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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세관심 :: 2012/05/11 00:01

스마트폰은 관심을 분절화시키고 커스터마이징시킨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나의 관심을 극도로 세분화시키고 세분화된 관심을 철저히 나의 취향에 맞게 최적화시키게 된다. 예전엔 1시간~2시간을 진득하니 투입하던 관심이 이젠 1분 단위로 쪼개져서 운용된다.

극세화된 관심은 매우 쉬크한 태도를 취한다. 사람과 같이 있어도 사람에 관심을 그닥 많이 주지 않고 철저히 나의 관심을 끄는 정보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회의를 해도 자신에게 관심가는 정보에만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 정보는 모두 스킵한다.

스마트폰은 수많은 연결을 가능케 한 동시에 심도 깊은 단절을 리드하고 있다. 연결은 증식에 증식을 거듭하고 있으나 각각의 연결점들의 농도는 매우 희박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끊어짐 상태로 지내면서 간헐적인 연결이 일어날 뿐이다. 연결 심화 & 단절 심화.

극세화/이기주의적 관심이 심화될 수록, 문자의 힘은 드세져만 간다. 면대면 회의 대신 이메일로 일을 하고 면대면 대화, 음성통화 대신 메신저 대화가 일상을 점유한다. 그게 극세화된 나의 관심의 이기주의적 스탠스에 적합한 툴이기 때문이다.

심이 분절화될 수록, 관심의 대상인 인간도 분절화된다.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사람? 아니다. 나는 극도로 세분화되고 나의 순간적 관심 취향에 부합하는 세포 레벨의 극세화된 존재와 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결코 사람이라 볼 수는 없다.

내가 보는 드라마, 내가 읽는 책, 내가 먹는 음식에서 나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만 취한다면 드라마,책,음식은 해체 후 재조립되어야 한다. 관심/취향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관심은 드라마,책,음식 뿐만 아니라 사람마저도 재단하고 있다.

관심 기반의 연결은 관심 기반의 단절의 이면이다. 관심을 따라 연결되고 관심을 따라 단절된다.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그게 연결의 본질이다. 연결성이 좋아진 게 아니라 on-off의 자유도가 높아진 것이다. 사람도 관심 앞에선 철저히 해체된다.

나는 누구인가? 
극세관심의 총합인가? 

그럼 나는 누구와 대화하고 있는가?
나의 극세관심에 적합한 분절화된 극세모듈들인가?

관심이 세분화되고 세분화된 관심의 이기주의가 창궐하게 되고 있는데
그런 과정 속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이 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바깥, 알고리즘
감정과 관심을 지불하다
가치 에너지 준위차에 의한 '관심'의 이동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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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5/12 00:2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절 기반의 조건부 연결" 진짜 어렵고 오묘한 용어네요 ㅎㅎ 이런 스타일의 철학 세계를 여기 말고 어디서 또 경험해볼 수 있을까요? (군대 땜에) 심신이 지대로 지쳐가는 와중에도 뚫어져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 정말 닮고 싶습니다. ^^ 주말이라 정말 다행인 것 같은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2/05/12 15:44 | PERMALINK | EDIT/DEL

      저도 잘 모르고 적는 글입니다. 잘 몰라서 적는 것이고 적다 보면 좀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 항상 응원해 주시는 것이 제겐 무한의 에너지 공급처럼 느껴지구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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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알고리즘 :: 2012/04/25 00:05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뭔가에 주목한다는 것은 다른 뭔가에는 주목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심'이란 자원은 분명 제한되어 있어서 모든 것에 관심을 골고루 배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關心이 시각적 요소에 의해서만 좌우될 경우 관심은 觀心이 된다. 마음엔 관계가 좋은 양식인데, 마음은 자꾸 시각적 요소에 미혹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關心은 희소자원이고, 觀心은 잉여자원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관심을 주기란 매우 어렵다. 관심은 보이지 않는 대상 입장에선 획득 불가의 자원인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관심은 보이는 것에 크게 편향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스크린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하면 할수록 관심의 시각 집중화 현상은 더욱 심도를 더해갈 것이다. TV, PC, 스마트디바이스.. 스크린의 힘이 세질수록, 스크린 바깥에 대한 관심은 희소한 자원이 되어갈 것이다. 스크린에 노출되는 것들의 흐름 속에 시각과 관심이 매몰되어 가는 현상의 바깥에선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내가 관심을 주는 영역이 나의 관점을 규정하고, 내가 관심을 주지 않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나의 관점을 규정한다. 알게 모르게 내가 설정해버린 나의 관심영역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의식 바깥으로 밀려 나 버린 나의 비관심영역. 중요한 건 비관심영역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비관심 영역과 나 사이의 거리가 핵심이다. 거리가 계속 멀어지고 있는지 가까워지고 있는지, 비관심영역에 대한 의식적 접근을 하는 시간이 1%라도 되는지 아니면 그 희미한 가능성마저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지.. 바깥에 대한 관심과 바깥을 관찰하고자 하는 태도.

내가 '주목'이란 단어에 주목해서 얻은 수확은, 주목하지 않았던 것에 주목해야 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라는 책 제목.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자극과 영감을 받는다. 책을 읽지 않기 위해 책을 읽듯이, 주목하지 않기 위해 주목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기 위한 자양분을 책에서 얻는다. 그렇게 자양분을 책을 통해 얻다 보면 어느 날 책 없이도 다양한 사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주목도 마찬가지다. 특정 영역에 관심을 갖다 보면, 그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결국 관심은 관심의 대상 자체에 몰입하기 보다는 시각의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시각의 범주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하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시각.
그건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주어진 감각이 아니다.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각의 모습인 것이다.

관심은 결코 편향이 아니다.
모든 감각을 기울여 안과 바깥을 모두 통찰하는 것. 그것이 關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주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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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2/04/25 21:1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정말 buckshot님표 Concept-Context 브랜드 중 요즘 가장 팬이 된 것이 이 "관심"의 개념입니다. ^^ 관심이란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즉 단순히 자기 흥미를 좇는 감정 작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큰 자아의 기초를 세우는 경이로운 작업이란 사실을 buckshot님의 최근작들을 통해 일상 속에서 계속 깨우치게 됩니다. 모든 것(Every-Thing)과 함께 하는 나, 그 꿈의 실현은 곧 관심이라는 작고도 위대한 발걸음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4/25 22:24 | PERMALINK | EDIT/DEL

      작은 관심 속에 우주가 담길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생각 만으로도 가슴 벅찬 설레임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끝없이 작은 관심들을 생성해 내고 그 관심의 흐름 속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결정적인 삶의 단서이고 그것 자체로 얼마나 충분한 건지.. 저는 요즘 그걸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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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지각력 = 공간 창출력 :: 2011/08/15 00:05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김중혁의 단편소설 1F/B1에서 아래 글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1F/B1의 표지판 아래에 비밀통로가 있었다. 비밀관리실은 숫자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1층과 지하 1층 사이의 어떤 곳이었고, 슬래시(/)처럼 아무도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아주 얇은 공간이었다.
...................................................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저는 늘 층을 알리는 작은 표지판을 봅니다. 표지판은 층과 층 사이에 있습니다. 1층과 2층 사이, 2층과 3층 사이, 3층과 4층 사이...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건물관리자)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하1층과 1층 사이, 1층과 2층, 2층과 3층...  층과 층 사이에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슬래시가 없어진다면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미미한 존재들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누군가 저의 직업을 물어본다면 저는 자랑스럽게 슬래시 매니저 (Slash Manager)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사이, 얇은 공간, 그 얇은 공간의 중요성.
흐릿하게만 느꼈던 무언가에 주목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상력을 불어 넣는 능력
단서, 주목, 의미, 상상의 흐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은 결국 공간의 문제이다.
공간 속에서 틈을 발견하고 틈 속에 내재한 관계와 관계의 가능성을 파헤치는 과정
나의 블로깅도 1F와 B1 사이에 존재하는 슬래쉬(/)의 의미를 파헤치는 과정이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의미있는 뭔가를 하기 위해 헤매는 것보다는 이미 하고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수동태적 상황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뭔가를 능동적으로 한다는 착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결국 수많은 외부 입력값에 의해 끊임없이 조종당하는 삶의 에이전트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신의 삶을 관조하면서 그것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

(시)공간 좌표 상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인간.
(시)공간 좌표 상에 펼쳐지는 나의 이동경로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는가?
뛰어난 공간 지각력, 공간 해석력을 접할 때 나는 설레인다.
공간 지각력/해석력은 곧 공간 창출력이다.
김중혁의 1F/B1은 나에게 공간적 설레임을 선사하는 소설이다.



PS.  관련 포스트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나, 시공간, 해체
휘발, 알고리즘
시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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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odaeg | 2011/08/16 19:54 | PERMALINK | EDIT/DEL | REPLY

    호호호..
    잘 지내셨죠?^^
    토마토 따느라 바쁜 척 하던 토댁입니다..^^;;
    따님은 첫 방학을 어찌 보내고 계신지??
    이제 지난 글들 차곡차곡 읽어보라구요..
    근디 글이 너므 많아요..흑 ㅋㅋ

    오늘도 즐거운 날 되세요~~

    • BlogIcon buckshot | 2011/08/17 21:55 | PERMALINK | EDIT/DEL

      토댁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당~

      저의 지나간 글은 과감히 패쓰해주세요~

      즐거운 한 주 되시구여~

  • 마리 | 2011/12/24 08:39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해리포터가 생각나네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1/12/24 12:59 | PERMALINK | EDIT/DEL

      시간,공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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