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해당되는 글 46건

뮤직 브라우저 :: 2017/02/13 00:03

인터넷을 사용할 때
크롬 브라우저를 주로 쓰면서
파이어폭스나 익스플로러를 가끔 쓰곤 한다.

근데
크롬 브라우저에서 뮤직 서비스를 주로 듣다가
가끔 파이어폭스나, 익스플로러를 이용할 때 거기서 뮤직 플레이어를 로딩하면 크롬에서 듣던 플레이 리스트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리스트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

예전에는 그걸 불편하다고 느꼈다.
크롬에서 듣던 플레이 리스트가 파폭이나 IE에서도 그대로 나와주길 기대했었기 때문인데..

그런데 그런 경험이 자꾸 쌓이다 보니
이젠 오히려 그런 경험이 더 좋다는 생각마저 든다. ㅎㅎ
크롬에서 주로 듣던 플레이 리스트가 지겨울 때도 있는 거라서 말이다.
크롬에 있는 지겨운(?) 플레이 리스트가 파폭에선 말끔히 지워져 있고 파폭에선 마치 새롭게 음악에 입문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으로 새로운 플레이 리스트를 구성해볼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브라우저간 뮤직 플레이리스트의 호환이 안되는 서비스 상의 제약 조건이
나에겐 의외로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현상

가끔 파폭으로 음악을 듣는 느낌이 제법 괜찮다.
어쩌다 한 번 익스플로러에 들어가서 새로운 플레이 리스트를 구성하는 경험이 나름 즐겁다.

사용성이라는 게
개인적인 상황이나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에 따라 전혀 평가가 내려질 수도 있겠다 싶다.
적어도 브라우저 간 뮤직 플레이리스트의 호환이 되지 않는 흐름이 나에겐 오히려 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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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와 이동 :: 2016/12/19 00:09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 물리적 동선이 형성된다.

자주 가는 장소와
자주 이동하는 경로는
좌표와 좌표 사이를 이동하는 선의 궤적처럼
시간이 흐르는 삶 속에서의 물리적 이동으로 축적된다.

각각의 좌표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고
이동하는 경로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으니
좌표와 좌표 간의 물리적 이동은 일종의 반복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쌓여가는 반복감 속에서 일상은 더욱 강화된 삶의 궤적처럼 패인 홈을 구성하게 된다.

동일한 것처럼 보이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쌓여가는 감정
삶은 그렇게 구성되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좌표와 좌표 간 이동으로 규정되는 삶의 궤적
그런 궤적 속에서 생성되는 사고와 행동
궤적이란 맥락 속에서 국한되고
패인 홈이란 프레임 속에서 형성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위치했던  물리적 좌표와 내가 이동했던 물리적 경로만 쭉 나열해 보면
나의 지나온 시공간들이 물리적으로 리스트업되는 것인데.

그렇게 흘러온 나의 물리적 삶.
그것들만 잘 돌이켜 보아도 내 삶이 잘 보일 듯 싶다.

하나의 좌표가 품고 있는 의미와
하나의 이동경로가 품어 내는 서사가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말을 걸어올 거라서 말이다. :)

좌표와 이동..
나도 모르게 형성되어 왔던, 수많은 좌표와 이동경로 속에서의 나.
분명 흘러온 시간이고 지나온 공간인데 왜 이렇게 궁금한 것인지.
왜 이리도 설레이는 것인지..

그리고 이런 소박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블로그 포스트 입력창이 왜 이렇게 고마운지.

놀라운 감정의 연속.
오늘도 내가 위치한 좌표와 내가 움직이는 이동 경로는
그렇게 소박하게 형성되고 수줍게 의미를 감춰낸다.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는 숨어들어간다.
그렇게 감춰지는 비밀과
어설프게 표현해낸 텍스트 속에서
노드와 링크는 오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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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플레이 :: 2016/11/18 00:08

뮤직 플레이 리스트는
일종의 감정선 설계이다.

내가 듣고 싶은 노래라는 건
결국 내가 원하는 감정의 궤적일 테니까

내가 원하는 선율로 감정이 흐르길 바라고
내가 좋아하는 리듬으로 감정이 춤을 추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특정 날짜의 뮤직 플레이 리스트엔
그 당시의 내 감정의 플로우가 그대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뮤직 플레이는
결국 감정의 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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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2016/04/06 00:06

넷플릭스로 하우스오브카드를 본다.

노트북으로 보다가 멈춘다.
핸드폰으로 이어서 보다가 멈춘다.
아이패드로 이어서 보다가 멈춘다.
PC로 이어서 보다가 멈춘다.

넷플릭스는 내가 어디서 멈추는 지를 안다.
내가 멈춘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넷플릭스를 사용하게 되면서
나의 집은 말 그대로 N스크린이 되었다.

집 자체가 영화관이 된 느낌이다.

내가 멈추는 지점을 안다는 것
내 행동이 멈추는 지점이요,  넷플릭스를 따라 흐르던 나의 감정이 멈추는 지점이다.

영화가 공간을 따라 흐른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란 이름이 꽤 오래 전에 지어진 건데..
이름이
인터넷 + 영화
라니..

미래를 오래 전에 꿈꾸면서 지은 이름이라..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 걸까.

Read & Lead는
오래 전부터 그려왔던 나의 미래 맞는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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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지연 :: 2015/06/26 00:06

온라인 쇼핑몰에서 상품을 주문했다. 그런데 배송이 지연된다. 1주일이 지났는데도 상품이 오질 않는다. 열이 받기 시작한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다.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는다. 판매자에게 전화해도 연락이 안 된다.

화를 슬슬 돋게 하는 배송지연.
분노를 촉발하는 배송지연.

배송지연에 그렇게 화를 내는 나.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이 지연될 때 나는 화를 내고 있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깊어지지 않고 있는데
생각의 성장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화를 내고 있는 걸까?

나를 향한 시선이 그윽해지고
어제보다 오늘 나를 더 알아가는
자기성찰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분노하고 있는 건가?

아마 아닌 듯 싶다.
정작 중요한 것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선 난 너무 관대한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의 지연에 관대함으로 일관하는 대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의 지연에 대해선 나의 모든 감정 에너지를 집중시키곤 한다.

왜 그럴까?
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의 감정 에너지를 집중 투입하는 걸까?

에너지가 남아 돌아서 그런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에너지가 남아돌 리는 없다.

아마도..
정작 중요한 것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생각이 자라고 자기성찰이 깊어지는 것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자신이 없고
자아 성장에 대해 이렇다 할 청사진도 없고 의욕도 충만하지 않으니
성장의 지연에 대해서 딱히 화를 낼 기회조차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중요한 것을 계속 놓치다 보니
그에 대한 자기 실망이 다른 쪽으로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나는 느낀다.  정작 중요한 것에 매우 소홀해져 있는 나.

배송지연을 겪으면서
중요한 것의 지연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것의 지연을 무기력하게 용인하지 않고
설사 그게 잘 되지 않더라도 나의 성장을 계속 지원하고 실행할 수 있는 내가 되고자 노력하려 한다.

그래야 쇼핑몰 배송지연 같은 사소한 이벤트에 감정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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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5/07/01 09:2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작 중요한 것을 직시할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라는 글에 육성으로 감탄사가 나왔네요..ㅎㅎ
    사람들이 변하기 힘든 이유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알지만 직시하지 못하는 용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5/07/03 23:05 | PERMALINK | EDIT/DEL

      눈을 뜨고 있어도 전혀 보지 못하고 넘기는 것들이 참 많은 듯 해요. 그렇게 놓쳐버리는 것들 중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게 있다면 거기서 변화가 시작되는 것 같구요. 본다는 것. 참 쉽지 않다는 걸 많이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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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투자 로봇 :: 2015/05/18 00:08

이런 얘길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주식투자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간단한 로직에 기반해서
주식투자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실제 투자에 적용하고 있는데 꾸준히 수익이 난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이 도대체 어떤 구조를 갖고 있길래 저절로(?) 수익이 나는 걸까?
라는 질문 보다는
인간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에 투자에서 성공하기 힘든 거겠네
라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식이라면..
적재적소에 프로그램을 짜놓고 그 프로그램이 이끄는 대로 나를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 나를 맡기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동안 신경을 완전히 끄고 있다가
가끔씩 확인만 하는 메커니즘도 나쁘지 않겠다.

주식투자 로봇
감정관리 로봇 (항상 어린아이처럼 요동치는 나의 감정을 유아기적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로봇)
의식수행 로봇 (반복하면 좋을 듯한 행동을 정기적으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로봇)
정기검진 로봇 (블로그에 적어 놓은 나의 지향점을 내가 실행하는 지 검증하는 로봇)

내 상황과 취향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그것을 나의 친구봇처럼 만들어서 실행시켜 놓은 후
나는 뒷짐을 진 채 여행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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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이유 :: 2015/05/06 00:06

어떤 부정적 감정이 생겨날 때,
그 감정의 원천을 생각하다 보면 생겨난 부정적 감정이 사그러드는 것을 느낀다.

그건 마치 나를 작동시키는 상세설계서를 내가 들여다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로봇이 자신의 작동을 규정한 설계서를 보는 순간이 도래할 때,
로봇은 어떤 기분이 들까?
그 설계도를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 할까?
그 설계도에 나와 있는 대로 계속 움직이고 싶을까?
설계도와 자신과의 연계고리에 대해서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

설계된 대로 움직여지는 로봇.
로봇이 설계도를 보게 되는 날.
그 날이 로봇에게 올까.

온다면 로봇은 어떻게 변해갈까.
오지 않는다면 로봇의 존재 이유는 설계도 그 자체가 되는 것일까.

설계도가 존재 이유라면
로봇은 설계도를 봐야 할까, 보지 말아야 할까.

감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단순한 메커니즘 설계에 의해
내가 농락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저차원적인 메커니즘 만으로도 내가 충분히 작동될 수 있단 생각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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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화 :: 2014/12/01 00:01

에버노트를 사용하다 보면, 종종 동기화를 하게 된다.
PC에 담은 내용을 폰으로, 회사에서 담은 내용을 집에서 동기화를 한다.
그렇게 동기화를 하다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과연 뭘까?
라는 무의식적인 질문이 손 끝에 쌓여가는 듯 하다.

동기화를 한다는 건 과연 뭘까?

Synchronization과 Motivation은 과연 다른 얘기일까? 둘 사이에 중첩되는 지점이 있다면 그건 뭘까?

동기화(
Synchronization)를 한다는 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들 간의 시간차를 없애는 것. 과연 동기화는 IT 기기들 만의 문제일까?

왠지 아닌 것 같다.

나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 공간대를 살아간다.
그것들 간의 비동기 상태를 자각하고 그것을 동기화시키는 것.
그게 내가 무의식적으로 실행시켜 왔던 동기화의 의식 아니었을까?

나의 감정을 내 의지와 동기화시키는 것.
시간대를 맞춰주는 행위인 동시에 나를 motivation시키는 행위이다.
시공간 상의 불일치, 시공간 상의 결이 어긋남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
그게 마음의 동기화, 감정의 동기화인 듯 싶다.

무엇이 나에게 동기를 부여하는가?
무엇이 이것과 저것을 동기화시키는가?


동기화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디바이스 다루듯 천연덕스럽게
synchronization 시킬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멋진 self-motivation이 될 수 있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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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간을 의식하다. :: 2013/08/12 00:02

3초간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알키

책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다. 책 제목 만으로도 뭔가를 전달 받는 느낌이다.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초기 3초를 잘 보내면 전체적인 감정 선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3초를 감정의 파도에 훅 쓸리듯이 보내버리면 그 이후의 시간들은 보나마나 감정의 노예 상태에 불과할 것이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은 감정이 발생하는 초기 3초 간의 짧은 시간이다.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결정적인 프레임 설정이 이뤄지는 시간이고 한 번 프레임이 정해지면 인간은 온전히 그 프레임의 가이드를 충실히 따르는 순응적 봇으로 기능하게 된다.

사실상 초반에 많은 것이 결정되는 상황. 그럴 때는 시작점에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작점에서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면 이미 게임이 끝나버린 상황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끝나는 게임. 육상 100미터 부문에 출전하는 스프린터의 마음가짐으로 감정 파도에 대처해야 한다.

시작점에서 게임이 끝나는 대표적 상황이 있다. 바로 '비교'이다. 세상에 태어나 유니크한 향취를 풍기며 살아가야 마땅한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자신의 복제본으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고자 애처로운 몸짓을 지속하는 상황. 비교를 시작하자마자 인간 존재 관점에서 loser가 되어버리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시작점 관리를 잘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 때 시작점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
'3초간'이란 책 제목에서 내가 되새겨야 할 교훈의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책 제목 만으로도 이렇게 나름의 생각을 펼칠 수 있어서 참 좋다.
나에게 나름의 생각 시간을 부여해 준 책 제목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PS. 관련 포스트
초기조건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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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 2013/07/12 00:02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앤서니 그랜트 & 앨리슨 리 지음, 정지현 옮김/비즈니스북스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강력한 것 중의 하나는 '감사'이다.

뭔가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가치 있는 능력이다.

감사의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긍정의 에너지원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고, 감사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삶의 명확한 지향점이 있음을 의미한다. 수시로 감사할 수 있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원리를 총체적으로 통찰하고 있음이다.

언제나 감사할 수 있다는 것
삶의 순간들이 흘러가는 경로에서 감사가 생성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면, 흘러가는 시간들의 의미를 날카롭게 채취하면서 감사의 건수를 떠올리게 된다. 감정이 제멋대로 날뛰기 보다는 잘 정돈된 감사의 패턴에 길들여진 채 감사 친화적인 감정 양태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기존의 1차원적인 감정들을 지긋이 눌러주면서 고차원적 감정 진화의 행보가 시작된다. 감사에 기반한 감정 곡선. 원시시대 친화적인 생존지향적 감정 모드에서 진일보한 감정 시스템으로의 진입.

무엇에나 감사할 수 있다는 것
기쁨,슬픔,분노,우울,쾌락,수치 등의 다양한 감정 반응들이 한낱 유아적이고 치기 어린 시스템에 불과하고 그것을 응시하면서 가만히 아기 이름 부르듯 불러주면 감정은 순하고 어리버리한 양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체득하게 되면 무엇에나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을 아기 다루듯 할 수 있게 되면 어떠한 경우에 직면하더라도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좀처럼 감사하지 못한다는 건, 아기와도 같은 감정에 휘둘리는 완전 아기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아기 다루듯 하지 못하는 한 평생을 '완전 아기'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감사는 선택이라기 보다는 필수에 가까운 덕목이다. 감사하는 역량이 떨어지면 결국 불평,불만,불안으로 가득찬 삶을 살아가기 쉬우니 말이다. 뭐, 감사 이외의 강력한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 다행이겠으나 감사하지 못하는 자가 과연 다른 유형의 삶의 태도에서 어떤 강력함을 보일 지는 살짝 미지수이겠다.

일단 '감사'라는 단어에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관심을 쎄게 가져야 '감사'에 대한 프레임이 생겨나고 '감사' 관점에서 일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감사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거나 글로 적는 것도 매우 바람직하다. 블로그에 감사를 제목으로 한 포스트를 올리는 것. 삶을 대하는 강력한 태도를 체화시키는 중요한 의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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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화 vs. 찔성 :: 2013/07/03 00:03

누군가로부터 나의 생각/행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화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왜 화가 났는지 생각해 보지 않고 일단 화가 나니까 불편한 마음에 피드백에 대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의 생각/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변명(?)들을 늘어놓으면서 피드백에 대한 1차원적인 반응이 지속된다. 그렇게 반응하는 동안 또 다른 화가 나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에 대한 불편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 식으로 피드백에 반응을 하는 과정 속에서 화가 증폭되고 화를 막으려 애쓰다 또 다른 화가 생겨나는 흐름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진한 안개처럼 나의 주변을 감싸게 되는데..

찔려서 그런 것이다. 나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화가 났다는 것은 그 피드백이 나의 생각/행동에 대한 정곡을 찔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완전 황당한 피드백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화가 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무나 말도 안 되는 피드백을 받을 때는 그것을 아무런 부담 없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피드백으로 인해 내 마음 속에 화가 생겨났다면 그건 분명 나에게 의미 있는 피드백이란 것이고 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차갑게 판단해 보아야 한다.

찔리면 화가 난다. 바로 그 때 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화가 났을 때 화를 품에 안고 질주하는 것보다는 화를 지긋이 바라봐 주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화가 나의 부족함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화는 성찰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화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신호의 발생에 불과한 것이므로 더 이상 나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권력을 성찰이 넘겨 받았을 때 '화'가 생성된 보람이 있는 것이다.

찔리면 성찰해야 한다. 찔렸을 때 화가 나는 순간,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아. 나의 성찰 역량을 작동시켜야 하는 시점이 왔구나. 여기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화의 기운으로 일관하면 나는 성찰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날려먹는 거구나. 화를 낼 것인가 vs. 성찰할 것인가. 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있는 것이다.

'화'는 매우 중요한 감정 메커니즘이다. '화'는 나를 열 받게 하려고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도와주기 위해 생성되는 것이다. '화'는 폭발로 귀결되기 위해 생겨나지 않고 고요한 성찰의 여행길로 나를 인도해 주는 귀한 가이드인 것이다.

찔렸을 때 불같은 분노로 일관할 것인가(찔화), 찔렸을 때 차분하게 성찰할 것인가(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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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것 :: 2013/05/31 00:01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수가 있다.
"나의 팔자가 확 바뀌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다면 나는 X를 꼭 해보고 싶다."

X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바람은 일종의 재귀놀이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팔자가 확 바뀐다 해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블로깅이다. 난 팔자가 확 바뀌지 않은 지금 이 순간 블로깅을 하고 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지금 하고 있어서 즐겁다. 팔자가 확 바뀌면 나를 구속하는 제약들이 확 없어질 것 같지만 구속은 어느 상황에서나 존재한다. 핵심은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그걸 지금 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즉, 팔자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제한된 시간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위한 우선순위 배정을 결단하고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가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또한, 제약이 많은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확연히 드러내 보이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대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쏟는 대상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나의 좋아함'에 뭔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나만의 개인적인 여가 시간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나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을 온통 회사 일에 투입한다고 가정해보자. 물론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나는 분명 회사 일을 가장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그렇다고 변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일에 모든 시간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선택지보다 회사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선택지에 시간을 투입했을 경우 상대적으로 회사 일에 소홀하게 될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면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은 회사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그로 인해 얻게 될 마음의 평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 봐야 한다. 그런 내 자신이 싫다면 나는 '나의 좋아함'을 리뉴얼하는 것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현재의 나의 시간 배분에 대해 만족하든 불만이 있든 명백한 것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있는 대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란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라기 보단 "내가 지금 좋아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는가?"일 수 있겠다. 나의 경우, 블로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고로 나는 블로깅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블로깅을 가장 좋아하는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좋아함'이 참 좋다. ^^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의 좋아함'의 원인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왜 나는 그것을 좋아하는가? 왜 나는 그것 이외에 내가 관심을 줄만한 선택지를 외면하고 있는가?

"나의 팔자가 확 바뀌어서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 있다면 나는 X를 꼭 해보고 싶다."란 생각을 종종 해볼 순 있겠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시간이 지나면 그 X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확연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내가 정말 X를 좋아하는 것이라면 나는 결국 X에 시간을 투입하게 될 것이고 말로만 좋아하는 것이라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는 X에 좀처럼 시간을 투입하지 못할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 그건 말로 뱉는 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꾸 X에 대해 말을 하냐고?  그건 인간이 재귀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X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X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재귀의 말장난을 일삼을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행동으로 판명나게 되어 있으니 재귀 놀이는 시간과 행동으로 결국 진정성이 판명나는 것이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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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귀 해석 :: 2013/04/15 00:05

두려움,불안,기쁨,슬픔,..  감정은 일종의 메세지이다. 뭔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근데 감정에 감정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메세지는 해석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움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기억을 기억하고 혁신을 혁신하고 관찰을 관찰하고,..  대상 자체보다 대상에 대한 행위를 중첩/순환시키는 재귀 놀이는 유익하다. 하지만 감정에 대해선 재귀놀이를 살짝 자제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불안을 불안해 하고 슬픔을 슬퍼하는 것은 무한루프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TV 드라마를 보면 A에 집착하는 B의 이야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도대체 B는 A에게 무슨 전생의 연을 크게 구축했기에 저리도 A만 바라보며 A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일종의 감정 무한루프에 해당한다. 결국 B는 A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A에 집착하는 B'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집착을 하게 되고 누군가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잘 모른 채 집착이란 행위 자체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렇게 집착이 집착을 계속 반복 생산하는 집착 증폭 회로 속에 갇혀 '집착하는 사람'에 집착하는 무한루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집착의 어느 단계가 되었든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집착의 고리를 쭉 따라가 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최초 단계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없음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 나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뭔가를 내 안에 채우고 싶었고 그것을 채우려는 마음이 잘 충족되지 않다 보니 쓸데 없는 집착을 계속 증폭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최초의 허전함은 인간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부여 받은 존재적 불안, 존재적 공허함에서 기인된 것일 테고.

결국 TV 드라마 속의 B는 A가 아닌 B 자신을 스토킹했던 것이다.  (일종의 재귀 로봇)



두려움도 불안도 슬픔도 다 비슷하다. 원초적 대상이 모호한 상황에서 나 자신의 심리적 상태가 어떤 감정을 촉발시키고 나의 심리가 그런 감정을 계속 육성하고 심리와 감정은 서로 화려하고 정교한 1:1 패스를 주고 받으며 나를 어디론가 휘몰고 간다. 이런 식으로 드리블 당하면 정말 어리버리 허수아비처럼 질질 끌려 다니기 십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감정의 무한루프에 빠져들 수 있는 취약한 멘탈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무한루프 자체를 관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에 시선을 주게 될 것이고 무한루프에 나의 시선을 부여하는 순간, 무한루프는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고리를 따라가니까 고리의 힘이 강한 것이지, 고리 자체에 대한 질문과 의심을 제기하면 고리는 이렇다 할 답변을 주기 어려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무한루프는 약화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재귀 놀이는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어리버리 나도 모르게 재귀 놀이를 당하면 안 된다. 재귀 놀이의 주체는 나이고 나는 재귀 놀이의 대상을 임의로 정하고 그것을 의식적인 패턴 속에서 즐기면 된다. 나도 모르게 나의 뇌 속에서 플레이되는 재귀 놀이가 혹시 탐지될 경우 그것에겐 '응시'라는 최고의 보약을 선사하면 게임이 끝나게 된다. 능동적 재귀 놀이를 즐기고 수동적 재귀 놀이를 제어하고. 재귀 놀이의 세계. 배우면 배울수록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존재와 불안
설정 자체가 함정이다.
감각재귀
재귀 놀이
내가 나를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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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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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47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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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과 기생 사이 :: 2013/04/01 00:01

정신기생체
콜린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나는 과연 온전히 하나인가?  내 안에서 상반되는 2가지 생각이 서로 다투고 갈등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홀린 듯이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고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일삼고.  굳이 소설가적, SF적 상상력이 없어도 정신기생체란 말은 그닥 황당한 개념은 아닌 것 같다. 정말 내 안에 뭔가가 기생하면서 나를 끊임 없이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가끔 드는 것이 사실이니까.

만약 내 정신 속에 뭔가가 정말 기생체의 형태로 존재한다면, 그건 나를 공격하는 적의 면모와 나 자신이란 자아의 면모를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외부에서 내 안으로 유입된 유해하기만 한 존재라면 어떻게든 박멸하는 것이 답이겠으나 정신 기생체는 그렇게 무작정 적대적 대응을 하기만 해선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힐 때, 부정적인 감정에 함몰되어 무기력해질 때.. 기생체에 의해 유린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내 안의 또 다른 나의 메세지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다. 즉, 모든 감정을 일종의 자아 분열로 볼 수 있고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자아의 분열로 여기고 각각의 분열된 자아가 나에게 주는 느낌을 특정한 지향을 지닌 메세지라고 해석한다면 방향성은 자명해질 수 있다. 불안이란 감정이 생긴다면, 나는 나로부터 분열된 '불안' 자아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해석하고 불안 자아와 대화하면서 나로부터 분열된 자아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다. 그건 기생체라기 보다는 공생체에 가깝다고 봐야겠고, 나에게 공생적 메세지를 자신 만의 언어와 암호 형태로 나에게 발신하는 것이고 메세지를 수신한 나는 그 메세지에 적절하게 대응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메세지가 나에게 도달했는데 그 메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갈팡지팡, 좌충우돌 모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분열된 자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생의 의도로 보낸 메세지를 기생으로 오인하는 것이고 공생체를 기생체로 대우하거나 존재 자체를 인지 못하고 자아 혼란 상태에 빠지게 되면 나에게 보내진 메세지는 공중에 붕 뜬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게 되고 메세지를 받지 못한 나는 그로 인한 불이익을 어떤 형태로든 받게 된다.  

만물은 메세지이다.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역동적 자아이고,
분열된 자아는 끊임 없이 메세지를 나에게 발신한다.

나는 메세지이자,
메세지 발신자이면서
메세지 수신자이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분열된 자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데만 평생이 소요된다.
분열된 자아와 어떻게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친밀하게 소통할 것인가?

우연히 제목을 접하게 된 '정신기생체'란 책.
그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그 책의 제목 하나를 갖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



PS. 관련 포스트
만물은 메시지다.
폰봇
맘봇
고수,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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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 toms

    Tracked from new toms | 2013/06/13 11:15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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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1:15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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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중독 :: 2013/02/27 00:07

감정은 술과 같다. 술에 취하고 술에 중독된 사람은 술에 휘둘리는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속 술에 휘말린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취하고 감정에 중독된 자는 감정에 유린되는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감정에 계속 희롱 당한다.

술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을 술에 쩔게 만들고 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술이 영원무궁토록 성장하는 것이 술이 갖고 있는 절체절명의 미션이다. 술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장을 이끌어간다. 술의 성장에 사람이 얼만큼 유린될 수 있는가?  술에게 있어 최대의 질문이자 화두이다.

감정은 사람을 취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을 감정에 푹 젖게 만들고 감정상태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들어 감정이 영속성을 갖고 성장하는 것이 감정이 갖고 있는 숙명이다. 감정은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장을 지속한다. 감정의 성장에 사람이 얼만큼 희롱될 수 있는가? 감정은 성장에 목을 매는 기업보다 더 치열하게 지속성 있는 성장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성장을 위한 열쇠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감정은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을 자신의 입맛대로 다스리기 위한 갖은 술책들을 고안해내고 있다.

술이 사람을 취하게 만들고 감정이 사람을 뒤흔들어 놓는 상황. 술은 저리도 치열하게 성장을 고민하고, 감정은 혼신의 힘을 다해 성장계획을 수립/실행하고 있는데 사람의 성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은 무엇을 대상으로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가?

중독은 성장에 대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을 때 발현되기 쉽다. 만물은 어떤 식으로든 존재와 성장을 지향한다. 하지만 성장에 대한 지향이 약한 존재는 성장 지향이 강한 존재와 만나서 상호작용을 할 때 아무래도 성장 게임에선 밀릴 수 밖에 없다. 성장 지향이 약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몸에 잘 받고 술을 마시면서 즐거워지고 뭔가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욕망을 충족받고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과정. 술 중독에 일단 빠지면 성장지향이 강한 술에 계속 휘말릴 수 밖에 없고 휘둘리면 휘둘릴수록 술의 성장 속에서 자신의 성장은 미궁에 빠져버리는 상황이 심화된다.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뭔가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뭔가에 중독되어 허우적거릴 때 뭔가는 허우적대는 자를 발판 삼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고 중독된 자는 뭔가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과정 속에서 정작 자신의 성장은 정체를 넘어 역성장을 하게 되는 안쓰러운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중독은 뭔가를 성장시키는 동시에 뭔가에 빠진 자는 역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런데 +와 -의 크기가 사뭇 커서 플러스 성장을 향유하는 자와 마이너스 성장을 강요 받는 자 간의 간극은 심대한 것이고 중독된 자는 역성장에 역성장을 거듭하면서 성장에 관한 한 완전히 주도권을 내어놓고 가벼운 객체가 되어 뭔가에 의한 휘말림을 지속하면서 소외에 관한 한 달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감정이 치열하게 성장을 준비하고 술이 집요하게 성장을 모색하는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감정과 술의 성장세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자신 만의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감정 중독, 술 중독은 나의 성장 계획이 없다는 징표이다. 감정이 나를 휘두르려고 할 때, 술이 나를 삼키려 할 때, 잠시 멈춰서 "나의 성장은?"이란 질문을 소환해 보자. 그리고 "나는 무엇을 발판 삼아 성장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시도해 보자. 인간이 소외당하기의 달인이라면 감정과 술은 소외시키기, 성장하기의 달인이다. 감정과 술에 휘둘리기 보단 감정과 술과 대화를 해보자. 그리고 그들의 노하우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 그들만큼 나에게 성장과 소외에 대해 잘 가르쳐 줄 스승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감정은 만인의 뇌에 기생하고 있는 찰거머리같은 존재이니 술처럼 돈이 필요하지도 않고 수시로 호출할 수가 있다. 감정 중독에 쩔지만 말고 감정과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눠보자. 감정에게 물어보자. 넌 어쩜 그렇게 사람을 잘 소외시키니? 넌 어떻게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고 너만의 성장을 끊임없이 주도해 나가니?  감정은 순간 당황하긴 하겠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 줄 것이다. 아무도 감정에게 그것을 묻지 않아서 대답을 안 해주는 것이지 그걸 대놓고 묻고 가르침을 요구한다면 감정은 우쭐거리면서 자신의 비법을 슬쩍 내어줄 것이다.

감정 중독. 더 이상 인간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젠 감정 유린의 시대를 이끌어 가야 한다.  단, 감정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 한해서. ^^




PS. 관련 포스트
감정의 파도를 서핑한다
감정의 창조
감정 네이밍
감정 업신여김 놀이
감정, 알고리즘
나의 마음을 팔로우한다
목적이 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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