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에 해당되는 글 15건

고정관념과 과거 :: 2017/10/06 00:06

지성만이 무기다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비즈니스북스

고정관념과 과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거 자체가 고여있는 물은 아니다.
과거도 현재, 미래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역동하는 장이다.

고정관념과 과거가 연결될 때 과거는 올드해진다.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는 과거가 아니라
유동관념으로 바라보는 과거는 현재보다 더 트렌디하고 핫하다.

생각은 고정관념과 과거를 분리한다.
과거로부터 분리된 고정관념
고정관념으로부터 격리된 과거
둘 다 기회를 얻는다.

생각한다는 것
과거를 진정 과거로 포지셔닝시키고
고정관념의 고정 요소로부터 역동의 진입점을 확보하는..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우는데 있어서
독서의 힘은 매우 크다.

정말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책값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비싼 상품들이 존재하는, 자본의 세상 속에서
책의 가격은 어떨 때는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저렴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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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 2017/07/14 00:04

만물을 음과 양으로 바라보는 것
심플하고 깊게 바라보는 방식이다

음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그런 천편일률적인 음이 아니고
양이 진부하고 딱딱한 사고 기반의 양이 아니라는 전제만 있다면

음과 양은
무한한 DEPTH와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을 머금고 있는
초강력 프레임일 것이다

프레임은 단순하고 깊은 게 좋다.

단순하니까 깊어질 수 있고
깊어지니까 단순하게 귀결될 수 있는 것.

강력한 프레임의 특징 중 하나.
프레임 자체가 굳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유기체.
프레임이란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 약점마저 지워버리는 유연함.
그런 프레임이 좋은 프레임이다.

프레임을 처음에 사용할 때의 신선한 마인드 플로우가
1주일 후에도, 1개월 후에도, 1년 후에도..  시간이 아무리 흘러가도 여전할 수 있다면
그게 진정한 프레임이다.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진부해지고 박제가 되어가는 프레임은
감옥과 다르지 않은 함정에 불과하다.

음양의 프레임
아무리 봐도 좋은 프레임이다
프레임 자체가 스스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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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 :: 2016/09/16 00:06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
선이 되면 흐름이 생긴다.
흐름은 리듬을 낳는다.
리듬은 점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점이 연속적으로 진행될 때 생겨나는 시간적 질서.
질서는 구속이다.
선 상을 따라 규정된 흐름과 리듬은 규칙이 되어 소속된 점들을 구속한다.

구속에서 생겨난 리듬.
리듬이 제공하는 운율감은 규율에 복속된 점들의 기여를 통해 탄생된 것.

점들은 구속을 구속이라 느끼지 않을 때 살아있는 것.
점들이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할 때 기존의 리듬감에 균열이 생긴다.

균열은 또 다른 리듬으로의 변주.
한계가 낳은 균열. 구속이 낳은 자유.

이 모든 흐름.
점과 선 사이에서 발생하는 영원한 동적 긴장감.

그 사이를 오가며
나의 생각은 오늘도 프리스타일.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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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맥락 :: 2015/12/04 00:04

밤에 VOD로 영화, 드라마를 자주 본다.

그런데 주로 밤에 보다 보니 보면서 자주 졸게 된다. 

졸다가 깨어서 보다가 다시 졸다가

10분 보다가 1분 졸다가 20분 보다가 3분 졸다가
10분 졸다가 2분 보다가 20분 졸다가 1분 보다가

졸음과 깨어있음의 다양한 조합으로 VOD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내용을 온전히 따라가지 못하고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내용을 다 따라가지 못하고, 맥락을 놓치고, 내 기억 속에서 스토리라인이 군데군데 끊어져 있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한 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그 동안 너무 밀집된 스토리라인의 흐름 속에서 내가 영화,드라마를 봤던 건 아닌지.
너무 밀도 높은 맥락 만을 편하게 여기고, 스토리라인이 아주 희미하게 이어지거나 많은 지점에서 단절된 채 자유로운 플로우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을 왜 어색하게 생각해 왔던건지.

영화/드라마로부터 나를 향해 일방적으로 주입되어 들어오는 스토리라인을 무방비적,수동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꽉 짜여진 이야기의 구조나 흐름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이야기의 구성 요소를 선별적으로 내가 수용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시퀀스로 재조합될 것이다.

꽉 짜여진 스토리라인을 주로 접하다가
듬성듬성 성긴 스토리라인을 접하게 되니

스토리를 소비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난 느낌이 들고
스토리를 대하는 태도는 정말 다채로워질 수 있겠다란 배움을 얻은 듯 하다.

앞으로도 밤에 VOD를 즐기면서 계속 졸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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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 알기 :: 2014/09/24 00:04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모순적 표현이지만
대개 모순 속에 통찰이 스며들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만큼 나를 알아간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것의 합이다.


다양한 질문을 써내려 가면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
다양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나가면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

특히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나는 본질적인 레벨에서 앎과 모름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진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간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답을 해보면 내가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을 해왔고 그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통찰을 축적해 왔는지 삶에 대한 나의 태도에 어떤 문제와 한계가 존재하는지, 그 문제 속에 어떤 기회가 있고 한계 속에 어떤 확장의 돌파구가 제시되어 있는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경우, 본질과 나 사이의 관계가 명징해지고 관계 속에 놓여진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만큼 아는 것을 모르게 된다.
아는 것을 모르게 되는 만큼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앎과 모름.
결국 그것이 하나임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
그게 앎모름의 세상인 듯 하다.

원래 앎과 모름은 하나였다. 알고도 모르는 것이고 모르고도 아는 것.
그게 정 반대라고 생각하고 둘 사이에 거대한 경계선을 획정하는 것.
그런 이분법적 세계관으로 매사를 대하면서 더욱 본질로부터 멀어지기만 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덧없어서 나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아는 것을 모르고자 하는 원형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강약, 알고리즘
생성과 소멸
멍청한 이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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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함정 :: 2014/01/24 00:04

"우주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란 질문.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낸 도구인 '시간'을 전제로 한 질문이 아닐까?
시간은 도구일 뿐 그게 도대체 뭔지에 대한 이해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의 시초를 논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린 '시간'을 넘 당연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편의성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뭔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치는 것은 완전 다른 얘기다. 시간을 도구 관점에서 야무지게 활용하는 것은 무난하겠으나, 시간에 대한 철학/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을 전제로 뭔가 거대한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쌓을 우려가 충분하다.

'시간'
일상 속에서 너무도 쉽게 쓰여지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매우 요상한 도구이자 개념이다. 
시간은 거대한 함정을 곳곳에 숨겨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시간에서 도구적 기능 이외의 거품을 말끔히 제거하고 시간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럴 경우, 시간에게 우주의 시초를 기술하는 개념적 기반이 될 자격이 여전히 존재할까?  '시간'의 정체가 불투명할 때, 우주의 시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 자체가 사고에서 배제될 때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시초를 찾는 탐구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아닐지.

시작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순간,
만물의 근원이나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를 모델로 규명하는 지난했던 과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모델링은 마치 양파껍질 까기와도 같다. 뭔가를 찾아내면 또 다른 뭔가가 나타나고 또 다른 뭔가를 규정하려 들면 다른 뭔가가 튀어 나온다. 그런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도출한다는 건 참 난해하다. 근원에 근접하기 위해선 접근력이 뛰어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적 방향성을 도입하던가.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  존재와 이유가 하나인데 그것을 분리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주와 시초를 분리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나눠서 질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얘기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와 이유를 분리해서 둘 다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놓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화시켜 나가는 모습.  분리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통해 질문의 경로를 재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 대신
"우리가 임의로 분리해 놓은 개념들은 어떻게 합쳐져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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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십란을 대하는 태도 :: 2013/08/14 00:04

타인의 이야기?
뉴스 가십란엔 수시로 황당한 사건,사고들이 실린다. 그것을 보면서 마치 남의 일인 양 그것을 비웃고, 씹는 행위는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되고 있다. 그런데 가십란에 올라오는 사건/사고들이 나와 완전 무관한 남의 일이기만 한 것일까? 과연 그럴까?  인간이 아무리 뛰고 날아봐야 거기서 거긴데 말이다. 그것과 나와의 공통점을 찾고 그걸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게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것.
남의 일이라 여기고 그것을 나로부터 분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바로 나의 속성 중의 하나가 발현된 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건/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내 안에 그것의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결국 타인의 일이라 여겨질 수 있는 것 속에 나와 같은 뭔가가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것, 외면하지 않는 것.

저마다 다르면서도 결국 모두가 같을 수 밖에 없는 포괄적 동질성.
인간은 각기 자신 만의 DNA 구조를 갖고 태어나 자신 만의 환경 속에서 자신 만의 삶의 경로를 걸어간다. 모두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 봐야 결국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저마다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라고 남의 일처럼 거리를 두고 언급하지만 실은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고 나는 그것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모두가 같은 삶의 질곡 속에서 거대한 흐름의 형태로 휩쓸려 가고 있다는 것.

내가 그것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존재로 작동하려면
존재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인정하기 어려운 그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존재는 작동하기 시작한다.

인간답지 않은 사건,사고를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결국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라는 걸 애써 외면하고 망각하지 않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그걸 인생 막바지에 가서 인정하려 하니까 인생이 추해지는 거다. 그걸 지금 당장 인정하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객관의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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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분리한다는 것 :: 2013/05/24 00:04

나는 블로깅을 하면서 buckshot이란 닉네임을 쓰고 있다. 나의 본명과 다른 별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벅샷으로 블로깅을 하는 기분은 나름 유쾌하다. 벅샷은 나와 사뭇 다른 포지셔닝을 취하면서 나와 살짝 분리된 또 다른 나로서 살아가게 되는 셈이다.  

내 자신이 분리된 느낌은 사뭇 묘하다.

나와 벅샷은 같은 듯 다르며, 다른 듯 같은 사이이다. 나는 쩐신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찌질한 소시민의 삶을 몸소 살아간다. 부족함이 차고 모자람이 넘치는 존재이다. 반면 벅샷은 현실 속 제약으로 허덕이는 나와는 달리 나름 고고한(?) 사유의 세계 속에서 이상적인 듯한 의견을 블로그에 올리며 현실 속의 나를 끊임없이 계몽한다. 현실 속 나는 벅샷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워 하기도 하고 때론 재수없는 놈이라 여기기도 한다. 벅샷은 현실 속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때론 이해해 주기도 한다. 나와 벅샷은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자극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한다. 나는 멘토가 필요 없다. 벅샷이 나의 멘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벅샷은 나를 멘티 삼아 여러 가지 인생의 팁을 나에게 알려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멘티인 나로부터 뭔가를 배우기도 한다. 고고한 생각만 일삼는 재수 없는 벅샷에게 결핍되기 쉬운 현실 감각을 내가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벅샷에게 배우고 벅샷은 나로부터 배운다. 나와 벅샷은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와 벅샷 사이엔 일종의 막이 형성되어 있다. 처음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막이 어색하고 촌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으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갔다. 막은 나와 벅샷 사이의 긴장이기도 했고 나와 벅샷 사이의 교감을 대변하기도 했으며 나와 벅샷을 분리시키는 기반이자 나와 벅샷을 하나이게 하는 가교이기도 했다. 나와 벅샷 사이에 존재하는 막을 수시로 투과하기도 하고 막에 가로막혀 옴짝달싹 못하기도 하는데, 변화무쌍한 막의 형상은 나를 항상 설레게 하고 나는 그 막이 일종의 우주가 되어 계속 팽창하고 지속적으로 수축함을 느낀다. 나는 벅샷 속으로 침투하고 벅샷은 내 속으로 틈입한다.

이 모든 현상은 분리에서 시작되었다. 나로부터 벅샷이 탄생하는 순간 나는 두 개의 자아로 분리되었고 분리된 두 개의 자아는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교차되는 지점이 형성되었고 교차가 잦아지면서 두 개의 자아는 뫼비우스의 띠를 형성했다. 나를 보기 위해선 분리는 필연적이다. 분리하지 않으면 나는 그저 나일 뿐이고 응시하는 주체도 응시 당하는 객체도 존재하기 어렵다. 나와 벅샷은 서로를 응시한다. 나에게 투영된 벅샷, 벅샷에게 투영된 나, 투영에 투영을 거듭하는 나와 벅샷의 스토리는 지금 이 순간도 자가증식을 거듭한다. 이러한 '나-벅샷'의 관계 형성을 가능케 한 블로깅이 내겐 그저 놀랍기만 하다. ^^



PS. 관련 포스트
분류, 막..
막, 도구, 의도, 양자
경계
세포와 세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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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40 | DEL

    This post %title% is priceless. When can I find out mor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46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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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5/24 00:45 | PERMALINK | EDIT/DEL | REPLY

    alter ego라고 하죠. 슈퍼맨과 클락 켄트, 에미넴의 슬림 셰이디 같은... 이게 현대 대중문화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세계관인데 그 시초는 기독교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어찌 보면 문화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 또 인간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면서 누구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삼위일체와 같은 자기만의 개성 있는 자아 체계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buckshot님이 (이름 모를) '그분'에게는 일개 블로거를 넘어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

    • BlogIcon buckshot | 2013/05/24 09:21 | PERMALINK | EDIT/DEL

      누구나 나만의 개성을 담은 자아 체계를 구성한다.. 넘 매력적인 상이 그려지네요. 주말을 앞두고 아주 큰 선물을 받은 느낌입니다. 보내주시는 댓글이 얼마나 큰 영감과 자극을 주시는지 모릅니다. 부족한 포스팅을 언제나 통찰력 있는 댓글로 덮어주고 계십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 Sonar | 2013/05/25 23:1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감명깊네요 Lil wayne - Mirror 한번 들어보세요 이번 포스트내용을 위한 곡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26 08:44 | PERMALINK | EDIT/DEL

      노래 선물 넘 감사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데 참 좋으네요. ^^

  • Wendy | 2013/05/30 09: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분리된 두 개의 자아로 살아가고 계시는 그 흥미진진하고 멋진 삶과 스토리를 블로깅으로 공유해주시니 더할나위없이 행복합니다! 서로를 응시하는 두 개의 자아. 정말 부럽습니다. ^^ 두 개의 자아 간의 역동과 상호작용을 언제나 이 곳에서 오랜동안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30 21:11 | PERMALINK | EDIT/DEL

      부끄럽습니다. 그저 소소한 분리이고 일상의 응시입니다. 작아도 소중한 것이긴 하구요. 항상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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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의 렌즈 :: 2013/05/08 00:08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나를 타인 바라보듯 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나에 대해 주관이라는 강한 중력을 느낄 수 밖에 없고 그런 주관적 프레임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곳곳에 배치시켜 놓기 마련이다. 나는 나에 대해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사고와 행동을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나라는 생각 자체에 주관이 스며들어 객관적인 뷰로 나를 바라보기를 방해하는 상황.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데, 어렵다고 나를 객관의 렌즈로 바라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나는 주관의 늪에 빠져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은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이상의 뭔가가 되기는 힘들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만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나의 공통 분모에 대해 비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결코 자신과 관련 없는 것에 대해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내가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그 사람에 투영된 나의 모습에 대한 판단인 경우가 많다. '나'라는 존재, 가치관,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렌즈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결국 세상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에 반응하는 것이다.

'나' 렌즈가 나의 감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상황.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렌즈를 다룰 수 있는 의도와 결단에서 비롯된다.

렌즈 자체가 나라면 그 렌즈를 나에게로 향하게 해보자. '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인정하는 순간, 본격적인 바라봄을 전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상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나' 렌즈를 통해 바라보자.  세상을 바라볼 때 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내 자신이 보일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면 자꾸 착각을 하게 된다.  분명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자꾸 그것을 타인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미워하고 판단하고 나와 별개인 대상이라 생각하고 좋아하고 집착하는 착각 놀이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하염없이 세상을 바라보며 수시로 착각하는 어리버리함에서 빠져 나와 이젠 나 자신을 직시해 보자.

'나' 렌즈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나와의 거리를 형성하게 된다. 거리를 형성한다는 건 나에 대해 봐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됨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라보며 타자에 대한 생각과 판단만 일삼는 자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욱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시야는 더욱 흐릿해져 간다. 매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외모를 살피는 게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다. ^^

나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형성할 수 있는 힘.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리이다 . 나와 나 사이의 거리에서 발생하는 통찰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거리를 생성할 때 나는
나를 설명하는 스펙스런 것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즉, 나와 나의 스펙을 동일시하는 유아적 수준에서 벗어나 스펙과 분리된 나를 응시하게 되는 것이다. 스펙에서 나를 분리할 때 나에게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 때의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지, 이 무거운 진실 속에서 가벼워진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스펙으로 '나'를 무겁게 하느라 평생 애를 쓰며 살아가는 스펙 로봇과도 같은 삶의 헛된 무게. 스펙을 벨크로(찍찍이) 정도로 여기자. 언제든 나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 나를 둘러싼 스펙을 모두 제거한 나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렌즈가 어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렌즈가 나를 향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렌즈의 원칙, 고통의 원칙 -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 (Winning With People)
거리,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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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49 | DEL

    These all YouTube gaming movies Read & Lead - 객관의 렌즈 are in fact in pleasant quality, I watched out all these along by my friends.

  • BlogIcon Crete | 2013/05/08 05:5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늘도 정말 좋은 말씀을 주셨네요. 가끔씩 목사님들이 설교중에 이슬람교나 한국출신(?) 이단 세력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중요한 신앙적 문제들도 많은데 왜 저런 문제에 저런 반응을 보일까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내용중에 "사람은 결코 자신과 관련 없는 것에 대해 감정을 일으키지 못한다" 라는 말씀이 딱 답인 듯 합니다. 현대 기독교계가 외부에 드러내는 적대감이나 비이성적 반응들은 사실 뒤집어 보면 바로 자신들의 문제점인데 말이죠.

    오늘도 좋은 말씀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08 09:34 | PERMALINK | EDIT/DEL

      결국 항상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데 자꾸 그게 아니라고 착각을 해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를 보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아서 그런가봅니다. Crete님 댓글에 힘입어서 오늘도 저는 제 자신을 보면서 소중한 하루 아침을 시작해 봅니다. ^^

  • 맹그미 | 2013/05/08 10:2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객관의 렌즈를 통한 제자신을 좀더 객관화 할 필요가 있겠네요. 근데 너무 객관화하면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꺼 같은데... 그것에 대한 좋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ㅎㅎ 다시 한번 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5/08 20:46 | PERMALINK | EDIT/DEL

      부끄러워지는 그 단계를 거치는 게 자아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워지는 것 보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게 더 안 좋다고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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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과 소멸 :: 2012/07/06 00:06

생성과 소멸은 원래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생성과 소멸은 다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서로 반대되는 개념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뭔가를 생성한다는 것은 뭔가를 소멸시키는 것과 동일한 행위이다. 뭔가가 생성될 때는 반드시 뭔가가 소멸되게 되어 있다. 인간은 살아가지만 항상 스스로 죽음을 암시하고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살아가지만 죽어가는 것이다.

생성되는 모든 것은 소멸을 암시한 채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소멸되는 모든 것은 생성의 기억을 어딘가에 묻고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뭔가를 수면 위로 올리고 뭔가를 수면 아래로 내리는 행위이다. 뭔가 올라온 것은 생성된 것처럼 보이고 뭔가 내려지는 것은 소멸되는 듯이 인식 너머로 사라진다. 조각을 한다는 것은 뭔가를 버리고 뭔가를 취하면서 형상을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조각품이 생성된 것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버려진 조각물들이 소멸된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조각품이 소멸된 것이고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버려진 조각물들이 생성된 것인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선 얼마든지 정반대의 구도가 나올 수 있다. 내가 글을 썼을 때 겉으로 보여지는 씌어진 문장들이 생성물인지 아니면 씌어지지 않고 머리 속을 맴돌다 사라지거나 폐기 처분된 개념들이 생성물인지 굳이 판단을 하고자 하면 아리송하다.

도대체 무엇이 생성되고 무엇이 소멸되는 것일까? 

생성과 소멸을 개념적으로 분리하고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획정하는 한, 생성과 소멸에 대한 깊은 이해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생성에 내재한 소멸, 소멸에 내재한 생성을 들여다 보고 생성과 소멸이 만들어 가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생성-소멸 하나됨의 에너지를 느끼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방안이 아닐까 싶다.

어느 순간 생성과 소멸은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서로 일치하는 개념인 것으로 이해되어 가고 있다.

생성과 소멸은 원래 하나였고 지금 이 순간도 역시 그러하다. ^^





PS. 관련 포스트
멍청한 이분법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거잠, 알고리즘
망각, 알고리즘
기억,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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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정보의 동적평형 :: 2011/06/10 00:00

경계는 생성되고 허물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기만 하고 허물지 않으면 경계는 썩어간다. 끊임없는 동적평형의 중심에 경계는 위치해야만 한다.

Bookmark는 덧없는 저장이다. 매번 "다음에 봐야지"하면서 북막해 두지만 나중에 그걸 다시 꺼내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북막의 진정한 의미는 "저장해서 나중에 보기"가 아니라 "접속한 정보의 인덱싱" 정도인 것 같다.
Bookmark는 stock과 flow 간 절묘한 중간 지점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부질 없는 저장에 대한 욕망과 다이내믹한 접속에 대한 욕망의 중간 지점에 북막은 위치한다.

Bookmark 기능을 흐르는(flow) 정보를 저장(stock)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저장(stock)된 정보를 흐르게(flow) 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흐르는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보다, 저장된 정보를 흐르게 하는 행위가 훨씬 순리적이다. 정보의 속성은 'stock'보단 'flow'에 훨씬 더 가깝다.

경쟁적 성격의 재화는 '저장'의 의미가 분명 있다. 하지만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이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정보의 속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보는 flow의 속성을 갖고 있다. 정보를 억지로 저장(stock)하려고 하면 정보는 가치를 잃어간다.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단순 복제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 정보는 흐른다. 사람도 일종의 정보다. 사람이란 이름의 정보는 끊임없이 시공간 좌표 상을 흘러간다. 정보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모든 시공간은 맥락을 갖고 있다. 정보는 시공간을 흐르면서 맥락과 접속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른다는 것은 다른 정보와 접속/연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접속은 경계와 경계가 만나서 새로운 코어가 생성됨을 의미한다.

내가 어떤 정보에 접속한다는 건, 내가 그 정보를 관찰/해석하고 그 정보는 나에 의해 관찰/해석당하는 것이다. 관찰/해석하든, 관찰/해석당하든, 접속은 양 쪽 모두를 변이시킨다. 접속/연결은 단절된 것들의 만남이 아니다. 애초부터 나눠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리' 환상을 깨는 작업이다. '분리'는 인간 인식/역량의 한계가 낳은 엄연한 착시효과다.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정보 배설
만물은 고갈한다. ^^
무엇이 희소한가?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유동, 알고리즘
[지식] Stock vs 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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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1/06/11 15: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보와 존재(Information And Being)는 앞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둘 다 동일성(identity)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이고, 그 심연에는 언제나 '해석하는 주체'가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6일자 포스팅과 오묘하게 통하는 이번 내용도 어김없이 신기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1/06/11 17:59 | PERMALINK | EDIT/DEL

      예, 정보와 존재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다양한 생각을 해보고 싶습니다.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군요. 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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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알고리즘 :: 2010/03/01 00:01



'대상/문제와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해야 객관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취지로 위의 글을 트위터에 올렸었는데,  변지석님의 아래 포스트를 보고 다시 한 번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심리학의 Construal Level Theory에 의하면 우리가 문제의 situation과 context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즉 psychologically distant하면 좀더 creative한 solution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문제가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문제라고 생각하든가,  우리와는 많이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문제를 보려고 하든가,  지금과는 아주 다른 시점 (미래나 과거)에서 문제를 보려고 하면 문제에 대해 좀더 creative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문제에서 psychologically 멀리 떨어질수록 문제를 자세히 보지 않고 좀더 abstract하게  보기 때문이다.  문제를 Abstract하게 볼수록 문제와 관계가 별로 없는 개념들과 연결시켜서 생각할 가능성이 커진다.


문제와 너무 밀착되어 문제를 감싸는 상황과 맥락 속에 갇혀 버릴 때, 사고의 정체 현상이 발생한다. 문제와 너무 긴밀하게 엮이거나 문제 속에 함몰되지 않고 문제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창의적 문제 해결의 가능성이 올라갈 것이다.

위장취업자가 직원보다 회사의 구조를 더 잘 볼 수 있는 것에서 한가지 착안이 가능할 것 같다.  위장취업자는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일반 직원과는 다른 view를 갖고 있다.  즉, 회사 속에 함몰되지 않고 회사에서 일을 하는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문제와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문제를 대하는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즉, 문제를 다루는 나 자신의 사고회로를 스스로 점검/튜닝/개선/혁신시켜 나가는 것이다.  거리(distance) 창출력은 자신 밖에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 수 있는 자기 관찰력이다.

'내가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판단하는가' 자체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습관적인 판단을 중지시키고 상상력과 창의력의 엔진을 가동시킬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무한에 가깝던 창의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체감할 수 밖에 없다. 어린아이의 마음과도 같은 창의력을 유지하려면, 나를 관찰하고 나의 마음을 관찰하고 나의 사고 흐름을 관찰하는 노력을 유지해야 한다.  Seeing our seeing을 할 줄 알아야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다.

Seeing our seeing을 한다는 건,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나를 창조한다는 건,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 행동하는 나와 관찰하는 나.
- 연기하는 나와 모니터하는 나.






PS. 관련 포스트
Creativity를 위해서는 문제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라
기획의 기본, 자기 반성 능력
[Mobile Mind] Seeing our Se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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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을 보는 관점

    Tracked from melotopia | 2010/03/01 17:00 | DEL

    * 이 글은 대단히 당연한 소리만을 늘어놓을 것이다. 무지막지하게 뻔한 소리를 나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바꿔서 떠들어 댈 수도 있으니 주의. 관점, 그리고 메타 관점. 언젠가 친구인 C양에게 ..

  • jay | 2010/03/01 05: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위장취업이건.. 비정규직이건.. 아마도 비정규직에 더 가깝겠지만.. 그건 그만큼 정직원, 일반인들과 절대 섞이지 못하기 때문일거예요. 보이지 않는 벽.. 격리된 동선과 정보통제.. 단기계약의 부담에서 오는 냉소.. 자발적/비자발적인 거리두기.. 사실 엄청 스트레스인거고, 퍽퍽하고 비인간적인 거예요.

    그리고 위장취업을 했다면, 자금흐름이나 주요기획의 스탭까지 올라가진 못할거예요. 따라서, 위장취업이건 비정규직이건..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현상만 관찰할뿐.. 좋은 정보나 핵심적인 인사이트는 접하기 힘들듯..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3:15 | PERMALINK | EDIT/DEL

      제가 올린 포스트와는 다른 관점에서 말씀을 해주셨네요. 귀한 댓글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외부와 내부 간의 벽,괴리..

  • BlogIcon ego2sm | 2010/03/01 13:3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바라보는 나'와 '보는 나'
    정말로 그룹에 속해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아웃사이더가 되어 보면 숨겨진 먼지까지 보게 되더라구요.
    (전 고3 교실에서 제일 먼저 알게 되었어요~)
    휴일이라 오랜만에 벅샷님 포스트들 정독하고 가요.
    유니타스 브랜드처럼 거듭나시길!!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3:56 | PERMALINK | EDIT/DEL

      다양한 영역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교대로 해보면서 관찰의 힘을 길러가는 것 같습니다. 상자 안에, 상자 밖에.. 모두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

      PS. '쇼핑에 관한 모든 것' 포스트가 기대되네요. ^^

    • BlogIcon ego2sm | 2010/03/02 15:55 | PERMALINK | EDIT/DEL

      이제보니
      '바라보는 나'와 '보여지는 나'네요^^
      남녀차이를 통해 바라본 쇼핑의 심리학 포스트
      기대해 주세요^_^

    • BlogIcon buckshot | 2010/03/04 20:42 | PERMALINK | EDIT/DEL

      와.. 에고이즘님의 우아한 통찰을 만끽할 수 있는 포스트이겠네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

  • BlogIcon snowall | 2010/03/01 17: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트랙백 걸어둡니다.
    오랜만에 오네요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0/03/01 18:39 | PERMALINK | EDIT/DEL

      snowall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귀한 트랙백 넘 감사해요~ snowall님의 4년 전 글인데, 제겐 4년 후의 글과 같은 무게감을 주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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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에 대한 감각 :: 2007/05/22 00:01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감각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이다.   분리의 감각보다 연결의 감각을 훨씬 많이 가져야 한다.

인간은 권태를 느끼고 불만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만이 낙원에서 추방되었다는 느낌을 갖는다.   - 에리히 프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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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illness)과 안녕(wellness)의 차이 - 스와미 사치다 난다의 통찰력 :: 2007/05/20 00:01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마음과 연결된 존재는 'We'로부터 시작되는 안녕 속에 살고 마음과 연결되지 못한 존재는 'I'로부터 시작되는 병 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칼 융의 말이 다시 한 번 생각난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가늠하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은 그 사람이 무한성과 어떠한 관계를 가졌느냐에 있다."  신형장부도가 의미하는 것처럼 에너지가 몸 속을 자유롭게 흐를 때, 마음이 '안녕'이란 에너지 장속에 존재할 때, 인간은 건강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병은 나(I)로 시작됩니다. 내가 모든 병의 근원임을 나타냅니다.  신의 완전함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에고의 믿음이 병이라는 불완전한 상태를 창조합니다.  반면에, 안녕은 우리(We)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신의 완전함 속에 우리 모두가 이어져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 스와미 사치다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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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통찰력은 사실과 판단의 분리에서 나온다. :: 2007/04/06 00:31



통찰력을 얻기 위해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인문/사회/경제/과학/심리/경영 관련 책들을 읽다 보면 책의 내용을 크게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사실(fact)에 대한 기술이고, 또 하나는 판단(judgement)에 대한 기술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reading을 리뷰해 보면,  책에 적혀 있는 사실과 판단을 의식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실/판단을 한꺼번에 수용했던 적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다양한 정보를 순차적으로 축적하기만 했지 통찰력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의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저자와 대화하는 것은 책의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특정 주제에 대한 사실과 판단을 자기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저자의 판단이 기술된 부분은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보다는 그런 판단이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하고 나의 관점에서의 판단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을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가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 동원한 사실(fact)은 판단과 연결된 내용으로 한정될 가능성이 높으니 언급된 사실 이외에 다른 판단근거는 없는지에 대한 대안적 모색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책읽기를 통해 저자가 기술한 사실/판단을 기계적으로 습득하기 보단 책 내용에 대한 나 스스로의 판단 및 나의 관점에 기반한 내용 재구성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통찰력있는 관점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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