 이야기의 원재로/부품/중간생산물들이 공급되고 있고, 도서관에는 각종 전문분야의 정보들이 축적되고 있고, 집필실에서 이야기 덩어리를 완제품으로 조립하고, 연기자 대기실에서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대사나 행동을 연습하고 있고
....

위의 공정은 전문 작가 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이상 꾸준히 포스팅을 하는 블로거에게도 해당된다. 블로거가 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선 개념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하고 개념을 형상화시키기 위한 재료들을 각종 온/오프라인 창고에서 발굴해 내야 하고 재료들을 이어서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거치게 되며 블로거가 축조한 스토리라인 상에서 블로거가 만들어낸 다양한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사고와 행동을 하며 스토리라인에 생동감을 더하게 된다.

블로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블로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블로깅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축되어 버리고 마는 블로거의 포스트 생산 공정. 모든 블로거는 자신 만의 생산 공정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의도치 않은 과정 속에서 탄생한 생산 공정에 의해 씌어진 글들은 블로거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어떤 나름의 건축물을 형성해 나가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던 생산공정이 만들어지고 그 생산 공정이 끊임없이 어떤 형태의 구조물들이 시공간 어딘가에서 자리를 잡고 형태를 구체화 시켜 나간다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예기치 않은 부대효과들을 무수히 낳게 되고 그 부대효과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도를 갖고 자생해 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와도 같은 뭔가를 끊임없이 발현해 나가는 것.

내가 기획하지도 않았는데 떡 하니 탄생한 생산 공정에 한 번 눈길을 줘보자. 생산 공정은 수줍어 하면서도 자신 만의 포스트 생산 프로세스를 또박또박 나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관심을 주든 말든 생산 공정과 그것이 낳은 건축물은 자신 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내가 기획을 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다.

. 자발적인 생명력을 갖는 생산 공정과 구조물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 한 번 들어봐야겠다. 오늘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려고 벼르고 있는 것인지. ^^





PS. 관련 포스트
존재 확인의 압박
존재와 불안

태깅,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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