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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기와 시차 :: 2016/10/24 00:04

월간 잡지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나오기 위해선 납기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저자들의 노력이 있었겠구나.
납기를 맞춘다는 것.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를 동반했을 텐데..

저자 관점에서의 납기 뿐만 아니라
독자 관점에서의 납기도 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내가 언제까지 읽어야 하는 걸까.
지금 읽어야 하나?
월간지니까 한 달이 지나가기 전에 읽어야 하나?
1년이 흐른 후에 읽으면 안되는 건가?

독자에게 주어지는 납기.  (독기?  ㅋㅋㅋ)

독자에겐 그런 건 없다.
독자는 책을 대할 때 납기를 정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납기는 존재한다.
계속 새로운 책을 읽게 될 경우, 물리적으로도 디지털 공간적으로도 읽어야 할 때(?)를 놓치면 그 책을 읽을 기회를 확보하는 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책을 샀다가 오랜 기간 그 책을 읽지 못하고 결국 그 책을 중고시장에 내다 팔거나 잃어버리거나 책더미 속에 숨겨진 채 영원히 시선을 받을 기회를 놓치거나 하게 될텐데..

요즘 그런 잡지들이 생긴다.
발간된 후로 시간이 꽤 지난 후, 뒤늦게 읽었는데 느낌이 좋은 그런 상황.
해당 잡지는 납기를 맞춰서 일찌감치 발간이 되었고, 그걸 읽는 나의 시점은 발간일로부터 훌쩍 시간이 지난 지점에 위치하게 되어 책이 나온 날과 책을 읽은 날 간의 시차가 제법 나게 되는..

잡지라서 더욱 납기와 시차에 대한 생각이 선명해진다.

납기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시차는 커진다.
시차가 커질수록 독서로부터 얻게 되는 인상의 색채도 진해지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나도 뭔가에 대해 무수히 많은 납기를 지켰을 것이고
그렇게 지켜진 납기로 인해 생략된 파악과 이해는 먼 훗날 문득 맥락과 계기를 만나 찬찬히 헤아려지게 되는 것.

납기와 시차.
월간지로부터 시차를 느끼며 읽는 흐름 속이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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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 2016/06/15 00:05

좋은 책을 만나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 서점을 뒤지기도, 도서 사이트를 뒤지기도 한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경험이 원체 설레이므로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책을 읽는 독자의 그릇이다.

'독자'는 그릇이다.
정보를 담는 그릇이다.
그릇에 정보를 잘 담을 수 있는 상황이어야 좋은 책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좋은 책을 만나기 위해선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

좋은 독자란, 책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좋은 독자라면,
대부분의 책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고
책에 담겨진 정보를 토대로 책에 표현된 정보와 표현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잘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표현된 정보를 터득하고, 표현되지 않은 암호와 비밀을 유연하게 해독할 수 있는 독자에겐
어떤 책도 주어져도 그 책은 좋은 책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고 표현한 정보 외에 저자가 의도하지 않은, 숨겨 놓은 정보도 책에는 다 담겨 있다. 저자가 책을 집필하는 순간 그 모든 일들이 겹을 형성한다. 좋은 독자는 그걸 감지한다.

책은 저자가 쓰는 것이지만
결국 책은 독자가 완성하는 것이다.

책은 쓰여진 내용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독자에 의해 해석되고 해독되는 내용으로도 존재한다. 책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연결되고 책을 읽은 독자가 저자 이상의 생각 구름을 형성하게 되면 그 책은 더 이상 저자 만의 책이 아닌 무엇이 될 수 밖에 없다.

좋은 책을 발견하기 위한 노력보다 더 중요한 게 좋은 독자가 되려는 의도.
어떤 책을 읽어도 그 책을 좋은 책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자.
그런 독자가 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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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대화 :: 2016/04/29 00:09

카페에서 사람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들리지 않는 대화 속에서 읽혀지는 뭔가가 있다.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람 간 대화의 모습만이 유일한 단서가 될 뿐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채워야 하는 여백 많은 캔버스인 것이다.

모든 정황이 포착될 수 있다면 그걸 묘사하면 된다.
묘사의 깊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제한된 상황만이 나에게 재료로 주어진다면
나는 밑바닥부터 플롯을 짜야 하고 캐릭터를 내 의도대로 정의해야 하는 소설가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그 어떤 대화도 소설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결정적인 scene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긴장감을 견지한 채,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를 관찰한다.

명품을 자꾸 쳐다봐야 명품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생성되듯이
대화를 자꾸 쳐다보면 대화에 대한 감각과 취향이 만들어진다.

대화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보면 대화가 읽혀진다.
들렸다면 읽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묘사를 위한 정보만 많아졌을 듯.

하지만 대화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감각기관이 본격 작동하게 된다.
대화를 그저 보게 되는 것이고, 보다 보면 대화를 읽게 될 수 밖에 없다.

대화를 읽는다는 건
대화를 작성하는 것이다.
읽기와 쓰기는 표면적으로만 다르게 보일 뿐
본질적으로 유사한 결을 띠고 있는 행위다.

대화를 읽는다.
대화가 더욱 들리지 않는다.
그 속에서 시각과 독각은 더욱 첨예해진다.
캐릭터는 스스로 살아움직이는, 대화를 둘러 싼 공기가 자연스럽게 플롯이 되는..

대화가 들리지 않을 때
나의 소박한 창작은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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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e북 :: 2016/04/04 00:04

쇼핑몰 앱을 연다.
펼쳐지는 쇼핑몰 앱의 첫 장

첫 장이라 생각한 순간
쇼핑몰 앱의 화면은 나에게 이북의 첫 페이지가 되어 보인다.

쇼핑몰 앱이 e북이 될 수도 있겠구나.
모바일 상의 컨텐츠가 타임라인처럼 흘러가는 구조라면
더욱 그렇겠구나 싶다.

쇼핑몰 앱의 작가는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일까?

메세지가 잘 느껴지지 않아서 한참을 들여다 본다.

여기엔 어떤 문장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어떤 단어에 의미 부여가 크게 되어 있는 것일까?

여기서 난 어떤 플롯을 체감하면 될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쇼핑몰 앱을 e북이라 생각한 순간,
나는 소비자를 넘어선 독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모바일 폰 안의 어떤 화면이든
그것을 e북으로 여길 수 있다면
그건 나에게 책이 되어주게 되는 것일까?

책은 이제 무엇으로 정의되어야 하는걸까?
아직 잘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e북이 내게 큰 일을 해주고 있구나란 생각 하나는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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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휴재 :: 2015/09/09 00:09

꼭 찾아서 보는 웹툰이 어느 날 작가의 사정으로 인해 연재가 중단된다.

휴재.

예전엔 휴재 공지를 보면 살짝 화가 났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업데이트.
기껏 웹툰 사이트 찾아갔는데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느낌.
짜증이 좀 났었다.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르다.

내가 업데이트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의 웹툰이면
그리 가볍지 않는 내용의 웹툰인 게 분명하다.
심지어 소중히 아껴 읽는 문학 작품에 준하는 위상을 내 맘 속에서 갖는 웹툰이라면.
그 웹툰의 휴재를 은근 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아끼니까 빨리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
작가의 스토리라인 외의 내 마음 속 나만의 스토리라인을 그려볼 수 있는 기회.

휴재를 통해 오히려 다른 작동을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의 확보.
그래서 이젠 휴재를 만나면 화가 나기 보단
작품을 음미할 수 있는 시공간 속으로 여행을 살포시 떠나게 된다

작가도 쉬고
나도 쉬고

쉬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고

휴재는 새로운 즐거움
또 다른 놀이 공간으로의 진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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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09/09 07: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장편소설 읽다 중단하기"와 연결된듯 하지만, 다르네요 ㅎㅎ
    웹툰작가로부터 강제 중단을 받으면 저도 괜히 화가났었는데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5/09/14 07:42 | PERMALINK | EDIT/DEL

      휴재도 스토리의 일부분인 듯 해요. 공백이지만 공백이 아닌 듯한 그 느낌이 좋은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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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읽다가 중단하기 :: 2015/09/04 00:04

장편소설을 읽다가 어떤 지점에서 중단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때는 서슴없이 멈춘다.

그럼 장편소설은 내가 새롭게 쓴 나만의 소설이 된다.

저자가 의도한 흐름을 따라 흘러가다가 문득 나만의 경로를 발견하게 되면 더 이상 소설을 읽을 수가 없게 된다. 그 때는 멈춰야 한다. 멈추면 저자의 이야기는 미완인 채로 종결되고 나만의, 나를 위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필요하면 소설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플롯을 바꾸기도, 캐릭터를 변형시키기도, 기저에 깔린 세계관을 바꿔놓기도 한다. 그렇게 재단에 재단을 거듭하고 나면 소설은 온전히 나에 의해 다시 읽혀진 채 리모델링된다.

멈춘다는 건 흐름을 편집하겠다는 의도의 발현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



멈췄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 본다.
저자의 이야기와 독자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교미를 시작한다.
그건 뫼비우스의 띠일 수도 있고
무한 루프일 수도 있고
나선형 확산의 궤적일 수도 있다.

멈췄던 지점은 소설의 어느 페이지일 수도 있으나
멈추고자 했던 내 마음 속 어느 한 지점일 수도 있겠다.

멈추면 좌표가 생긴다.
그건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정체성의 표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 자주 멈추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좌표를 될 수 있으면 많이 만들어 놓고 싶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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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 목록 :: 2015/05/27 00:07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신간 도서 목록을 쳐다 본다.

새롭게 발간되어 올라오는 책들의 리스트를 보면
저자들의 책들이 하나의 포스트가 되어 구성된 타임라인을 보는 듯 하다.

새 책 타임라인.

내가 관심 갖는 주제이든 아니든
그런 편협한 필터를 편안하게 내려 놓은 채
신간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포스트들을 넋을 놓은 채 바라본다.

아무래도 책이다 보니
페이스북,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비해선
신규 포스트의 생성 속도는 현저히 둔하다.
하지만, 그런 둔한 타임라인의 진전 속도가 실제론 그리 둔하지 않음을 느낀다.
완결된 도서만 올라올 수 있는 신간도서 타임라인의 규칙이 플로우의 속도를 둔해 보이게 만들 뿐.

만약 저자의 수많은 생각들이
타임라인에 올라온다면
정말 엄청난 텍스트 유동성의 극한값을 보게 되지 않을까?

완결된(?) 책 목록으로 구성된 타임라인을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된 무한대에 가까운 저자 생각 타임라인을 떠올려 본다.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을까?
그 책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수많은 생각들이 온전히 타임라인 상에서 표현될 수 있다면
그건 독자에게 어떤 영감을 주게 될까?
완결된 책보다 차라리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독자에게 더 많은 자극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타임라인이 보고 싶어졌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타임라인은 보기 쉽지 않을 듯.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런 기능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그런 타임라인의 모습을 독자들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런 상상력을 견지한 채 보여지는 신간 타임라인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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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 2015/03/25 00:05

인간 현실을, 인간 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다 보면 먹먹함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뭔가를 직시하면서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고 독자가 되어 그것을 읽는다는 건 분명 맘 한 구석에 편치 않은 상을 심어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그런 불편함은..
딱 그만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불편함의 크기 = 외면하려는 노력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건 좋은 데
그 노력의 지향점이 '외면'이라면 좀 그렇다.

인간 현실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
그걸 외면하는 사람들은 많다.

외면은 수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단어이지만
실상은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내포하는 것 같다.

뭔가를 외면한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공간을 선호한다는 얘기니까.

여전히 소설을 읽으면 나는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외면의 동력이자 근원임을 알기에 더욱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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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의 모방 :: 2013/11/29 00:09

베끼려면 제대로 베껴라
이노우에 다쓰히코 지음, 김준균 옮김/시드페이퍼


책을 읽지 않고 쓰는 글이다.  책 제목만 봐도 메세지가 느껴지기 때문에. ^^

모방을 모방해서 모방하기 힘든 뭔가를 만들어낸다.
모방과 모방 사이에 독창성을 가미한단 얘기다.
아니, 모방을 하는 자의 독창성이 따라기 힘든 모방을 가능케 한단 얘기다.
결국, 독창성만 갖고 있다면 모방을 해도 자기 스타일이 묻어 나온다는 것.

독창성을 갖추기 위해선 모방을 꾸준히 할 수 밖에 없다. 모방에 모방을 더하고 모방에 모방을 더하고.. 반복되는 모방의 시간 속에서 모방은 어느 순간 티핑 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거듭된 모방 속에서 자신 만의 고유한 패턴이 발생하게 되고 그런 패턴이 독창성으로 발전하면서 어느덧 모방은 더 이상 100% 단순 복제에 머물지 않고 뭔가 자신 만의 이야기를 발현시키는 구조로 작동하게 된다.

핵심은 모방에 기저하고 있는 '원형'을 인지할 수 있는가이다.  모방 속에서 원형을 탐지할 수 있으면 한 차원 높은 모방이 가능해진다. 일종의 모방을 리버스 엔지니어링한다고나 할까. 모방의 생성 과정을 역설계할 수 있으면 모방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모방이 만들어지기 이전 상태로 이동한 후 나만의 모방을 설계할 수 있는 상황 속으로 진입한다. 모방의 모방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모방의 모방.  반복, 중첩, 재귀가 지향하고 있는 지점에 원형의 숨결이 존재한다.   모방의 모방을 통해 모방한 자의 생각 경로를 따라가 보고, 모방한 자가 택하지 않았던 경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나만의 경로를 설계하는 과정은 저자의 책을 읽고 저자의 마음을 해부하면서 저자 생각의 랜드스케이프를 한 장의 그림으로 복원시키는 복원예술가의 과정이면서, 아무 것도 없는 '무'의 환경에서 새로운 '유'를 만들어내는 창조예술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고수들의 바둑을 따라 두기만 하면 기계적이겠으나 고수들의 바둑을 따라두면서 고수들의 마음을 읽어 내리는 노력을 지속하면 고수의 기력에 근접할 수 있는 진입로가 형성된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마음을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고 나의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예술작품으로 표현하는 것. 모방의 모방은 결국 예술로 귀결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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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간의 상상 :: 2013/09/06 00:06

우연한 경험

가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멋진 컨셉,키워드를 제시하는 책들이 있다. 그래서 혹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쳐보곤 하지만 이내 책을 덮게 되기 일쑤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책들에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시간 소모 없이 멋진 컨셉,키워드를 얻게 해줬으니 말이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 내가 즐기는 독서 플로우가 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너무나 매력적인 제목,컨셉,단어,문장을 노출하고 있는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의 내용이 궁금해 지는데 막상 그 책을 읽어보면 당초 가졌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책을 읽지 않고 그저 책에 대한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는 그런 흐름. 책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책을 읽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책에 대한 상상을 하는 것이 더 큰 부분일 수 있다는 것.


의도된 경험

꽤 괜찮을 것이라 예상하는 책을 구입해 놓고 30일 동안 책을 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책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된다. 시간의 흐름이 야기하는 궁금증을 억제하고 또 억제하면 자연스럽게 구입한 책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 책을 궁금해 하고 도대체 그 책 안에 어떤 내용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나만의 경로를 따라 펼쳐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바로 책을 열었다면 예상했던 내용에 부합하지 못하는 실망스런 컨텐츠에 기분이 다운될 수도 있고 예상을 뛰어넘는 책 내용의 전개에 흥미진진함을 만끽하며 독서의 흐름 속에 나를 온전히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가능성을 비밀로 간직한 채 이미 완성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책과 일정한 거리를 설정한 채 나만의 스토리라인을 덮여 있는 책 위로 쌓아가기 시작하면 책은 더 이상 궁금증의 대상에 그치고 않고 나의 상상 속에서 새로운 책으로 identity를 정립하게 되고 나는 어느덧 작가 모드로 진입하게 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손에 넣은 후, 책을 좀처럼 열지 않고 작가의 입장을 획득하는 것. 독자와 작가는 동전의 양면에 불과함을 체득하게 되는 순간이다.


평행우주의 탄생

어쩌면 영원히 책을 여는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상상 자체로 충분히 즐거웠고 그로 인한 포만감이 책 내용을 더 이상 궁금하게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놓고 그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통해 얻은 것이 충분한 것이고 열지 않은 책을 통해 나만의 책을 쓰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니 어쩌면 최상의 독서 경험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또한, 결국 그 책을 열고 나만의 판타지와 그 책에 적혀 있는 팩트를 비교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저자의 생각 흐름을 읽고 '나'라는 또 하나의 저자가 펼쳐낸 생각 흐름도 리뷰할 수 있으니 두 생각의 궤적을 한꺼번에 느끼는 경험은 나름 박진감 넘칠 것이다. 30일 간의 판타지는 일종의 '평행우주'인 것이다. 한 권의 책을 구입해서 하나의 평행우주를 생성하는 경험. 그건 정말 유쾌한 일타이피가 아닐 수 없다.


30일 간의 상상 놀이를 하면서 독자이자 저자로 활동하는 경험. 매우 짜릿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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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을 통한 시간놀이 :: 2013/07/17 00:07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신의탑'이란 만화 때문에 정주행을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주행을 마치고 나니까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읽는 재미는 사라지게 되었고 이젠 매주 월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작은 분량의 만화를 읽고 아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한참 정주행의 드라이브감을 느끼던 시절이 그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역주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만화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1회,2회,3회,,, 가 아닌 79회, 78회, 77회,, 이런 식으로..  그렇게 읽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함을 느낀다. 자꾸 과거를 변형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읽은 내용이니 어렴풋이 이전 장면이 잔상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77회 이전에 탄생한 바 있는 76회의 스토리를 내 맘대로 변형시켜 보는 만화 조작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내 맘대로 스토리를 변형시키다 보면 어느새 만화는 저자가 깔아놓은 궤도를 저만치 이탈하면서 안드로메다를 향한 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역주행을 하면서 과거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현재까지 바뀌어 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토리라인이 붕괴되면서 어느덧 만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만화를 저자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닫힌 스토리라인이 아닌 독자가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오픈된 다차원 스토리 큐브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내맡긴 채 시간의 횡포 속에서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휩쓸리는 삶은 그닥 재미가 없다. 나를 일종의 만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화 99회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98회, 97회, 96회,, 이런 식으로 역주행을 해보자. 그러다가 나름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X회에서 멈춰보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X회의 만화 내용을 수정해 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현재로 복귀하면 현재의 나는 X회에서 변형을 가한 '역주행 & 편집' 놀이에 의해 살짝 영향을(?) 받게 된다. 즉,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지난 회의 만화들을 쭉 리뷰하면서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X회를 수정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는 놀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나'라는 대본, '나'라는 만화는,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특정 경로를 이탈하지 못하고 단선적인 행로의 제약에 갇히기 쉽다. 그런 무기력한 존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운 다차원 일탈 놀이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란 반문도 가능하지만, 이런 놀이를 직접 해보면 이게 개소리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뇌는 그렇게 스마트하지 않아서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주입하면 처음엔 저항을 하다가도 어느덧 그 상상의 매력에 도취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병신 같은 상태에 스스로 빠져드는 나약한 판단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병맛 판단력에 수시로 휘둘리면서 정작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이런 스펙타클한 놀이를 왜 주저해야 하는가? ^^

나는 한 편의 영화이고 만화이고 대본이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시간과 대화하고 공간과 협의하면서 수시로 진동에 진동을 거듭하고 유동에 유동을 반복한다. 우리 뇌에 집요하게 주입되고 있는 단선적 시간의 흐름. 그건 굴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혁의 놀이를 시도하는 것은 유전자가 리드하는 로봇과도 같은 인간 삶에 있어 싱그러운 돌파구를 열어가는 행위이다. 신의탑을 정주행하다가 문득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역주행을 하다가 문득 배움이 생겼다.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갖고 노는 것이라는 걸. 시간을 갖고 논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나의 취향대로 설계하고 편집하는 흥겨운 놀이들의 축적이고 그것들이 축적되면서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는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고 협의하는 '시간 희롱'의 희열을 맞보게 된다는 것을..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갖고 놀 수가 있다. 왜? 뇌가 병신이라서.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쓰기, 잊기, 읽기, 그리고..
시간 속의 나
역산, 알고리즘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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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7/17 09: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스스로 생각했을 때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정리된 글로 보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 rodge | 2013/07/22 16: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한번 벅샷님 블로그 정주행 했던때가 생각나네요.
    마치 시를 읽는 듯한 함축적이고 통찰력 가득한 문장들속에 넋을 잃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블로그 역주행까진 필요없겠죠?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3/07/22 19:29 | PERMALINK | EDIT/DEL

      헉. 정주행만으로도 넘 감사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정주행이라니요..

      너무 과하게 시간을 내주셔서 읽어주시니 그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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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소설 쓰기 :: 2013/06/28 00:08

읽는다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읽기'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실천에 옮겨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을 때 생각의 결이 저자가 제시하는 특정 경로 만을 따라서 수용적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자연스럽긴 하지만 그런 수동적 읽기 패턴을 의심하고 독자적인 사고를 수행하는 독자 모드로의 전환을 조금씩 익혀나갈 수 있다면 읽기는 또 하나의 쓰기로 변신할 수 있다.

소설을 읽을 때, 다음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란 궁금증을 갖고 읽게 된다. 앞으로 펼쳐질 서사의 흐름은 작가가 갖고 있는 특유의 생각 결에 전적으로 의지될 수 밖에 없다. 생각의 결은 사람마다 고유한 것이어서 타인에게 그것이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타인에게 은근한 거부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결은 그저 결일 뿐이다. 그건 정답도 아니고 오답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을 때 설정되는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는 은근 선생과 학생 간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어서 독자는 저자가 전개하는 서사의 흐름을 무방비 상태로 주입 받곤 한다. 물론 저자의 결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것이지만 그 소설을 읽는 독자의 지분이 과연 미미한 수준에 그쳐야 하는 것일까?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설정되어야 하고 거기서 독자의 비중은 과연 몇 %여야 하는 걸까?

저자의 결은 저자의 결일 뿐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서사의 흐름을 결코 인정할 필요가 없다. 만약 어느 시점에서 저자가 이끄는 스토리라인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게 되었거나 다른 생각의 결이 자꾸 뇌리를 간지럽힌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창발시킬 분사 모드로의 전환을 모색할 수 있겠다. 저자의 서사는 그저 참조만 하는 것이고 독자의 서사가 독자적인 결을 형성하면서 저자의 서사를 대체해 나가는 저작의 흐름을 타기 시작하는 것이다.

소설에 적혀 있는 내용을 단지 한 가지 경로일 뿐이라 여길 수 있다면 소설을 읽다가 어느 시점에서 소설과 결별하고 소설과 독립된 경로를 구축해 나가는 나만의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겠다. 또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그 소설에 착안한 또 하나의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하나의 소설을 하나의 트랙으로 간주하고 그 소설을 가능케 한 심층기반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소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로부터 완전히 새로운 또 하나의 소설이 생성될 수 있음을 기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소설가이다. 우리 안엔 나만의 스토리가 무수히 많은 생각의 결 속으로 숨겨져 있다. 그것들은 수시로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횡단하며 우리에게 자신을 알아봐 달라고 신호를 보내나 우리가 그걸 인지 못하거나 설사 인지했더라도 그걸 망각할 뿐이다. 결국 네비게이션의 문제이다. 자동차만 네비게이션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 우리의 예술가적 재능엔 네비게이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만의 생각 결을 나만의 텍스트로 형상화하는 네비게이션 플랫폼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나의 기억과 망각을 수면 위아래로 춤을 추게 하고 나의 끼와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나만의 경로 관리 기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예전엔 독자가 저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독자는 반드시 저자가 되어야 한다.
독서의 끝은 수천 권,수만 권을 읽었다는 포만감이 아니다.
독서의 끝은 '독자의 저자 되기'이다. ^^



PS. 관련 포스트
독저, 알고리즘
위키 독서
독서와 구원등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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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6/28 00:41 | PERMALINK | EDIT/DEL | REPLY

    편집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 많이 공감합니다.
    좋은 콘텐츠를 가진 분이면 얼마든지 저자가 될 수 있는.. ^^

    • BlogIcon buckshot | 2013/06/28 09:18 | PERMALINK | EDIT/DEL

      결국 모두에게 좋은 컨텐츠가 있는 것이고, 그걸 발견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

  • BlogIcon 고구마77 | 2013/06/28 14:3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오랜만에 뵈요. 잘지내시죠?

    저는 요즘 영어공부하는 페북 페이지 돌보느라 개인 블로그를 할 시간을 못찾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맥락과는 좀 다르지만, 여튼 독자의 저자되기 일환으로 최근 카카오페이지 론칭 준비를 했다가 많은 시행착오만 했네요 ^~^

    디지털 활자미디어의 상품화에 대해 많은 고민과 깨달음을 얻는 시기를 보내고 있슴다.

    • BlogIcon buckshot | 2013/06/28 14:55 | PERMALINK | EDIT/DEL

      오랜만입니다~ 바쁘게 지내고 계신 것 같네요~

      그동안 얻으신 통찰을 블로그에 올려주심 참 좋을 것 같아요. ^^
      http://blog.naver.com/pupilpil

      고구마님께서 포스팅해주시면 많은 분들께 귀한 가르침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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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구원등판 :: 2013/03/27 00:07

책과 블로그.
유료와 무료.

읽고 나면 돈 날렸단 생각이 드는 책과 읽고 나면 공짜로 읽은 게 미안해지는 블로그 포스트가 엄연히 공존하는 상황이다. 책은 블로그 포스트를 참조하고, 블로그 포스트는 책을 언급한다. 어떤 책 리뷰 포스트를 보면 책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기보단, 책 리뷰 내용 자체가 넘 맘에 들어 책 구입을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독자의 실시간 반응을 먹고 살면서 반응 생산이 가능한 블로깅과 생산,유통,피드백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흐름 속에서 나오자 마자 박제가 되어가는 책. 블로깅은 책을 언급하면서 책을 위협하고 책은 블로그를 바라보면서 시들어간다? ^^ 

요즘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경험을 할 때가 많다. 책의 저자를 투수로 비유할 때 완투형 투수가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다. 1회부터 9회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잘 유지하면서 독자를 리드하는 저자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완투는 커녕 1회 등판부터 안타를 맞거나 홈런을 허용하며 대량실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5회까지라도 잘 던져주면 좋으련만. 이닝이터형 저자가 그리운 요즘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기대치 자체를 튜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독서를 할 때는, 수동적으로 책을 읽는 단순 독자로만 포지셔닝하면 안된다. 여차하면 위기에 빠진 저자를 구출해 내고 자신이 직접 스토리라인을 전개해 나가는 끝판왕 구원투수의 면모도 견지해야 한다. 아니 1회부터 저자가 무너질 경우엔 저자를 대신해 선발투수의 임무까지 떠안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제 독자는 수동형 모드에서 저자의 글을 감상하는 관객이 아니라, 저자가 충분히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서 저자의 몫까지 대신해줘야 하는 능동형 모드로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가 어디서 무너지고 있는지, 왜 무너졌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무너진 저자를 대신해 투구하면서 좋은 성과를 낼 때 독자의 역량은 급상승하게 된다. 실제 야구에서 구원투수는 항상 몸을 풀어야 하고 연투를 하게 되므로 체력관리가 쉽지 않지만 독자 입장에서의 구원등판은 다분히 관념적인 상황이므로 에너지를 급소모하지 않으면서 충분히 상황을 즐길 수 있겠다.

뭐. 돈을 주고 책을 사긴 했지만, 책 구매의 ROI를 저자의 퍼포먼스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나의 구원등판으로 인해 ROI를 보전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보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점점 ROI를 챙기기 어려운 책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선 독자의 구원등판은 필수 덕목이 되어갈 것이다.

저자의 조기 강판과 독자의 구원 등판.
이런 상황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공짜로 읽기 미안한 블로그의 소중함은 더욱 커질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독저, 알고리즘
창맥,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유독,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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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04/01 00: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Read-Lead 공짜로 읽기 미안한 블로그에요 ^ ^ 늘 감사드립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04/01 09:41 | PERMALINK | EDIT/DEL

      부끄럽습니다.. 읽어주시니 그저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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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서사, 졸음 :: 2013/02/15 00:05

지난 주말에 영화 베를린을 봤다. 도입부를 경과한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코를 골며 퍼자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꿈까지 꾸다가 영화 중반부 즈음에 이르러 계속되는 액션 굉음에 그만 잠이 깨버렸고 구체적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충 감으로 영화 관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극장에서 잠을 푹 자면 피로도 풀리고 끊어진 스토리를 상상력으로 풀어가는 재미가 있긴 하다. ^^

예전에도 영화 보다가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잔 적이 꽤 되는 편인데 이번에도 역시 익숙한 장면이 연출된 셈이다. 나는 왜 영화를 보면서 잘 조는 것일까?  영화관 의자가 너무 편안해서 그런가?  극장 안이 어둡고 따스해서 그런가?

서사를 느끼지 못할 때 그런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멋진 허구적 서사를 기대하곤 하는데, 영화의 서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졸음이 쏟아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매력적인 서사는 멋진 장면들을 무작정 늘어 놓는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존재하는 빈틈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제각기 쉽게 간파 당하지 않는 역동적인 서사를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뻔한 프레임, 빤히 들여다 보이는 패턴 내에서 로봇처럼 움직이는 캐릭터들이 장면과 장면 간 빈틈의 부재 속에서 건조한 동선 주행만을 반복하게 되면 나는 급격한 졸음의 침공을 받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베를린은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긴 하다. 흥미로운 서사가 보이진 않았으나 씬 자체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전진 스텝으로 일관하는 씬 흐름에 부합하는 사운드도 잘 들려왔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고 영화 관람을 끝내고 나오는 발걸음은 제법 경쾌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서사보다는 질주형 전진 스텝과 액션의 동선, 배우들 간의 포스 충돌에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영화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화면/사운드 전개에서 이미 이 영화가 서사엔 그닥 신경 쓰지 않고 잘 짜놓은 액션 동선 상의 강력한 질주로 일관할 것이라는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전달 받고 졸음이 스르륵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영화의 서사는 결국 관객 마음 속 서사와의 밀당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관객의 마음은 영화를 보면서 나름의 서사를 예상하고 기대한다. 그 기대치에 부합하는 서사의 매력도를 확보할 수 있어야 관객이 영화의 서사를 따라오게 되는 건데 베를린은 나를 끌어당길 수 있는 서사를 확보하진 못한 것 같다.

사람의 서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영화의 서사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서사에 대해서도 함 평가를 내려보면 매우 재미있을 것이다. '나'는 서사적 매력을 갖춘 사람인가? 아님 그닥 흥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지루함/졸음을 유발하는 서사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해진 액션의 동선 위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인가?

자신 만의 서사가 없는 인간은 마치 좀비와도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한 (주입된) 욕망을 갖고 균질하게 정량화/상품화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좀비스런 몸짓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 간다는 것은 난이도 높지만 보람이 매우 큰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베를린을 보다가 졸면서 꿈 속에서 나만의 서사를 써내려가다 쾅쾅거리는 소음으로 깨어나 액션 씬의 수려함에 잠시 나만의 서사를 잊고 영화의 이미지를 감상한다. 이미지는 순간이고 서사는 지속된다. 잠깐 잠깐 이미지를 맛 보는 건 좋다. 하지만 항상 작동하고 있는 '나'라는 이름의 서사를 시종일관 잊고 있으면 안 된다. 세기의 블록버스터를 능가하는 우주적 스케일을 갖고 있는 '나' 서사의 매력도를 잘 챙기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 서사를 나의 맘 속에서 상영하다가 그만 확 졸아버릴 수 있다. 그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다.  잘 짜여진 액션 동선 위를 로봇처럼 질주하는 것은 영화에서나 멋있어 보일 뿐이다.  영화는 서사 대신 오직 액션에만 집중할 수도 있고, 내러티브를 내려 놓고 주구장창 스타일에만 전념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차마 그럴 수 없는 것 아닐까?  아무리 로봇스런 액션 동선이 멋있어(?) 보여도 내 인생의 시나리오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참치 캔의 상태로 무심하게 방치하는 건 넘 비루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세상은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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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만화다. :: 2012/06/18 00:08

신의탑을 읽다가 느낀 점.

만화는 '칸'과 '사이'로 이뤄진다.

만화를 읽는 독자는 만화를 구성하는 수많은 '칸'들을 본다. 칸은 정지된 '상'이다. 정지된 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면서 flow를 표출하게 된다. 독자는 칸과 칸으로 이어지는 토막그림들을 보면서 칸과 칸 사이의 빈 공간을 스스로 메우면서 만화를 소비한다. 정지된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상그림을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창출하면서 연속된 영상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심대하다. 어디 만화만 그럴까.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만화의 '칸'과 '사이'처럼 작동한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텍스트도 만화와 같다. 독자는 글자와 글자로 이어지는 토막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가상의 텍스트를 생성한다. 저자의 토막 글들과 독자가 생성하는 가상의 토막 글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연속된 스트림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독서다.

세상은 텍스트다. 세상을 구성하는 만물은 모두 텍스트이다. 사람은 칸과 칸 사이를 호흡하고 칸과 칸 사이를 걸어가면서 칸과 칸 사이에 숨겨진 코드들을 의식/무의식적으로 해석하고 반응한다. 사이는 일종의 진공이다. 진공은 텅 빈 공간으로 일축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거대한 진공 속을 유동하는 칸들. 칸과 칸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공은 만화 속에도, 텍스트 속에도 세상 속에도 존재한다. 진공의 색깔, 진공의 냄새, 진공의 소리를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진공과 대화하고 교감할 수 밖에 없다.

만화를 읽으면서 '사이'에 집중하는 경험. 사이를 보면서 칸을 지워나가는 경험. 사이를 들으면서 칸에 둔감해지는 경험. 사이를 관찰하면서 사이의 존재감을 느낄 때 칸은 파동이 되고 사이는 입자가 된다. 입자를 파동으로 보고 파동을 입자로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만화는 칸의 구성체가 아니라 칸,사이가 모두 가시화된 구성체가 되고 칸,사이가 모두 흐릿한 구성체가 된다.

만화를 보다가 별 생각을 다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만화는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매체임이 분명하다. 제약은 한계를 낳고 한계는 내공을 낳고 내공은 세계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나 보다. 만화에 내재한 한계가 만화에 본질이 착상되는 것을 용이하게 했을 것이다. '사이'를 인지하게 해준 만화에게 감사를 느낀다. ^^




PS. 관련 포스트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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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56 | DEL

    Remarkable! Its really remarkable Read & Lead - 세상은 만화다., I have got much clear idea concerning from this article.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0:56 | DEL

    Hi there I am from Australia, this time I am watching this cooking related video at this %title%, I am in fact delighted and learning more from it. Thanks for 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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