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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 2012/05/02 00:02

개인적으로 만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2000년 이후에 만화를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랬던 나인데.

최근에 우연히 '
신의 탑'이란 웹툰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호기심이 생겼다는 이유 만으론 만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이 존재하기 때문에 별도의 시간을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공간이 허락된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만화를 봤다.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면서 만화를 봤다.
내 일상에 전혀 부하를 주지 않으면서 만화를 봤다.

결국 정주행을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다 봐버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1~2년 후에 정주행을 시작해도 좋았을 걸.

신의 탑을 정주행하는 만화 주인공의 행보.
전철,화장실,짜투리시공간에서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정주행하는 나의 행보.
뭔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정주행한다는 것.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트위터/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스트리밍형 컨텐츠를 짧게 짧게 소비하는 행태에 젖어 있다 보니 정주행이란 단어는 그동안 내게 너무나 어색한 개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금번 신의 탑 정주행을 통해 컨텐츠 아카이빙의 창고를 처음부터 쭉 훑어 나가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트위터/페이스북 타임라인의 짧은 글들을 소비하다 보니 정주행 방식의 컨텐츠 소비의 맛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신의 탑으로 인해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정주행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사실 e-book도 대표적인 정주행 대상이긴 하지만, 책을 원체 잘 읽지 않다 보니 이북을 가까이할 기회는 그닥 많지가 않았는데 신의 탑을 통해 '정주행'이란 단어를 제대로 의식하게 된 셈이다. 분절화된 컨텐츠의 속절없는 생성과 휘발로 범람하는 타임라인 속을 살아가면서, 느긋하고 차분하게 뭔가를 정주행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희소가치가 있는 행위이다. 타임라인 속에서 조각조각 흩어지기 쉬운 사고 패턴도 정주행스럽게 가다듬어야 하겠구나란 반성도 같이 해보게 된다. 신의 탑을 정주행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신의 탑을 정주행하게 되었고 앞으로 정주행 모드를 내 일상 속에 더 많이 확산시킬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게 되어 나름 기쁘다.

최근 2~3년 동안 수동적으로 피드 기반의 타임라인을 소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권태를 느끼게 된다. 이젠 나만의 타임라인을 좀더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야겠다.  최신 업데이트 기반의 타임라인이 아닌 시간의 흐름을 내가 직접 정의하고 내가 구성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만의 순서로 정보를 소비하고 나만의 플로우로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것. 신의 탑에서 배운 행동지침이다.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자유.

감옥과 자유는 타임라인을 대하는 태도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




PS. 관련 포스트
'타임라인'이란 이름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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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02 01:4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시간을 기획한다는 개념은 영화나 음악 같은 멀티미디어 예술에서나 가능한 전문적인 영역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점점 하나의 의식주 패션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과 같이 "분절화된 스트리밍 컨텐츠"의 범람은 마치 휴고(Hugo)에 나오는 것처럼 분절된 사진 필름들을 한 장씩 삐걱삐걱 돌리는 원시적 영화 유통 방식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제 본격적인 일상(daily routines)의 산업화가 고도화되면, SNS라는 과도 체제를 넘어서 한 인물의 알고리듬 자체가 블록버스터가 되는 일이 많아지겠지요. 이건 제가 R&L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제겐 이곳이 할리우드보다 크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5/02 21:38 | PERMALINK | EDIT/DEL

      저는 The Black Ager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세상의 모습이 참 궁금합니다. 멋진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더 멋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03 00:24 | PERMALINK | EDIT/DEL

      (웬만하면 2차 댓글은 안 다는 게 관례인데 ㅎㅎ) 격려해주셔서 늘 진심으로 감사한 거 아시죠? 여기서 제 얘길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슈스케 나온 것 마냥 왜이리 긴장이 되는지... 현재 저는 'R&L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형식의 웹사이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목적이 있지만 이 블로그에 대한 트리븃이 그 큰 목적들 중 하나랍니다. 컬처리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걸고 제 모든 것을 쏟아부을 각오를 하고 있는만큼, 기성 대형매체들이 선사해주지 못하는 신선하고 희소한 컨텍스트를 '납품'하게 될 것입니다. (뭔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기대 많이 해주세요. ^^

    • BlogIcon buckshot | 2012/05/03 20:34 | PERMALINK | EDIT/DEL

      헉.. 트리븃이라니요.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준비하고 계신 웹사이트에서 그려가실
      The Black Ager님의 세상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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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플랫폼, 페이스북 :: 2012/04/06 00:06

페이스북은 거대한 관음 플랫폼이다.
'관음'이란 인간의 본원적 욕망에 기대서 만들어진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렇게 거대해진 것이다.
대형 플랫폼들은 대개 인간의 근원적 욕망을 먹고 성장하기 마련이다.

관음의 욕구는 매우 뿌리깊다.
서로 격리된 공간에 a와 b가 존재하는데 a는 b를 관찰할 수 있고 b는 a를 응시할 수 없다.
TV,영화는 대표적 관음 플랫폼으로 기능해왔다.
일종의 인간 동물원을 수시로 소비하고 끊임없이 탐닉하는 인간본능.

사람들은 페이스북 내 자신 만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 안에 타인의 삶을 담고 관음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를 격리된 공간에 담으며 가치를 발현한다.

사람들은 페이스북 내에 마련된 수많은 공간 안에 담기고 관음 당한다.
컨테이너는 컨텐츠들의 관계망 속에서 수시로 교환되는 관음의 시선을 에너지 삼아 계속 성장한다.

페이스북이란 이름의 소셜 컨테이너.
인간 욕망을 실현시키면서 오늘 이 순간도 지속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관음 플랫폼이 새롭게 정의하는 웹.

어쩌면 인간의 뇌도 그런 메커니즘인지 모른다.
뉴런과 뉴런이 관계를 맺으며 서로 관음하도록 설계되어 있는지도. ^^



PS. 관련 포스트
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담기와 담기기
관찰과 상상
The Soft-Wired G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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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06 18: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5주 간의 훈련소 생활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상근), 매우 오랜만에 buckshot 선생님을 다시 찾아뵙니다. 군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회야말로 관음 웹 경험의 표본인 것 같아요. 변함 없이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4/07 16:19 | PERMALINK | EDIT/DEL

      고생하셨습니다. 한결같은 격려를 보내주셔서 무한 에너지를 얻고 있답니다. ^^

  • BlogIcon 쏭군 | 2012/04/14 22: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 잘 읽었습니다.
    관음증의 반대쪽에 있는 '자기 드러내기' 또한 싸이월드나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실제 생활은 가난하고 비참하지만, 페이스북에서는 부유하고 여유 있는 사람인 것 처럼 자기를 드러내고, 자신의 학력이나 지식을 내세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4/15 16:30 | PERMALINK | EDIT/DEL

      자신을 완전히 가리는 것과 일부만 가리는 것은 동일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본다'라는 행위에 깃들어 있는 메세지가 자신을 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블로깅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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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갤럭시노트 vs. 구글 플러스 :: 2012/03/05 00:05

애플을 fast follow하던 삼성이 갤럭시노트를 시장에서 히트시키고 있다.
fast follower가 복제에만 머물지 않고 뉴 카테고리를 만들어내는 모습.
애플이 했던 혁신도 삼성이 선보인 갤럭시노트도 모두 복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 복제에 스핀이 있다는 것. 
애플은 거대한 스핀을 먹였고, 삼성은 의미 있는 스핀을 먹였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그래서 모든 혁신은 복제에 기반한다.
단, 단순한 복제와 혁신적 복제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다.
혁신적 복제는 복제에 스핀을 먹인다.
스핀의 존재 여부가 단순한 복제와 혁신적 복제를 구분 짓는다.

페이스북은 구글이 지배하던 웹에 멋진 disruption의 선빵을 날렸다.
구글은 페이스북의 공격에 구글플러스로 응답하고 있다.
그런데, 구글플러스는 페북 단순 복제의 범주에 머물러 있다.
이는 삼성의 갤럭시노트 반격에도 크게 못 미친다.

구글의 철학이 보이지 않고
구글의 세계관이 스며있지 않은 product.
안타깝다.


PS. 관련 포스트
창의, 알고리즘
복제,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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