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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탑과 폰 :: 2016/12/26 00:06

맥북을 열고 블로깅을 한다.
맥북 바로 옆에는 폰이 있고
폰 안에는 e북 리더기가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소설이 담겨 있다.

소설을 보면서
느껴진 것들을
블로그 에디터 창 안에 넣는다.

그건
맥북과 폰이 교신하는 것이다
맥북과 폰은 기계인데
두 기계를 사람인 내가 이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두 기계 간 연결고리
나는 브릿징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
누가 이용자이고 누가 도구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충분히 도구일 수 있는 듯 하다.

맥북의 목적과
폰의 목적이 있는데
그 두 기계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내가 움직이는 듯 해서.
그럼 내가 수단인데. ㅋㅋ

인간과 기계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일까
누가 목적을 잡고 있고 누가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머 여튼..
난 소설을 읽고 있고
소설에서 생성되는 감흥을 그냥 흘려버리자 않고
블로그에 옮겨 적고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맥북과 폰과 나의 타이핑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뭐 그렇다는 거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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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과 남아있는 것 :: 2016/12/16 00:06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어나가면
읽은 분량과 읽지 않은 분량 간의 경계선이 계속 이동하게 된다.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
그 둘 간의 경계

그 경계선에서 두 영역 간의 관계가 발생한다.

내가 읽은 내용과
내가 읽지 않은 내용이
서로 대화를 한다.

내가 설치한 무대 위에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구도

그건 내가 연출한 연극 무대

그저 소설을 읽어나가면 되는
독특한 연극 연출의 상황

두 주인공은 경계선 상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들을 인지하고 규정하게 된다.

그런 흐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나는 계속 소설읽기를 진척시킨다.

소설 읽기가 중단되면
경계선은 이동을 멈춘다.

하지만 이동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대화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는 계속 진행된다.

어디서 경계선이 형성된다고 해도 (첫문장이든, 첫장이든, 중간이든, 마지막장이든, 마지막 문장이든(
경계선은 곧 대화다.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경계선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게 된다.

그건 소설에 적혀있는 태생적 스토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서인지
나는 오늘도 계속 경계선을 이동시키거나,
중단된 경계선 위에 물끄러미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읽은 영역과 남아 있는 영역 간의 대화를 경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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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이야기 :: 2016/12/12 00:02

소설을 읽는다는 건 잔여 분량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첫 문장을 읽을 때
첫 장을 넘길 때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때
이야기의 흐름이 최고조에 이를 때
마지막 장을 앞두고 있을 때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소설을 읽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잔여분량은 재구성된다.

내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내가 읽지 않은, 남아 있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재편되고 새롭게 직조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야기 구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것이지만
소설이 독자들의 손에 넘겨지는 순간
그 이야기는 각각의 독자들에 의해 그들만의 흐름으로 구성되고 진행된다.

남아있는 이야기.
남아있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내가 읽는 소설들은
작가가 짜놓은 생성 틀 속에서 모두 각자의 태생적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내가 독자로서 수놓는 읽기 틀 속에서 잔여 이야기가 계속 동적으로 생성된다.

내가 의식적으로 주의를 투입해서 읽어낸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이 공존할 때
나의 관심을 충분히 받은 내용도,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용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로 생성되고 흘러간다.

다 읽은 소설과 다 읽지 않은 소설. 첫 문장만 읽고 중단한 소설.  마지막 문장만 읽고 더 읽지 않은 소설.
그렇게 소설과 내가 상호작용한 방식 자체가 이야기인 것이고 내가 개입해서 내 의식 속에 명징하게 들어온 내용과 내 의식 주변을 맴돌거나 아예 의식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내용들은 모두 나의 개입 양상에 의해 짜여진 새로운 스토리이다.

남아있는 이야기..
그건 내가 소설을 대하는, 읽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재탄생될 수 있는 것이기에
소설을 읽는다는 건 참 매력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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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가 :: 2016/10/14 00:04

회색 코뿔소가 온다 -
미셸 부커 지음, 이주만 옮김/비즈니스북스

불확실성은 예측하지 못했을 때, 준비하지 못했을 때 그 매력을 유지한다.

불확실성은 무기력을 먹고 산다.

예측을 즐기는 자는 정확도가 낮은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을 때 예측하지 않는 무행동을 두려워한다.

예측을 즐기지 못하는 건, 보람이 없어서이다. 예측을 해봐야 자꾸 틀리니까 예측에 대한 열정이 희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을 때 열정이 생기는 건 누구나 한다.
진정한 열정은 실패로 인해 식지 않는 것이다.

식지 않는 열정. 대책 없는 무대포가 아니라 고도의 확률적, 과학적 계산에서 우러나온다.

예측을 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99.9%라고 가정할 때,
그렇게 낮은 확률에서도 예측을 즐긴다는 건
예측을 단발성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

예측은 한 번의 성공과 실패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예측에 동원된 가설, 도구, 계산 체계.. 그 자체에 미학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측의 KPI는 성공율이 아니다.
예측의 과정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 나올 수 있는가이고
예측의 적중 여부를 리뷰하는 과정 속에서 또 한 번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를 향한 설레임.
그게 예측의 묘미다.

예측은 결국 소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예측하는 자는, 가설을 쓰는 자이자 소설을 쓰는 자이다. 

소설가. 가설가. 예측가.

소설을 쓸 때, 예측을 할 때 활성화 되는 뇌.
그 뇌. 그 뇌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자.
예측을 멈추지 않게 될 것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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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껴 읽기 :: 2016/10/07 00:07

단편소설을 즐겨 읽는다.

단편소설을 읽는 건 즐거운데
새로운 단편소설로 진입하는 시점에선 항상 힘겨움을 느낀다.

이미 전에 읽은 단편소설의 여운이 남아 있다 보니
뉴 스토리로 진입할 때는 항상 까다로운 기대치를 갖게 되어서 말이다.

기대치가 높다 보니 10편의 단편소설을 잡게 되면 끝까지 다 읽게 되는 경우가 30%도 안된다.

대개는 첫 페이지에서 멈춤을 결정하게 된다.
첫 페이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동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 페이지를 넘긴 단편소설에는 왠지 모를 애착을 느끼게 되고
그런 애착이 소설 읽기의 진척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난 새로운 소설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소설을 중도에 멈춰야 끝까지 읽고 싶은 소설을 만나게 될까?

이런 불안감이 있다 보니
재미있는 단편소설을 빨리 읽으면 안된다는 강박도 생겨난다.

지금도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잡고 있는데
총 40페이지로 구성된 소설을 1주일 넘게 잡고 있다.
하루에 2~3페이지만 읽는 것이다. 야금야금.

이렇게 해야 이 소설의 재미를 하루라도 더 향유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나로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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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희미하게 :: 2016/07/15 00:05

창작과 비평 2016년 여름호에 실린 정미경 소설가의 '새벽까지 희미하게'란 단편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을 읽으니, 문득 김금희 소설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란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새벽까지 희미하게에 등장하는 '송이'란 사람이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양희'란 사람과 느낌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연상이 일어나게 된 듯 하다.

두 사람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두 사람 모두 나무와 관련된 장면이 나오고. :)

순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윽한 눈길을 보낼 줄 아는 그런 사람.

두 소설을 차분하게 읽으면서 소설에서 풍겨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에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 행운이다. 소설의 화자에 눈에 비친 송이와 양희는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매력을 지녔다. 삶의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말을 가슴에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새벽까지 희미하게'란 소설을 만나서 넘 좋다.  '너무 한낮의 연애'와 정서적으로 묶일 수 있는 소설이라서 더욱 좋다. 두 소설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얼마나 더 좋은 느낌을 받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끽다점평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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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 :: 2016/07/01 00:01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에 관심을 두고 읽기 시작하다가 왠지 결이 맞지 않는 듯 해서 중단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그 단편소설을 쓴 작가가 자신이 쓴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소설집을 낸다.

소설집의 목차를 훑어보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소설은 예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에 중단했던 바로 그 소설.

이미 그 소설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소설집을 주문한다.

소설집이 도착했다.

소설집에 실려 있는 바로 그 소설에 주목한다.
내가 읽지 않기로 결정했던 그 소설.

그 소설을 역시 읽지 않게 된다.

예전과 동일한 상황.

난 읽지도 않는 소설을 동일한 내용으로 2개나 보유하게 된 셈이다.

읽지 않은 책은 미래다.  아직 오지 않은 무엇.

읽지 않은 단편소설을 동일한 내용으로 2개나 보유한다는 것은
2가지 겹의 미래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그 미래는 영원히 미래로 남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읽기로 실현될 수 도 있다.

실현되든
미래로 남든

2개의 트윈 소설은
나에게 찾아온 미래 시간.

읽지 않은 책을 또 사면서 난 미래를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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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 2016/06/29 00:09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에 관심을 두고 읽기 시작하다가 왠지 결이 맞지 않는 듯 해서 중단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그 단편소설을 쓴 작가가 자신이 쓴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소설집을 낸다.

소설집의 목차를 훑어보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소설은 예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에 중단했던 바로 그 소설.

이미 그 소설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소설집을 주문한다.

소설집이 도착했다.

소설집에 실려 있는 바로 그 소설에 주목한다.
내가 읽지 않기로 결정했던 그 소설.

그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계간지에 실려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예사롭지 않은 결.

소설 읽기의 진척이 예전보다 수월하다.

예전보다 잘 읽힌다.

이유는
계간지에 실렸던 그 소설과
지금 소설집에 실려 있는 이 소설이
다른 소설이기 때문이다.

해당 소설이 실려 있는 맥락이 달라졌고
소설을 읽는 나 자신이 그 사이에 변화했다.

같은 소설도 시공인(시간,공간,인간)을 달리해서 다시 접근하면

다른 소설이 된다. :)

같은 책은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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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 :: 2016/05/13 00:03

입자가 만물을 구성한다면
입자는 물질이기만 한 것일까

생각은 입자가 아닌지
생각이 입자라면,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인지

형태를 물질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생각은 어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나의 생각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나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의 생각 흐름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내 몸의 흐름이 또 하나의 소설이라면
그 두 소설을 연작소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작가적 관점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그렇다면
내 생각의 건강과
내 몸의 건강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 마음의 병과
내 몸의 질환 사이엔 어떤 긴장이 존재하는지

나를 구성하는 형태적, 비형태적 입자들을
모두 망라하고 포괄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나의 의식은 어디까지로 규정될 수 있는지
내 의식이 흘러갈 때 내 몸은 어떻게 공명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생성될 때
내 안에선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건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이것들은 모두 답변되기 어려운 미지의 비밀과도 같은 신비함으로
오늘 이 순간에도
내일 어떤 순간에도
과거의 어떤 시점에도
우아하게 스며든 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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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연결 :: 2016/05/02 00:02

카페에 앉아 있다.
주위 테이블에 사람들이 착석한다.

두 테이블에서 각각 사람들의 대화가 진행된다.
나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테이블이어서
두 테이블의 대화가 모두 들린다.

대화를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리길래
그냥 무심코 들어 보았다.

마치 연작 소설이 나란히 나에게 구연동화처럼 들려오기 시작한다.

두 소설은 각각 나름의 흐름으로 전개되지만
결국 나를 중심으로 연결되고 있다.

물론 나는 두 소설에서 명시적 캐릭터나 역할을 맡고 있진 않지만
엄연히 두 소설을 잇는 연결고리가 바로 나.

아마 생각해 볼 수 있는 연작 소설 중에서
가장 연결고리가 흐릿한 소설이 바로 지금 내 주위에서 구연되고 있는 소설일 것이다.

연결이 약한 연작 소설.

명시적으로 들리는 대화 세션 2개.
하지만 두 대화 간의 연결고리가 약하기 때문에
이 소설 역시 내가 참여할 부분이 적지가 않고
그래서 이 연작 소설은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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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호흡 :: 2016/04/27 00:07

소설을 읽는 걸 좋아한다.
요즘 소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난 그냥 소설 읽는 게 좋다.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면,
사람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묘사해 내는 느낌이 그 안에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사람의 삶을 묘사한다는 것.
예전엔 그게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대가 점점 빠른 호흡 속에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양태를 취하게 되면서
느린 호흡으로 한 사람을, 한 장면을 집요하게 묘사해 내는 소설작법의 의미가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1분 안에 판단해 버리고
사안을 10초 안에 스캐닝하고 빠르게 댓글을 다는 시대.

한 사람에 대해 충분한 호흡을 갖고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깊게 통찰해 보려 하지 않는
그런 흐름이 만연하고 있는 시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소설은 더욱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짧은 호흡만 존재하는
어텐션 결핍의 시대에 소설은 충만한 주의력으로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니까.
그런 소설가의 시선이 좋아서 소설을 계속 집어들게 되는 것 같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너무나 좋아진 테크놀로지의 토양 위에서
정작 통찰을 향한 접근성은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 아닐까 싶다.
피상적 접근성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는 반면
사물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는 갈수록 희소한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면

비즈니스와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한 일상의 흐름은 과연 어떤 의미인 것일까.
소비자들을 정신 못 차리게 짧은 호흡의 세상 속에 밀어넣고 비즈니스와 기술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것 아닐지.
그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들은 인간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모조리 빼앗긴 채 시장이 정의하는, 시장에서 의미있는 로봇 소비자로만 기능하고 작동하는 기계적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그런 흐름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심화될 수록
소설은 더욱 더 읽어야만 하는 삶의 필수적 자양분이 아닐까.

그런 소설의 위치와 역할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소설을 내 옆에 두고 그것과 친해지려고 계속 눈길을 주는 것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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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긴장 :: 2015/07/22 00:02

올해 초에 한 편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나름 흥미로운 플롯을 지니고 흐름이 전개되는 모습이어서 제법 긴장감을 지니며 읽어나갔었다. 시종일관 재미를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결말에서도 만족스럽게 마무리가 되면서 내 기억 속에 만만치 않은 잔향을 남겨 주었다.

그 소설을 요즘 들어 우연히 다시 들쳐 보게 되었다. 읽어내려 가는데 역시 올해 초의 긴장감이 물씬 느껴진다. 분명 내용을 다 알고 읽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내용이 뻔하지 않게 흘러간다. 알고 읽는데도 긴장감이 처음 접할 때의 그 수준이라면 이 소설은 나에게 두 번의 감동을 주고 있는 셈이다.

앎이라는 건 뭘까.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다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작가가 규정한 내용으로 소설은 채워진다. 이미 완료된 이야기일 뿐이다. 내 손에 소설책이 쥐어진 순간.
그런데도 그 소설을 살아있는 이야기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요소. 그 요소가 생명력이 있다면, 그 소설은 언제 다시 읽어도 독자에겐 새로운 이야기로 긴장감 있게 다가오게 되는 듯 하다.

알면서도 느끼는 긴장감. 그건 모르면서 느끼는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매력.

어김없이 작가가 의도한, 이미 내가 읽어서 알고 있는 그 플로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긴장한다. 앎의 긴장이다 이건.

파인 홈처럼 명백히 규정된 트랙을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인데도 긴장감이 느껴진다는 건 그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플롯에 내가 눈을 뜨고 있어서인지도. 나는 어떤 플롯을, 캐릭터의 어떤 변화 지점을 느낀 것일까.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소설 속에 숨겨진 그것.

몇 개월이 흐른 시점에 다시 그 소설을 읽어도 난 또 한 번 긴장할 수 있을까? 그 날이 오면 난 앎의 긴장에 대해 얼마나 더 이해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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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포용 :: 2015/06/19 00:09

단편소설집을 사서 소설들을 읽다 보면 굳이 읽고 싶지 않은 단편들이 있다.

첫 문장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첫 장, 두 번째 장에서의 느낌이 그닥 와 닿지 않으면
읽기를 중단하고 다음 번 소설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스쳐 지나간 소설들이 매우 많다.
그것만 다 합해 보면 엄청난 분량의 소설집이 될 것이다.
그 소설집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

'내가 외면한 이야기들'


그러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 소설들을 외면했던 내 안의 이유가 해당 소설을 둘러 싼 공기가 바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그 소설이 시야에 들어오는 우연이 주어지면 난 그 소설을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갖고 읽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소설을 지금 읽고 있는데
느낌이 매우 좋다.

심지언 제법 의미 있게 새겨둘 만한 문구나 단어를 만나는 행운까지 누리게 되었다.

어찌 보면 내가 매우 편협한 맥락 포용력을 갖고 있어서 그렇게 많은 소설들을 외면했던 것 같다.
다양한 맥락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맥락의 다양성에 내가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맥락에 대한 경험치를 쌓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못했고 다소 한정된 맥락의 결에만 취향을 집중시키다 보니 내 취향 자체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란 반성도 생겨난다.

결국 소설집의 제목은 이렇게 바뀌어야 할 듯 싶다.

"내가 포용하지 못했던 맥락들"
"이제서야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사연들"


요즘은 소설집이 더욱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예전에 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흐름이 참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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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억하는 :: 2015/04/24 00:04

사랑을 믿다 - 권여선

빛의 호위 - 조해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 이기호


3편의 단편소설을 읽고서
기억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은 듯 하다.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첩 영역에서 기억의 양상이 불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기억하는, 타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타인은 기억하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의 비대칭
내가 기억 못하는 것들은 내 의식의 수면 밑으로 깊게 침잠해 들어가는데
어떤 기억들이 어떤 계기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고
그것들 중의 어떤 것은 의미망, 관계망 속에서 중요한 연결점, 파열점을 내포하기도 하고
기억의 지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적어도 기억의 인덱싱이라도 해볼 수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오늘의 나가 아닐 것 같다.

나중에 기회가 온다면
이 3편의 소설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그 날의 나는 오늘의 나와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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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 :: 2015/04/20 00:00

소설을 읽다 보면 결정적 장면이나 문장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 오롯한 느낌이 좋아서 자꾸 새로운 소설을 찾게 된다. 그런 느낌을 또 맛보고 싶어서. 그런데 나의 취향이 제한적이고 나의 이해력의 한계가 극명한 관계로 좋은 소설을 만나도 그 소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좋은 소설을 알아본다고 해도 나의 감정선이나 독서 당시의 상황 등에 휘말려 결정적 문장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여튼 멋진 문장을 만나는 경우, 그것은 내 기억의 방 어딘가에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듯 하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가 문득 문득 내 기억의 수면 위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첫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
소설 어딘가에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문장을 품고 있는 소설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인 소설

그런 소설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상상 외로 크다.

결정적 장면을 담고 있는 문장
그 문장의 매력에 빠지다 보면
영화를 보기가 어려워진다.
아무리 멋진 영화라 해도 소설 속 멋진 문장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문장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나는 그 문장들과 대화하면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좋은 문장을 자주 만나지 않아도 상관 없다. 
이미 만났던 문장을 다시 감상하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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