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62건

편린 :: 2017/12/04 00:04

소설을 읽다가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만났을 떄 더 이상 소설 읽기를 지속하기 보단 그냥 멈춰서 그 단어, 그 문장에 대한 상념에 잠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야기의 흐름에 브레이크를 거는 이러한 상황에 봉착하면 참 당황스러운데..

그렇게 소설 스토리라인 속에서 툭 튀어나온 스토리 상의 편린이 나에게 뭔가를 전달한 것이고 그게 내 안에 들어와서 자신 만의 영역을 만들면서 난 멈추고 싶어지는 것인데.

그렇게 작은 편린에 왜 내가 이렇게 영향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곘어서 어이도 없고 이해도 안 가는 지라 그냥 무시하고 다시 스토리라인 상에 맘을 맡기고 싶어져도 자꾸 그 편린이 뇌리에 맴돌면서 이야기 진행을 방해한다. 스토리라인이란 건 자고로 잘 흘러야 하는데 말이다. 왜 작은 조각 하나가 나를 이렇게 흔든단 말인가. ㅋㅋ

그렇게 나를 멈추고 싶게 만드는 편린..  그건 단순한 이야기 조각은 아닐 것이다. 뭔가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을 막연하게나마 만난 것이고 그 만남이 감격스러워서 난 모든 것을 멈추고 그것에 주목하고 싶은 것일텐데..  하지만 소설을 읽고자 했던 본연의 취지(?)를 거스르는 것도 좀 불편하기도 하니 멈추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으로까지 상황은 전개되는데...

작은 것이 작은 게 아니고
부분이 전체보다 작지 않고
단 하나의 섬광이 전 우주를 삼킬 수도 있고
한 조각 단어, 한 조각 문장이 하루를 커버할 수도 있고, 1년을 덮을 수도 있고, 평생을 케어할 수도 있는지라..  섣불리 판단을 하지 못하는 딜레마 상황으로 인도되는 것을 나름 즐기기도 한다.

편린..
편린 아닌 편린..
편린이기에 편린..

소설 읽기의 흐름에 브레이크 걸리는 느낌이 좋다. 작은 조각 하나 때문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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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진성 :: 2017/11/29 00:09

나는 단편소설 읽기를 즐긴다
장편소설은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부담감이 있고 이야기 회전율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있어서 가급적이면 단편소설을 선호하게 된다.

그렇게 단편소설을 즐기다 보면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상황 속 인간 군상들의 디테일한 삶의 호흡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다가오는 매력에 빠지게 되고 그런 생생한 삶 속 모습에 비춰진 나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읽어내게 된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고
내가 경험하진 못했지만 나라도 그 상황에선 그랬을 것 같은 수많은 케이스들..

그건 어떤 유형의 삶을 간접적으로 살아보게 되는 가상 체험의 장
그 체험을 통해 내가 느껴낸 만큼 난 배운 것이고 성장하고 달라지는 것

플롯을 보면서
캐릭터를 이해하면서
행동에 인상받으면서
단편소설 속 서사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시간을 감각하고 공간에 반응하면서 인간에 영향받게 된다.

소설 속 다양한 삶의 광경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
허구가 이렇게도 나에게 영향을 준다면
그건 허구라고 칭하기엔 너무도 사실적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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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 :: 2017/09/27 00:07

소설을 읽다 보면
기가 막힌 묘사를 목도할 때가 있다.

정말 생생하다 못해
내가 소설 속에 들어가서 소설 속 인물의 생각과 행동을 따르는 삶을 산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의 묘사

소설 속 인물이 여행을 가는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된 문장들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여행은 무엇일까?"

실제 여행을 간 것보다도 더 생생한 감흥을 느꼈다면
실제로 경험하는 여행과, 소설 속 여행은 어떤 차이를 지니는 걸까?

실재와 환상

현실과 가상

그 사이엔 뭐가 존재하는가..

엄청난 묘사를 접할 땐
VR도 이런 VR이 없겠구나란..

결국 VR도 묘사를 하고 있는 걸텐데..
VR보다 더 강렬한 묘사를 소설이 하고 있다면

VR과 소설 사이엔 어떤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걸까

경계는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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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 2017/06/28 00:08

하루 한 장 리스트의 힘
가오위안 지음, 최정숙 옮김/비즈니스북스

한 장의 리스트가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

보유한 화력을 핵심적인 시공간에 집중시킬 때
화력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니까.

아무리 작은 에너지도 초점을 강력하게 한 곳에 집중시키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에너지로 변모하니까.

한 장의 리스트는
주력 전투를 정의하고 그것에 화력을 총투입시키는 메커니즘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리스트 메커니즘이 몸에 붙어오르면
그 다음엔 리스트를 채우는 역량이 증가하게 된다.

리스트에 적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힘이 실린다.
마치 소설가의 문장 한 줄이 전체 스토리를 머금어내듯 말이다.

소설가가 스토리를 상대로 전쟁을 펼치듯
리스트 작성자도 단어와 문장을 갖고 전쟁터에서 시간과 공간을 부리며 전투를 수행한다.

결국 전략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이유는
허무하게 소모되어 버리는 시간과 공간의 아까움. 그게 전략을 낳았다.

시공간 낭비는 전략의 부모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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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연성과 확률 :: 2017/06/23 00:03

소설은 개연성을 다룬다
전쟁론에서 클라우제비츠는 개연성을 논한다.
손자병법에서 손무는 확률 게임론을 펼친다.
전략론에서 리델하트는 간접접근론의 확률적 우월함을 주장한다.

개연성과 확률을 중심으로
인간, 존재, 관계, 전쟁, 전략, 전술이 움직인다.

기동
공격
방어
기습
기만
집중


허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내가 전쟁론과 손자병법과 전략론을 읽은 이유가
개연성에 대한, 확률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을 주체하기 어려웠음이란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한참 뭔가를 하다보면
왜 그랬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그게 나의 흐름, 내 블로깅의 흐름인가 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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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생각 흐름 :: 2017/04/17 00:07

소설을 읽으면
단지 소설 속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소설과 관련 없는 생각의 흐름도 소설 읽기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흐름이 생겨나는 것이다.
스토리라인 상의 플로우가 그것인데..

소설 속 이야기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내 안에서 어떤 생각 흐름의 소재로 작동하는 느낌이다.
소설 속 개연성이 만들어내는 궤적이 무의식적으로 내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결국 난 본능적으로 소설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자체도 좋지만
소설을 읽음으로 인해 내 안에 형성되는 생각 흐름들.. 
핍진성의 힘..
그게 좋아서 소설을 읽고 있다. 나는 지금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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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탑과 폰 :: 2016/12/26 00:06

맥북을 열고 블로깅을 한다.
맥북 바로 옆에는 폰이 있고
폰 안에는 e북 리더기가 열려 있고
그 안에는 소설이 담겨 있다.

소설을 보면서
느껴진 것들을
블로그 에디터 창 안에 넣는다.

그건
맥북과 폰이 교신하는 것이다
맥북과 폰은 기계인데
두 기계를 사람인 내가 이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두 기계 간 연결고리
나는 브릿징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
누가 이용자이고 누가 도구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충분히 도구일 수 있는 듯 하다.

맥북의 목적과
폰의 목적이 있는데
그 두 기계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내가 움직이는 듯 해서.
그럼 내가 수단인데. ㅋㅋ

인간과 기계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일까
누가 목적을 잡고 있고 누가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머 여튼..
난 소설을 읽고 있고
소설에서 생성되는 감흥을 그냥 흘려버리자 않고
블로그에 옮겨 적고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맥북과 폰과 나의 타이핑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뭐 그렇다는 거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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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것과 남아있는 것 :: 2016/12/16 00:06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어나가면
읽은 분량과 읽지 않은 분량 간의 경계선이 계속 이동하게 된다.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
그 둘 간의 경계

그 경계선에서 두 영역 간의 관계가 발생한다.

내가 읽은 내용과
내가 읽지 않은 내용이
서로 대화를 한다.

내가 설치한 무대 위에서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구도

그건 내가 연출한 연극 무대

그저 소설을 읽어나가면 되는
독특한 연극 연출의 상황

두 주인공은 경계선 상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신들을 인지하고 규정하게 된다.

그런 흐름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
나는 계속 소설읽기를 진척시킨다.

소설 읽기가 중단되면
경계선은 이동을 멈춘다.

하지만 이동이 중단되었다고 해서
대화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대화는 계속 진행된다.

어디서 경계선이 형성된다고 해도 (첫문장이든, 첫장이든, 중간이든, 마지막장이든, 마지막 문장이든(
경계선은 곧 대화다.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경계선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게 된다.

그건 소설에 적혀있는 태생적 스토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세계이다.

그 세계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서인지
나는 오늘도 계속 경계선을 이동시키거나,
중단된 경계선 위에 물끄러미 시선을 고정시킨 채 내가 읽은 영역과 남아 있는 영역 간의 대화를 경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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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이야기 :: 2016/12/12 00:02

소설을 읽는다는 건 잔여 분량을 지워나가는 것이다.

첫 문장을 읽을 때
첫 장을 넘길 때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될 때
이야기의 흐름이 최고조에 이를 때
마지막 장을 앞두고 있을 때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소설을 읽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잔여분량은 재구성된다.

내가 소설 속 이야기를 읽어나갈수록
내가 읽지 않은, 남아 있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재편되고 새롭게 직조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이야기 구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는 작가에 의해 씌어진 것이지만
소설이 독자들의 손에 넘겨지는 순간
그 이야기는 각각의 독자들에 의해 그들만의 흐름으로 구성되고 진행된다.

남아있는 이야기.
남아있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내가 읽는 소설들은
작가가 짜놓은 생성 틀 속에서 모두 각자의 태생적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고
내가 독자로서 수놓는 읽기 틀 속에서 잔여 이야기가 계속 동적으로 생성된다.

내가 의식적으로 주의를 투입해서 읽어낸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이 공존할 때
나의 관심을 충분히 받은 내용도,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용은 모두 각각의 이야기로 생성되고 흘러간다.

다 읽은 소설과 다 읽지 않은 소설. 첫 문장만 읽고 중단한 소설.  마지막 문장만 읽고 더 읽지 않은 소설.
그렇게 소설과 내가 상호작용한 방식 자체가 이야기인 것이고 내가 개입해서 내 의식 속에 명징하게 들어온 내용과 내 의식 주변을 맴돌거나 아예 의식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한 내용들은 모두 나의 개입 양상에 의해 짜여진 새로운 스토리이다.

남아있는 이야기..
그건 내가 소설을 대하는, 읽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재탄생될 수 있는 것이기에
소설을 읽는다는 건 참 매력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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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가 :: 2016/10/14 00:04

회색 코뿔소가 온다 -
미셸 부커 지음, 이주만 옮김/비즈니스북스

불확실성은 예측하지 못했을 때, 준비하지 못했을 때 그 매력을 유지한다.

불확실성은 무기력을 먹고 산다.

예측을 즐기는 자는 정확도가 낮은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을 때 예측하지 않는 무행동을 두려워한다.

예측을 즐기지 못하는 건, 보람이 없어서이다. 예측을 해봐야 자꾸 틀리니까 예측에 대한 열정이 희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지 않고 성공했을 때 열정이 생기는 건 누구나 한다.
진정한 열정은 실패로 인해 식지 않는 것이다.

식지 않는 열정. 대책 없는 무대포가 아니라 고도의 확률적, 과학적 계산에서 우러나온다.

예측을 했을 때 실패할 확률이 99.9%라고 가정할 때,
그렇게 낮은 확률에서도 예측을 즐긴다는 건
예측을 단발성 이벤트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

예측은 한 번의 성공과 실패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예측에 동원된 가설, 도구, 계산 체계.. 그 자체에 미학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측의 KPI는 성공율이 아니다.
예측의 과정 속에서 얼마나 다채로운 스토리텔링이 나올 수 있는가이고
예측의 적중 여부를 리뷰하는 과정 속에서 또 한 번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스토리를 향한 설레임.
그게 예측의 묘미다.

예측은 결국 소설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예측하는 자는, 가설을 쓰는 자이자 소설을 쓰는 자이다. 

소설가. 가설가. 예측가.

소설을 쓸 때, 예측을 할 때 활성화 되는 뇌.
그 뇌. 그 뇌 자체로 기뻐할 수 있는 자.
예측을 멈추지 않게 될 것이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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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껴 읽기 :: 2016/10/07 00:07

단편소설을 즐겨 읽는다.

단편소설을 읽는 건 즐거운데
새로운 단편소설로 진입하는 시점에선 항상 힘겨움을 느낀다.

이미 전에 읽은 단편소설의 여운이 남아 있다 보니
뉴 스토리로 진입할 때는 항상 까다로운 기대치를 갖게 되어서 말이다.

기대치가 높다 보니 10편의 단편소설을 잡게 되면 끝까지 다 읽게 되는 경우가 30%도 안된다.

대개는 첫 페이지에서 멈춤을 결정하게 된다.
첫 페이지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나갈 동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첫 페이지를 넘긴 단편소설에는 왠지 모를 애착을 느끼게 되고
그런 애착이 소설 읽기의 진척률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 재미있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난 새로운 소설을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소설을 중도에 멈춰야 끝까지 읽고 싶은 소설을 만나게 될까?

이런 불안감이 있다 보니
재미있는 단편소설을 빨리 읽으면 안된다는 강박도 생겨난다.

지금도 재미있는 소설 하나를 잡고 있는데
총 40페이지로 구성된 소설을 1주일 넘게 잡고 있다.
하루에 2~3페이지만 읽는 것이다. 야금야금.

이렇게 해야 이 소설의 재미를 하루라도 더 향유할 수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나로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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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희미하게 :: 2016/07/15 00:05

창작과 비평 2016년 여름호에 실린 정미경 소설가의 '새벽까지 희미하게'란 단편소설을 읽었다.  그 소설을 읽으니, 문득 김금희 소설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란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새벽까지 희미하게에 등장하는 '송이'란 사람이 너무 한낮의 연애에 등장하는 '양희'란 사람과 느낌이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그런 연상이 일어나게 된 듯 하다.

두 사람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두 사람 모두 나무와 관련된 장면이 나오고. :)

순탄치 못한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그윽한 눈길을 보낼 줄 아는 그런 사람.

두 소설을 차분하게 읽으면서 소설에서 풍겨 나오는 부드러운 향기에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있어 행운이다. 소설의 화자에 눈에 비친 송이와 양희는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그런 매력을 지녔다. 삶의 피로를 치유할 수 있는 말을 가슴에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새벽까지 희미하게'란 소설을 만나서 넘 좋다.  '너무 한낮의 연애'와 정서적으로 묶일 수 있는 소설이라서 더욱 좋다. 두 소설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면 얼마나 더 좋은 느낌을 받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끽다점평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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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 :: 2016/07/01 00:01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에 관심을 두고 읽기 시작하다가 왠지 결이 맞지 않는 듯 해서 중단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그 단편소설을 쓴 작가가 자신이 쓴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소설집을 낸다.

소설집의 목차를 훑어보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소설은 예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에 중단했던 바로 그 소설.

이미 그 소설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소설집을 주문한다.

소설집이 도착했다.

소설집에 실려 있는 바로 그 소설에 주목한다.
내가 읽지 않기로 결정했던 그 소설.

그 소설을 역시 읽지 않게 된다.

예전과 동일한 상황.

난 읽지도 않는 소설을 동일한 내용으로 2개나 보유하게 된 셈이다.

읽지 않은 책은 미래다.  아직 오지 않은 무엇.

읽지 않은 단편소설을 동일한 내용으로 2개나 보유한다는 것은
2가지 겹의 미래를 확보했다는 의미다.

그 미래는 영원히 미래로 남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읽기로 실현될 수 도 있다.

실현되든
미래로 남든

2개의 트윈 소설은
나에게 찾아온 미래 시간.

읽지 않은 책을 또 사면서 난 미래를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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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 :: 2016/06/29 00:09

문학 계간지에 실린 단편소설에 관심을 두고 읽기 시작하다가 왠지 결이 맞지 않는 듯 해서 중단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그 단편소설을 쓴 작가가 자신이 쓴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소설집을 낸다.

소설집의 목차를 훑어보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소설은 예전에 읽기 시작했다가 초반에 중단했던 바로 그 소설.

이미 그 소설은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소설집을 주문한다.

소설집이 도착했다.

소설집에 실려 있는 바로 그 소설에 주목한다.
내가 읽지 않기로 결정했던 그 소설.

그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계간지에 실려 있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예사롭지 않은 결.

소설 읽기의 진척이 예전보다 수월하다.

예전보다 잘 읽힌다.

이유는
계간지에 실렸던 그 소설과
지금 소설집에 실려 있는 이 소설이
다른 소설이기 때문이다.

해당 소설이 실려 있는 맥락이 달라졌고
소설을 읽는 나 자신이 그 사이에 변화했다.

같은 소설도 시공인(시간,공간,인간)을 달리해서 다시 접근하면

다른 소설이 된다. :)

같은 책은 다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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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자 :: 2016/05/13 00:03

입자가 만물을 구성한다면
입자는 물질이기만 한 것일까

생각은 입자가 아닌지
생각이 입자라면, 형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인지

형태를 물질적으로만 규정하지 않는다면
나의 생각은 어떤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나의 생각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나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의 생각 흐름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내 몸의 흐름이 또 하나의 소설이라면
그 두 소설을 연작소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작가적 관점은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그렇다면
내 생각의 건강과
내 몸의 건강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내 마음의 병과
내 몸의 질환 사이엔 어떤 긴장이 존재하는지

나를 구성하는 형태적, 비형태적 입자들을
모두 망라하고 포괄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나의 의식은 어디까지로 규정될 수 있는지
내 의식이 흘러갈 때 내 몸은 어떻게 공명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내 안에서 생성될 때
내 안에선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건지

이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이것들은 모두 답변되기 어려운 미지의 비밀과도 같은 신비함으로
오늘 이 순간에도
내일 어떤 순간에도
과거의 어떤 시점에도
우아하게 스며든 채
그렇게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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