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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배설 :: 2010/10/01 00:01

동적평형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은행나무

xmio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이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터라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열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저자가 보여줬던 동적 평형 개념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는 분자의 흐름 자체라는 개념. 잔잔한 수면으로만 보이는 강을 가까이서 쳐다보면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인 것처럼, 생명체는 고정된 형체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 정보가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는 흐름체라는 사실. 정보의 유출입이 생명체의 본질이라면, 생명체의 일부인 뇌도, 손도, 발도, 눈도, 배도, 모두 정보의 유출입 흐름으로 규정할 수 있다. 고정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계속되는 정보의 유출입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지혜도 일종의 생명체라 볼 수 있다.  정보의 흐름을 막고 정보를 저장하고만 있으면 정보는 썩게 되고 썩은 정보의 집합체는 죽음을 향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그 내용을 고정된 개념으로 머리 속에 통째로 넣고 저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보는 머리 속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생각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정보의 동적평형 흐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수용하기만 하면 안되고 수용한 정보를 배설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건 흡수한 정보를 완전 분해해서 맥락을 해체시킨 후에 내 생각 속에 녹여 넣고 나머지 찌꺼기는 내 생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정보 흡수에만 포커스했다면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것에 포커스할 경우, 정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보 속에서 내가 버릴 것을 찾는 작업 속에서 '나'라는 맥락에 가까운 정보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내 안에 또 다른 나로 흡수하는 과정 속에서 동적평형체로서의 내 생각과 지혜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된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건 나와 함께 갈 것과 함께 가지 않을 것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욱 '나'스러워 지는 것이다. 정보를 흡수만 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간은 정보의 동적평형 흐름 그 자체이다.
정보를 먹기만 하면 안되고 정보를 배설해야 한다.
정보를 먹기 위해 싸고, 정보를 싸기 위해 먹는다.
정보를 먹고 싸는 과정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책은 씹어야 맛이다.
세포와 세포 사이
Birth & Death - 생명은 동적 평형의 흐름 그 자체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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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Playing | 2010/10/14 14: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안녕하세요 ~ 좋은 소개 글 잘 봤습니다

    제가 생물공학전공이라서 더 읽고 싶네요
    사실 생명을 규정하는 여러가지 지식들이 있지만, 결국 가장 어려운 것(가장 가치있는 것)이 언급하신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겠죠
    새로운 걸 만든다는 게 바로 내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걸 '선별'하고 필요하다고 받아들인 것들을 기존의 것과 '비교'해서 유사한 곳에 보관하고, 독특한 것들은 나중을 위해서 잠시(?) 저쪽으로 나두는 거죠~

    여하튼 이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는 거 같고, 똑같은 것도 없는 거 같아요

    • BlogIcon buckshot | 2010/10/14 22:01 | PERMALINK | EDIT/DEL

      너무나 멋진 정리이십니다. Playing님의 댓글도 하나의 생명이십니다. ^^

  • BlogIcon passioning | 2010/12/12 19:4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보를 먹었으면 불순물(불필요한 or 잉여 정보)를 배설해야한다는 점에는 동의를 합니다. 다만 정보를 싸기 위해 먹는다라는 점에는 공감하기가 힘들군요. 동물이 음식을 먹는 행위의 근본적인 목적이 배설이 아닌 영양분 흡수(본질적으로는 생명유지를 위한 에너지 공급)인 것처럼 정보 습득의 목적은 지적 성장이지 정보 배설은 아닐듯합니다. 물론 적절한 배설없이는 그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나가야할 것이 안에 있으면 어딘가 트러블이 생기겠죠.) 그렇다고 해서 배설 자체가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정보 배설은 건강한 지적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12/12 20:29 | PERMALINK | EDIT/DEL

      동적평형 개념에 넘 매력을 느낀 나머지 제가 오버를 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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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 Death - 생명은 동적 평형의 흐름 그 자체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고) :: 2008/07/11 00:01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은행나무

모 서점 과학 코너를 두리번거리다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그냥 필이 꽂혀서 집어 들었고 내용 좀 훑어 본 후에 바로 구매했다.  읽는 내내 흥미롭다는 느낌이었고 읽고 난 후에 충만한 포만감이 몰려 드는 그런 책이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결코 무겁지 않고 아기자기한 특유의 니폰필로 풀어나가는 스토리 텔링 기법도 무난하게 다가온다.  생명의 비밀을 풀어가고자 하는 선대 생물학자들의 치열한 고민과 암투(?), 그들의 평생을 건 연구들이 생명의 열쇠를 푸는 단초가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지식으로 형상화 되는 과정이 매우 경이적이다.

또한,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었던 생물학계의 숨겨진 고수(루돌프 쇤하이머)를 발견하고 그의 포스 넘치는 유산을 물려 받아 '생물과 무생물 사이'란 책의 핵심 사상을 탄생시키는 과정도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 10월부터 Read & Lead 블로그는 3W 체제로 가고 있는데 (3W = 3 posts per Week, 주 3회 월수금 포스팅) 만약 Read & Lead가 4W 체제였다면 이 포스트는 지난주 '숨겨진'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자리매김했을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 제목도 Birth & Death가 아니라 '숨겨진 생명의 비밀..  어쩌구 저쩌구' 로 정했을 것 같다.. ^^


저자의 핵심 컨셉은 제9장 "동적평형이란 무엇인가"에서 드러난다.
바닷가 모래성 안에는 며칠 전에 이 성의 형태를 만들었던 모래들은 단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 전에 그곳에 쌓여 있던 모래는 모두 파도와 바람이 앗아가 바다와 육지로 되돌려 놓았고, 지금 이 성을 이루고 있는 모래는 이곳에 새로 온 녀석들이다. 즉 모래는 완전히 바뀐 상태다.  그리고 모래의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즉, 그냥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래성은 실체로서의 성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에 의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인 동적인 그 무엇이다.

이 모래성은 생명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비유가 된다.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이 유발하는 효과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표층, 즉 피부나 손톱이나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 것을 밀어내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표층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체의 모든 부위, 장기나 조직에서뿐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조차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수많은 원자는 생명체 내부로 흘러 들어왔다가 생명체 내부를 흐르며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6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6개월 전에 보았던 그 친구와는 분자적 차원에선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해변에 서있는 모래성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만들어낸 효과로서 그곳에 있는 동적인 무엇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루돌프 쇤하이머의 통찰을 빌어 저자는 생명에 대한 정의를 아래와 같이 내린다.

"생명이란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


결국 생명은 끊임없이 분자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동적 흐름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 동적 흐름의 평형 상태가 생명체의 의식적인 통제나 관리가 전혀 부재한 상황 속에서 기가 막힐 정도로 오묘하게 알아서 잘 유지되고 있다는건데..  생성과 소멸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역동적 흐름이 얼마나 정교하게 유지되길래 우리 인간은 이런 사실을 잘 인지조차 못하고 사는 것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받은 가장 큰 느낌은 내가 정말 신비롭기 그지 없는 나 자신인 생명체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유전한다(Everything Flows)'란 말을 기계적으로 되뇌고 있었을 뿐 가장 Flow가 강하게 일어나는 동적 평형 흐름인 생명에 대해선 너무 정적인 사고모델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저자는 생명에 대한 탐구를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분자생물학 교수이다.  저자의 마지막 커멘트가 매우 울림 강하게 다가온다.  현재 수준의 인간 지력이 닿기에는 생명이 너무 복잡다단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의 몸에서 기적 같은 일들이 순 간 순 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놀랍기 그지없다...  인간 자체가 충격과 경이로 가득한 공상과학 소설인 것이다.

우리는 동적 평형이 갖는 유연한 적응력과 자연스러운 복원력에 감탄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기계적으로 조작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PS.
포스트 제목을 Birth & Death로 적고 나서 내가 왜 이런 제목을 적었나 생각해 보니 아득한 옛 기억이 되살아난다. 에반게리온..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 대한 깊은 인상이 잠재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다가 금번 기회에 다시 Rebirth 되어 포스트 제목이 되어 버렸다..  Death & Rebirth.. ^^


그리고 End of Evangelion에 나오는 Thanatos도 참 조아라 하는 노래다.. ^^
[End of Evangelion] THANATOS - if I can't be yours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DNA가 이중나선 구조라는
너무도 아름답고 간단한 사실을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왓슨과 크릭은 짤막한 논문 마지막 부분에서 담담하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칭 구조가 바로 자기 복제 기구를 시사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게 아니다"라고...  
엔딩 크레딧의 나선구조가 멋있기도 하고 노래가 원체 좋기도 하여 동영상을 임베딩 시킨다. ^^

Eros & Thanatos
삶의 본능과(Eros)과 죽음의 본능이(Thanatos)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 생명의 본질..
질서는 유지되기 위해 끊임 없이 파괴되어야 한다.
생명 유지를 위한 탄생-죽음의 역동적 흐름.

작년 4월에 올렸던 Thanatos - Evangelion 포스팅의
짤막 커멘트에 대한 구체화를 금번에 대충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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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mepay | 2008/07/11 00: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이런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사서 봐야겠네요.^^
    흥미로울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08/07/11 00:16 | PERMALINK | EDIT/DEL

      제가 언급한 내용 말고도 이 책엔 흥미진진한 내용들이 참 많습니다. mepay님께서 이 책 읽으시면 멋진 포스트들이 탄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

  • ww | 2009/03/28 17: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간과하고 있는게 있네.
    생명체의 유기적인 대사활동에
    '의지'가 개입되는건 어느정도 인정받고 있는게
    학계에서의 흐름이다.
    (아직 비공식적인 논문으로 존재하지만)
    책한권보고 시부리지 말길...

  • jjooon | 2009/07/19 00:29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제가 기억하고 있는건 DNA 논쟁 밖에 기억이 않나는 군요 ㅜㅜ 다시 한번 읽어 봐야 할 듯

    • BlogIcon buckshot | 2009/07/19 00:32 | PERMALINK | EDIT/DEL

      저도 내용이 많이 흐릿해지면 다시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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