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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하면 측정당하고 지배하면 지배당한다. :: 2008/05/16 00:06



질적 사고방식은
모든 사물이 각기 고유한 본성과
환원 불가능한 본질을 갖고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양적 사고방식은
인간이 물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고
시공간 등을 통한 경험으로 현상을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만약,
시간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하여 flow 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면
질적 사고방식이 현세를 지배하는 사고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시간을 일정하게 분할된 눈금에 의해 파악하고 있다.
눈금 기반의 시간 측정은 표준화와 그에 의한 엄청난 효율증대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눈금은 결코 시간의 본질이 아니다. 


모든 상황에 내재한 문제점을
본질 자체에 입각하여 처리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쉽지도 않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본질적이진 않지만 대략적이나마 동일한 범주로 통일시켜 처리하면
정교한 상호작용, 본질적인 특성은 무시되더라도
높은 효율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환원주의의 분에 넘친(?) 성공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한 딜레마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게 쪼개서 컨트롤 가능한 단위로 구성하면 멋지게 보이고
뭔가 문제를 신속/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너무 중요한 것들을 놓치면서
결국 문제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인간은 뭔가를 측정하면 컨트롤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뭔가를 측정하고 지배한다고 느끼는 순간

도리어
인간이 그 뭔가에 의해 측정 당하고 지배당하게 되는 것 같다.


(by buckshot ^^)



블로깅을 하면서
측정을 통해 지배를 당하게 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트래픽에 대한 집착이다.

첨엔 내가 쓰는 글이 얼마만큼의 트래픽을 창출하는지
가벼운 관심을 갖고 블로그 히트수를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블로그 히트수에 목을 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트래픽을 위해
블로그 포스팅의 유형까지
커스터마이징하는 유연함까지 보이게 된다.

처음에 블로깅을 시작하면서 생각해 두었던
태그 목록들이 트래픽 몰이에 적합한 인기 검색어로
가득 대체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내가 블로그 트래픽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 트래픽이 나를 측정하는 것이다.
블로그 트래픽이 내가 얼마나 충실히 히트수를 올리는 지를
측정하고 컨트롤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 주객전도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어느 순간 난 내 블로그에서 히트수 카운터를 지워버렸다... 
측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


공즉시색 색즉시공

트래픽을 측정하고
포스팅 수를 측정하고
추천수를 측정하고
댓글 개수를 측정하고
RSS 구독자수를 측정하고

그리고 나서..

트래픽을 지우고
포스팅 수를 의식하지 않고
추천수에 대한 관심을 끄고
댓글 개수에 유념하지 않고
RSS 구독자수에 초연해지고

그리고 나서..

다시 또 다른 측정지표를 도입하고
측정하고
측정하고
또 측정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그것들을
지우고
잊고
의식하지 않고
버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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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hyleidos | 2008/05/16 00: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08/05/16 01:12 | PERMALINK | EDIT/DEL

      hyleidos님, 오랜만입니다~
      작년에 쓴 색즉시공 공즉시색 포스팅에 주신 통찰력 댓글을 잊지 못해 금번 포스팅에 링크를 걸었는데.. 댓글을 주시니 넘 반갑네염~

      '댓글 개수에 유념하지 않고'란 말을 적어놓고
      hyleidos님의 댓글에 신경쓰는 제 자신..
      결국 색즉시공 공즉시색인가 봅니다~

  • BlogIcon gostopgo90 | 2008/05/16 07:5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블로깅할 때 댓글수나 방문자수의 증가를 원할 때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내가 바라는 것에 강하게 집착하다보면 buckshot님 말씀처럼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 공감가는 글이네요.

    • BlogIcon buckshot | 2008/05/17 00:59 | PERMALINK | EDIT/DEL

      측정→집착→역측정.
      지배→집착→역지배..
      소유→집착→역소유...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

  • BlogIcon 하민빠 | 2008/05/16 12: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측정할 수 없으면, 평가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 교수의 말이었던가요? 평가를 통한 통제와 지배가 만연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은 "돈"을 움직이는 기업의 중추를 이루는 사람들이 MBA 출신의 숫자쟁이라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블로깅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 지으셨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셈코스토리"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

  • BlogIcon 데굴대굴 | 2008/05/16 15: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는.... 제 블로그에 설치해둔 로그 분석을.....
    들어가본지 너무 오래된거 같습니다. -_-a 신경을 안쓰거든요....
    (다만 인식은 하고 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5/17 01:05 | PERMALINK | EDIT/DEL

      데굴대굴님, 넘 쿨하십니다. 전 아직 그렇게 쿨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 BlogIcon mepay | 2008/05/16 22: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측정이 가능해야 관리가 가능하다."
    제가 따르는 경영학적 용어입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좋은 포스팅입니다.
    고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5/17 01:06 | PERMALINK | EDIT/DEL

      저도 사실 '측정이 가능해야 관리가 가능하다'란 말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그 명제보다 한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솔솔 생깁니다. ^^

  • BlogIcon 모노로리 | 2008/05/18 18: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와우.. 좋은 글입니다 아주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트랙픽에 대한 관심을 좀 줄여야 겠어요 ^^;

    • BlogIcon buckshot | 2008/05/18 21:21 | PERMALINK | EDIT/DEL

      모노로리님,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래픽 카운터 떼고 나니까 확실히 신경이 덜 가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SHYboy | 2008/05/19 10:0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정도까지 깊이있는 사고능력과 진지함을 가지신 분을 인터넷에서 만날수 있다니, 놀랍군요!

  • BlogIcon 쉐아르 | 2008/05/20 0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모모'의 한문장이 기억납니다. "진정한 시간은 시계로 잴 수 없다." 결국 본질적인 것은 일률적인 척도로 잴 수 없다 생각합니다. 사람이 편의를 위해 측정하는 방법을 만들었음에도, 마음 깊은 곳에는 본질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또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척도를 벗어나려 한다 생각합니다.

    저도 요즘은 트래픽에 대해 관심을 줄였습니다. 매일 히트수를 보기는 하지만, 늘리기 위해 뭔가를 할 생각은 안드네요. 바쁜 것도 원인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마음이 통하는 댓글을 보는 기쁨은 계속 누리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8/05/20 08:42 | PERMALINK | EDIT/DEL

      본질적인 것을 일률적인 척도로 잴 수 없다..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측정은 편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것 같구요. 측정 지상주의보단 본질에 대한 갈망을 더 크게 가져야 하겠네요..

      댓글을 보는 기쁨.. 이건 측정과는 다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댓글을 보는 기쁨은 계속 누리고 싶습니다. ^^

  • BlogIcon 인광인샘 | 2008/05/23 10: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역소유 -> 소유가 될 순 있을까요? 이게 또 긍정적인 의미가 되는 군요.ㅋ

    • BlogIcon buckshot | 2008/05/24 14:59 | PERMALINK | EDIT/DEL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게 진정한 소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 BlogIcon egoing | 2008/09/30 16:2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배우고 익히고 잊어먹어라.
    그리고 새롭게 배우고 익히고 잊어버려라.
    잊어버리는 것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니
    잊어버리는 것을 소흘히 하지말라.

    buckshot님의 글을보니
    고등학교 논술 책에 배우로 익히고 잊어버리라는 문구가 갑자기 생각나내요.
    위의 문구는 제가 생각나는데로 지껄여(^^) 본 거구요 ㅋ ㅋ

    글 잘 봤습니다.
    트랙백 감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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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즉시공 공즉시색]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 노마디즘 :: 2007/09/22 01:24


色不異空 (색불이공)
空不異色 (공불이색)
色卽是空 (색즉시공)
空卽是色 (공즉시색)


빅뱅이론에 따르면 200억년 전에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팽창을 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는 설을 주장한다.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에서 우주가 생성되었고 계속 팽창을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팽창을 멈추고 수축이 전개되면서 결국 하나의 점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현대물리학의 가설은 반야심경에서 주장하는 :"색(물질)이 공에서 나오고 공은 색에서 나온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컨셉에 상당히 부합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색'은 무엇을 나누거나 단편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이고  무엇을 나누는 것이 인간의 단편적 사고의 한계에서 파생된 행위이니 결국 인간의 시각은 본질을 볼 수는 없는 것이고 '물질의 실재'와 '관찰을 통한 물질의 인식' 간에는 gap이 존재한다는...

양자론은, 전자의 위치는 일정한 궤도를 돌지 않고 언제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전자로 실재한다는 것..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관찰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려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전자라는 물질은 확률적 존재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관찰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관측의 결과가 달라지는 전자의 행태..   관측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마음이 물질에 영향을 준다..  현대물리학과 반야심경은 너무도 닮아 있는 모습이다.

또한 질 들뢰즈가 '천개의 고원'에서 말하고 있는 '리좀'이란 개념도 나름 유사한 컨셉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다.  '리좀'이란, 이런저런 줄기들이 어떤 중심뿌리 없이 분기되고 접속되는 모양을 의미한다.  질 들뢰즈는 펠릭스 카타리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이란 책을 단 2명의 저자에 귀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천 개의 고원'이란 책이 들뢰즈, 가타리라는 두 사람의 저작으로 간주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이 인용한 내용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발언했던 것이고 인용이 아닌 내용도 결국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읽고 듣고 경험한 수많은 저자들의 발언을 대신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천개의 고원'은 그런 수많은 타인들의 발언들이 중첩된 연쇄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혼자 스스로의 생각으로 말하는 경우에도 이미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말을 하는 것이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배치 안에서 나름의 집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대상도 주체도 갖지 않는다는 개념이 나오게 된다.  "책을 하나의 주체에 귀속시키는 순간, 질료의 가공과 그것의 관계가 갖는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는 들뢰즈의 말은 반야심경의 컨셉과 매우 닮아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물질은 그것과 연결된 수많은 다른 물질들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수많은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는 확률적 존재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물질과 접속하고 만나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입'이 성대와 접속하여 소리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말하는 기계'가 되고 식도와 접속하여 영양소의 흐름을 절단,채취하는 경우엔 '먹는 기계'가 되듯이 욕망/의지에 따라 접속하는 항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기계로 작동한다는 것은 양자론의 미시세계나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거시세계 모두 긴밀하게 연결된 물질 네트워크 세계에서 접속과 관계에 의해 다양한 실체로 확률적 생성/변이를 거듭하면서 색즉시공/공즉시색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반야심경, 천개의 고원/노마디즘은 책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플랫폼이란 생각이 든다.  접속할 때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기계가 되게 해주는 책이기 땜에... 

솔직히 반야심경을 계속 읽어도 '공(空)'이 뭔지에 대해선 아직도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다.  하지만 딱히 말로 규정하진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한계투성이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뭔가가 내 마음 속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히 어떤 확률적 분포로 존재하는 것 같다.  ^^


마음 깨달음 그리고 반야심경 - 10점
성법 지음/민족사

천 개의 고원 - 10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새물결

노마디즘 1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노마디즘 2 - 10점
이진경 지음/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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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02:5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네요. ^^
    여기서 말하는 공(空)은 다른 데서도 쓰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크기가 0이고 밀도와 온도는 무한대'인 특이점 상태" 이게 空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09 | PERMALINK | EDIT/DEL

      공(空)의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특이점'상태를 공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앞으로도 계속 공에 대해 생각을 해볼 계획입니다. 한가지 관점이나 양상으로 한정 짓지 않고 다이내믹하게 공을 바라보는 것이 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덧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13:20 | PERMALINK | EDIT/DEL

      제가 많은 책을 읽어본 바는 아니지만 공의 개념에 대해서 다른 책을 통해서 이해하기는 그렇습니다.
      空은 無와 달리 0 또는 무한대의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결국 공이라는 것은 근원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로 인해 생긴 색, 다시 근원으로의 회귀.
      이러한 순환 고리에서 공을 바라본다면 여기서 색과 대조되는 공은 시초가 되는 특이점의 상태로 해석이 됩니다.
      buckshot님이 말씀하신 동양 사상으로의 귀착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제 덧글에서도 말씀드렸다 시피 서양 사상은 그 근원 자체가 색입니다. 단편적 시각에서의 접근이지요.
      그러나 동양 사상은 근원적인 본질적인 부분에서의 접근이기에 결국 동양 사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4:16 | PERMALINK | EDIT/DEL

      예, 空을 무한대의 빈 상태, 근원으로 보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모든 물질이 空이란 근원성을 갖고 여러가지 色의 모습으로 다이내믹한 생성/변이의 흐름을 탄다고 판단합니다. 말씀하신 것 처럼 서양사상은 色에 가깝고 동양사상은 상대적으로 空에 가까운데 서양과 동양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초기엔 서양의 환원주의에 기반한 色 기반의 어프로치가 동양을 압도하고 동양을 서양화시켜 나가지만 色이 차면 자연스럽게 空으로의 이동이 가속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우주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느린 속도로 흘러가지만 미시적인 양자 관점에선 空↔色 순환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습니다. 거시와 미시의 중간에 해당하는 인간세계는 평균적으로는 중간의 속도가 나타나면서 케이스바이케이스로 고속순환과 저속순환이 공존하는 상황이 아닐까 합니다. 풍림화산님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수차례 덧글을 주신 덕분에 제가 제 생각을 발전적으로 다듬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 BlogIcon 풍림화산 | 2007/09/22 21:26 | PERMALINK | EDIT/DEL

      예... 동의합니다. 잘 정리해주셨네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했듯이 어떤 것이 먼저이고 우선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흐름은 동양 사상으로 회귀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서양 사상의 영향을 받은 방법론등이 이제는 다시 그 근원적인 사람에서 찾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저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buckshot님이 잘 정리해주셔서 저도 덧글 잘 읽고 갑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21:48 | PERMALINK | EDIT/DEL

      대충 꾸역꾸역 글 적어서 포스팅 올려놓고 풍림화산님의 통찰력있는 피드백 받아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2 05: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우주는 점과 같은 상태* 여기에서 출발 하고 종착을 하건 순환을 한다면 모든 것이 그 속에 녹아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사고, 영혼이라 부르는 것들 모든 인식 너머의 것들이 그 한 점에 있겠지요.
    공은 즉 색이고, 색은 곧 공한 것이다.
    아무리 나누어 대상을 만들어 보아도 공 할것이고, 그냥 뭉뚱그려 생각해도 마야는 실재하겠지요.

    인간이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그가 그 속에 포함된 존재임을 알면 고통도 조금씩 녹아 들겠지요.

    • BlogIcon buckshot | 2007/09/22 12:18 | PERMALINK | EDIT/DEL

      점에서 출발해서 무한팽창을 하고 다시 점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순환.. 결국 헤라클레이토스가 얘기한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 컨셉과도 맥이 닿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유전하기 때문에 대상을 아무리 기가 막히게 잘 나누어도 모든 것은 결국 설명하기 어려운 '공'일 수 밖에 없고 '공'이라고 생각한 순간 다시 '색'이 발현되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인간의 관찰/사고/표현의 한계를 얼마나 유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에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음이 얼마나 flow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구요. 제가 블로깅을 하는 이유는 블로깅이 다양한 mind들과의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mind fluidity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의미있는 방법론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블로깅한지 얼마 안되어 성과는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progress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mobile mind 제고를 위해 블로깅을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 덧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BlogIcon hyleidos | 2007/09/23 01:21 | PERMALINK | EDIT/DEL

      저도 감사하고 또 반갑습니다.

      문제인지 답인지 모르겠지만, 공과 색이 서로 다르지 않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칩니다.
      우주가 대상이 아님(굳이 설명하자면 포함관계의 상위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이트 헤드가 유물론적 과학적 사고를 비판하며 유기론적 관.... 을 가설하고 이끌어 낸 것도 어찌보면 너무나도 우스운 것으로 보이지만. 대상이 없는 사고의 방식이 너무 어려운, 오로지 대상만이 존재하고 대상만을 사유할 수 있는 세계에서는 그 오랜 시간이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7/09/23 16:32 | PERMALINK | EDIT/DEL

      플라톤이 이데아를 논했을 때부터 서양은 오랜기간 동안 초월성을 꿈꿔 왔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를 통해 시도했던 주체와 객체의 이원화는 결국 서양 사상/문명의 딜레마가 되어왔던 것 같구요. 대상을 분리시키고 철저히 분해하여 지배하고 안다고 생각하는 서양 특유의 사고체계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봅니다. 사실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건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기 편한 툴로써의 의미만 존재하는건데 그 이원화 툴을 진리로 착각하는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그 오류의 늪에서 빨리 벗어나와야겠습니다. 근데 동양은 나름 훌륭한 사상적 토대가 있었고 이를 지금까지 꾸준히 발전시켜왔으면 좋았을텐데 서양 문명이 우월하다고 착각하고 이를 너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 BlogIcon snowall | 2007/09/23 00: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천개의 고원이라는 단어에서 "원"을 "환"으로 읽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