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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와 사전 :: 2017/06/19 00:09

예전엔 무심코 넘어갔던 것도 이젠 다시 보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무심코 사용하고 흘려보내는 수많은 단어들.

그것들에 내재한 의미

그것들의 의미를 정의한 사전에 표기된 단어의 나열, 거기서 표현되는 맥락

단어가 그 속에, 그 뒤에, 그 밑에 커다란 함의를 품고 있는 그 무엇이란 사실을 새삼스럽게 인지하게 되면서

사전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니..  사전에 대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전은 그저 내가 전혀 모르는 단어를 찾는 기계적 용도로만 감지하고 있었던 대상인데..

지금은 좀 다르다.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들 중에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전혀 모르는 단어 뿐만 아니라

내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잘 사용하고 있다고 무의식 중에 흘려 왔던 바로 그 단어.. 
바로 거기에 나의 생각을 넓히고 깊게 파고 들어갈 힌트가 숨어 있겠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사전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과 가치를 갖게 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목적을 갖고 탐색적으로 사전을 펼치거나
목적 없이 그냥 무작위로 사전을 펼쳐서 나오는 단어를 접하게 되거나

어떤 경우에도 사전은 뭔가를 나에게 줄 수 밖에 없는 구조..

그 구조가 나에게 꽤 높은 접근성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매우 놀랍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놀라 자빠질 노릇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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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ritual)과 의식(consciousness) :: 2017/05/05 00:05

의식(ritual)을 행하게 되는 계기는 대부분 사소하다.
우연에 의해
우발적으로
깊은 생각 없이
감각적으로
새로운 ritual을 영입하고
그걸 무심코(?) 수행하게 된다.

그렇게 의식을 수행하는 날들이 쌓여가고
시간이 흘러가고
의식(ritual)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나는 순간들이 모여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수행하던 의식에서 뭔가가 창발하게 된다.
단지 로봇과도 같은 기계적인 수행의 흐름으로부터
의식(consciousness)이 생겨나는 것이다.

의식(ritual)의 기계적 몸짓이 무수한 반복을 거치게 되면
그 안에서 의미가 희미하게나마 생성되기 시작한다. 살짝 돌발적으로.
그렇게 형상을 띠어가는 의미들이 물성에 가깝게 형체를 빚어내면
의식(ritual)은 스스로의 존재가치와 의도를 갖게 되고
의식(ritual) 속에서 의식(consciousness)이 잉태되면서
의식(ritual)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내게 있어
블로그가 그런 케이스다.
처음에 의식(ritual)으로 시작했던 블로그
그냥 기계적인 몸짓과 언어로 일관했던 블로깅
그게 시간의 흐름을 계속 겪어내면서 아주 조그맣게 의식(consciousness)의 씨앗이 싹트면서
나의 블로그는 이제 나와는 별개의 의도와 존재가치를 지닌 의존적/독립적 개체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젠 웹사이트 형태로 존재하는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나의 블로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하더라도
이미 단순 의식(ritual)의 단계를 넘어 의식(consciousness)을 갖게 된 터라
이젠 웹사이트라는 물성이 없어도 내 블로그는 존재로서의 여정을 지속할 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다.

의식(ritual)과 의식(consciousness)이 만나게 되니
이젠 내가 블로깅을 하는 흐름이 아니라
그냥 블로그가 자신의 언어와 몸짓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 나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내 블로그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살짝 놀란 시선으로 바라볼 뿐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따로 없는 것 같다.

아주 단순한 로직에 의해 작동하는 로봇인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덧 그 로봇은 자체 영혼을 탑재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ㅋㅋㅋ



PS. 관련 포스트
의식(ritual)을 의식(consciousness)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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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 2017/03/10 00:00

모르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Shazam을 이용해서 제목을 알게 되었을 때 작은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누워서 졸음이 올 듯 말 듯한 상황에서 모르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
폰 속의 Shazam 버튼을 누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누워서 음악을 즐기고 말지란 생각.

그런데..
한 편으론
모르는 음악의 제목을 Shazam을 통해 알아내는 것의 편리함과 맞먹는, 아니 그 이상의 기쁨이
모르는 음악의 제목을 그대로 놔두는 것에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친다.

모르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고작 제목을 알게 된 것인데.
제목을 알면 해당 음악을 알게 된다는 착각만 살짝 옆으로 치워 놓으면
모르는 걸 그대로 두는 것의 은근한 기쁨을 알아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제목 알아내기 놀이를 하면서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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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와 이동 :: 2016/12/19 00:09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 물리적 동선이 형성된다.

자주 가는 장소와
자주 이동하는 경로는
좌표와 좌표 사이를 이동하는 선의 궤적처럼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의 물리적 이동으로 축적된다.

각각의 좌표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이동하는 경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니
좌표와 좌표 간의 물리적 이동은 일종의 반복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쌓여가는 반복감 속에서 일상은 더욱 강화된 삶의 궤적처럼 패인 홈을 구성하게 된다.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감정
삶은 그렇게 구성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좌표와 좌표 간 이동으로 규정되는 삶의 궤적
그런 궤적 속에서 생성되는 사고와 행동
궤적이란 맥락 속에서 국한되고
패인 홈이란 프레임 속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위치했던  물리적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물리적 경로만 쭉 나열해 보면
나의 지나온 시공간들이 물리적으로 리스트업되는 것인데.

그렇게 흘러온 나의 물리적 삶.
그것들만 잘 돌이켜 보아도 내 삶이 잘 보일 듯 싶다.

하나의 좌표가 품고 있는 의미와
하나의 이동경로가 품어 내는 서사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올 거라서 말이다. :)

좌표와 이동..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왔던, 수많은 좌표와 이동경로 속에서의 나.
분명 흘러온 시간이고 지나온 공간인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것인지.
왜 이리도 설레이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소박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블로그 포스트 입력창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놀라운 감정의 연속.
오늘도 내가 위치한 좌표와 내가 움직이는 이동 경로는
그렇게 소박하게 형성되고 수줍게 의미를 감춰낸다.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는 숨어들어간다.
그렇게 감춰지는 비밀과
어설프게 표현해낸 텍스트 속에서
노드와 링크는 오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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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플레이 리스트 :: 2016/11/16 00:06

오래 된
뮤직 플레이 리스트에서
노래 한 곡을 골라서 듣는다.

그건 마치
흘러간 시간을 다시 예전 자리로 돌려 놓고
당시에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과도 같다.

그 음악이 한창 뜨던 과거 시간대로 돌아가서
그 한복판에서
당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재생하고
당시 하지 못했던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시도한다.

하나의 뮤직은 노드
뮤직과 뮤직의 사이에 존재하는 선율

플레이 리스트는 내겐 일종의 타임머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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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판 :: 2016/11/14 00:04

한복판에 있을 때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야 비로소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문득
시간은 흘러가기만 하는 건 아니고
때로는 리플레이를 요하게 되는 듯 하다.

아니, 어쩌면
특정 에피소드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들이 리플레이의 대상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리플레이된다.

플로우 & 리플레이
그게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흘러간 시간을 붙잡아 리플레이시키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것
시간을 다루는 방법이자 시간을 대하는 태도

오늘도 한복판 위에서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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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있는 무기력 :: 2016/11/07 00:07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문학동네

단편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양희.
첨에 읽었을 땐 양희라는 사람은 왜 이리 삶에 무기력한 태도로 초지일관하는가?란 질문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내려 놓은 듯한, 삶에 아무런 의욕도 바람도 갖고 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시선.
저렇게 산다는 건 도대체 뭘까란 의문이 지속되면서 소설을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양희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유니크한 태도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왜 기억에 남는 것일까.

왜 소설 속 그 사람에 주목하게 되는 걸까.

가공의 인물일 뿐인데.

다시 한 번 소설을 읽는다.

앞으로도 종종 이 소설을 또 읽을 것 같은 예감.

양희의 초연한 듯한 시선 속에서, 무기력한 몸짓을 보면서
난 자신에게 되묻게 된다.
그럼 양희처럼 하는 것 말고 삶에 대한 태도로 더 좋은 게 있기는 한걸까?

대놓고 무기력의 포지션을 취해버리니까 그게 멋져 보이는 것 같다.
그건 이미 무기력이 아닌 상태.
힘있게 무기력의 스탠스를 취하는 것.
나약함을 인정할 때 강함이 배어나오는 역설.

게다가 그렇게 무기력을 연기하는(?)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가 힘을 얻기까지 한다면.
그건 무기력의 힘.

기력과 무기력의 경계는 모호한 것이고
그 경계선에서 끊임없이 기력과 무기력을 오가는 동적 평형감.

소설에서 느껴지는 매력.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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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 2016/10/12 00:02

고무보트를 타고 상어 잡는 법
모르텐 스트뢰크스네스 지음, 배명자 옮김/북라이프


이 책의 첫 문장이 대단히 흥미롭다.

바다에 최초의 원시 생물이 생겨난 뒤로 족히 35억년이 흐른 어느 7월의 토요일 늦은 저녁,..





그렇다.
오늘은 그냥 오늘이 아니다.
과거의 어느 날로부터 **의 시간이 흐른 그런 날이다.

시간 좌표 상의 한 점.
그 점에 위치한다는 것.

시간의 흐름 속을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수식할 수 있는 문장은 무한대가 될 것이다.

지금은 1392년 조선 건국으로부터 624년이 지난 10월의 어느 수요일 새벽이다.
이 날은 1392년으로부터 어떻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나는 1392년엔 어떤 존재였고, 지금까지 어떤 시간의 흐름을 살아왔을까.
오늘은 624년 전의 어떤 변수의 영향을 받고 있을까. 또 오늘은 624년 전의 어느 상황을 투영하고 있을까. 오늘이 624년 전의 어느 상황에 영향을 주고 있을까.

오늘이 얼마나 많은 수식어로 규정될수 있는지 뜬금없이 인식하게 되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의 의미가, 오늘에 이르게 했던 과거 시간의 흐름이, 오늘로부터 시작될 미래 시간의 흐름이..

오늘이, 지금이, 시간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걸 눈치채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감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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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주는 영감 :: 2016/05/23 00:03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후지하라 가즈히로 지음, 고정아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을 읽다보니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책에 대한 생각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

그냥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었던 건 아닌지
책과 책 사이를 횡단하는 공기의 흐름에는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닌지.

책들이 모여있는 책장을 들여다 보면서
책들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읽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행간을 읽으려고만 했지
책간에 대해선 그닥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끼게 된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는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책에 대해서 생각을 깊게 해본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책간을 읽으려고 노력을 치열하게 해본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X를 해본 사람만이 손에 넣는 것

X에는 정말 여러가지를 입력해 볼 수 있겠다.

다양한 X를 키워드로 추출하고 그것을 입력하는 놀이

이 책을 통해서 작지만 중요한 것을 하나 배우게 된 것 같다.

이런 책은 책 내용 뿐만 아니라
책 제목 만으로도 날마다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라
책장에 놓아두지 않고 보다 전면적인 노출이 가능한 자리에 항상 놓여있도록 해야겠다.

유통업체만 전면 노출을 감행하진 않는다.
나같은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프론트 운영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내가 나에게 하는 셀링이다.
가장 중요한 셀링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뭔가를 파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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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루프 :: 2015/10/14 00:04

크리에이터 코드
에이미 윌킨슨 지음, 김고명 옮김/비즈니스북스


이 책에 재미있는 개념이 나온다.

우다루프 (OODA loop)

Observe 관찰하고
Orient    방향잡고
Decide   결정하고
Acct      행동하기

이건 개인화 관점에서 다양한 변형이 가능할 듯 싶다.

굳이 관찰하고 방향잡고 결정하고 행동하기의 수순으로 루프를 구성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저 나에게 맞는 흐름을 타면 될 듯.

그리고 나에게 맞는 나만의 루프를 구성한 후
그것을 즐기듯 빠른 사이클로 점진적 반복을 해나가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핵심은
루프가 계속 작동하게 하는 것

루프의 작동 상태를 계속 ON으로 만드는 것은
루프의 사용성일 것이다

루프가 사용하기 편해야 계속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루프는 재미있어야 할 것이다.
편하기만 하면 지루해진다.

루프 속에서 루프를 흥미로운 일상처럼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루프의 조건을 정하고
그에 맞는 루프의 내용을 구성하면 된다.

나에겐 블로깅도 일종의 루프인 듯 하다.
주 3회 블로깅을 계속 반복해 나가는 것.

내 블로그 자체가 루프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난 그저 블로깅을 지속하고 있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뭔가를 지속하면
그 뭔가는 계속 끊임없이 스스로 변해가고
어떤 상황과 맥락을 만나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색채를 더해나가는 것 같다.

그런 흐름
그런 루프
즐겁고 유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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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 stream :: 2014/07/23 00:03

만보걷기란 단편소설을 읽다가 문득 아래 대목에서 환기를 하게 된다.

혹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춘천

춘천
스프링 스트림
srping stream.
봄내.
봄날의 시내.
춘천이라는 지명이 한자로 그렇게 예쁜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일러준...

정말 그렇다.
춘천이란 도시를 수없이 글로 말로 접하고 나 스스로도 춘천을 언급해 왔으면서
춘천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선 처음으로 환기를 해보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단어와 개념들이 사전적 의미가 배제된 채 사용되고 있을까?
물론 사전적 의미를 환기할 필요성이 희박하니까 그렇게 기호들만 사용되는 것이겠으나
온전히 기호들만 범람하는 말의 세계는 왠지 좀 건조한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기호만 접하고 살면 뇌도 기호가 되어간다.
기호만 편식하고 있는 나에게 의미를 섭취하게 하면
기호와 의미는 서로를 참조하게 되고
상호 참조라는 연결의 생성은 생기를 잃어가던 기호와 의미에게 새로운 동기를 부여해 준다.

단어가 단지 운반수단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운반,전달 이외의 설렘을 간직할 때
언어는 인간을 단순 기계가 아닌 인간다운 존재로 작동하게 한다.

언어를 건조하게만 사용하다
풍요롭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발견해서 살짝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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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함정 :: 2014/01/24 00:04

"우주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란 질문.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낸 도구인 '시간'을 전제로 한 질문이 아닐까?
시간은 도구일 뿐 그게 도대체 뭔지에 대한 이해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의 시초를 논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린 '시간'을 넘 당연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편의성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뭔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치는 것은 완전 다른 얘기다. 시간을 도구 관점에서 야무지게 활용하는 것은 무난하겠으나, 시간에 대한 철학/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을 전제로 뭔가 거대한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쌓을 우려가 충분하다.

'시간'
일상 속에서 너무도 쉽게 쓰여지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매우 요상한 도구이자 개념이다. 
시간은 거대한 함정을 곳곳에 숨겨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시간에서 도구적 기능 이외의 거품을 말끔히 제거하고 시간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럴 경우, 시간에게 우주의 시초를 기술하는 개념적 기반이 될 자격이 여전히 존재할까?  '시간'의 정체가 불투명할 때, 우주의 시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 자체가 사고에서 배제될 때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시초를 찾는 탐구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아닐지.

시작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순간,
만물의 근원이나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를 모델로 규명하는 지난했던 과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모델링은 마치 양파껍질 까기와도 같다. 뭔가를 찾아내면 또 다른 뭔가가 나타나고 또 다른 뭔가를 규정하려 들면 다른 뭔가가 튀어 나온다. 그런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도출한다는 건 참 난해하다. 근원에 근접하기 위해선 접근력이 뛰어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적 방향성을 도입하던가.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  존재와 이유가 하나인데 그것을 분리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주와 시초를 분리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나눠서 질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얘기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와 이유를 분리해서 둘 다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놓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화시켜 나가는 모습.  분리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통해 질문의 경로를 재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 대신
"우리가 임의로 분리해 놓은 개념들은 어떻게 합쳐져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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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함정 :: 2014/01/17 00:07

'디테일은 힘이다'란 말엔 힘이 있다. 굳이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디테일에 강하면 뭔가를 작동시키고 뭔가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남다른 역량을 발휘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쉽다. 디테일과 힘은 코드가 서로 맞아 보이는 측면이 있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 꼭 미덕일 수만은 없다. 세상은 수많은 디테일로 이뤄져 있다. 하다 못해 PC질 하면서 수시로 만져대는 마우스만 해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름 깨알 같은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뭐든 까보면 디테일이다. 세상에 널린 게 디테일인 것이다.

널린 게 디테일이라고 볼 때, 디테일에 강하다는 건 엄청난 자원 투입을 특정 포인트에 집중적으로 가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세상에 널린 게 포인트인데 특정 포인트의 디테일을 챙긴다는 것. 디테일에 강하다는 건 엄청난 선택을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이 만약 잘못된 것이라면 디테일은 힘이 아닌 재앙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은 선택한 포인트가 매우 적절해야 함을 전제로 깔아야 한다. 그 전제가 무너지면 디테일이고 뭐고 말장 꽝이다.

디테일에 강한 것을 섣불리 미덕이라 믿지 말고, 디테일이란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커다란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 디테일이란 단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영역에 대한 디테일인가?란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그 영역에 내가 보유한 상당량의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런 엄청난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가? 그것이 헛다리였음이 밝혀질 때 나는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뭐 이런 식으로 '디테일 챙기기'란 거대한 투자를 단행하기 전의 출사표가 나름 심각한 어조로 작성될 필요가 있단 얘기다.

디테일이란 단어를 연상할 때 대개 자신의 약한 디테일을 떠올리며 모호한 부채 의식을 갖게 되는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디테일에 약한 건 당연한 것이다. 세상에 깔린 게 디테일인데 그것에 어떻게 강할 수 있겠는가?  모든 디테일에 강하다면 그게 어디 인간인가? ^^

사람은 태생이 디테일에 약할 수 밖에 없다. 디테일에 강하다고 해봐야 고작 몇 가지 밖에 안 되는 게 자연스럽다. 문제는 디테일이란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고 내가 챙겨야 할 디테일을 합리적으로 선정하지 않고 쓸데없이 단어의 표피적인 결에만 몰입한 채 '디테일'이란 단어를 끌어안고 머나먼 삼천포행 열차를 타고 봉창 두드리는 여정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디테일에 대한 스탠스를 명확히 하자.  디테일은 일종의 깊은 함정이다. 한 번 빠지면 나오기가 어렵다. 투자 측면의 용단이 필요한 독이 든 성배와도 같은 대상이다. 디테일을 함정으로 정의할 것인가? 아님 시의적절하게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는 스마트 툴로 자리매김시킬 것인가?  그건 디테일이란 단어(도구)에 대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전체를 머금은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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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 크래프팅 :: 2013/11/25 00:05

잡 크래프팅이란 표현이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스스로 변화시켜 일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활동을 의미하는데 일하는 자가 돈 때문에 마지 못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일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능동적인 업무 수행의 동기를 스스로 부여한다는 차원에서 일종의 개인경영의 방법론으로 볼 수 있겠다.

"
왜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란 대답 보다는 "돈 때문에"란 답변을 하기가 쉽다. 그런데 그런 답변을 하는 순간, 일을 하는 자로서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일이 자존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타존의 고착화로 귀결되는 모습이라면 ''에 대한 자부심, 열정이 생겨날 리는 만무하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일을 재미있고 의욕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자신 만의 방법을 고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일에 대한 자세는 초기의 신선함을 잃고 일상의 축적 속에서 지루함의 단계로 진입하기 마련이다. 시간의 공격 앞에 창의는 루틴이 되고 루틴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덧 매너리즘이 일을 리드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 '루틴'속에 지루함을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숨겨져 있다. 유는 무에서 나온다. 뭔가 대단한 것을 생각해 내고 만들어 내는 것은 거대한 ''가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하다. 뭔가 지루한 듯 하고 티도 안나는 것 같은 반복적 루틴. 그건 일종의 거대한 ''일 것이다.

반복을 지루함이라 간주하지 말고 창의를 생성할 수 있는 세라고 생각해 보자. 반복이 지속되면 창의의 세가 강력하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규정해 보자. 반복이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는 건 거대한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 에너지는 혁신의 동력으로 사용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잡 크래프팅은 결국 지루함의 이면에 창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순해 보이는 일에 깊은 의미를 심을 수 있으려면 지루함의 이면을 직시할 수 있는 ''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 눈은 일상 속의 지루함을 '지루함+알파'로 인식할 수 있는 제3자적 시각을 의미한다. 일을 하면서 그저 일을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적 관찰에서 루틴의 창의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프레임 속을 살아간다. 일도 일종의 프레임이다. ‘이란 프레임 속에 온전히 빠져들지 않고 수시로 그 프레임 속을 빠져 나와 프레임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나에게 있는가? 그게 없다면 그 눈을 갖기 위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2개의 프레임을 구축해 놓고 프레임과 프레임을 오가면서 프레임 속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블로깅을 하지 않는 나를 바라본다. 또한, 블로깅을 하지 않으면서 블로깅을 하는 나를 바라본다. 2가지 역할을 수행하면서 일종의 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 세에서 나의 루틴은 지루함이 아닌 약동하는 삶의 시공간으로 포지셔닝한다.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가 실은 동전의 양면인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생각/행동으로 명쾌하게 통찰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프레임을 넘나들면서 를 메타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면, 세를 형성할 수 있다면 세상에 널려 있는 동전의 양면메커니즘을 유유히 관조하며 경쾌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블로깅을 하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루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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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진심 :: 2013/09/30 00:00

가끔 커피전문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블로깅을 할 때가 있다.  가벼운 소음과 감미로운 커피향이 적당히 뇌를 자극해 주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책이나 노트북은 나만의 시공간이 되어버린 채 온전히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에 몰입하기 위한 최상의 환경이 조성된다. 커피전문점에 가는 것을 귀찮아 하는 나의 습성만 아니면 될 수 있는 한 그 곳에 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런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허구헌날 그 곳에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대안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그 곳의 경험을 비용효율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커피전문점에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편안한 옷차림, 책과 노트북이 담겨진 가방, 그리고 모자.  

어?
모자 빼고는 이미 집에서도 충분히 구현이 가능한 것들이다. 
모자 빼고는 비슷하다?
그럼 모자?

집에서 극도로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 놓고 모자를 써보았다. 헉. 단지 모자 하나 썼을 뿐인데 나의 뇌가 커피전문점에 앉아 있을 때와 비슷한 모드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모자를 쓰고 노트북질을 하니까 뇌가 커피전문점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인가? 이상하게도 커피전문점에서의 집중력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신기한 느낌을 만끽하면서 계속 노트북질을 지속한다. 거기에 커피 한 잔을 곁들이니 이건 뭐. ^^

결국 중요한 건 뇌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이다. 뇌는 완벽한 설정을 제공해야만 만족하는 까다로미가 아니다. 뇌는 유사한 느낌이 제공되면 대충 만족하고 조아라 한다. 뇌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한다. 실재와 환상을 항상 혼동하고 헷갈려 하면서 그저 매 순간 제공되는 느낌을 유일한 실재라 여긴다. '가상현실'이란 단어는 결코 스펙타클 무비나 초절정 과학기술에서만 구현 가능한 넘사벽 경험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뇌에게 얼마든지 제공해 줄 수 있는 일상적 스킬에 불과한 것이다.

뇌의 진심은 아마 아래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진짜,가짜? 그런 건 원래 없는 거야. 그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을 뿐이라구. 자, 이제 나한테 어떤 느낌을 줄 건데? 넌 나를 어떻게 속일 거야?  스마트하고 교활하게 날 속여봐. 얼마든지 난 너에게 넘어가 줄 준비가 되어 있어.


뇌는 정보를 유연하게 처리하는 기관이다. 뇌 상을 유유히 유영하는 정보. 그것은 실재를 반영한 현실적 정보일 수도 있고, 실재를 가장한 가상적 정보일 수도 있다. 아니, 애당초 실재와 가상은 구분이 확실치 않은 허상적 개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뇌는 정보를 필요로 하고 그것을 탐식하면서 살아간다. 뇌로 흘러 들어가는 정보를 전량 방관할 것인가, 아님 그 중의 일부를 내 입맛에 맞게 튜닝할 것인가? 뇌의 진심이 드러나면 날수록, 뇌에 대한 나의 자세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



PS. 관련 포스트
뇌멘토
뇌 속여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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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곰 | 2013/10/30 16: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ㅋㅋㅋㅋ 제가 이상한걸까요? 난 너에게 넘어가 줄 준비가 되어 있어.
    시험공부 하다가 집중이 안되서 고민하던 차에 좋은 해법을 찾은거 같네욤
    또 놀러올게요~

    • BlogIcon buckshot | 2013/11/01 09:59 | PERMALINK | EDIT/DEL

      뇌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일상은 더욱 스마트해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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