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해당되는 글 6건

계절 태그 :: 2017/05/19 00:09

계간지를 읽다가 계절을 인식하게 되고
계절을 인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블로그에 계절을 언급하게 되고
계절을 언급하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내가 그닥 블로그에 '계절'을 태깅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태깅하려 한다.
겨울
여름

가을

계절을 태깅하게 되니
블로그에서 계절의 향기가 느껴지려 한다.

참 뒤늦은
그리고 참 반가운
인식이다.

계절 태깅.
즐거운 놀이 하나가 생겼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149
NAME PASSWORD HOMEPAGE

계간지와 계절 :: 2017/05/17 00:07

문학동네 2016년 여름호를 읽는다.

문학동네 2017년 봄호로 이미 종료된 장편소설을
다시 읽는다.
문학동네 2016년 여름호에서 시작된 그 장편소설

장편소설이
계간지가
그리고 내가
계절을 품는다.

하나의 소설에서 계절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하나의 계간지가 머금고 있는 계절 속에서
계절을 만끽하러 들어간 장편소설 다시 읽기의 시간은 계절 그 자체가 된다.

계간지엔 계절이 담겨 있다.
앞당겨진 계절이 담겨 있다.
그리고 뒤로 기약을 남기는 계절도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계절을 방문한다.
2016년 여름을 다시 방문하면서
나는 장편소설 연재를 독자 입장에서 전개한다.

내가 쓰는 장편소설이다.
내가 읽으면서 다시 써내려가는 장편소설이다.

내 마음 속에 필사를 하면서
내 마음 속에서 변주를 하면서
나는 지금 계절을 읽어내고 있다.
그리고 계절은 나를 읽어내고 있다.

계절과 내가 서로를 읽으면서
2016년 여름은 그렇게 더욱 깊어만 간다.
그 계절은 지나가지 않았다.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있고
앞으로도 나는 계속 그 계절을 소환할 것이다. ㅎㅎ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148
NAME PASSWORD HOMEPAGE

끽다점평판기 :: 2014/12/05 00:05

소설문학 2014.가을
소설문학 편집부 엮음/북인

소설문학 2014년 가을호에

'끽다점평판기'란 소설이 실려 있다.


문득,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려 있는 '벚꽃새해'란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이 두 소설을 연작 형식으로
KBS 드라마 스페셜에서 한 번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소설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싶어지는 것.
참 좋다. ^^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문학동네



PS. 관련 포스트
블랙 스커트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766
NAME PASSWORD HOMEPAGE

미완의 독서 :: 2014/04/30 00:00



장편소설의 초중반을 읽었다. 60~70% 정도를 읽은 셈이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로 진입하지 않고 1개월 이상 그 상태로 머물러 있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분명 후반부가 어떻게 전개될 지 매우 궁금했지만 가장 궁금한 그 지점에서 가차없이(?) 중단했다. 읽기를 중단했지만, 남은 후반부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머리 속에서 새록새록 기어 나온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주인공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 관계의 사슬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주인공의 협력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주인공과 갈등 관계에 있는 자들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인물과 인물 간의 상호작용은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 것인지, 관계의 장은 어떤 색깔을 띠며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복합적인 관계망은 어떤 방식의 결론을 낼 것인지, 소설의 결말에서 나는 어떤 메세지를 생성하게 될 것인지. 소설의 완결을 본다는 건, 어찌 보면 참으로 싱거운 이벤트가 아닌가 싶다. 굳이 소설가가 머리를 쥐어짜며 얻어낸 결과물이 나에게 적합한 엔딩이 될 수 있을지, 작가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끝 모습을 내가 시간을 투입하며 확인할 필요가 과연 있는 것인지.


장편소설을 하루 만에 내달리듯 다 읽어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게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계속 '읽기'로만 일관하다 보면 기계적인 리딩 머신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소설의 구조와 메세지를 음미하기 보단 종착역에 빨리 도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나머지 여행의 향취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고 질주하는 KTX와도 같은 모습이 되어 버리곤 했다.  달음질의 끝에서 확인하게 되는 건 상상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다소 허무(?)한 결말들. 물론 작가 입장에선 혼신의 힘을 다한 마무리였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달려왔던 길이라서 어지간해선 엔딩 신에서 흠뻑 만족하기가 여간 쉽지가 않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자가 소설의 레일에서 이탈해서 자신 만의 노선을 따라 걸어가는 건 그닥 쉬운 일은 아니다. 자칫 실망스런 시나리오 전개에 허망하게 지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라서. 마치 고등학교 때 정석수학 공부하던 모습이 재현될 수도 있다. 문제를 풀다가 지쳐서 책 뒤에 있는 답안지를 슬쩍 보고 문제 풀이 방법을 의존적으로 익히던 그 시절. 실력이 늘기가 어려웠다. 문제풀이 기계가 되어 생각하면서 문제를 풀기 보다는 정해진 모범답안을 외워대는 시간들의 반복. 소설을 단선적으로 줄달음치듯 다 읽는 것은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하는 독서 습관의 고착화의 길이다.


1개월의 중단 기간 동안, 나만의 엔딩이 어느 정도 형성되는 듯 싶다. 물론 작가가 정해 놓은 결말과 비교하면 매우 조악한 스토리라인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초중반을 읽으면서 이미 내 안엔 작가의 레일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나만의 서사가 천천히 움트기 시작했던 것이고 그렇게 생성되어 가는 나만의 스토리라인은 초중반을 다 읽은 시점에선, 유치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색채가 입혀진 채 수줍은 듯 자신 만의 플로우를 진행한 것이다. 독자의 위치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전개시켜 온 나만의 소설 흐름을 자각하지 못하고 저자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보편적인 소설 읽기의 양상이지만, 그건 왠지 모르게 아쉽다. 독자 참여형 소설 읽기의 방법론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그걸 서서히 인지할 수 있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노선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 만의 레일을 구축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소설 읽기가 중첩된 스토리라인이 독자의 마음 속에 축조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셈. 물론 그걸 가시화된 언어 표현으로 옮기는 건 매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간이 더 흐르면, 열린 마음으로 작가가 구성해 놓은 후반부를 읽어볼 것이다. 나의 엔딩과 어떻게 다른지, 나의 결말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지, 나는 어떤 메세지를 발신했고 어떤 메세지를 수신했는지.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다. 그게 소설의 진정한 결말이 아닐까. ^^



PS. 관련 포스트
小說三分之讀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670
NAME PASSWORD HOMEPAGE

한 권의 책을 100번 읽기 :: 2014/02/12 00:02

어떤 책을 읽을 때 그 책을 1회 읽고 나면 웬만해선 그 책을 다시 집어 들고 읽는 일이 드문 편이다. 한 번 읽으면 그 책에 있는 내용을 다 읽었고 그 책을 통해 얻을 건 다 얻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그 책을 읽어봐야 딱히 감흥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이 분명 존재한다.

책은 과연 한 번 읽고 영원히 덮어두어야 제 맛인가? ^^

2번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이 있다면 어떨까?
10번 읽을 수 있는 책이 제법 있다면 어떨까?
100번 읽을 수 있는 책이 단 한 권이라도 있다면?

만약
내가 어떤 책을 읽고 나서
"음, 이 책은 100번 정도 읽을 가치가 있구나."라고 느낀다면
그 책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세기의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00권의 책을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독서 에너지가 소모될까. 정말 만만치 않은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새로운 여행지를 알아가듯, 새로운 책을 대하기 위해선 준비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그런 과정 자체가 활력소가 될 수 있겠으나 그 이면엔 피로감이 존재하는 건 명백하다.

한 권의 책을 100번 읽을 수 있다는 건, 100번 읽어도 100권을 읽은 것 이상의 가치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건 100가지 새로움을 만나는 것 이상의 신선함을 에너지 소모 없이 만끽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여튼,
100번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이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하나의 작은 소설 안에 담긴 거대한 세계가 그걸 가능케 한다.
100번을 읽는 과정 속에서 100가지 세계, 아니 1만가지, 아니 그 이상의 규모가 생성된다.

'봄밤'이란 단편소설을 작년에 인상 깊게 읽었다. (문학과 사회 2013년 여름호)
이 소설은 긴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읽을 소설이 될 것 같다.
아마 긴 세월을 이 소설과 함께 하면 자연스럽게 100번을 읽게 되겠지.

이런 소설이 앞으로 내 앞에 종종 등장해 주면 참 좋겠다. ^^



PS.
어떤 책이든지 100번 읽으면 '세기의 책'이 된다.
처음 읽을 당시엔 어떤 책이었는지 몰라도 100번 읽히는 과정에서 '세기의 책'이 되어간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635
NAME PASSWORD HOMEPAGE

존재, 서로를 증명하는 것 :: 2014/02/03 00:03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3년 전에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e북으로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책엔 재미난 단편소설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이후로 부쩍 소설을 읽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요즘도 소설을 종종 읽는다. 이렇게 된 것은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받은 감흥이 매우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문학과 사회 2013년 여름호에 수록된 권여선의 '봄밤'이란 단편소설을 읽었다.  '안녕, 인공존재!'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게는 '봄밤'이 '안녕, 인공존재!'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안녕, 인공존재!'가 '봄밤'이란 인사에 대한 화답인 것 같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졌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뭔가가 증발되었음을 느낄 때.
내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 구멍이 뻥하고 뚫렸음을 누군가가 알아차릴 때.

존재 A는 흘러간다. 존재 A는 흔적을 남긴다. 존재 자체는 '허'일 수 있어도 존재 A는 흐름 속에 자취를 남긴다. 그걸 존재 B가 느낄 때 A가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B 또한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존재는 상대방을 증명하면서 자신을 증명한다. 존재는 증명의 주고 받음이다. 그것은 존재함으로 유지되고 부재함으로 완성된다. 존재는 그런 것이다.

'봄밤'을 읽고 나서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게 되었고,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면서 봄밤을 망각하게 된다. 내 맘 속에서 두 소설은 소환과 망각을 반복하면서 상호 존재의 증명을 지속할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흔적

부활과 봄밤
존재 확인의 압박
존재와 불안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588
NAME PASSWORD HOMEPAGE
< PREV #1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