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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발명, 그리고 용기 :: 2011/12/09 00:09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문학동네


소설 '물속 골리앗'의 작가 노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르리라.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을 상상할 것인지에 대해 상상하는 능력인 것 같다. 상상이란 단어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것이다. '상상'을 잘 하는 자는 '상상'이란 단어 자체를 생활 속에 붙여 놓고 살기 마련이다.

상상과 발명. 모두 용기의 영역이다. 용기가 있어서 상상을 해내는 것이고 상상을 하니까 발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용기로 회귀된다. 상상에 용기를 더할 때 상상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상상 + 용기(힘) = 상상력

용기는 뭔가를 내 손으로 창조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다.

상상은 항상 나와 나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 그것을 포획할 수 있게 하는 것인 바로 용기인 것이다. 상상을 사냥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와 '나의 주변'을 탐색하고,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상상의 재료들을 채취하여 나의 상상을 구성해내는 힘이 바로 상상력이다.

용기란 단어를 생각하니 상상력이 자극되는 느낌이다.

용기로 상상하고 용기로 발명한다.

용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용기는 샘솟는다.

결국, 몇 개월 전에 읽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책꽂이로 보내지 않고 계속 책상 위에 놓아 두었던 보람을 오늘 찾은 셈이다. 난 이 책에서 '용기'란 키워드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이 책에 미련을 가졌던 것이다. 난 기다림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 ^^


PS. 관련 포스트
불가능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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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Crete | 2011/12/09 00: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진짜 공포도 상상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의 진화과정중에 유전자에 각인된 공포에 대한 회피는 공포에 대한 상상력을 아주 강력한 행동유발(억제)제로 삼게하죠. 물론 이게 아주 유용한, 그러니까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 입장에서 손쉽게 상대방의 교화를 끌어낼 수 있는 도구이기는 할테지만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한 '희망' 역시 현재의 고달픔을 이기고 인내(기다림)하게 하는 강력한 유인제일 겁니다. 결국 공포와 희망의 적절한 균형이 건강한 영적생활과 현실생활의 기반이 된다고나 할까요. 다만 희망이란 요소에는 적극적인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죠.
    김애란 작가님의 소설에서 '용기'란 요소를 끌어내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12/11 17:12 | PERMALINK | EDIT/DEL

      공포를 직시하고 건강한 희망을 키워가는 것. 모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공포와 희망은 모두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멘토들인 것 같아요.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Crete님의 댓글을 통해 항상 많이 배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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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불안 :: 2011/09/02 00:02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배명훈의 단편소설 '안녕, 인공존재!'에는 아래와 같은 기이한 제품 설명서가 등장한다.

본 제품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공법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특정 형태의 존재를 최초로 추출해낸 프랑스 학자입니다. 물론 존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중요한 이유는 존재를 추출해내는 데 사용한 방법을 근대적인 형태의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추출해낸 존재를 응용하는 방식까지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방법론적 회의 공법은 감각기관의 정확성을 하나씩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빛, 소리, 촉감 등 세상으로부터 개체를 향해 유입되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기관은 그 자체가 오류를 범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감각정보 하나하나로부터, 결코 실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통합적인 공간을 재구성하여 인간의 머리 속에 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짜 존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기 위해 고안된 모든 디바이스를 차단해야 합니다. (전원을 연결했을 때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기기 고장이 아닙니다) 본 제품은 Dubito 회로라는 회의 회로를 통해 데카르트의 존재 추출법을 반복 시행하여 순도 높은 결정 형태의 존재, Cogito를 추출해냅니다. 회의회로 동작 결과, 모든 외부 자극과 그로 인해 제품 내부에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부정되며, 이 같은 무한 의심이 반복되면서 오로지 의심만 하는 가상자아 하나만이 남게 됩니다. 곧이어 의심하는 자아가 의심하는 자아 스스로를 의심하는 논리 순환에 이르는 순간 Cogito가 발생합니다. (전원 연결 후 오 분에서 육 분 사이에 이루어지며 이후 지속됩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떠오르는 생각 토막.

존재는 자신에 대한 계산을 한다.

존재는 자신에 대한 계산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에 대한 계산을 할 경우, 존재는 계산식 안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신에 대한 계산을 하지 않을 경우, 존재는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계산을 통해 자신을 의심 & 확신하게 된다는 것.

계산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을 뿌연 안개 덩어리로 계속 놔둔다는 것.

계산한다는 것은 계산하는 주체를 안심시킨다.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계산하지 않는 주체를 안심시킨다.

불안하니까 계산하는 것이다.

불안하니까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존재의 근원은 불안일 것이다.



PS.  관련 포스트
존재 확인의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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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확인의 압박 :: 2011/08/17 00:07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배명훈의 단편소설 '안녕, 인공존재!'에는 아래와 같은 기이한 제품 설명서가 등장한다.

본 제품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공법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데카르트는 Cogito ergo sum이라는 특정 형태의 존재를 최초로 추출해낸 프랑스 학자입니다. 물론 존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 데카르트가 처음은 아닙니다. 하지만 데카르트가 중요한 이유는 존재를 추출해내는 데 사용한 방법을 근대적인 형태의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추출해낸 존재를 응용하는 방식까지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방법론적 회의 공법은 감각기관의 정확성을 하나씩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빛, 소리, 촉감 등 세상으로부터 개체를 향해 유입되는 신호를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기관은 그 자체가 오류를 범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감각정보 하나하나로부터, 결코 실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통합적인 공간을 재구성하여 인간의 머리 속에 재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짜 존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각기관을 확장시키기 위해 고안된 모든 디바이스를 차단해야 합니다. (전원을 연결했을 때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은 기기 고장이 아닙니다) 본 제품은 Dubito 회로라는 회의 회로를 통해 데카르트의 존재 추출법을 반복 시행하여 순도 높은 결정 형태의 존재, Cogito를 추출해냅니다. 회의회로 동작 결과, 모든 외부 자극과 그로 인해 제품 내부에 가상으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완전히 부정되며, 이 같은 무한 의심이 반복되면서 오로지 의심만 하는 가상자아 하나만이 남게 됩니다. 곧이어 의심하는 자아가 의심하는 자아 스스로를 의심하는 논리 순환에 이르는 순간 Cogito가 발생합니다. (전원 연결 후 오 분에서 육 분 사이에 이루어지며 이후 지속됩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확인하곤 한다. 회사에서 이메일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은 자신이 회사에 연결되어 있음을 자신이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스마트폰을 매만지는 것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와 연결되고 자신 만의 관계망에서 소외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운동을 하는 것은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는 건강한 체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하지만,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존재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이고 존재를 의심하는 과정 자체가 존재력을 약화시키는 메커니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존재가 강력한 존재력을 과시하는 순간은 존재를 의심하며 끊임없이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를 자신감 있게 중단하는 순간이 아닐까?  존재확인의 압박을 놓을 때 존재는 탄생하는 것이다.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존재다.

존재 자체를 믿어 버릴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수행하며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중단하고 그 중단 상태를 즐기는 훈련을 몸에 익힐 필요가 있다.  존재를 의심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무의식적 행위는 사실 매우 유아적인 행위라 볼 수 있다. 그런 치기 가득한 행위를 직시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고/행위 프레임을 익혀나갈 때 존재는 더욱 강해진다.

통상적으로 인간이 불안에 빠지는 '무위'의 상태가 사실은 존재감이 충만한 상태라는 것.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n명의 독자에게 n개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소설이다. 아니 n명의 독자가 n번을 읽을 때 (n X n)개의 생각을 가능케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에 또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




PS.  관련 포스트
의심, 알고리즘
시공간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는 것.
나, 시공간, 해체
휘발, 알고리즘
시간,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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