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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다는 것 :: 2018/04/11 00:01

잃어버린다는 것
그건 뭘까

정말 잃어버린 걸까
아님 잃어버렸다는 관념이 지배하는 건가

잃어버린다
어디로 잃어버리는 걸까
어디로 사라져버리는 걸까
사라지긴 하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어디에 있는가

소유란 존재하는가
과연 존재하는가

소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소유가 존재한다는 관념만 존재한다면

그런 관념만 붙들고 사는 나의 뇌는 과연 무엇인가

그건 과연 실체일까

실체가 흐릿해질 때
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과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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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 2014/01/06 00:06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살아있는 사람은 계속 심장이 뛴다. 심장이 뛰는 것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심장이 뛰는 것을 알고 있고 심장이 뛰고 있어서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인지할 때 건강한 심장이란 것을 간접적으로 전달받게 된다. 직접적으로 실체를 지각하지 않아도 실체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신호를 통해 실체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일종의 그림자 효과라고나 할까.

'시각'은 보이는 것만을 감지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도 시각의 역할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하라고 만들어진 것이 시각 기관이다. 시각 기관을 올바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선 보이는 것에만 시각 기관이 경도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 기관은 느끼고 있다. 문제는 시각 기관으로 접수되는 보이는 것에 대한 신호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신호를 차별대우하려고 하는 인간 본능을 컨트롤할 수 있는가이다. 마치 달콤한 것만 받아 먹으려고 하는 미각 본능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것만 접수하려고 하는 시각 본능과의 긴장 관계를 형성할 줄 알아야 한다.

MRI, CTI 영상은 실체는 아니다. 영상에 대한 해독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문가의 해독이어서 그걸 마치 실체와도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일 뿐 영상과 해독 사이엔 분명한 거리가 존재한다.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놀이를 뇌가 넘 즐기다 보니 뇌의 농간 때문에 실체와 해독을 구분 못하는 상황은 인간의 삶 전체에 걸쳐서 자행되기 마련이다.

결국 감각 기관은 해석을 하는 것이고 실체는 별도로 인식 너머에 존재한다. 실체를 보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인간은 항상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매우 부정확하게 추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불안하기 이를 데 없는 추정의 중첩 속에서 판타지는 확대 재생산을 거듭한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암호와 해독.  인간은?

암호가 난무하고 해독이 뒤따라 횡행한다. 세상은 온통 암호들로 뒤덮여 있고 해석의 메세지로 자욱하다. 암호는 원천 메세지이고 해독은 2차 메세지이다. 우린 1차 메세지와 2차 메세지 간의 관계 속을 살아간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암호와 해독인데 그것은 서로 완전 잘못 연결되기도 하고 축소 또는 확대적 왜곡으로 점철되기도 한다. 암호와 해독이 존재할 때, 인간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인간은 그저 암호와 해독이 꾸고 있는 '꿈'에 불과한 것 아닐까? ^^

그림자를 보면서 실체를 추정하는 작업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면서 모르는 문제를 때려 맞추는 것보다 훨씬 난해하다. 그래서 아예 해독이라 생각하지 않고 실체 자체라고 오인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이다. 그게 실체일 수는 없다.  난해한 암호 문장을 접하면서 그 암호 속에 담겨진 메세지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해독의 실마리를 찾아 떠나는 인지 여행. 그건 그림자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과제가 아닐까 싶다.  또한, 그림자를 실체가 아닌 암호문으로 바르게 응시하는 지혜로운 시선도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겠다.  그걸 잘 하는 인간은 '존재'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이겠고, 그게 잘 안되는 인간은 존재라기 보다는 암호와 해독 사이를 부유하는 한낱 '꿈'에 불과한 무엇일 수 있겠다. ^^




PS. 관련 포스트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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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체가 이유이다. :: 2013/11/01 00:01

***한다면 난 행복할거야.

모순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엔 이유가 없는 거다.

이유를 대는 순간 휘발되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행복을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파랑새로 단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인 것으로 간주해 보자. 행복을 파랑새처럼 여긴다면 지금 내가 가질 수 없는 뭔가를 행복으로 규정하게 되고 현재의 나의 상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결핍'으로 형상화하게 된다. 왜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을 어설프게 정의된 행복 때문에 자꾸 모자람이란 이름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렇게 나의 모습을 낮추면서 얻어낸 행복의 상이 결국 나 자신을 갈증으로 휘감을 것이고 나는 그로 인해 끝없는 행복 추구의 여정을 밟아 나가야 할텐데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그렇게 해서 행복에 준하는 뭔가를 얻어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행복한 것인가? 그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 가득한 행복허상 놀이를 한 것이다. 행복 앞에 뭔가가 선행하면서 이유가 되는 구도를 전제하기 보단, 행복 앞에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행복 자체가 존재하고 행복에서 파생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보자. 그럼 행복 앞에 뭔가가 원인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행복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행복 자체가 원인이 되면서 이유로서의 행복을 다양한 양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킬 때 행복은 허상에서 실재로 변이한다.

어설픈 이유를 없애는 순간 실체가 명확해지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 자체가 이유인 것이다.

모순을 보정할 때 행복허상 놀이는 종료된다.

난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가?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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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함정 :: 2013/10/07 00:07

뭔가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뭔가와 이름 사이에는 괴리가 생겨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는 사실상 둘은 따로 간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실체와는 다른 뭔가를 실체에 붙여놓고 실체를 오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름 함정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에 이름을 붙일 때는 '이름'이 갖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 뭔가를 대해야 한다. 뭔가와 이름을 동일시하면 뭔가를 크게 오해하게 된다. 이름은 뭔가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일 뿐 뭔가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폰, TV, 책, 가방, 집, 옷, 하늘, 땅, 자동차, 전기, 영화, 음악, 회사, 돈, 마음, 감정, 시간, 공간, 웹, 우주, 인간, 동물, 생물, 광물, 물, 바람, 공기, 흙, 음식, 스포츠, 만화, 사업, 경제, 컴퓨터, 사진, 여행, 병원, ....

이름은 용도이기도 하고 개념이기도 하고 딱지이기도 하고 착각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고 단면이기도 하다. 이름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이름이 붙어 있는 대상은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이름 이상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유한다. 하지만 이름은 대상에게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부여하기 마련이고 대상에게 부여된 한계는 대상으로 하여금 섣불리 이름의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름의 바깥에 대상을 규정할 수 있는 의미들이 충분히 널려 있는데 대상이 이름 안에 갇히는 현상 속에 기회가 있다. 대상에 부착되어 있는 이름을 지우고 대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름 이외에 대상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결국 세상을 보는 눈은 대상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이름에 국한된 이해가 아니라 이름 너머의 의미를 인지하고 이름 바깥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세계관을 좌우한다.

이름 붙이기는 분명 편의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편의성에 치우친 나머지 이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이름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름은 붙이고 떼는 벨크로(찍찍이)와도 같은 것이다.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이름을 떼야 한다. 그래야 이름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세상에 수많은 이름들을 대할 때 붙어 있는 이름을 내 손으로 떼는 놀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이름을 붙이는 능력 못지 않게 이름을 떼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이름을 stock이 아닌 flow로 이해하면 이름과 잘 지낼 수 있다. 

이름을 붙이기 힘든 것에 네이밍을 하기.
이름이 고착된 것에서 이름 떼기.
요 2가지 놀이를 잘하면 이름에 관한 한 숙련가가 될 수 있다. ^^



PS. 관련 포스트
기능과 재능
감정 네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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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28 00:08

원자가 야구장이라면 원자핵은 야구공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원자의 속은 텅 비어 있다는 거다. 그럼 왜 우리는 원자들로 구성된 각종 사물을 텅 비어 있지 않다고 느끼는가?  우리는 미시 스케일이 아닌 거시 스케일 속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미시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다면 나는 텅 빈 원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사물들을 마음껏 투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절대 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고 나의 몸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비어 있는 것을 비어 있는 것으로 못 느낀다.

뇌는 항상 가상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좋아라 소비하며 살아간다. 뇌는 가상 현실 속을 살아간다. 뇌 입장에서 진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라서 어쩔 수 없이 진실을 적당히 왜곡하여 소비하기 좋은 상태로 가상화한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가상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있는 것을 왜곡해서 보는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는 한 편으론 거대한 기회를 내포한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게 기회이다.

왜 뇌는 가상을 좋아할까?  뇌는 뭔가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야구장 안에 달랑 야구공 하나가 있는 모습처럼 뇌 속은 거대한 공허로 가득 차 있다. 뇌는 그 허함을 메우기 위해 수많은 가상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는 안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뭔가를 채워 넣지 않으면 '허(虛)'를 견디지 못한다. 비어 있으면 비어 있는 그대로 살면 될 것을.. 뇌는 왜 그렇게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할까? ^^

'허(虛)'를 채우려는 욕망에서 환상은 시작된다. 허를 그냥 두지 못하고 거기에 뭔가를 채우려고 하지만 허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결국 왜곡만 비대해져 갈 뿐이다.

우주는 허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허와 원소 사이의 공간을 왜곡으로 채우는 것은 원소의 욕망일까? 허의 관용일까? ^^ 허를 허로 인정하고 허를 섣불리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려 하지 않으면 겹겹이 나를 둘러 싼 환상의 거품을 걷어낼 수 있을 텐데. 가상의 굴레를 벗고 실체(?)를 향한 수줍은 발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한 때가 지금이 아닐까? 

나를 구성하는 것이 허이고 내 주위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것도 허이고 나와 내 주위 사이에 존재하는 것도 허이다. 세상은 허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왜곡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바라보며 살아간다. 이런 상황에서 허는 누가 챙기는가?  아무도 챙기지 않는 허를 이젠 슬슬 챙겨주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뇌 속여먹기
가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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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인플레이션 :: 2010/07/16 00:06

2008년 8월에 아래와 같이 한 줄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본 트윗이 있다. 바로 soo5306님의 트윗이다.



정말 그렇다. 화려한 서양 용어들을 가만 곱씹어 보면 이미 동양에선 보편적인 개념으로 존재했던 것들이다. '人間'이란 말 속에 이미 'social network'이란 개념이 들어 있지 않은가? 우린 이미 오래 전부터 'social network'란 개념을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웹 2.0'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전, 한국엔 이미 웹 2.0에 준하는 서비스들이 존재했었다.
해외에서 '웹 2.0'란 용어가 등장한 이후, 한국에선 이렇다 할 혁신 서비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미 하고 있던 것에 남이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인 것 뿐인데.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이미 하고 있던 것에 남이 이름을 붙여 버린 후, 우린 마치 갖고 있던 것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그럴싸한 이름이 붙여진 곳에 가서 거기에 뭐가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다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담론을 지배해 나가는 힘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웹 2.0과 함께 대거 등장한 화려한 용어빨의 범람에 너무 무기력하게 휩쓸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때, 그걸 빨리 입수해서 그걸 읊어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용어는 항상 인플레이션의 경향이 있다. 기존에 있는 것을 진부화시켜야 하는 압박 때문에 새로움을 가장한 찬란한 거품이 항상 끼어 있기 마련이다. 그걸 냉정하게 거둬내고 그 안에 담긴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해외의 구라포스 강력한 작명가들이 쏟아내는 겉멋 가득한 용어 속에 도사린 거품과 궁색한 실체를 직시할 수 있다면 자신이 이미 해놓은 것을 망각하고 남이 갖다 붙인 껍데기스런 용어 자체에 집중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용어가 등장하면, 그것을 일단 쎄게 의심부터 해도 크게 무방하다. 용어는 자신의 이기적 생존을 위해 화려한 버블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실체를 온통 뒤덮고 등장하기 마련이니. ^^



PS. 관련 포스트
개방, 알고리즘
웹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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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ynamic | 2010/07/16 09: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공자의 인(仁) 또한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한 사상이죠. 현재의 사회시스템과 경제, 법체계가 모두 서양에서 온 시스템이여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만의 화합(동양적 가치)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듯 합니다.^^
    (동양적 용어는 항상 디플레이션 경향이 있죠.^^)

    • BlogIcon buckshot | 2010/07/17 10:11 | PERMALINK | EDIT/DEL

      동양적 용어의 디플레이션 경향.. 촌철살인이십니다. ^^

  • 맞습니다 | 2010/07/16 11: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인플레에 대해서, 생각없이 들여와서 쓰는 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예전부터 궁금했던게, 왜 "****, 알고리즘"이라고 하시는지요?

    알고리즘이라는 또 다른 인플레라고 혹시 생각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

    • BlogIcon buckshot | 2010/07/17 10:12 | PERMALINK | EDIT/DEL

      기저에 존재하는 강력한 원리라는 의도로 '알고리즘'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도 일종의 인플레이션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BlogIcon 고구마 | 2010/07/16 13: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존 개념의 진부화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본질의 변화보다는 말장난으로 사그라드는 일련의 현상들을 보면서 저도
    buckshot님과 같은 실망감 or 분노를 느끼곤 합니다.

    반면 서양인들이 용어를 만들고 이 용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때때로 비즈니스 지형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면
    이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ps. 개인적으로 저도 제가 만든 용어들이 좀 저렇게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램이... ㅋㅋㅋ

    최근에 CJ사보에 레이버테인먼트로 글하나 썼습니다.
    http://blog.naver.com/pupilpil/120111081366
    요즘 회자되는 개념을 좀더 넣어봤는데, 시간이 없어서 좀 경황없는 글이 되어버렸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0/07/17 10:16 | PERMALINK | EDIT/DEL

      와. 멋진 아티클이 탄생했네요. 고구마님의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주말이 될 것 같습니다. 생명력 강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새로운 화두를 저에게 던져주게 될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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