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에 해당되는 글 4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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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 2011/07/27 00:07
트리즈에 관한 책을 무심코 읽다가 갑자기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했다. 비교는 분해를 전제로 한다는 것입니다. 성적은, 월급은, 미모는, 이렇게 사람과 자연을 조각조각 분해한 후에야 비로소 비교가 가능해집니다. 비교하지 않으면 너도밤나무는 좋은 나무도 나쁜 나무도 아니고, 또 크기라는 속성으로 분해하지 않으면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아닙니다. '비교'란 주제에 대해선 예전에 수 차례 포스팅을 한 바 있는데 위의 문구에서 '분해'란 단어에 시선이 강하게 머물게 된다. 인간 뇌는 판단을 하기 위한 기준점을 늘 필요로 한다. 그래서 비교에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 뇌는 인지적 한계를 갖고 있다. 전체적인 비교 보다는 부분적 비교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교는 항상 '분해'를 수반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문제는 시작된다. '비교'를 한다는 것은 뭔가를 분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분해하게 되면 사람은 일종의 상품이 되어 버린다.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가격,스펙에 의해 비교를 당하듯, 사람도 가격비교 사이트에 등록된 상품이 되어 가격,스펙에 의해 비교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 삼아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식의 비교를 하는 것은 좋겠으나 진지하게 비교를 하고 그 비교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다분히 개그적이라고 봐야 한다. ^^ 가격비교사이트에 올려진 상품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누구하고도 비교되지 않는 브랜드로 만들어갈 것인가? 비교는 인간 본능에 매우 가깝다. 하지만 본능에 가깝다고 일상적으로 '분해'를 일삼다 보면, 너무도 피폐해져 가는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비교하려는, 분해하려는 습관을 통제해야 한다. 굳이 소중한 시간 투자해서 자신을 Commodity(범용품)화 시켜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는가? 분해할 수 있는 걸 분해해야 한다. 사람은 분해가 어렵다. 기껏 분해해 보았자 분해를 통해 나온 결과물은 이미 분해 대상과는 거리가 먼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교는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행위다. 자신과 다른 허수아비를 매일 생성하면서 다른 허수아비들과 비교하고 그 결과에 감정을 소비하는 행위는 점차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앵커,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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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그리고 졸업 :: 2011/01/24 00:04
inuit님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행복론' 릴레이가 유정식님, 이승환님을 거쳐 구월산님을 통해 나에게 오게 되었다. 그 동안 행복 관련 포스트를 몇 개 쓴 바 있어서 요번에 전체적 느낌을 함 정리해 본다. ^^
1. 나의 행복론 '행복'은 뭘까? 소비자의 결핍감 극대화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적 마케팅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행복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 허상적 갈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판타지에 불과한 게임을 현실 자체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면 허상과 결핍감은 점점 그 사이즈를 키워갈 뿐이다. 허상과 결핍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은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뇌는 그런 가상현실을 먹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 나는, '행복'이란 개념과 "나는 행복한가?"란 질문 자체에 bias가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과 욕심은 원래 하나였다. 명확한 이분법을 선호하는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 때문에 행복과 욕심은 분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행복과 욕심을 곱해 보면 대부분 1로 수렴하게 되어 있다. 행복은 욕심에 반비례한다. 행복은 욕심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나의 욕심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배제하고는 절대로 답할 수가 없다. 나는 행복론 보다는 '행복으로부터의 독립론'을 주장하고 싶다.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라는 이분법으로 나의 현 상황을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행복이란 단어 자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나'라는 존재의 흐름에 몰입하고 있는 가장 충만한 순간이다. 나는 행복이란 반쪽자리 단어에는 관심을 주고 싶지 않다. 그저 '나'라는 존재의 시공간 상의 궤적을 서핑하듯 즐기고 싶을 뿐이다. 그건 행복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저 나만의 스토리에 집중하고 싶다. 그걸로 족할 뿐이다. '행복'과 '욕심'이란 개념에 그닥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싶다. 구월산님의 릴레이 요청으로 인해, 나는 오늘 '행복'이란 개념으로부터 나름 졸업한 느낌이다. 난 행복이란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행복론이다. ^^ 2. 앞선 주자 inuit > 유정식 > 리승환 > 구월산
3. 다음 주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다음 주자가 되실 자격이 있음. ^^ 4. 규칙
1. '난 행복하다. [ ]가 있으니까.'의 빈칸을 하나의 명사로 채우고, 다섯 줄 이내로 보강 설명을 주세요.
평범한 답은 쓰지 말고, 거창한 답도 쓰지 말고 자기만의 작고 소중하며 독특한 행복요소를 적으시기 바랍니다. (금칙어: 가족, 건강 등)
2. 앞선 주자의 이름을 순서대로 써 주세요.
3. 다음 주자로 두 분의 블로거를 지정해주시고, 글을 부탁 드립니다.
4. 규칙을 복사합니다.
5. 이 릴레이는 1월 31일 11:59분에 마감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을 참조 바랍니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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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허, 알고리즘 :: 2009/09/28 00:08
어느날 유정식님의 트위터 메세지를 보게 되었다.
'행복 = 1 / 욕심' 행복의 핵심을 찌르는 힘 있는 공식이다. ^^ 디드로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낳고,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는 끝없는 인간 결핍감의 굴레를 의미한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디드로는 한 친구로부터 아름다운 진홍색 침실 가운을 선물 받았다. 새 옷을 입고 서재에 앉으니 책상이 초라해 보였다. 책상을 바꾸기로 한다. 새 책상이 들어오자 이번엔 책꽂이가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닌가. 새 책꽂이, 그다음엔 의자…. 결국 서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기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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