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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에 대한 집착 :: 2011/03/25 00:05
전자책의 등장으로 "종이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란 질문이 생겨났지만 그건 우문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게 될 것이고, 궁극적으론 '책'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해질 것이다. 포맷에 집착하면 안된다.
뮤직의 디지털화를 통해 LP가 CD로 대체되었고 CD는 MP3와 스트리밍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음악은 여전히 소비되고 있다. 단지 음악을 소비하는 포맷만 바뀐 것이다. 컨텐츠를 담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포맷은 물이 흐르듯 유동하고 변모해 간다. LP, CD와 같은 포맷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 드라마, 영화의 소비 양태도 다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를 비디오로 빌려보던 아련한 추억은 이젠 아련하기만 하다. 본방사수를 못한 드마라를 이젠 IPTV로 편하게 볼 수 있다. 포맷은 유동한다. 책은 꽤 오랫동안 형태가 크게 바뀌지 않고 존속하고 있는 포맷이다. 그래서 '책'이란 포맷에 대해선 왠지 모를 집착이 보편적 정서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책도 결국은 하나의 포맷에 불과하다. 전자책이 등장해서 '종이책'이란 포맷에 영향을 주고 있다기 보단, 웹이 등장해서 '책'이란 포맷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웹 상의 e-Text와 책은 점점 그 경계가 모호해져 간다. 인터넷은 정보 소비자를 정보 프로슈머로 진화시키고 있고 저자와 독자라는 이원화된 계층 개념은 일원화된 수평 개념으로 변모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책은 그 개념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eMusic의 등장이 뮤직 산업과 뮤직 소비 양태를 변혁시켰듯이, e-Text의 등장은 도서 산업과 책 소비 양태를 변혁시킬 것이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책'이란 개념 자체를 해체시킬 것이다. 이제 책이란 개념은 종이책, 전자책에 국한되지 않고 온-오프라인, 형식지-암묵지 TEXT 전체에 통용되는 광범위한 의미로 인식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스토리를 얘기하면 할 수록, 책은 특정 포맷을 박차고 나와 공기를 가득 채울 것이다. TED 강연을 통해서도, 잘 쓰여진 퀄리티 기사에서도, 지인의 촌철살인 같은 멘트 한 방을 통해서도, 고민해서 만든 프로페셔널의 자료 속에서도, 포스 넘치는 블로그 포스트에서도, 묵직한 트윗 단문 속에서도, 나는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나는 Text를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끊임 없이 텍스트를 필터링하고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저자의 컨텍스트는 나만의 컨텍스트로, 우리의 컨텍스트로 편집되고 재창조된다. 거대한 Wiki-Text Editing Platform. 그게 텍스트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 모든 것이 웹이 되어 가고 있듯이, 모든 것이 책이 되어가고 있다. 책은 더 이상 종이책/전자책의 포맷 안에 갇혀 있지 않다. 물리적 시공간을 부유하고 버추얼 시공간을 가득 메우는 책. 이 세상 전체가 내겐 서점이다. 우린 책이 공기와도 같이 부유하는 Ambient Book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Ambient Book의 시대에선 기존의 '종이책'도 새롭게 등장한 '전자책'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포맷에 집착하면 안 된다. 포맷은 그저 유동할 뿐이다. Format Flows. ^^ PS. 관련 포스트 종이책 미래 말고 텍스트소비 미래가 궁금. ^^ Ambient Book의 시대 패턴에 대한 집착 독저, 알고리즘 반응,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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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에 대한 집착 :: 2010/10/29 00:09
바라바시의 버스트(Bursts)를 보면, 패턴에 대한 저자의 병적인 집착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도 자신의 가설대로 패턴이 펼쳐져야 속이 시원한 걸까?"란 질문이 가시질 않는다. 아인쉬타인이 광속에 대한 신념 만으로 상대성원리를 과학사에 남긴 것 처럼 인간 패턴도 열라 들이 파다 보면 레전드급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 우주의 최종 이론이 쉽지 않은 것처럼, 인간의 최종 이론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신념과도 같은 가설을 철저히 물고 늘어지면서 원하는 결과를 찾고 또 찾을 것이다. 버스트는 바라바시의 신념이 처절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 외엔 별다른 시사점을 주지 못한다. 전작 '링크'에선 좀 배울 게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배운 건 있다. 뭐든지 열라 집착하면 거기서 어떤 결과라도 나오긴 나온다는 거다. 바라바시는 엄청난 집착을 통해 감흥을 주진 못하지만 어쨌든 한 권의 책을 내긴 했으니 말이다. ^^ PS. 관련 포스트 무식,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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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알고리즘 :: 2010/04/07 00:07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의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 인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구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숫자, 측정, 논리.. 뭐 이런 것들은 대상을 장악하고 포섭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뭔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단지 뭔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읽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측정을 계속 하다 보면 측정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측정을 통해 뭔가에 대해 온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세계는 비단 미시물리 메커니즘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지 않을까? 뭔가를 장악/포섭/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숫자, 측정, 논리라는 도구를 써서 그럴 듯 하게 뭔가를 규정하고 컨트롤하려 하지만, 측정에 측정을 거듭할 수록 대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측정'이란 프레임에 대한 집착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핵심은 관계 자체를 통한 정서적 유대감과 같은 것이지, 관계에 대한 정의는 아닌 것이다. 관계를 규정하고 그 규정으로 관계를 바라보려 하는 순간, 관계는 변질되기 시작한다. 관계보다는 관계에 대한 정의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측정'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측정은 대상의 일부만을 포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측정'이란 행위를 하면서 대상 지배 욕망을 다스릴 수 있어야 측정 프레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배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무집착 측정. 공즉시색/색즉시공의 마음으로 측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측정하면 측정당하고 지배하면 지배당한다. 숫자, 알고리즘 전쟁, 알고리즘 관계의 핵심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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