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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핵심가치 :: 2012/01/27 00:07

딜리버링 해피니스
토니 셰이 지음, 송연수 옮김/북하우스


이 책을 읽고 '행복'이란 단어에 주목하고
앞으로 행복을 멋지게 추구하면서 살아야겠다란 생각을 살짝 했다가,
이윽고 그런 생각은 저자의 페이스에 말리는 1차원적 반응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유형의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페이스에 휩싸인 나머지 저자가 말하는 결과론적 성공 방정식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겠다는 막연한 환상을 갖는 건 부질없는 시간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어난 결과를 놓고 성공의 원인을 그럴싸한 프레임으로 유추하는 흐름 속엔 항상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공을 논하는 책이 독자에게 전달하는 함정에 젖어 들면서 성공을 간접경험하는 과정 속에서 정작 독자의 성공은 길을 잃게 되는 것. 그게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대표적 가치(?)가 아닐까 싶다. 성공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함정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고, 그런 책을 찾는 독자 역시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맥락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함정 속에서 만들어진 책과 함정에 빠지기 쉬운 독자가 만났으니 그 결과는 너무도 자명한 트랙으로 갈 확률이 높을 수 밖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매력적이다. '행복'이란 단어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태도 자체가 매우 싱그럽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되는 '행복'이란 개념은 저자가 체득한 개념일 뿐, 독자인 나에겐 그닥 유력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난 이 책에서 좀더 본질적인 가치를 얻을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내가 소중히 여기는, 내가 추구하는, 나를 상징하는
나만의 핵심가치를 하나의 개념으로 요약해야 함을 배웠다.
토니 셰이에겐 그것이 '행복'이다.

나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나의 핵심가치는 Read & Lead로 요약될 수 있다.
핵심가치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이 좀 특이하긴 하다.

Read & Lead의 목적어는 마음이 될 수도 있고, 책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이 될 수도 있고, 만물이 될 수도 있다. 난 딜리버링 해피니스를 읽고 나서 나의 핵심가치가 내 블로그와 잘 얼라인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만의 핵심가치를 선명하게 하고 그것을 계속 추구해 나간다면 토니 셰이와 같은 성공을 거두든, 그렇지 못하든 나는 흐뭇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내 블로그 이름이 참 맘에 든다.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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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2/01/27 14:22 | PERMALINK | EDIT/DEL | REPLY

    블로그 이름에 엄청난 자부심 가지셔야 합니다! :-) 이름 너무 좋거든요, 너무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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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발명, 그리고 용기 :: 2011/12/09 00:09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문학동네


소설 '물속 골리앗'의 작가 노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을 상상할 것인지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인 것 같다. 상상이란 단어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상'을 잘 하는 자는 '상상'이란 단어 자체를 생활 속에 붙여 놓고 살기 마련이다.

상상과 발명. 모두 용기의 영역이다. 용기가 있어서 상상을 해내는 것이고 상상을 하니까 발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용기로 회귀된다. 상상에 용기를 더할 때 상상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상상 + 용기(힘) = 상상력

용기는 뭔가를 내 손으로 창조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다.

상상은 항상 나와 나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그것을 포획할 수 있게 하는 것인 바로 용기인 것이다. 상상을 사냥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와 '나의 주변'을 탐색하고,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상상의 재료들을 채취하여 나의 상상을 구성해내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용기란 단어를 생각하니 상상력이 자극되는 느낌이다.

용기로 상상하고 용기로 발명한다.

용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용기는 샘솟는다.

결국, 몇 개월 전에 읽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책꽂이로 보내지 않고 계속 책상 위에 놓아 두었던 보람을 오늘 찾은 셈이다. 난 이 책에서 '용기'란 키워드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이 책에 미련을 가졌던 것이다. 난 기다림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


PS. 관련 포스트
불가능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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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Crete | 2011/12/09 00: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짜 공포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의 진화과정중에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에 대한 회피는 공포에 대한 상상력을 아주 강력한 행동유발(억제)제로 삼게하죠. 물론 이게 아주 유용한, 그러니까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입장에서 손쉽게 상대방의 교화를 끌어낼 수 있는 도구이기는 할테지만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희망' 역시 현재의 고달픔을 이기고 인내(기다림)하게 하는 강력한 유인제일 겁니다. 결국 공포와 희망의 적절한 균형이 건강한 영적생활과 현실생활의 기반이 된다고나 할까요. 다만 희망이란 요소에는 적극적인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죠.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에서 '용기'란 요소를 끌어내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12/11 17:12 | PERMALINK | EDIT/DEL

      공포를 직시하고 건강한 희망을 키워가는 것. 모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공포와 희망은 모두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멘토들인 것 같아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Crete님의 댓글을 통해 항상 많이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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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확, 알고리즘 :: 2010/03/12 00:02

작년 5월부터 시작한 트위터는 나에게 있어,
140자 이내로 생각을 표현하는 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표현을 '제약'한다.
그런데, 표현의 제약은 참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생각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키워드만 살아남게 되는 과정은 마치 다윈의 적자생존의 진화 게임을 방불케 한다. 140자를 훌쩍 넘는 초기 문장을 구성하는 키워드 간의 격한 경쟁이 일어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키워드들과의 합종연횡이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그런 프로세스를 통해 writer의 의도에 대해 가장 높은 적합도를 보이는 키워드 일부가 살아남게 된다.  표현의 제약 때문에 허튼 표현을 쓸 수가 없게 되고 꼭 필요한 단어 위주로 생각을 구조화하게 된다. 제약은 우선순위를 낳고 우선순위는 내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게 해준다.


트위터의 140자 제한은 '생각 확장'을 가능케 한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표현 제약으로 인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심지언 나조차 내가 적은 트윗을 나중에 읽을 때 오해할 때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오해는 의미의 확장으로 재인식될 수도 있다. 내가 의도한 취지를 압축해서 표현한 글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내 의도와 다른 쪽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건 글에 사용한 골격과 키워드가 확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연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확 고정시켜 버리지 않을 수 있고, 적당한 모호함을 갖는 트윗 메시지는 추후에 다른 의미로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트위터의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아마도, 모호함은 혁신의 이웃사촌 쯤은 될 것이다. 고로, 트위터는 생각 확장과 혁신을 자극하는 플랫폼이다.
키워드 중심으로 골격만 잡기 때문이다.


트위터 140자 제한은 컨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결핍'을 생성한다.
트윗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있는 감정. 적고 적고 또 적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런 느낌이 지속되기 때문에 트윗을 계속 하게 되는 것 같다. 함축적이고 다소 모호한 메시지를 계속 생성한다는 것은 사고의 수렴보다는 사고의 확산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핵심 키워드만으로 트윗을 날리다 보니, 핵심 키워드와 핵심 키워드 간의 중력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컨텍스트가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컨텐츠와 컨텐츠가 만나 컨텍스트를 만들어 내고 그 컨텍스트는 다른 컨텍스트/컨텐츠와 만나 새로운 컨텍스트를 낳게 되고.. 트위터는 사람과 사람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 전에 생각을 구성하는 키워드와 키워드 간의 느슨한 네트워크이기도 하다. 뭔가에 대한 지속되는 결핍감은 나를, 타인을, 나와 타인 사이를 채우면서 트윗 타임라인은 그렇게 흘러만 간다.



표현의 제약을 통한 생각의 압축,
생각의 압축을 통한 생각의 확장,
생각의 확장을 향한 끝없는 결핍감. 

트위터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내게 있어 트위터는 대화의 장이라기 보다는 나의 생각을 압축하고 구조화하고 확장하는 생각 수련의 플랫폼인 것 같다. 

한계를 통한 확장.  '한확(限擴), 알고리즘'. ^^



PS 1. 트위터의 티핑 포인트는 어디에 있을까?
트위터의 핵심가치가 '쌍방향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 Follow', '혼잣말에 가까운 트윗"이란 것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싸이월드 프레임으로 트위터를 바라보면, 트위터의 핵심가치에 대해 혼동하기 쉽다 일방향 follow가 기본 골격인 서비스에서 마주보기와 쌍방향 대화를 추구하는 건 무리다. ^^

PS 2. 관련 포스트
휘발,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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