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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보호 :: 2011/01/10 00:00
자존, 알고리즘 포스트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지위와 같은 '스펙'에서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스펙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가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이 아니라 '타존'인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나만의 성공/행복 패러다임을 의도하고 컨셉화해 나가는 자존적인 노력이 중요한데 말이다. 스펙에서 자유롭지 않을수록 '자존'은 취약해지고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타존'적 삶이 대세가 되어간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려는 노력 보다는 남보다 낫고 남에게 창피하지 않는 내가 되려는 마음이 더 강한 타존의 시대. 범람하는 타존의 압박 속에서 자존심은 점점 더 상처받기 쉽고 나약해져 간다. 타존이 강해지고 자존이 취약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위기이자 기회이다. 취약한 자존은 항상 자존심이 상처 받을 까봐 두려워하고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힘들어 하고 그런 상황을 발생시킨 대상에게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자존심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 자존심은 가장 민감하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너무나 연약하고 살짝 만져도 흠집이 생기고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와르르 무너지기 쉬운 자존심. ^^ 결국 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연하디 연한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나의 자존심과 상대방의 자존심을 모두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확보되는 셈이다. 우린 자존심 취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상대방의 취약한 자존심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는 노력 속에서 나의 자존은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 보호를 통한 나의 자존 강화라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go vs Ego → We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다시 읽으며)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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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알고리즘 :: 2009/11/02 00:02'노는 만큼 성공한다'란 책에서 참 재미 있는 문구를 읽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의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라고 생각할 때,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게 된다. 통제나 선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사람들이 자존심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두 집단의 사람들에게 정말 재미없는 영화를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영화가 무척 재미있다고 거짓말을 하게 시킨다. A집단에겐 거짓말의 대가로 100달러를 주고, B집단에겐 1달러를 준다. 그리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솔직히 그 영화가 재미있었냐고 물었다. A집단은 재미없었다고 대답한 반면, B집단은 의외로 재미있었다고 대답을 한다. 1달러 받음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가 그런 대답을 낳게 한 것이다. 불과 1달러 받고 거짓말을 하느니, 아예 영화를 재미있다고 자신을 속여가면서까지 자존심을 구기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사례는 inuit님의 가장 듣고 싶은 한 마디 yes!의 133페이지에도 나온다. 인지부조화에 대한 멋진 설명과 함께. ^^) 통제/선택의 주인이 자신일 때 자존감/주인의식이 급상승하는 현상.. 문득, 좀비, 알고리즘에서 인용했던 좀비적 인간의 삶에 대한 포스트 2개가 떠오른다. ^^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는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가 인간을 인형 끈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유전자의 단백질 합성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단백질 합성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간의 행동은 신속하게 일어나므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선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최대한 사전에 많이 프로그램으로 미리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인간의 몸 속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 수동성이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인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능동적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착각을 갖게 하는 것이지 사실 인간을 통제하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프로그램적 입력은 이미 뇌 속에 심어졌고 그것을 통제하는 강력한 사령관이 유전자일 수 있다. (원격, 알고리즘 중에서) 유전자는 동기부여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인간을 원격으로 엄청난 조종을 하면서도 사람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을 선택/결정한다고 착각을 하게 하니 말이다. ^^ 경영은 유전자로부터 동기부여 방법론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 결국 기업의 구성원 동기부여는 조직 구성원의 자존심/주인의식 관리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유전자와 같은 고도의 넛지/우직스런 우회적 간접통제 리더십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 편으론 '무위(無爲)'라는 개념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유전자의 영향권 아래 있고, 우주/지구/생태계를 주관하는 자연법칙의 지배 하에 있는 인간이 진정 자신의 통제 하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사실, 냉정하게 판단할 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판단/선택/결정/행동한다는 착각만이 존재하는 것일 뿐.. 사람은 세상에 손님으로 온 것이지 주인으로 온 것이 아니다. 주인은 따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주/생태계를 움직이는 법칙이 주인이고 그 안에서 인간을 포함한 수많은 정보들은 단지 주어진 제한적 역할을 묵묵히 기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무위의 의미는 '하지 않음'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고 내가 뭔가를 통제/지배한다는 착각을 없애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약하면 '주제넘게 오버하지 마라'라고나 할까.. 아무래도 인간은 '주인의식'이란 허상을 버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겸허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주/자연 속에서 인간은 거의 free-rider이니 말이다. 딱히 인간이 우주/자연에게 value-addition하는 것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저 인간은 자연에게 엄청난 쓰레기를 초고속으로 퍼붓고 있을 뿐이다. ^^ 요즘 '무위'란 단어가 참 맘에 들어지기 시작한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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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힐, 알고리즘 :: 2009/02/20 00:00
난 하이힐을 유심히 본 적이 거의 없다. 구두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스포츠카를 베이스로 디자인된 람보르기니 하이힐은 눈에 좀 들어오는 편이다. 그리고 13년 전 시절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나는 직장 2년 차였고 결혼을 7년 앞둔 미혼이었다. 어느 날 직장 친구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게 되었는데 상대 여성의 키가 무려 174cm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순간 공포감이 몰려 왔다. 내 키는 딱 170cm이었기에.. 결국 난 결단을 내렸다. 퇴근 후 바로 명동으로 직행했다. 슈즈샵에 들어가서 키높이 구두를 구입했다. 굽이 12cm였다. 170이었던 나는 180에 육박하는 장신남으로 변신했다. 구두를 신고 매장을 나서는데 순간 현기증이 몰려 오면서 휘~청~ 했다. 어색함과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집으로 돌아 왔고 다음날 나는 당당한 자신감을 갖고 회사로 출근했다. 몰라보게 커진 나의 키에 회사동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난 며칠 후 당당하게 소개팅에 나섰다. 그 후 약 3개월간 무리한 만남을 지속하다 무릎이 다 나가는 고통을 겪은 끝에 키높이 구두와 결별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신발을 신는 동안엔 다른 내가 된 느낌을 갖고 변화된 신체가 주는 보상감을 뇌로 충분히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절대 신발 벗고 들어가는 음식점엔 가지 않았던 그 당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습다. ^^ 바야흐로 슈즈의 전성기인 것 같다. 슈어홀릭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여성 액세서리의 대명사인 핸드백은 이제 구두를 경계하기에 이른 모습이다. 자동차가 남성 욕망의 상징이라면 구두는 여성 로망의 상징이다. 하이힐은 높이에 대한 꾸준한 천착을 통해 이제 '킬힐(Kill Heels)' 시대를 열고 있다. 죽이는 높이의 킬힐은 디자인을 더욱 날카롭게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슈어홀릭들에게 높이로 인한 고통과 매혹을 통한 환상을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킬힐은 착용자를 변화시킨다. 킬힐은 인간 욕망의 확장이다. 킬힐을 신는 순간, 걸음걸이가 바뀌고 몸짓이 달라지고 자존감은 특별해진다. 신체의 변화가 일어난 것과 같은 효과이다. 고통과 쾌락의 인터페이스에 킬힐이 존재한다. 무릎만 안 나갔으면 난 지금도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을지도. ^^ PS. Two Models Fall, Many Stumble at Prada 2008년 9월, 런웨이에서 18cm 킬힐을 신고 나온 모델이 넘어지고 있다. (1분48초 무렵)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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