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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위조와 폭포, 메를로-퐁티의 주관-객관 대립 극복의 노력 :: 2007/07/14 00:01진중권님의 미학 오디세이 2에 나오는 글이다. 데카르트가 신체와 정신을 이원화시킨 후 신체와 정신,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에 빠지는 오류에 대한 해결책을 나름대로 제시한 메를로-퐁티의 노력과 르네 마그리트의 두 그림.. (폭포, 위조) 계속 나로 하여금 생각에 빠지게 하는 사상과 그림이다. 설사 이들의 생각과 작품이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고의 전환을 자극하는 이런 시도들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메를로-퐁티는 지각을 사물의 상이 신체 속에서 반복되는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지각이 이루어질 때, 사물의 '외적인' 가시성은 신체 속에 들어와 '내적인' 가시성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각이 가능한 것은 사물들이 내 속에 그들의 내적 등가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물은 내 속에 그들의 현존에 관한 육화(肉化)의 공식을 새겨놓고 있다. 그래서 세잔은 "자연은 내면에 있다"고 말했다. ![]() 우리의 의식은 어떻게 바깥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메를로-퐁티의 방법은 '살의 존재론'이다. 그가 말하는 '살'은 살코기가 아니라, 안과 밖이 겹쳐진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그는 세계의 모든 게 이 '살'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처럼 세계가 애초부터 안팎이 겹쳐져 있다고 보면, '안(의식)'이 어떻게 '밖(객관 세계)'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저절로 해결된다. 그림 <위조>를 보라. 저 그림 속의 장면은 방의 '안'인가, 아니면 '밖'인가? 그 어느 쪽으로도 대답할 수가 없다. 여기서 '안'과 '밖'이 겹쳐 있으니까.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그림 속의 저 애매한 세계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거다. 정말일까?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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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유머는 두려움과 억압을 무력화한다. :: 2007/05/26 00:01
통제와 지배가 강한 사회에서는 유머가 체제 유지에 커다란 위협으로 느껴지기 쉽다. 유머가 내포하는 포용과 자유의 힘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부 희극론이 불타는 수도원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란 멋진 가설과 기호학, 중세 철학, 미학, 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잘 짜여진 추리 플롯이 이 소설을 빛나게 한다. 이 책에선 인간에게 불을 가르쳐 준 프로메테우스도 몰랐던 '두려움을 감추는 기술'로써의 웃음이 정의되고 있는데.. 두려움은 인간의 활동력을 자극하는 선기능도 갖고 있지만 독재자의 공식적 민중 통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고 시장 조성을 위한 회사들의 상투적 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두려움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레버로 사랑을 들 수 있는데 웃음도 또 하나의 레버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니.. 역시 웃음의 힘은 무한하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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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 같다. :: 2007/05/14 00:01모든 인간은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접속은 망 위의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이니까. 중요한 건 내 안에 있는 접속 능력을 얼마나 잘 인식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이다. 한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된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 그 데이터베이스는 인간의 의식 자체로서 모든 인류의 공통된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자신의 의식은 그것의 개별화된 표현일 뿐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천재의 영역이기도 하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 데이터베이스에 참여한다는 것이며 모든 인간은 태어남과 더불어 이 천재성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 웨인 다이어가 '마음의 습관'에서 데이빗 호킨스의 '의식혁명' 머릿말을 인용함 - '연대의끈' - 에셔 -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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