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에 해당되는 글 21건

나를 고객으로 삼는다는 것 :: 2017/09/08 00:08

전 세계에서 가장 존중 받는(?^^) 대상 중 하나가 아마 '고객'일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알게 모르게 고객을 모시게 된다.

고객과 나
대접을 받고 대접을 제공하는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사실 알게 모르게 인간 소외 과정이 작동하게 된다.

나 자신을 존중하고 대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른 세상 속에서
내가 아닌 타인을 고객으로 규정하고 그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그 과정. 정작 나 자신이 소외되기 쉬운 취약성을 내포하기 쉬워진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나 자신을 고객으로 규정하고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을 전개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어떤 행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고객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단 1초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나를 고객으로 섬긴다. 내 블로그는 나 자신을 위해 내가 글을 적는 시공간이다. 여기선 내가 최고의 고객이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나만의 고객. 여기선 나는 최대한 존중 받는다. 인간 소외가 갈수록 극심해지는 세상 속에서 난 나를 위해 뭔가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하는 이 시공간은 우주에서 내가 생성해낸 나 만의 좌표..

나는 나를 고객으로 삼는다.
나는 나를 고객으로 존중하고 모신다.

나는 고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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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위에서 :: 2016/08/15 00:05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좋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다 보니
생각도 잘 흘러가는 느낌이다.

뭔가 나름의 어젠더를 갖고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을 전개시켜 보면
생각이 흥미롭게 흘러간다.

자전거 위가 아닌 곳에서는 잘 떠오르지 않았을 생각이
이상하게도 자전거 위에선 잘 떠오른다.

왜 그런 것일까.
기분이 좋아서 생각이 잘 흘러다니는 것인지
생각이 잘 흘러다녀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인과관계로 파악하려면 잘 안되는 것은
그냥 상관관계로 놓아버리면 되는 걸까.

기분좋음과 생각흐름이 서로 동시에 자극을 주고 받는 것인지
자전거 위에서

자전거는 내게 있어 신문물이나 다름 없다.

테크놀로지의 현란한 진화와 그로 인한 숱한 산물들이 내겐 오래된 미래에 못 미치는 성과 정도로 보여지는 듯

그리고 자전거와 같은 나를 기분 좋게 하고 내 생각이 잘 흘러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내겐 신문물이고 첨단기기인 듯.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테크놀로지이지
나를 소외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는 남들의 테크놀로지는 내게 아무 의미도 줄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자전거 위에서 느끼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 게 내겐 행복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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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D | 2016/08/15 1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적당한 유산소 운동이 뇌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만들기 때문일까요^^

    • BlogIcon buckshot | 2016/08/15 17:48 | PERMALINK | EDIT/DEL

      예,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 같습니다. 오늘도 더운 날씨였지만 자전거를 타는 게 참 즐거웠어요. 자전거를 탈 때마다 생각이 스스로 살아있는 듯 움직이고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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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 2016/06/20 00:00

자전거는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인다.
페달 밟기를 멈추면 자전거의 속도는 줄어든다.
어김없이 페달을 다시 밟아야 한다.
자전거를 오래 탄다는 것은 페달 밟기를 오래 했다는 의미다.

나는 운전을 못한다.
차를 운전해본 경험은 없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동차가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해 약간 감이 온다.

문명의 이기 관점에서 자동차가 자전거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 자전거를 타면서 드는 생각은..

하체 운동을 한 만큼 자전거는 움직인다는 것이고
자동차는 하체운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라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 신체의 확장이 아니라 신체를 실어나르는 기구일 뿐이다.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많이 이동을 해봐야 신체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신체와 자동차는 분리. 따로 노는 두 존재. 신체는 자동차를 신체로부터 소외시키고, 자동차는 신체를 운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자동차는 운동을 하고, 신체는 자동차에 올라타 있을 뿐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운다.

확장성이라는 것.
손을 안대고 코를 푼다는 것.
알아서 뭔가를 해준다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인간을 소외시키는 속성을 띠고 있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인간에게 가치를 준다는 지향점을 갖고 있으나 실상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들이 세상엔 참 많다.

자전거를 탈 때 기분이 좋아지는 건, 수많은 인간 소외의 현장에서 쌓인 소외감을 자전거 타기를 통해 살짝 해소할 수 있어서인 듯 하다.

페달을 밟은 만큼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된 자전거. 그 어떤 테크놀로지의 향연보다 더 화려한 메커니즘이다. 신체 운동의 입력에 비례해서 얻어지는 출력. 그 매력을 느끼면서 타는 자전거. 경제적이고 건강에 좋은 무해 이동 기구.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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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6/06/21 0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여전히 탁월한 통찰이세요. 맑스가 이야기했던 "자본가의 생산수단의 독점에 의한 노동자 소외"도 그때의 언어로 그렇게 재미없게 설명되서 그렇지, 사실은 궁극적으로 오늘날과 같이 테크놀로지가 점점 인간을 대체해가는 상황을 가리킨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언젠가는 결국 허물어지게 될거라고 믿지만, 말씀하신 소외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동시에 그만큼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네요.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보았던 이 TED 토크도 생각나구요. https://www.ted.com/talks/susan_blackmore_on_memes_and_temes?language=en (못보셨다면 buckshot님이 분명히 좋아하실 내용일 거라고 적극추천드려요 ㅎㅎ)

    자전거 타실때 꼭 미세먼지 조심하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6/06/24 11:25 | PERMALINK | EDIT/DEL

      추천해 주신 TED 토크. 넘 좋은데요.
      계속 보고 있어요.
      이걸 기반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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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시간 :: 2015/02/27 00:07

경쟁을 할 때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온전히 뭔가에 홀린 듯이 시간을 내어주고 공회전을 한다.

경쟁을 하지 않을 때는 시간이 밀도 있게 흘러간다.
1분 1초의 의미를 새기며 시간과 대화를 한다.

존재의 극히 일부분을 걸고 경쟁을 하는 것이 활력 부여 차원에선 의미가 있겠으나
경쟁에 몰입된 삶을 살아가다 보면 존재의 극히 일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서 소외현상이 발생한다.

존재 전체를 생각하다 보면
경쟁으로 인해 소외된 존재 대부분의 영역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런 안타까움을 느끼는 시간이 희소하다.

경쟁과 시간
존재와 소외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을 만큼
자본주의 사회는 단단하게 직조되어 있다.

하지만,
경쟁하지 않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쟁력
소비와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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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5/02/27 12:3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첫 부분에 크게 공감합니다. 남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생산성이 극도로 하락하는 느낌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3/01 11:5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 가볍게 남을 참조만 하면 되는데 남을 적지 않게 의식하고 그 흐름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쉽지 않은 듯 해요.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한 듯 합닌다. ^^

  • rodge | 2015/03/03 08: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직장생활에 찌들어있는중에 이번 포스트는 시 처럼 느껴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ㅠㅠ

    • BlogIcon buckshot | 2015/03/08 16:36 | PERMALINK | EDIT/DEL

      내 자신이 소외되지 않는, 소박하지만 소중한 그런 시간들을 내밀하게 느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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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계산 :: 2014/12/19 00:09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계산을 빨리 할 수 있게 된다. 계산을 빨리 하면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능해진다. 80년대 후반에 386컴퓨터는 대단한 위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컴퓨터들의 스펙은 정말 화려하다. 일반 대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하드 디스크의 용량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다.

계산이 빨라지면서 과거보다 훨씬 더 나아진 삶을 영위하는 것 같지만 계산이 빨라지는 대신 놓치는 것들도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빨라지는 계산이 자본증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 그게 함정이다. 인간을 위한 빠른 계산이 아니라는 것. 인간은 빠른 계산 속에서 자본의 주변 역할을 담당한 채 계속 소외되어 있는 듯하다.

계산이 빨라지면, 자본증식 속도도 증가한다. 그만큼 인간 소외의 속도도 점증된다. 고속 계산의 시대 속에서 인간은 소외의 트랙을 따라 정처 없이 고속 주행을 지속한다. 예전보다 편리해졌다고 느끼는 만큼 인간 존재는 흐릿해지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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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 2013/10/11 00:01

경쟁사회.  모두가 경쟁을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학생은 학교에서 경쟁하고 회사원은 회사에서 경쟁하고 자영업자는 필드에서 경쟁하고 부모는 육아시장에서 경쟁하고.. 모든 것이 화폐화 되어가듯, 모든 것은 경쟁격화의 양상을 띠고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끊임없이 타인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타인의 모습을 의식하고 그 모습에 비친 나의 모습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한 노력을 치열하게 경주한다.

그런데.. 타인과의 경쟁에 몰입하면 경쟁력이 올라가는가?

아니다.

경쟁에 몰입하면 경쟁력이 떨어지기 쉽다.

'나'다움을 잃어버린 채 타인을 의식하며 사고/행동하면 경쟁력이 저하되고 그로 인해 더욱 타인을 의식하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타인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나'다움은 희석되고 나는 점점 범용품의 프레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범용품 트랙을 타게 되면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하게 된다. 모두가 똑같은 모습의 상품으로 전락한 채 스펙으로 비교당하고 가격으로 저울질 당하고 성능으로 평가 받는 범용품 경쟁의 장. 솔직히 인간으로서 뛰어들지 말아야 할 아사리판 아닐까?

경쟁력은 경쟁하지 않을 때 생겨나기 쉽다.

범용품은 아무리 용을 써봐야 범용품이다.
나만의 프레임 없이 기계적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은 사뭇 허무하다.  예를 들어 돈을 남보다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돈을 왜 벌어야 하는 걸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나만의 이유가 있는가? 그냥 많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 모호한 불안감 아닐까? '돈'을 나만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고 '나'다움이란 관점에서 돈을 정의하고 돈에 대한 나만의 입장을 정확히 세운 후에 돈에 접근해야 하는데 그저 남들이 돈을 종교처럼 추앙하니 나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괜히 뒤쳐지는 것 아닐까란 근거 없는 동질화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는 모습.

레밍처럼 떼를 지어 영문도 모른 채 벼랑 끝으로 돌진하는 모습. 그게 우리 사회에서 횡행하는 경쟁의 양상인 듯 하다. 경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지 왜 경쟁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 없는 경쟁. 그러니 범용품으로 전락할 수 밖에.

사람이 범용품이 되어가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심지어는 기꺼이 범용품이 되어 다른 범용품보다 단 한 발이라도 앞서야 안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더욱 슬픈 일이다.

'경쟁'보다 더 중요한 건 '나다움'이다. 나다움이란 관점에서 경쟁을 바라보자. '경쟁'은 나를 소외시키면서 보람을 느낀다. 경쟁에 몰입하면 몰입할수록 나는 나 자신을 소외시키면서 나다움을 잃어간다. 나다움은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에 투영된 나를 이해할 때 강화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사고/행동의 이유를 알아갈 때 나를 이해하고 나의 사고/행동을 '나'스럽게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나다움'은 독고다이가 아니다.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기발견의 과정이다. 반면, 경쟁은 타인에 대한 견제에 기반한 작동 시스템을 갖고 있다. 타인의 스펙과 나의 스펙을 비교하면서 타인에 뒤쳐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런 과정 속에선 타인과 나는 일제히 범용품으로 전락한 채 이전투구의 장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가련한 존재로 낙인이 찍혀버린다. 경쟁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견제에 있고 나다움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배려에 있다. 경쟁 모델과 나다움 모델.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 모델이겠는가?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대응하는 일종의 모형을 갖고 있다. 경쟁 모형에 입각해서 살아갈 것인지, 나다움 모형에 입각해서 살아갈 것인지. 그건 전적으로 각 개인에게 귀속된 선택의 문제이다.

경쟁력이란 단어 자체에 이미 허상이 그윽하다. 경쟁력이란 단어를 자주 쓰다 보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장땡이란 착각에 서서히 빠져들기 쉽다. 경쟁력이란 단어를 가급적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부턴 새로운 단어를 입에 올려보면 어떨까?

경쟁취약성: 경쟁에 눈이 멀어 나다움을 잃어가기 쉬운 나약한 상태를 의미함

나의 경쟁력을 고민하기 보다 나의 경쟁취약성을 응시해보자.

나의 경쟁취약성은 어떠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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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10/13 11: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발전하려면 열등감을 오히려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것만이 아니네요. 재밌게 읽고 갑니다.

  • BlogIcon KimJY | 2013/10/18 09: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10/18 09:56 | PERMALINK | EDIT/DEL

      댓글 주셔서 오늘 아침 경쟁의 허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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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소외 :: 2013/04/29 00:09

현대인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소비를 한다. 음식을 사먹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지갑은 항상 열려 있고 소비자에게서 사업자로 돈은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간다. 소비의 대가로 효용을 얻고 만족을 느끼는 소비자.

소비란 무엇인가? 생산할 수 있는 자로부터 생산을 거세하고 남은 무기력에 대한 거대한 인증 아닐까? 소비자는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 소비하고자 하는 그것을 정말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소비하고자 하는 자신 자체를 원하는 것일까?

만약 소비자가 자신에 대해 올바르게 성찰하고 소비의 정체를 명확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고 하면, 소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아마 현재 작동하고 있는 소비 메커니즘은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소비는 다분히 기획되고 있으며 소비자는 기획된 소비 프레임 안에서 주어진 제한적 역할을 대단한 권리라도 되는 양 흡족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는 상황. 만약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소비자로부터 일어난다면 소비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게 되지 않을까?

충분히 의미 있는 뭔가를 생산할 수 있는데 생산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도록 압제되어 있는 구조 속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한 소비는 끝없이 지속될 것이다. 소비 없이 살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소비의 의미는 정확히 짚고서 소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성찰 없이 행하는 소비와 꾸준히 성찰을 견지하면서 행하는 소비 간의 간극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철저히 외부로부터 기획된 소비 구조 하에서 안쓰러운 선택을 하는 것 보단 기획된 소비 구조의 맹점을 통찰하고 가급적 자신의 진정성과 의도를 반영한 소비를 시도할 때 '무기력 소비'와의 거리감을 형성할 수 있다.

어리버리한 소비로 인해 무기력해진 인간. 뭔가를 생산할 때 기력 회복을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의 성찰력은 결국 생산에서 나온다. 소비만 하면 결국 남이 주는 먹이를 주워먹는 사육동물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생산을 하게 되면 사육을 넘어 야생을 향한 발걸음을 디딜 수 있게 된다. 사육에 젖어 있을 땐 사육을 인지 못한다. 하지만, 단 한 순간이라도 사육과의 거리를 형성하고 사육을 바라보면서 야생의 몸짓을 시도할 때 무기력한 소비자로 사육되고 있는 자신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게 된다.

무기력 소비는 소외를 낳는다. 생산하지 못하는 피사육의 삶은 인간소외 그 자체이다. 무기력 소비를 지속하다 보면 인간소외 자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을 즐기다(?) 보면 소비 자체를 위한 소비를 일삼게 되고 소비하는 자신을 소비하는 재귀 놀이에 빠지면서 소외의 늪 속을 깊숙히 파고 들어가게 된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소비와 소외 간의 강력한 시너지 트랩에 계속 빠져만 있는 건 너무 아쉽다. 생산의 몸짓을 잊지 말자. 인간은 원래 뭔가를 생산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동물이다. 내 몸 깊숙이 코딩된 생산 알고리즘에 ON 스위치를 켜보자. 생산을 통해 소비를 응시하고 소비를 통해 소외된 나 자신을 복원시켜 보자.

소비자는 소비를 원하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자신 자체를 원한다.
그건 원하는 게 아니라 원하도록 기획되는 것이다.
기획되는 것.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기획의 대상이 되지 말고 기획의 주체가 되어 보자.
생산은 기획의 주체임을 선언하는 행위이자 소외와 나 사이의 선을 명확히 긋는 몸짓이다. ^^





PS. 관련 포스트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가격결정
생산과 소비
소싱 당하는 삶
트렌드세터
노래로부터의 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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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

    Tracked from toms s | 2013/06/13 10:49 | DEL

    Actually when someone doesn't be aware of afterward its up to other viewers that they will help, so here it takes placeRead & Lead - 소비와 소외.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50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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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4/30 12: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기획의 주체가 되어보고자 시도하고 있는 꿈틀거림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주체가 되는 행위 자체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 자주 언급하시는 그 '재귀놀이'에서 많은 힌트와 힘 얻어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4/30 19:00 | PERMALINK | EDIT/DEL

      저도 Wendy님 트윗에서 많은 힌트를 얻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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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중독 :: 2013/02/27 00:07

감정은 술과 같다. 술에 취하고 술에 중독된 사람은 술에 휘둘리는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속 술에 휘말린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취하고 감정에 중독된 자는 감정에 유린되는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감정에 계속 희롱 당한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을 술에 쩔게 만들고 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술이 영원무궁토록 성장하는 것이 술이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미션이다. 술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간다. 술의 성장에 사람이 얼만큼 유린될 수 있는가?  술에게 있어 최대의 질문이자 화두이다.

감정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을 감정에 푹 젖게 만들고 감정상태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감정이 영속성을 갖고 성장하는 것이 감정이 갖고 있는 숙명이다. 감정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장을 지속한다. 감정의 성장에 사람이 얼만큼 희롱될 수 있는가? 감정은 성장에 목을 매는 기업보다 더 치열하게 지속성 있는 성장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장을 위한 열쇠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감정은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을 자신의 입맛대로 다스리기 위한 갖은 술책들을 고안해내고 있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감정이 사람을 뒤흔들어 놓는 상황. 술은 저리도 치열하게 성장을 고민하고, 감정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성장계획을 수립/실행하고 있는데 사람의 성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무엇을 대상으로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가?

중독은 성장에 대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발현되기 쉽다. 만물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와 성장을 지향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지향이 약한 존재는 성장 지향이 강한 존재와 만나서 상호작용을 할 때 아무래도 성장 게임에선 밀릴 수 밖에 없다. 성장 지향이 약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몸에 잘 받고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지고 뭔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받고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과정. 술 중독에 일단 빠지면 성장지향이 강한 술에 계속 휘말릴 수 밖에 없고 휘둘리면 휘둘릴수록 술의 성장 속에서 자신의 성장은 미궁에 빠져버리는 상황이 심화된다.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뭔가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뭔가에 중독되어 허우적거릴 때 뭔가는 허우적대는 자를 발판 삼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고 중독된 자는 뭔가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과정 속에서 정작 자신의 성장은 정체를 넘어 역성장을 하게 되는 안쓰러운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중독은 뭔가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뭔가에 빠진 자는 역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런데 +와 -의 크기가 사뭇 커서 플러스 성장을 향유하는 자와 마이너스 성장을 강요 받는 자 간의 간극은 심대한 것이고 중독된 자는 역성장에 역성장을 거듭하면서 성장에 관한 한 완전히 주도권을 내어놓고 가벼운 객체가 되어 뭔가에 의한 휘말림을 지속하면서 소외에 관한 한 달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감정이 치열하게 성장을 준비하고 술이 집요하게 성장을 모색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감정과 술의 성장세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자신 만의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감정 중독, 술 중독은 나의 성장 계획이 없다는 징표이다. 감정이 나를 휘두르려고 할 때, 술이 나를 삼키려 할 때, 잠시 멈춰서 "나의 성장은?"이란 질문을 소환해 보자.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발판 삼아 성장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해 보자. 인간이 소외당하기의 달인이라면 감정과 술은 소외시키기, 성장하기의 달인이다. 감정과 술에 휘둘리기 보단 감정과 술과 대화를 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노하우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그들만큼 나에게 성장과 소외에 대해 잘 가르쳐 줄 스승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감정은 만인의 뇌에 기생하고 있는 찰거머리같은 존재이니 술처럼 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수시로 호출할 수가 있다. 감정 중독에 쩔지만 말고 감정과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눠보자. 감정에게 물어보자. 넌 어쩜 그렇게 사람을 잘 소외시키니? 넌 어떻게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고 너만의 성장을 끊임없이 주도해 나가니?  감정은 순간 당황하긴 하겠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 줄 것이다. 아무도 감정에게 그것을 묻지 않아서 대답을 안 해주는 것이지 그걸 대놓고 묻고 가르침을 요구한다면 감정은 우쭐거리면서 자신의 비법을 슬쩍 내어줄 것이다.

감정 중독.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젠 감정 유린의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단, 감정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 한해서. ^^




PS. 관련 포스트
감정의 파도를 서핑한다
감정의 창조
감정 네이밍
감정 업신여김 놀이
감정, 알고리즘
나의 마음을 팔로우한다
목적이 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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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란 무엇인가? :: 2013/01/09 00:09

운동이란 무엇인가?

피트니스클럽에서 멋진 운동복을 입고 폼 나게 이어폰 꼽고 TV 보며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법론에 입각하여 고도로 계산된 신체 강화 프로그램을 착실히 수행하면서 다양한 기구들과 함께 어우러져 우아한 운동 모션을 취하는 것인가?

모든 것은 자본화/상업화되어 간다. 돈으로 도배되는 영역이 넓어질수록 돈에 의해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체계로 규정되지 않는 것은 소외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점차적으로 운동이 상업화되면서 상업화되지 않는 본연의(? ^^) 운동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래야 상업화된 운동에만 관심이 집중되면서 비즈니스가 번창할 수 있는 것이겠지.

왠지 자본화된 공간에서 운동을 해야만 운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왠지 격식을 갖춘 상황 속에서 운동을 해야만 운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
그건 '운동'이란 개념을 가공화하고 박제화하면서 별도의 세련된 공간에 고이 모셔두고 싶은 부질없는 마음에 불과하다.

운동은 피트니스클럽에서만 하는 게 아니다. 길을 걸으면서 그것에 운동이란 이름을 붙여주면 그게 운동이 되는 것이고 지하철에서 서있으면서 그것을 운동이라 생각하면 그게 운동이 된다. 그저 내 몸의 움직임에 '운동'이란 이름을 붙여주면 될 뿐이다.

운동은 언제 어디서나 마음 내키면 할 수 있는 움직임일 뿐이다. 운동은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 행동이다. 사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완벽한 부동 자세로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적어도 신체 부위 중에 뭔가는 반드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손가락이든 발가락이든 팔이든 다리든 배이든 내장이든 뇌이든 말이다. 운동은 인간의 본원적 활동인 것이지 자본이 비즈니스 욕망에 의해 멋대로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다 못해 호흡도 강력한 운동에 속한다. 살아 있는 한 운동을 멈출 수가 없다.

격리된 운동이 격리되지 않은 운동을 소외시킬지라도 그것에 현혹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운동을 어떻게 인식하고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살짝 생각을 해주면 될 뿐이다.  자꾸만 상업화되고 격리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왜 그것이 그렇게 격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살짝 기울여주면 그 안에 내포된 의도가 간파되고 그런 의도에 굳이 휩쓸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한 운동의 격리 현상 속에서 격리된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하지 않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격리와 소외는 지금 이 순간도 각종 시공간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런 격리와 소외의 물결 속에서 격리되지 않은 것의 소중함, 소외 당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 시선의 솔직함을 유지해야 한다.

운동이란 무엇인가? ^^


PS. 관련 포스트
생각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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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1/10 10: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외 당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 시선의 솔직함"
    실은 지난 해 말부터 상업화된 운동을 시작 하였어요 ^^; 자본주의 체제 안에 끼워넣지 않으면 자발성과 동기부여가 좀처럼 힘든지라, 바쁘다는 핑계와 돈을 들여야만 의지가 피어오른다는 핑계로 겨우내 하고 있지만, 운동의 소중함을 미세하게나마 깨우치고 있답니다. 외면하지 않는 시선을 갖고싶도록 motivation을 주시니 이 또한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2013년에도 이 곳에 계속 계실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매우 든든하고 즐겁습니다! 새 해 잘 맞이하셨지요? 2013 계사년 더욱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BlogIcon buckshot | 2013/01/11 09:52 | PERMALINK | EDIT/DEL

      자본주이 체제 안에서 자발성과 동기부여.. 저에게 귀중한 생각 소재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올해도 재미있게 블로깅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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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 2012/11/26 00:06

태어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게 되는 아기는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한 일상으로 간주하고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게 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도스 컴퓨터를 갖고 놀면서 성장한 40대 성인은 스마트폰을 접할 때 엄청난 편의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로 생각한다. 스마트폰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스마트폰을 예전에 사용하던 디바이스 대비 급격하게 변화/발전한 첨단기기로 인식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현대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반면, 어떤 사람은 현재를 과거의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번역한다. 사물과 개념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사람과 그것을 예전 틀에 맞춰서 억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사람은 가장 창의적인 시절에 보고 느꼈던 '상'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40대 남성이 2012년을 살아간다는 것은 1970~80년대에 형성되었던 프레임에 2012년을 끼워 넣고 어거지로 2012년을 이해하려 노력함을 의미한다. 2012년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코 2012 네이티브는 아니란 얘기다. 1970년대 네이티브, 1980년대 네이티브로 70~80년대 앵글을 통해 바라보는 2012년의 상. 그건 직시가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상일 것이다.

특정 시대를 살아갈 때 그 시대에 네이티브가 되어 살아가는 게 제일 편하고 좋은 것이다. 미국에 사는 사람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닐 때 겪게 될 어려움을 생각해 보자. 사실상 이방인의 느낌을 갖게 될 수 밖에 없고 항상 머리 속에서는 항상 영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시키느라 CPU가 팽팽 돌면서 뇌는 수시로 과부하 모드에 놓이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네이티브와 디지털 외계인이 공존한다.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 네이티브와 자본 외계인이 공존한다.
특정 트렌드가 대세일 때는 해당 트렌드의 네이티브와 외계인이 공존한다.

세상은 '** 네이티브'와 '** 외계인'이 공존하는 곳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다면, 자신이 그것에 있어서 네이티브인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네이티브와 외계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가 여부에 의해 좌우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다른 매개체를 동원해서 그것을 해석하지 않고 아무런 도구와 프레임이 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인지하고 정의를 내리고 개념 확장을 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기존 도구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랬을 때 그것에 대한 상이 즉자적으로 형성되고 그것에 대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네이티브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은 어린 시절에 보고 느꼈던 것을 기반으로 프레임을 형성하고 그 고정된 프레임으로 이후에 접하게 되는 것들을 해석하게 되곤 한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재미가 없다.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더라도 새롭게 접하게 되는 물질과 개념을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옴니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2012년을 살아가지만 사실상 70~80년대를 살아가는 2012 외계인이 되는 건 내겐 그닥 재미가 없다. 난 2012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어느 시공간을 접하더라도 그 시공간의 네이티브가 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소외, 알고리즘
Mobil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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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1:46 | DEL

    For the reason that the admin of this website is working, no uncertainty very soon it will be famous Read & Lead - 네이티브, due to its feature contents.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11/27 00:59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로 이런 마인드가 벅샷님이 늘 신선한 사고방식을 유지하시는 비결인 거겠죠 ^^ 자기 시스템, 자기 제도권 안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칼바람이 부는 시간의 숲에 겁없이 뛰어드는 야생동물 같은 문화의 여정. 외롭지만 항상 매력 있는 것 같아요.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3 | PERMALINK | EDIT/DEL

      시간의 숲에 뛰어든 야생동물.. 너무 멋진 비유이십니다. 정말 제가 야생동물이 되어 시간의 벌판을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설레이는데요. ^^

      하나의 문장으로 저의 오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시니 넘넘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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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부터의 소외 :: 2012/10/12 00:02

얼마 전 우연히 지인으로부터 지인의 아버님에 대한 얘길 듣게 되었다. 지인의 아버님께서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데 프로페셔널 싱어가 부른 노래가 아닌 본인의 노래를 직접 녹음하고 그것을 매우 행복해 하시며 들으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듣고 웃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게 웃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왜 자신의 노래를 듣지 않고 남의 노래만 듣고 사는가?  
내가 부른 노래를 내가 즐기면 안 되는가?

분업에 기반한 전문화는 모든 영역을 잠식한다. 전문화는 전문가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을 전문화된 영역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누구나 부담 없이 행할 수 있는 영역도 전문화에 잠식을 당하면 아무나 하면 안 되는 행위로 규정된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전문화 자체가 자체 증식의 욕망을 갖고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굳이 전문화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전문화되는 현상은 BM과 기가 막힌 시너지를 내면서 공생 관계를 거듭하게 된다.

음악을 전문 음악인만 생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프로페셔널만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도 얼마든지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부를 수 있다. 그걸 하면 왠지 안될 것만 같은 강박은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분업/전문화가 가져다 준 '소외'란 이름의 차가운 선물일 뿐이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얼마든지 자신 있게 자신의 취향대로 자신 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분업/전문화가 지나치게 고도의 경지에 이른 것일 뿐.

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기가 막힌 가창력을 가진 싱어는 노래를 부르기만 하고 우리는 그 노래를 듣기만 하는 것이 과연 맞는 건지를.  우리는 왜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은지, 불필요하게 전문화되어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는 잃어버린 영역을 우린 어떻게 다시 찾아와야 하는지. 나를 소외시키고 나를 소외시킨 대가를 달콤하게 향유하는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어 보자. 거대한 소외에 대한 응전을 소박하게 나마 준비하기 시작할 때,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나의 모습을 되찾고 희미해져 가던 자아를 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PS 1.
한 곡의 뮤직만 주구장창 들으면 왠지 지루한 느낌이 드는 것. 정말 지루해서일까. 아니면 지루해야 한다고 누가 개념 주입을 해서일까. 정말 전자라면 상관 없지만 후자의 영향력을 간과할 순 없다. 한 곡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것. 소비의 자유.

PS 2. 관련 포스
분업
강박과 BM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욕망은 수동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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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렌즈캣 | 2012/10/12 12: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눈팅하던 독자입니다. 정말 맞는말인 것 같아 댓글 하나 날립니다. 노래는 듣는것도 좋지만 자기가 직접 해보는게 노래를 즐기는 영역중 하나이죠. 자기가 직접 노래를 즐기고, 부르고, 연주를 해 봤어야 콘서트나 공연에서 보고 듣는 맛이 살아나듯 말이죠.

    저도 노래만드는 취미를 갖고 싶은데 여건이 안되서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재개할거긴 한데 요즘같은 시대는 자기가 직접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기도 쉬워서, 모르고 돈없어서 못했다는 변명이 안통하죠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0/14 17:17 | PERMALINK | EDIT/DEL

      분업의 함정 속에서 빠져 나와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습관이 소중하다는 것을 점점 느끼게 됩니다. 전문영역이 거의 없던 아주 오래 전에 살던 사람들의 통찰을 점점 더 배워나가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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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업 :: 2012/10/03 00:03

의사는 환자가 있어야 먹고 산다.
리더는 팔로워가 완결성 있게 업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먹고 산다.

분업화는 지나친 위임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환자는 의사에게 필요 이상으로 의존한다. 실무자는 필요 이상으로 중간관리자에게 의존한다.
의사와 리더의 수익모델을 위해 의존도 심화 구조가 더욱 견고해져 가는 악순환.
분업화는 대개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

분업화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전문가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업무 범주로 규정된 것 중에 일부는 내 자신이 수행해도 되는,
아니 수행해야 하는 것이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업화에서 내가 어떻게 소외되는지를 직시해보자.
세상에 수많은 전문가들이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나를 무식자로 규정하는 분야가 널려 있다는 얘긴데
정말 그런 것인지에 대해선 충분히 의심을 해봐야 한다.

전문분야에서 축적되고 있는 전문지식이 나를 지속적으로 소외시켜가는 현상을
명시적/암묵적으로 인정하지 말고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가 있고
전문성에 대한 나만의 시각을 다듬어 봐야 한다.

그래서 정말 전문분야로 간주해야 하는 영역과
충분히 일반인도 접근 가능한 분야를 나만의 뷰로 재정비할 때
전문성/전문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분업은 효율을 위해 발명된 것이지 소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분업에 대한
@mcgyver님의 트윗 멘션이 매우 인상적이다. ^^



PS. 관련 포스트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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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22 | DEL

    That in fact a nice movie mentioned in this piece of writing %title% concerning how to write a piece of writing, so i got clear idea from here.

  • BlogIcon 아크몬드 | 2012/10/03 19: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엄청 생각할 거리를 주시는..ㅎㅎ
    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 BlogIcon buckshot | 2012/10/03 21:44 | PERMALINK | EDIT/DEL

      아무 것도 안하고 푹 쉬고 있습니다. 빈둥거리는 시간들이 제겐 소중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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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된 도구 :: 2012/07/23 00:03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변화시킨다.

스마트폰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해 탄생한 도구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스마트폰은 자체적인 진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며 인간을 자유자재로 제어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인간들이 양산되고 한 순간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인간들이 나날이 증가한다. 스마트폰은 도구였다. 하지만 언젠가 도구의 지위에서 벗어나 목적에 가까운 그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다. 도구로 시작해서 목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케이스는 수도 없이 많다.

도구가 목적이 되어가는 경향.

블로그도 내겐 처음에 툴에 불과했다. 나의 생각을 가볍게 웹에 낙서하는 툴로 생각하고 블로깅을 시작했는데 어느덧 5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블로그는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되어갔다.

도구가 목적이 되어갈 때 인간은 '도구-목적'에 몰입하거나 중독된다.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도구와 목적이 이원화되지 않고 서로 합체가 되어버리니 집중할 대상이 너무도 자명해지는 것이다. 기분 좋으려고 술을 마시다가 어느 순간 술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알콜에 몰입하게 된다.

중독과 몰입은 어떻게 다른가?
중독은 인간이 소외될 때 일어나고 몰입은 인간을 향할 때 일어난다. 스마트폰이란 도구목적에 집착하는 것은 스마트폰의 성장에 도움이 될 뿐 인간의 성장과는 그닥 관계가 없다. 술이란 도구목적에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블로그를 자기계발 툴로 정의하고 블로깅에 집착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것은 도구목적에 몰입하는 행위에 가깝다. 블로깅이란 행위가 인간을 향한다는 것. 내가 블로깅을 하는 기본 전제조건이다.

수많은 도구들은 목적이 되어간다. 수많은 도구목적들이 인간을 소외시킨다. 하지만 세상엔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적합한 도구목적에 몰입할 기회를 가진다. 그 기회를 잘 살려서 나만의 도구목적을 생성하고 그것을 즐거워하는 것. 그게 도구목적을 올바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도구목적에 중독되는 삶이 아닌 도구목적에 몰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난 오늘도 도구목적에 몰입하는 시간을 가진다. 블로깅을 하는 시간이 바로 그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인간과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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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흐릿하게 하는 스펙,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 :: 2012/01/13 00:03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은연중에 스펙 지상주의에 젖어 들기 쉬운 세상이다. 스펙 쌓기와 경력 관리에만 집중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스펙과 경력은 비교를 전제로 하기 마련이다. 남보다 좋은 스펙, 남보다 좋은 경력. 스펙과 경력에 집중하는 자는 비교우위에 집중하는 자이다. 비교우위에 몰입한다는 건, "나"를 생각하기 보다 나를 감쌀 무엇인가를 찾는데 더 분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무엇으로 자꾸 감싸고 포장하다 보면 얼핏 보기엔 풍성한 나인 것 같지만 진정한 "나", Real Self는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겪었던 실패,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스펙/경력에 집중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실패/한계를 드러내놓고 얘기하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실패"만큼 "나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극명하게 알려주는 것이 있을까?
나의 실패, 나의 한계는 "나"를 분명히 드러낸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다면 실패와 한계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과거에 겪었던 실패의 쓰라린 경험들, 내가 갖고 있는 명백한 한계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명시적으로 가리키는 소중한 바로미터이다. 나를 포장하는 스펙/경력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내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실패/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그걸 피한다는 건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다. 문명이 발전시킨 인간 도구들에 의해 인간이 소외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내가 나를 소외시킨다는 것만큼 애처로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평생을 배워도 배우기 어려운 게 바로 "나"이다. "나"를 잊고 사는 삶, "나"를 외면하면서 사는 삶은 공허한 것이다. 나를 흐릿하게 하는 스펙/경력으로 나를 가득 채울 것인가?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한계를 소중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더욱 알아나가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들이 나의 것이지, 나를 흐릿하게 하는 것들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들을 통해 나를 배우는 것. 學我(학아) 알고리즘. ^^


PS. 관련 포스트
비난과 자성 사이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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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Gony | 2012/01/13 10:21 | PERMALINK | EDIT/DEL | REPLY

    폭풍 동감입니다. 돌아보면서 제가 나름대로 성장할 때는 원하는 바에 도전하고 실패하고 '나'의 한계를 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펙에 뭍혀 나 자신이 흐릿해진다는 말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나 사회 초년생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그룹이 자신의 능력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더군요. 저도 그랬구요.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죠.. 좋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49 | PERMALINK | EDIT/DEL

      결국 스펙을 벗어던진 후에 얼마나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

  • BlogIcon karitas | 2012/01/13 12: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정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은 뼈아픈 고통이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는군요.. 오늘 새삼스럽게 나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PC에 앉아서 이렇게 타이핑하고 있는 이 순간도, 지난날의 수많은 선택과 고집이 있어서겠지요. 지금이 좋다 나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의 발자취로 인해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는데서 정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50 | PERMALINK | EDIT/DEL

      실패란 단어가 만들어지게 된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실패는 재정의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토댁 | 2012/01/13 2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내 앞에 놓은 돌맹이를 디딤돌이라 여기며
    한 걸음 더 성장하는 토댁이 되겠지요.

    농장에게 농장의 차별성과 특징을 묻고 합니다.
    그럴때마다 헷살리고 선명하지 않는
    나의 농장과 나!
    를 찾기를 아직 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냥 나일 뿐인데 자꾸 설명하라 하니....;;;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0:53 | PERMALINK | EDIT/DEL

      제가 '나'를 잊고 사는 만큼 저는 범용화되는 것 같습니다. 차별화는 자신을 얼마나 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봅니다. ^^

  • BlogIcon 태현 | 2012/01/14 14: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외면하고 감추고 싶은 '실패'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요즘 제 가장 큰 관심사가 '진정한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인데, 스펙과 경력에 대해서만 몰두 했지 실패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경력과 스펙이 아닌 나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해야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4 14:11 | PERMALINK | EDIT/DEL

      깊게 통찰된 실패는 그 어떤 화려한 성공보다 훨씬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

  • Wendy | 2012/01/15 01: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패와 한계가 보여주는 'real self', 그 '진정한 나'를 보기 보다는, 실패와 한계를 통하여 드러나게 될 나를 두려워 하기만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나에 대한 진정성 어린 나 스스로의 존중도 사랑도 예의도 없었던 듯 싶습니다. 마음 한 켠에선, 스펙과 경력이 채워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그 진정성이 고갈된 그 무언가를 알기에 안타까워 하고 있지만, 다른 한 켠에서 스펙과 경력으로 어떻게든 채워넣고 포장해보려는 어쩌면 낭비였을지도 모를 시간들을 보내온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실패는 앞으로의 제 삶에서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약재료'가 되어줄텐데요....이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갑니다. 역시나 200% 덕분입니다. ^^ 스펙보다는 실패가 제게 안겨준 스토리로 살아가보렵니다. 감사드려요!! :)

    • BlogIcon buckshot | 2012/01/15 10:53 | PERMALINK | EDIT/DEL

      예, 자신만의 스토리..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 휘리릭킴 | 2012/01/19 13: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패를 외면하고 있지않지만, 스펙을 보는 사회는 언제나 지속 될 것 같네요.
    내면을 보는 사회로 점차 변해가겠지만, 아직도 스펙을 쫓아야 하는 현실과 마주 하게되고,
    어디를 기준으로 두어야 하는지.. 아이러니한 상황 같아요.~ㅋ
    그래도 전 언제나 나를 선명하게 하는 실패와 마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20 20:24 | PERMALINK | EDIT/DEL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항상 유지하고 싶습니다. ^^

  • BlogIcon 서연아빠 | 2012/05/09 11: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언젠가 '진지함'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다.
    나의 성공보다는 나의 실패와 한계가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바로미터임을 생각한다면...
    '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는 '진지함'은 나의 자아를 이해하는 실천적 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어보이네요.
    '진지함'으로 나의 '한계'에 도전하고, 그래서 '한계'를 한단계 한단계 극복해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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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net :: 2012/01/06 00:06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종이나 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분명 효율을 높이는 행위다. 하지만,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머리(?) 속 가상 종이/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효율 제고를 넘어 생각 프레임 자체를 혁신시킬 수 있는 행위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도구를 고안해왔다. 하지만 도구는 인간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소외시켜왔다. 도구를 외연화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 도구를 내연화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뇌(?) 안에 구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디바이스에서 스마트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디바이스 사용자? 결코 아니다. 스마트디바이스의 주체는 디바이스 자체다. 디바이스가 스마트해져서 사람을 디바이스의 종속물로 전락시키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도구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가고 도구를 사용하는 자가 도구의 수단이 되어가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가 전개하는 새로운 양상이다.

휘발되는 것이 싫어서 기록을 하고 망각하는 것이 두려워서 리마인드를 당하는 것. 휘발을 기피하고 망각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자세일까? 어디서 어디로 휘발되는 것이고 누가 무엇을 망각하는 것일까? 스마트디바이스가 주고 있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인터넷이고 나 자신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되면 안될까? 이미 내 안엔 인터넷 부럽지 않은 고도의 신경회로가 존재하고 내 몸은 그 어떤 디바이스보다도 더욱 스마트하다. 그것을 내 자신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스마트도구의 힘을 빌려 스마트해진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도구로부터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만 갈 뿐이다.

나의 외연에 인터넷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맘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내 자신의 사고회로가 인터넷이 되어야 하고 내 몸과 마음의 작동회로가 스마트해져야 한다. 결국 도구 진화의 종착역은 인간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문명의 진화, 도구의 진화는 결코 고도화가 아니다. 그저 랜덤 주사위 놀이가 자아내는 수평적 변화일 뿐이다. 아니, 수직강하일 수도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지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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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데굴대굴 | 2012/01/06 18: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동안 만날 수 있는 정보가 '나 밖의 자료'였음에 반해,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나의 자료'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전에는 내가 가야하는 맛집의 위치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 주변의 맛집으로 바뀐 것이죠.

    이런 변화는 (이게 과연 스마트인지도 의문 스럽지만)
    스마트한 도구의 힘을 빌어 스마트해지는게 아니라,

    머리 속에 불필요한 것을 스마트한 도구에 밀어넣음으로써
    내 머리 속의 공간을 확보하고 보다 바르게 생각하는게
    스마트 디바이스를 접하는 바른 사용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07 10:55 | PERMALINK | EDIT/DEL

      데굴대굴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도구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스마트 디바이스는 저에게 큰 메세지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해요~ ^^

  • Wendy | 2012/01/11 15: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외연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때에 이 포스팅의 발견이 곧 '오아시스'가 되어주네요. 스마트 디바이스가 진정 내게 일말의 스마트함을 안겨줄 것만 같았었는데, 종속되어가는 이 느낌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하모니를 이루도록 잘 지휘하는, 더 나아가 나의 브레인 속에서 회로들과 시냅스들을 잘 관리하여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를 만들어야겠단 당찬 다짐도 더불어 해봅니다. 자극받고 숑숑 달려다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1 20:08 | PERMALINK | EDIT/DEL

      Wendy님께서 제 블로그에 보내주시는 관심이 저에게 진정 스마트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계신답니다. 넘 감사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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