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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 2017/06/05 00:05

저절로 두면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정돈된 구조는 무질서한 모습으로 흘러간다,

저절로 두면
엔트로피는 그저 증가한다.

저절로의 역방향을 의도하고
저절로 두면 되기 마련인 그런 모습의 반대 양상을 이끌어 내려고 할 때
나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나의 의도는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어떤 엔트로피 플로우에 저항하는가
내가 거스르고자 하는 엔트로피 흐름
그게 나를 누구로, 무엇으로 만들어 간다.

그런데 그 흐름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면
그건 나의 정체성이 아닌
나의 소외

의도하지 않은 지점에서 엔트로피에 저항하고 있다면
그건 헛된 몸짓
그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저절로가 낫다.

나를 규정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그런 흐름과 동떨어진 곳에서 엔트로피 줄이기에 열일을 하고 있다면
그 흐름엔 제동이 걸릴 필요가 있겠다

저절로에 주목하면서
내가 바꾸고 싶은 저절로 플로우가 과연 무엇인지
그게 정말 내가 원했던 흐름인지
아니면 외부로부터의 강압인지
그걸 분별하는 눈이 생겨날 떄
세상의 수많은 저절로와 내가 규정한 안티-저절로 간의 균형이 생겨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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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엔트로피 :: 2016/02/17 00:07

농지가 택지로 용도 변경되어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그 땅은 다시 농지로 돌아가기 힘들다.
인터넷을 사용하다 보면 인터넷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카카오톡으로 메세지를 주고 받다 보면 이전의 문자로 휘귀하기가 어렵다.

혁신이 발생하면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실감하게 된다.

혁신은 엔트로피의 속성을 띠고 있다.
혁신을 통한 변화의 비가역성.

시간이 흐르면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공간 속에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비가역적 플로우 속을 속절없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일까.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런 생각이 기계적으로 축적되어서 결국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 아닐까.

비가역적 변화로만 보이는 현상들 속에서
시간을 거스르는,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가역 메커니즘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시간 속에서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는 인간
인간은 자신 만의 가역 메커니즘을 만들어 내는 놀이를 평생 하고 살 의무와 권리가 있지 않을까?

혁신적 변화 속에서 비가역적 무기력함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가역의 꿈을 꿀 수 있다면
비로소 인간은 시간,공간과 나란히 3간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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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팅하기가 싫어서 블로깅이 좋다. :: 2014/09/17 00:07

나는 포스팅하기가 싫다.
귀찮다.
생각이 어떻게 매번 새로울 수 있겠는가?
포스팅은 언제나 매너리즘과의 전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서 난 블로깅이 좋다.
주 3회 포스팅을 하는 게 넘 힘들어서 블로깅이 좋다.
어떻게 생각이 매번 새로울 수 있겠는가?
블로깅은 언제나 매너리즘과의 정겨운 대화일 수 밖에 없다.

귀찮은 것과 일상을 잦게 공유하면서
엔트로피에 대항해 나가는, 아니 엔트로피의 물결을 살짝 비트는 놀이를 즐긴다.

엔트로피를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려 하지 않고
엔트로피의 방향성에 살짝 스크래치를 내려는 정도로만 그치니까
확실히 귀차니즘과 ritual 간의 타협점이 형성되는 느낌이다.

장기간 블로깅을 하다 보니
엔트로피를 감미롭게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결을 찾아가게 된다.

포스팅하기가 싫어서 블로깅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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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 2014/08/18 00:08

시간을 거슬러란 노래가 있다. (해를 품은 달 OST)

이 노래를 가끔 듣는데 정말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시간은 결국 마음의 함수인가 보다.

마음 속에서 스러져간다면 시간을 견디지 못한 것이고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잠재하면서 언제든 소환되어 심금을 울릴 수 있다면 시간을 견뎌낸 것이다.

마음에 착상되어 마음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

이 느낌을 잘 기억해야겠다.

그래야 나도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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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간의 상상 :: 2013/09/06 00:06

우연한 경험

가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멋진 컨셉,키워드를 제시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혹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곤 하지만 이내 책을 덮게 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책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간 소모 없이 멋진 컨셉,키워드를 얻게 해줬으니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즐기는 독서 플로우가 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너무나 매력적인 제목,컨셉,단어,문장을 노출하고 있는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 지는데 막상 그 책을 읽어보면 당초 가졌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책을 읽지 않고 그저 책에 대한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는 그런 흐름. 책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책을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책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이 더 큰 부분일 수 있다는 것.


의도된 경험

꽤 괜찮을 것이라 예상하는 책을 구입해 놓고 30일 동안 책을 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시간의 흐름이 야기하는 궁금증을 억제하고 또 억제하면 자연스럽게 구입한 책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책을 궁금해 하고 도대체 그 책 안에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나만의 경로를 따라 펼쳐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바로 책을 열었다면 예상했던 내용에 부합하지 못하는 실망스런 컨텐츠에 기분이 다운될 수도 있고 예상을 뛰어넘는 책 내용의 전개에 흥미진진함을 만끽하며 독서의 흐름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가능성을 비밀로 간직한 채 이미 완성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책과 일정한 거리를 설정한 채 나만의 스토리라인을 덮여 있는 책 위로 쌓아가기 시작하면 책은 더 이상 궁금증의 대상에 그치고 않고 나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책으로 identity를 정립하게 되고 나는 어느덧 작가 모드로 진입하게 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손에 넣은 후, 책을 좀처럼 열지 않고 작가의 입장을 획득하는 것. 독자와 작가는 동전의 양면에 불과함을 체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평행우주의 탄생

어쩌면 영원히 책을 여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상상 자체로 충분히 즐거웠고 그로 인한 포만감이 책 내용을 더 이상 궁금하게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놓고 그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충분한 것이고 열지 않은 책을 통해 나만의 책을 쓰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니 어쩌면 최상의 독서 경험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또한, 결국 그 책을 열고 나만의 판타지와 그 책에 적혀 있는 팩트를 비교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저자의 생각 흐름을 읽고 '나'라는 또 하나의 저자가 펼쳐낸 생각 흐름도 리뷰할 수 있으니 두 생각의 궤적을 한꺼번에 느끼는 경험은 나름 박진감 넘칠 것이다. 30일 간의 판타지는 일종의 '평행우주'인 것이다. 한 권의 책을 구입해서 하나의 평행우주를 생성하는 경험. 그건 정말 유쾌한 일타이피가 아닐 수 없다.


30일 간의 상상 놀이를 하면서 독자이자 저자로 활동하는 경험. 매우 짜릿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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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악의 힘 :: 2013/03/15 00:05

리더는 조직을 좋게 만들 힘은 그닥 갖고 있지 못하다. 조직은 조직원들이 좋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리더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조직을 나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너무도 크기에 리더란 위치는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자신이 뭔가를 해서 조직을 좋게 만들려는 의지 보다는 내 자신이 하는 일들이 조직에 어떤 나쁜 임팩트를 미치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문명도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문명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르고 굴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문명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개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지로 구현한 것들이 결국 이전보다 개선한 것이 그닥 없는 허무한 결과들을 낳은 케이스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일 것이고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듯하다.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질서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끊임없이 창발한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풍선효과와도 같아서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 나오는 현상의 무한 반복일 뿐이고 그런 쳇바퀴 속에서 뭔가를 했다는 자위는 공허함만을 더할 뿐이다.

개악은 왜 자행되는가?

개선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본능이 낳은 환상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개선보단 개악을, 진보보단 퇴보를, 질서보다는 무질서를 낳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생 전체를 일관하는 유전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개선과 진보를 향한 기계적 몸부림을 아무런 자기비판적 태도 없이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기계적 행동은 유전자 속에 깊숙이 프로그래밍된 유전형질과도 같이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견고하게 장착된 채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모습.

개악의 중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맹목적 본능의 기계적 진행을 멈춰야 한다. 본능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개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가 있다. 어리버리 있다간 본능은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기 마련이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본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이 본격적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감지하고 본능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일단 말을 걸게 되면 본능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 본능이 주춤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맹목적 개악의 몸짓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나의 행동이 개악과 개선 중 어느 쪽으로 좀 더 기울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개 개선 만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본능 때문에 개악의 효과를 직시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개악이 개선을 압도하기 쉽다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순간 개악과 개선을 구분할 수 있는 중립적 판단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개선과 개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개악을 덜 했는가의 문제라고 깨끗이 상황을 시인하고 나면 판단력은 명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악을 자제하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나빠지기 쉽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된 프로그램만 평생 죽어라 수행하다가 떠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 자신에게 주입된 프로그램 말고 자신이 스스로 주입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로봇같이 흘러가기 쉬운 기계적 인간 삶에 청량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어이없는 뇌 놀음에 평생 유린당하는 바보 같은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나의 개악 능력을 시인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자제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 수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뭔가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람 있었다고 자위하는 환상 속 삶은 지양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개선의 포스가 아니라 개악의 포스이다. 그 포스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끊임없이 세상을 개악할 것인가? 아님 그 포스를 내가 새롭게 창제한 나만의 프로그래밍 기법으로 현명하게 조종할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질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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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응시 :: 2013/02/01 00:01

나는 무엇을 응시하는가?  내 시간의 대부분은 무엇을 응시하는데 사용되고 있을까? 돈? 명예? 권력? 우월? 안전? 감정?  그런 것들에 소비되는 시간은 과연 가치 있는가?

돈을 응시하고 그것을 동경하면 어떤 모습이 벌어지는가?  돈을 follow하면 매일 돈에 관한 근심,걱정,불안이 나의 마음 속으로 feed된다.  트위터,페이스북 앱을 실행하고 끊임없이 타임라인에 출몰하는 정보들을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스캐닝하는 로봇스런 사용자 행동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마음은 온통 돈에 관한 피드로 범람할 것이고 그 피드들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갈 것이다.

명예도 권력도 우월도 안전도 다 마찬가지이다. 뭔가를 바라게 되면 그것에 관한 불안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마음 속 타임라인을 장악하게 된다. 단지 하나의 단어일 뿐인데 그 단어가 자행하는 타임라인 난자의 수준은 정말 무자비할 지경이다.

어떤 대상을 응시하는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결코 회피하기 어려운 본능에 가까운 몸짓이다. 응시하라고 디자인된 몸을 갖고 태어나서 어떻게 응시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속 타임라인을 온통 그런 쓰레기 같은 피드 정보들로 가득 채우고 살아가는 건 생을 영위하는 자로서 매우 자존심 상할 수 있는 일이다. ^^

마음이란 이름의 타임라인. 마음 자체를 응시해 보자. 내 마음 속에 지금 무엇이 피드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지금 이 순간 내 마음 속에 무심코 피드된 정보가 나의 어떤 follow 행위에서 비롯된 것인지 근원을 추적해 보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follow한 것에 관한 정보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이지 내가 follow하지 않은 테마는 결코 내 안에 피드를 형성할 수가 없다. 내 마음 속 타임라인은 철저히 내가 선택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인데 그 모습을 응시하지 않고 그저 피드된 정보들에 의해 내가 속절없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매우 허무한 일이다.

가끔은 내 마음 속에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피드들 중에 영 아닌 것은 unfollow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follow만 하고 unfollow를 하지 않으면 타임라인은 오염에 오염을 거듭할 수 밖에 없다. 오염을 막기 위해서는 타임라인을 stock이 아닌 flow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타임라인 플로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팔로우한 테마들을 쭉 점검해 보자. 그 중에 나를 유독 무기력하게 만드는 테마가 있다면 그로 인해 내 마음은 무척 혼란스런 상태에 놓여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응시하고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테마를 찾아내는 노력.  너무나 vulnerable한 마음 타임라인에 한 줄기 희망을 제시하는 몸짓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바뀌어 가는 나의 모습은 마음 피폐화 시대를 거스르는 리버스엔트로피적인 변혁의 단초가 될 것이다.

하루에 단 5분이라도 나의 마음을 응시하는 것. 길을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에겐 너무나 소중한 시간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정확히 두 종류의 사람으로 양분된다. 마음을 응시하는 자와 마음을 응시하지 않는 자로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내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
맘봇
마음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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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7 | DEL

    I visited various blogs except the audio quality for audio songs existing at this web site Read & Lead - is really marvelous.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8 | DEL

    Hahahahahahaha, this politics related YouTube video is actually so funny, I liked it. Thanks in support of sharing this %title%.

  • BlogIcon wealandwoe | 2014/09/02 1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 마음이 내것이긴 한걸까? 싶을 정도로 선택을 해야 하는 지금. 너무 혼란스러워요.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싶으나 자꾸만 같은 혼란으로 다가와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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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의 환상, 강연과 약연 :: 2011/07/15 00:05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휘발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세상 전체가 휘발 플랫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휘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휘발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졌을 뿐이다. 만물은 그저 존재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 고리의 강도만 세졌다 약해졌다 하는 진동의 양태만 달라질 뿐이다.

휘발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 수 있다.
휘발보다는 약연(약한 연결)이 올바른 표현일 수 있다.  나의 의식적 기억이 휘발되었다고 느끼는 정보는 나와의 연결이 약해졌을 뿐 휘발된 것이 아니다. 그 정보와 나를 잇는 연결 고리가 다소 약화된 것 뿐이다. 약화된 연결고리는 어떤 기회를 통해 다시 강한 연결이 촉발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연결이다.
나와 나를 둘러 싼 외부(?)가 나와 어떤 연결을 맺고 있는지에 포커스해야 한다.  나를 대상과 이어주는 강연(강한연결)과 약연(약한연결)이 나를 형성하고 나를 만들어 간다. 나를 계발하는 것은 나의 강연과 약연을 계발하는 것이다.

휘발(?)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휘발되었다고 서운해 할 필요가 없다. 약연은 때가 되면 강연이 되기 마련이다. 무수한 약연들은 의식 관점에선 휘발이지만 무의식 관점에선 거대한 잠복을 의미한다.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약연 덩어리들에 적절한 자극을 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일 뿐이다.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거대한 잠복의 빙산 속에서 강연은 재생되기 시작한다.

저장에 대한 환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에 오류가 숨어 있다. 정보는 저장이 아닌 접속의 대상이다. 저장하려고 애쓰는 것은 근원적 엔트로피에 대한 헛된 저항이다.  저장이란 무리한 개념보다는 연결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약연'이란 이름의 거대한 빙산은 우아한 성장을 지속한다. 약연은 언젠가 강연이 되고 강연은 약연이 된다. 강연은 강연대로 가치가 있고 약연은 약연대로 매력이 있다. 세상 전체가 연결 플랫폼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휘발, 알고리즘
거잠, 알고리즘
딜리셔스, 아카이빙, 엔트로피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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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1:07 | DEL

    Appreciation to my father who stated to me regarding this web site, this web site Read & Lead - 저장의 환상, 강연과 약연 is really awes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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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아카이빙, 엔트로피 :: 2010/12/20 00:00

대표적 소셜 북마킹 서비스였던 딜리셔스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딜리셔스는 웹 2.0이란 단어가 폭발적 거품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도 그닥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는 아니었다. 그저 소수 유저들의 온라인 북마킹 서비스로 포지셔닝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딜리셔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서비스를 종료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좀 서운하긴 하다. 

그런데, 막상 서비스가 종료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닥 백업할 마음은 잘 안 생긴다. 어차피 웹엔 정보가 널렸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나름 확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딜리셔스에 저장해 놓은 정보들을 다 잃는다고 해도 딱히 아쉬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딜리셔스에 저장해 높은 정보들을 나중에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정보의 생성과 휘발이 폭주하는 웹에서 딜리셔스는 참 힘들었을 것 같다.


딜리셔스를 잘 사용하려면 정보의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고 그것을 참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아카이빙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한 나머지 자칫 지칠 수가 있는 것이다. 막상 열심히 아카이빙을 하고 난 후엔 기력이 소진되어(?^^) 저장해둔 정보를 나중에 활발하게 조회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나름 소비하게 될 경우, 책을 읽다가 지친 나머지 책을 읽고 난 후에 무기력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개인화 서비스에 한계가 있듯이, 인위적인 아카이빙엔 분명 한계가 있다. 아카이빙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카이빙한 정보를 나중에 다시 참조하는 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런 사용자 플로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딜리셔스는 아카이빙에 너무 많은 인위적 노력이 수반된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사용자 플로우를 제공해도 뜰까 말까인데 말이다. 그만큼 웹에서의 정보 생성-소멸 프로세스는 아카이빙 서비스로 컨트롤하기엔 넘 압도적이다.

자연스런 아카이빙이 진정한 아카이빙이다. 저장한다는 의식적 노력이 없어도 어딘가에 저장되고, 저장해 둔 정보를 나중에 참조한다는 의식적 노력 없이도 정보를 자연스럽게 다시 소환할 수 있는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이 제공되어야 아카이빙 서비스는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딜리셔스는 웹의 휘발성이란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서비스이고 트위터는 웹의 휘발성이란 엔트로피에 편승하는 서비스이다. 자고로 엔트로피 같은 초강력 알고리즘에겐 왠만하면 개기지 않고 편승하는 것이 다치지 않는 길이다.

고전하는 딜리셔스의 모습을 보면서 웹의 휘발성이란 거대한 엔트로피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몸짓이 가능하기 위한 요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딜리셔스의 한계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대중적 아카이빙 서비스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휘발, 알고리즘
울겨, 알고리즘
한RSS + 마가린 + 레몬펜 = 스크랩 컨버전스?
언제부턴가 한RSS에서 메타 블로그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한RSS vs 나루
검색에 관한 단상 (http://mars.egloos.com/3520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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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0/12/20 15: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햘.. 없어지면 안되는데 ;; 딜리셔스라는 사이트가 멋진 사이트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킁.. 저는 딜리셔스를 모방한 국내 '마가린'을 이용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매번 서버 점검할 때마다 인터넷 사용이 불편하길래.. 한번은 공지없이 몇 일 안되는 경우가 있어서 '수익구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여쭤봤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깨진 독에 물 채우기' 처럼 사비로 하시더군요
    너무 걱정이 된다고 말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딜리셔스로 옮기시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 _~;; 물론 아마 딜리셔스 같은 안전한 백업 사이트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거겠지만, 원조 사이트가 흔들리는 걸 알게되니 걱정은 되긴 하네욤

    P.S 즐겨찾기 백업해야겠네욤 !!
    그런데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저에게 '마가린'은 꽤 편한 사이트라서 없으면 단 하루도 이상하다고 느낄만큼 중독되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12/21 07:42 | PERMALINK | EDIT/DEL

      3년 전에 딜리셔스/마가린과 한RSS를 융합한 서비스의 등장을 고대했던 포스트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http://read-lead.com/blog/511

      그 당시엔 참 즐겨 사용했던 서비스인데. ^^ 앞으로 더욱 멋진 모습을 기대하고 싶은데 웹의 물결은 왠지 다른 방향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토댁 | 2010/12/21 08: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올해 울지 않으셨나요?
    산타 할배가 우리 buckshot님의 주소를 묻던대요.^^

    올해도 열심히 달리신 buckshot님!
    행복한 마무리 하시고
    내년 지향은 뭘까 궁금해 집니당, 히히

    건강조심하세요~~~~^^

    엉뚱댓글여왕. 토댁올림~~~히히

    • BlogIcon buckshot | 2010/12/21 09:39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멋진 연말 보내고 계시져? 토댁님의 에너지가 블로고스피어를 쩌렁쩌렁 울렸던 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지향은 내년에도 기정지세입니당~ 기정지세 3년차라고 할 수 있지용~ 즐거운 한 주 되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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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의 시대 :: 2010/11/29 00:09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민음사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보며 드는 생각.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쓰는 글이므로 완전 봉창이 될 우려가 높지만
책 표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가볍고 단순무식하게 적어본다.

저자의 '엔트로피' 기반 방향성 전개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감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엔트로피가 급증하므로 말이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위는 엔트로피 증가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유지/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감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엔트로피 증가가 두렵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위(無爲) 밖엔 답이 없다.
근데 인간은 태어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우려'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우울한 것이다.

설정 자체가 음울한 상황에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부정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걸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엔트로피. 매우 답답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통제하기 불가능한 대상은 섣불리 공격하는 게 아니다. ^^

제레미 리프킨의 신간 '공감의 시대'가 내겐 '자충의 시대'로 읽힌다.
제레미 리프킨은 넘 강력한 상대를 골랐다.
엔트로피. 그리 쉽게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헛된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헛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자충수를 두고 있는지. 우린 자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쓰렉, 알고리즘
질서와 무질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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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알고리즘 :: 2009/11/02 00:02

노는 만큼 성공한다
김정운 저
행복하고 재미있는 성공을 꿈꾸는 사람은 물론, 갑자기 늘어난 여가시간에 당황해하는 사람 모두가 읽어야 할 주5일근무시대의 필독서.  저자는 ‘일하는 것’은 세계 최고이나 ‘노는 것’은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근본문제를 체계적인 문화심리학적 이론을 통해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늘어난 여가 시간을 개성 있게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놀면서도 여전히 불행한 이 뿌리 깊은 집단심리학적 질병을 벗어나, 선진사회형 놀이문화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란 책에서 참 재미 있는 문구를 읽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의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라고 생각할 때,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게 된다. 통제나 선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사람들이 자존심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정말 재미없는 영화를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영화가 무척 재미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시킨다.  A집단에겐 거짓말의 대가로 100달러를 주고,  B집단에겐 1달러를 준다.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솔직히 그 영화가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A집단은 재미없었다고 대답한 반면,  B집단은 의외로 재미있었다고 대답을 한다. 1달러 받음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가 그런 대답을 낳게 한 것이다. 불과 1달러 받고 거짓말을 하느니, 아예 영화를 재미있다고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자존심을 구기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사례는 inuit님의 가장 듣고 싶은 한 마디 yes!의 133페이지에도 나온다.  인지부조화에 대한 멋진 설명과 함께. ^^)


통제/선택의 주인이 자신일 때 자존감/주인의식이 급상승하는 현상..  문득, 좀비, 알고리즘에서 인용했던 좀비적 인간의 삶에 대한 포스트 2개가 떠오른다.  ^^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가 인간을 인형 끈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유전자의 단백질 합성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단백질 합성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간의 행동은 신속하게 일어나므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선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최대한 사전에 많이 프로그램으로 미리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인간의 몸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수동성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능동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것이지 사실 인간을 통제하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적 입력은 이미 뇌 속에 심어졌고 그것을 통제하는 강력한 사령관이 유전자일 수 있다.  (원격, 알고리즘 중에서)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에 의하면, 사람은 매사에 자기 의지대로 결정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기 설정된 두뇌 알고리즘의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는 두뇌 알고리즘의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산의 결과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두뇌가 자신의 사고 프로세스를 관찰하지 못하고 사고 프로세스의 결과만 챙긴다는 것은 인간이 로봇처럼 자신의 머릿속 알고리즘을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데 불과한데도 마치 그것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거라 착각한다는...  (흐르는 뇌 중에서)


유전자는 동기부여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인간을 원격으로 엄청난 조종을 하면서도 사람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을 선택/결정한다고 착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  경영은 유전자로부터 동기부여 방법론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  결국 기업의 구성원 동기부여는 조직 구성원의 자존심/주인의식 관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유전자와 같은 고도의 넛지/우직스런 우회적 간접통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편으론 '무위(無爲)'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전자의 영향권 아래 있고, 우주/지구/생태계를 주관하는 자연법칙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이 진정 자신의 통제 하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사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판단/선택/결정/행동한다는 착각만이 존재하는 것일 뿐..  사람은 세상에 손님으로 온 것이지 주인으로 온 것이 아니다. 주인은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주/생태계를 움직이는 법칙이 주인이고 그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정보들은 단지 주어진 제한적 역할을 묵묵히 기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무위의 의미는 '하지 않음'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고 내가 뭔가를 통제/지배한다는 착각을 없애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약하면 '주제넘게 오버하지 마라'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인간은 '주인의식'이란 허상을 버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겸허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주/자연 속에서 인간은 거의 free-rider이니 말이다. 딱히 인간이 우주/자연에게 value-addition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저 인간은 자연에게 엄청난 쓰레기를 초고속으로 퍼붓고 있을 뿐이다. ^^

요즘 '무위'란 단어가 참 맘에 들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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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정

    Tracked from ego+ing | 2009/11/02 10:01 | DEL

    기획자 없이 개발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기획자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기획자가 개발을 하는 것이고, 개발자가 기획을 하는 것일 뿐이다. 원래 장인들은 기획과 개발을 따로 하..

  • 다 지난 일들

    Tracked from ego+ing | 2009/11/02 10:02 | DEL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었다. 게으름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고, 부주의 때문일 수도 있고, 욕심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 BlogIcon 엘타 | 2009/11/02 00: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거짓말에 관한 그 실험은 그냥 인지부조화에 대한 실험인줄만 알았는데 자존심과 결부시켜 해석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네요. 의미있는 해석 같습니다.
    동기부여는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조직, 같은 환경 내에서도 동기부여는 사람마다 달게 되는데 그런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것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불현듯 궁금해 지네요. 여기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면 왠지 CEO가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군요.

    • BlogIcon buckshot | 2009/11/02 21:28 | PERMALINK | EDIT/DEL

      인지부조화와 자존심 사이엔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동기부여는 동기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우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의 동기가 어디서 오는지, 조직 구성원의 동기가 어디서 부여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면 거기서부터 동기부여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 않지만 동기 자체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다면 결국 어떤 결과를 내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가트렘 | 2009/11/02 0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아직 접해보지 않아서인지, 유전자에 관련한 이야기들은 아직 생소하네요.^^;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지만 해석이 어떻다, 이해하기 힘들다 등등 주변 사람들 평가때문에 괜히 망설여지기도 했구요. 이런.. 써놓고 보니 한심해보이는데..ㅎㅎ
    저에겐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동기부여로 작용해야할 때인듯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11/02 21:31 | PERMALINK | EDIT/DEL

      설명을 위해 이기적 유전자 개념을 들여 왔는데 내용 설명이 더 어려워진 감이 있네요. ^^

      배움에 대한 호기심은 동기부여 엔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드네요. 귀한 포인트를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egoing | 2009/11/02 10:0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주인처럼 일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뿐 인간은 우주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대립되지만 모순되지 않는 두 명제내요.

    다음 명제가 모순되지 않는 거처럼요.
    팩트와 인식을 구분해야 한다.
    인식도 팩트다.

    글 잘 봤습니다.
    저의 글도 트랙백 해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11/02 21:34 | PERMALINK | EDIT/DEL

      역시 egoing님께서 제 마음 속을 훑어내 주시네요. 바로 그 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

      우주의 법칙은 인간에게 실제 이상의 주인의식을 부여하고 있고 인간은 그에 의해 동기부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going님 댓글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은 항상 저에게 강한 에너지로 다가옵니다~

  • BlogIcon 지구벌레 | 2009/11/02 12: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역시 넛지가 떠오르네요. 사람들의 판단에 작용하는
    알고리즘을 간접적으로 잘 이용하는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걸까요..

    • BlogIcon buckshot | 2009/11/02 21:35 | PERMALINK | EDIT/DEL

      간접적이고 원격적인 조종.. 이게 동기부여 메커니즘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

  • BlogIcon ego2sm | 2009/11/02 17: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악! 갑자기 이 포스트를 읽으니
    학부때 인상적으로 들었던 동양사상의 이해(교양필수) 수업이
    생각나네요. 제가 도가사상을 발표했는데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도 벅샷님이 해석하신 듯대로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었어요. 신선사상이라는
    선입견을 한방에 날려주었던 값진 수업...

    "무라는 것은 물(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치(理)는 있다.
    이 이치가 있다면 있는 것(有)이다. 이치조차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 틀린 것이다"
    (주희)

    갑자기 지나간 포스트가 생각나네요.(또 흥분)
    http://tln.kr/mkt
    오늘도 또 공부(?)하다가요^^~

    • BlogIcon buckshot | 2009/11/02 21:38 | PERMALINK | EDIT/DEL

      언어 자체가 바벨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가 달라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겨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닐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아닐지. 언어는 인간에게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는가 봅니다.

      에고이즘님 댓글로 인해 갑자기 생각이 많아지네요. 감사합니다. ^^

  • BlogIcon 박재욱.VC. | 2009/11/03 09: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 글을 읽다 보니 언젠가 벅샷님이 도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

    이 글을 읽다보니 정말 조직원에게 모티베이션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모티베이션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가 '자신의 삶에 대한 주인 의식'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구요. 모든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져서 우주의 섭리대로 흘러가는 기업이 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11/03 21:33 | PERMALINK | EDIT/DEL

      모든 구성원에게 주인의식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정말 우주를 닮은 기업일 것 같습니다. ^^

      나와 이웃의 모티베이션이란 단어 자체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세이자 태도가 아닐까 싶네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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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렉, 알고리즘 :: 2009/09/07 00:07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새물결


뇌 속을 구름처럼 떠돌고 있는 개념을 누군가가 말해줄 때..  속이 다 시원해 진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
유동, 알고리즘)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을 유독하고 있다.  (유독, 알고리즘)

책을 쓰윽 휘둘러 보다 정말 확 눈에 들어오는 문구를 발견했다.
외상과 빚은 소비자들의 생활양식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외상과 빚은 새로운 욕망의 탄생을 가속화하고 욕망의 발생과 그것의 충족 사이에 놓인 길의 거리를 줄일지도 모르지만 욕망이 사라지고 그것이 분노와 거부로 바뀌는 것 또한 가속화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외상과 빚은 욕망의 대상들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것들이 쓰레기 더미로 가는 여정을 더욱 용이하고 빠르게 한다. 외상과 빚은 쓰레기의 산파 역할을 하며, 이러한 역할이야말로 소비사회에서 외상과 빚이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는 가장 뿌리 깊은 근거이다.

스타이너가 카지노 문화라고 명명한 이런 문화에서 모든 문화적 산물의 가치는 최대의 효과(어제의 문화적 산물을 해체하고 밀어내고 버리는 것)를 짜낸 후 얼마나 빨리 낡아빠진 것으로 만드느냐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시장경제는 정말 '의도적 진부화'의 고수인 것 같다.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럴 듯 해 보이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자들에게 그걸 퐉 떠 안기자 마자,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걸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들에게 선물한다.  아예 첨부터 초고속 쓰레기화를 염두에 두고 뭔가를 만들어 낸다고 밖엔 볼 수 없을 정도로 상품과 서비스의 진부화는 어지럽고 숨가쁜 속도감을 자랑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구입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구입하는 시점부터 이미 쓰레기라고 볼 수도 있을 듯 싶다. 단지 쓰레기화(쓰레기타이제이션) 지수의 높고 낮음의 정도 차이만 있을 뿐... ^^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읽으면서..
초고속 의도적 진부화의 굴레 속에서 인간의 뇌는 계속 바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되었고 (뇌뇌, 알고리즘)  인류는 초절정 엔트로피의 안드로메다 은하를 향한 초고속 우주여행을 무뇌적으로 지속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퇴보, 알고리즘)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지구에 쓰레기를 더하는 작업이고,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은 모두 공기를 더럽히고 웹에 쓰레기를 더하는 행위이다.  내 주위에 딱히 이렇다 할 가치를 더하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해 하염없이 겸허한 마음을 견지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엔 분명 뭔가가 있다. 첨엔 분명 유독으로 가볍게 시작을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결국 책의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읽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 실존을 쿨하게 서술해 버리는 그의 쉬크한 필력에 서서히 빠져들어 가고 있는 건가.. ^^



PS. 관련 포스트
유동, 알고리즘
퇴보, 알고리즘
뇌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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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cataka | 2009/09/07 10: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자본주의의 숨겨진 음모인 것인가요? 군대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멀쩡한 땅을 파고 매우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땅이야 파고 매우고를 반복하면 비옥해지기라도 하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쓰레기"의 생산으로 자원은 고갈되고, 정신은 피폐해지고... 휴우... 쾌락의 대가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무쪼록 좋은 포스트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9/08 21:57 | PERMALINK | EDIT/DEL

      갑자기 개콘 워워워의 JM(절망이) 개그가 떠오르네요. ^^
      선물을 하고 선물을 망각했을 때 뇌물 아닌 선물 주기를 지속할 수 있듯이,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듯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쓰레기를 천연덕스럽게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물 준 것은 정확히 기억하고 쓰레기 생산하는 것은 절대 기억 못하고.. 극복이 되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 BlogIcon 지구벌레 | 2009/09/07 1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쓰렉' 제목 보고..뭔가 했네요..ㅎㅎ..
    역시 모든걸 두글자의 알고리즘으로 풀어내는 방식 대단하심..^^.
    관심가는 책이네요. 책 참 많이 보시는 듯..

    • BlogIcon buckshot | 2009/09/08 21:58 | PERMALINK | EDIT/DEL

      항상 지구벌레님의 댓글로 인해 에너지를 얻고 있는 벅샷입니다. 지구벌레님을 통해 무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기에 책도 열심히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해여~ ^^

  • BlogIcon 재밍 | 2009/09/08 01:2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여전히 알고리즘 시리즈로 좋은글 보여주고 계시네요
    안녕하셨어요 ^^
    지그문트... 회사 화장실에 붙어있는 명언에서 봤던 이름이네요.
    성공하고 싶거든 자신부터 이겨라, 그것이 가장 큰 승리이므로.. 였나..

    • BlogIcon buckshot | 2009/09/08 21:59 | PERMALINK | EDIT/DEL

      와.. 재밍님, 드디어 컴백하셨군여~ 넘 반갑습니당~ ^^

      결국 무엇이든지 자신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향할 수 있을 때 사람은 깊어지고 강해지나 봅니다. 오랜만의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토댁 | 2009/09/08 08: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잠깐 아침인사만 드립니다.
    할머니 49재 지내러 가요..
    잘 다녀올께요.

    • BlogIcon buckshot | 2009/09/08 22:00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방문 주셔서 넘 감사해여.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십시오..

  • BlogIcon 고구마77 | 2009/09/08 13: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장경제에 내포되어있는 의도적 진부화라는 매커니즘이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인지, 멸망으로 이끄는 지옥행 티켓이 될 것인지...

    아마도 후자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어쨌든 시장경제가 인간의 본성과 가장 잘맞는 시스템인 것을 부인하긴 어려운거 같습니다.

    때로는 그런 생각도 합니다.
    이렇게해서 지구가 황폐화되면
    결국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원죄가 아닐까...
    우리 DNA에 새겨져 있는 시장경제적 본성이 말이죠.

    오랜만에 와서 이상한 얘기만 하다가네요.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9/09/08 22:11 | PERMALINK | EDIT/DEL

      시장경제의 심층기반인 의도적 진부화 메커니즘이 인간의 심층기반인 의도적 참신화 메커니즘과 찰떡 궁합을 이루고 있는 상황인데요. 인간 심층기반이 의도적 참신화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의도적 진부화 메커니즘에도 균열의 가능성이 엿보이길 기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쓰레기를 망각하지 말라는 책의 존재가 그래서 값지게 느껴지나 봅니다. 귀한 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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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무질서 사이 :: 2008/11/05 00:05

피터 셍게가 쓴 제5경영의 The laws of the fifth discipline에 나오는 "현재의 문제들은 과거 해결책의 산물이다"란 말을 과장해서 그림으로 그려 보면 아래와 같다.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을 문제해결로 볼 수가 있겠고 그런 문제해결 과정이 무질서화를 야기케 하는 문제발생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아래와 같은 짜증나는 무한 순환 패턴이 반복되게 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시스템 사고라는 프레임을 통해 구조를 관통하는 입체적 시각을 갖고 깔끔한 문제 해결 방법을 추구한다면 위와 같은 악순환 패턴을 방지할 수 있겠지만...  왠지 질서와 무질서는 원래 하나였고 서로가 서로를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질서 안에 무질서가 있고 무질서 안에 질서가 숨어 있고 질서 안에 다시 무질서가 잠재하는 프랙탈 구조. 

국가,사회,조직과 같은 덩어리가 큰 계 뿐만 아니라 개인 관점에서도 질서와 무질서가 서로를 바라보고 지향하는 구조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대리석 안에 갇힌 인물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엔서니 라빈스는 '성공'을 자신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글래디스 테일러 멕게리는 '의사'를 환자 내면에 있는 의사를 깨워서 스스로를 치유케하는 자로 정의한다.

조각, 변화, 치유는 일종의 문제 해결 행위이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행위들은 사실상 행위의 대상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대상 안에 이미 질서와 무질서 간의 지향적 관계가 내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대리석 안엔 이미 멋진 조각상이 숨어 있는 것이고 사람 안엔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거인이 숨어 있는 것이고 환자 안엔 이미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의사가 숨어 있는 것이다. 무질서 자체에 질서가 숨어 있는 것이지 무질서의 외부로부터 혜성처럼 해결사가 등장해서 무질서를 질서스럽게 변화시키는 멋들어진 퍼포먼스를 집행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엔 어떤 고리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고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면 무질서에서 질서를 창조할 수 있고 다시 그 질서가 갖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질서를 파괴하고 무질서 상태로 진입하고 다시 그 무질서 안에 있는 질서의 잠재를 현실화시키는.. 일상적인 엔트로피 법칙에 의한 수동적인 평형상태로의 기계적 이동을 지양할 수 있을 것 같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고리는 존재감이 흐릿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친하게 지내지 않고 유대관계가 약한 지인과 같이...  사회학자 그라노베터는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사람이 직장을 구하거나 어떤 심각한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할 때 도움 청할 곳이 마땅치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사회 네트워크의 최전방까지 손을 뻗는 것이 가장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보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극적인 변화(질서)를 위한 조력을 얻어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약한 사회적 유대관계가 큰 결과를 만들어낸다..  요걸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질서와 무질서는 평상시에 서로 친하지 않은 관계이나 실상 이 둘 사이엔 아주 약한 유대관계가 존재하는 것이고 큰 변화는 이 둘 사이에 숨어 존재하는 관계와 패턴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엔트로피의 대세적 상승이란 법칙 속에서 무기력한 기계적 분자로 살아가기 보다는 엔트로피 자체를 인정하고 즐기며 살아갈 수 있으면 세상은 참 재미있는 삶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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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구월산 | 2008/11/06 0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재미있는 삶의 공간이 모든 것의 지향점이 됐으면 좋겠네요.
    요새 좀 재미가 없어서....

    • BlogIcon buckshot | 2008/11/06 08:59 | PERMALINK | EDIT/DEL

      적절하지 못한 비유가 얼마든지 될 수 있겠으나..
      재미감이 떨어지는 현상을 엔트로피가 올라가는 현상에 비추어 보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엔트로피가 올라가듯 재미감은 계속 떨어지려는 경향을 보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미없어지려는 경향 속에는 항상 재미가 탄생할 수 있는 단서가 숨어있는 것 같구요. 결국 재미없어지려는 흐름 속에서 재미를 탄생시킬 수 있는 예리함을 계속 지속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블로깅은 재미를 탄생시키는 작업과 참 맥이 많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블로깅을 통해 재미를 창출하는 방법을 좀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블로깅을 하던, 다른 놀이 툴을 활용하던, 강력한 놀이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 BlogIcon 대흠 | 2008/11/22 12: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늘 토요일 회사 일하러 나왔다가 벅샷님 블로그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중입니다. ^^
    치열하게 참구해 본적은 없지만 '혼돈과 질서' 는 제 화두중 하나입니다.
    피터 셍게와 같은 서양의 과학자는 분석적으로 이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우리가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간단한 말이 있지요. '차면 기우나니' ^^
    좋은 주말 보내시길...

    • BlogIcon buckshot | 2008/11/22 12:35 | PERMALINK | EDIT/DEL

      대흠님의 귀한 주말 시간에 방해가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도 질서와 혼돈을 주 관심주제로 삼고 있는데, 대흠님도 그러시다니 너무 반갑구요.. 차면 기우나니.. 정말 그렇네요. 대흠님과 같이 이 주제에 대해 앞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 ^^

  • 일초 | 2016/09/12 14: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질서와 무질서는 노자의 도덕경을 이해하면 쉽게 알수 있다.
    비어있기때문에 쓰이면 쓴자리는 채움이 되고 채워있기 때문에 쓸모가 없어져서 다시 비우는 그 과정이 모든 사물에서 옛부터 지금까지 끈임없이 반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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