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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 역분해 :: 2012/05/25 00:05
비교 가능한 프레임 속에서 비교우위를 추구하고 비교우위를 점하면 기뻐하고 비교열위에 놓이면 슬퍼하는 모습은 자존이 아닌 타존이 지배하는 삶의 모습이다. 비교 우위/열위에 일희일비하는 동안, 비교 프레임이란 늪에 빠져 헤매는 삶의 공허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사람은 비교에 매우 익숙하다. 비교를 통해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하기 쉬워서 그렇다. 그런데 현 위치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까 쓸데 없는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수많은 비교 대상을 설정하고 비교 프레임 속에서 허덕이면서 뇌를 즐겁게(?) 하곤 한다. 외모를 비교하고 성적을 비교하고 수입을 비교하고 지위를 비교하고.. 비교는 전체가 아닌 부분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비교한다는 건 특정 부위로 범주를 좁혀 놓고 비교가 용이한 잣대를 가지고 유아적인 셈 놀이를 하는 것이다. 누구나 비교를 하는 순간 유아가 되는 것이다. 유아적 프레임 속에 갇혀서 비교 놀이를 하다 보면 점점 더 비교란 이름의 마약에 빠져 헤어나오기 어렵게 된다. 뇌가 원체 비교를 좋아하다(?) 보니 비교에서 완전 자유롭기는 매우 어렵다. 생물로 살아가면서 생물 특유의 현 위치 파악 기능을 아주 무시하기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긴 해야 한다. ^^ 하지만 생물적 본능 만을 내세운 유아적 비교 놀이에만 탐닉하는 건 너무 한심스러운 일이다. 비교는 항상 분해를 전제로 한다. 대상을 외모로 치환하고, 대상을 수입과 지위로 치환하는 유아적 분해 프레임. 분해만 하면 안된다. 분해를 한 후엔 반드시 역분해를 해야 한다. 그 균형감이 없으면 유아 셈 놀이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비교 본능의 반대편에 포지셔닝할 수 있는 놀이를 계발해야 한다. 분해를 하고 분해를 통해 대상을 피상적으로 파악하는 착시 놀이를 한 후에 흐려진 시야를 보정하는 역분해 놀이를 해보자. 숫자로 대상을 파악하고 대상과 대상을 비교한 후에 숫자를 머리 속에서 지워보자. 숫자에 대한 감 없이 대상을 바라보고 현혹성 강한 숫자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대상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원초적 진동을 느껴보자. 편의에 의해 숫자를 사용하고 편의에 의해 비주얼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지 숫자/비주얼 자체에 함몰되는 판단체계여서는 매우 곤란하다. 분해 놀이에 치우쳐 살아가기 십상이기 때문에 얼마나 역분해 놀이를 대항마로 강하게 내세울 수 있는가 여부에 통찰의 기회가 좌지우지된다. 나는 일상 속에서 역분해를 얼마나 실행할 수 있는가? 분해는 역분해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분해만 하면 바보 된다. ^^ PS. 관련 포스트 비교, 분해를 통한 허상 소비 분해와 연결 책은 씹어야 맛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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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Rhythm & Blog) :: 2011/06/24 00:04
글을 쓴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것이다.
리듬을 탄다는 것은 생각의 진동을 느끼고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생각이 유연하게 진동한다는 것은 생각의 경로가 다차원적으로 잘 닦여 있음을 의미한다. 생각의 경로를 입체적으로 관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위팅은 생각 리듬을 타는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트위터는 재즈를 참 많이 닮았다. 사전에 철저하게 기획해 놓고 뭔가를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재즈 연주가들이 즉흥 연주를 하듯, 즉흥성 가득한 읽기와 쓰기를 반복하면서 생각의 변주를 이끌어내는 모습. 트윗 jam이라고나 할까. ^^ 트위팅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힙합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올린 트윗이 '샘플링-아웃' 되어 타인의 트윗 속에서 새로운 맥락의 글로 재탄생되고, 타인의 트윗이 나의 트윗 속으로 '샘플링-인'되어 들어 오면서 새로운 맥락의 글로 변이된다. 140자의 트윗 랩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새로운 리믹스물이 생성되는 '집단 힙합' 프로세스라고나 할까. ^^ 트위팅을 통해 생성된 글들을 블로그 포스팅으로 구조화하고 포스트의 골격을 태그 키워드들로 정의하는 작업을 지속해 나갈 때, 어느덧 블로그는 수많은 태그 키워드들이 축적된 어엿한 클라우드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리듬을 탈 수 있는 생각의 경로가 입체적으로 구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태그 키워드로 다양한 블로그 포스트들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의도하고 하나의 키워드를 주제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하나의 키워드와 연관되는 다양한 블로그 포스트들이 쌓여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결'이란 태그로 49개 포스트가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연결'에 대한 나의 흩어졌던 생각들을 서로 연관지으면서 '연결'에 대한 나의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고 또 다른 생각으로의 확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태그 키워드로 필터링한 블로그 포스트들을 쭈욱 읽어 나갈 때 생각의 진동은 자연스럽게 생성되기 마련이다. 그저 포스트의 흐름에 나의 몸과 마음을 맡기고 유연하게 파도를 타듯 진동을 즐기면 된다. 또한, 수많은 태그 키워드들이 모인 태그 클라우드를 쳐다보면서 생각의 진동을 느낄 수가 있다. 얼핏 보면 태그 키워드들 간의 관계가 약하고 랜덤하게 단어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그 단어들 사이엔 미묘한 관계성이 잠재하고 있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선정한 태그 키워드들이 아닌가?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엮어 나가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계발되고 생각은 유연한 파도타기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리듬을 타는 것이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 생각의 리듬을 타고 삶의 리듬을 탄다. 나는 R&B 인디 뮤지션이다. 여기서 R&B는 Rhythm & Blog의 약자이다. 나만의 리듬을 따라 자유로운 생각의 역동을 글로 표현하는 블로깅. 리듬을 타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확인한다. ^^ PS. 관련 포스트 파퀴아오에게 배우는 리듬 튓합, 알고리즘 튓잼,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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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 2011/05/20 00:00트위터, 모바일 등으로 인해 실시간 웹/커뮤니케이션의 묘미를 느끼게 된 듯 하나, 오히려 난 비동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참 맛을 새삼 인식하게 되는 것 같다. 동시대를 산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의 의미는 과연 뭘까? 허상이 아닐까? 세상에 같은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우린 저마다 다른 자신만의 시공간 속을 살아가고,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공간의 근접성에 대한 착각(?) 때문에 동시대를 살아가고,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일 뿐. 시공간을 점유(?)하는 수많은 노드들 간의 거리는 그닥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속도는 빛보다 빠르다. 생각이란 무엇일까? 생각이란 양자에 가깝지 않을까? 시공간 상에서 아무리 멀리 떨어진 생각과 생각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양자역학의 비국소성 원리가 '생각'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공간 우주 자체가 거대한 네트워크이고, 광물/식물/동물/인간은 거기에 접속되어 있는 컴퓨터 터미널과도 같다고 볼 수도 있겠다. 만물은 진동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언어를 파동의 형태로 우주 만방을 향해 발산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신호를 송신하고 시공간을 흐르는 수많은 신호를 선별 수신한다. 만물의 진동은 곧 의도이다. 만물은 의도를 송신하고 의도를 수신한다. 파동과 파동의 중첩 속에서 패턴은 의도되고 구현된다. 의도는 보는 것이 아니라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문명이란 무엇일까?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 아닐까?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인간 인지구조의 한계로 인한 뒷북형 학습 해프닝 때문에 고전물리학 이후에 '양자'를 다룬 현대물리학이 나온 것일 뿐, 현대물리학의 내용은 오래된 미래 그 자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부터 해왔던 '생각'의 궤적을 현대 물리학은 이제서야 이해를 해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어란 무엇일까? 언어야말로 개인화의 표상 아닐까? 사람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이해와 오해의 역동적 믹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 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random한 생각의 파동을 블로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한다. 파동하는 인간. 나는 파동인이다. ^^ PS. 관련 포스트 진동적 존재로서의 마음 2 - Compilation Post 가설, 알고리즘 심로,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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