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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 알고리즘 :: 2010/01/08 00:08![]() Let’s Get Persian 아티클에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2가지 상반된 상황에서 각각 의사결정을 내렸다. '술에 취했을 때 vs.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 이 2가지 상황에서 동일한 의사결정이 도출되었을 때에만 그 결정에 의한 액션을 취했다. 맨 정신으로 모든 일에 명민한 판단력을 과시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이성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고, 논리는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이성과 논리는 대상을 장악하고 포섭하려는 욕구에서 기인한 현혹적 프레임일 뿐이다. 이성/논리의 밑바닥엔 본원적 마력을 갖고 있는 감정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다. 맨 정신으로 이성과 논리를 동원해 내린 판단엔 분명 감정적 오류가 깃들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무리 사실을 직시하려고 해도 감각기관의 한계는 인간과 사실 사이에 장막을 드리우기 마련이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의사결정을 위해 술에 취했다는 사례에서 인간의 '편향' 본능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은 그야말로 '편향 덩어리'인 것이다. 판단력을 가동하는 것 자체가 편향인 것이다. 탁월한 판단력은 "나의 판단이 어디로/얼마나 편향되어 있는가?"에 대한 직시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편향을 먹고 살면서 편향 극복을 통해 성장한다. 편향을 의식/컨트롤하는 딱 그만큼 말이다. ^^ Confirmation bias (확증 편향: 어설픈 자기 판단/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보기) PS. 관련 포스트 감정, 알고리즘 숫자, 알고리즘 속뇌,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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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알고리즘 :: 2009/01/28 00:08
'상식 밖의 경제학'엔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의 하나.. MIT 슬론 경영대학원 학생 100명에게 Case 1과 같이 3가지 선택을 제시했을 때 학생들은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을 온라인 정기구독보다 훨씬 더 많이 선택했고 오프라인 정기구독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반면, Case 2와 같이 2가지 선택을 제시했을 때 학생들은 온라인 정기구독을 온/오프라인 정기구독보다 더 많이 선택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건 바로 미끼의 힘이다. Case 1에선 당근 온/오프라인 정기구독보다 못한 것으로 보이는 오프라인 정기구독이 버젓이 온/오프라인 정기구독과 같은 가격으로 등장한다. 미끼로 등장한 오프라인 정기구독은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을 빛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0명의 투표를 받고 유유히 사라진다. 미끼의 도움을 받아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은 온라인 정기구독을 큰 표 차로 따돌리며 최고의 선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Case 2에선 미끼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끼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온라인 정기구독과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을 냉냉하게 비교했고 결국 온라인 정기구독이 온/오프라인 정기구독을 따돌리고 승리하게 된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 댄 애리얼리는 인간의 비이성적인 사고 패턴을 콕 집어서 얘기한다. "인간은 절대적인 판단기준에 의해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콕 집어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상황이 조성되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댄 애리얼리의 지적은 날카롭다. 사람은 비교에 익숙하다. 특히 알기 쉬운 비교에 익숙하다. 위의 Case 1에 등장한 미끼는 비교를 매우 편하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오프라인 정기구독 125달러보다 온/오프라인 정기구독 125달러가 나아 보인다. 그런 쉬운 비교 속으로 사람들을 살짝 빠져들게 하면서 정작 중요한 비교인 온라인 정기구독 59달러와 온/오프라인 정기구독 125달러 간의 진검 비교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쉬운 비교를 전면적으로 부각시켜 중요한 비교를 상대적으로 어려워 보이게 하고 회피하게 만드는 상술.. 인간의 비이성적인 사고 패턴을 확실하게 레버리지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이 갖고 있는 비이성적 사고 패턴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반성/지양/실험/활용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할 것 같다. 어처구니 없는 미끼에 낚여서 정작 중요한 판단을 홀라당 놓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슬쩍 리뷰도 종종 해봐야 할 것 같다. 원시적 알고리즘을 갖고 현대를 살아가려니 뇌가 얼마나 힘들겐노.. ^^ PS. 쉬운 비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쉽게 비교할 수 있는 상품/서비스를 끝없이 만들어 내는 소비자 시장. A를 사면 A보다 더 좋은 B가 갖고 싶고, B를 갖게 되면 B보다 더 좋은 C를 갖고 싶고. 인간은 비교의 무한 고리 속을 끝없이 순환하며 뇌의 휘발성 쾌락을 속절없이 추구하는 우직스런 알고리즘 그 자체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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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ll communication :: 2007/12/19 07:59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 에 아래와 같은 일화가 나온다. 1939년, 알프레드 히치콕은 조앤 폰테인과 로렌스 올리비에를 주연으로 '레베카'를 감독했다. 당시 21세의 폰테인은 주연을 처음 맡는데다, 천재 배우로 알려진 올리비에의 상대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몹시 초조해했다. 다른 감독이라면 그녀의 불안감을 달래주려 했겠지만 히치콕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주고받는 뒷말을 그녀에게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그 배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올리비에마저도 사실은 자신의 아내 비비안 리가 그 역을 맡기를 바랐다는 얘기가 폰테인의 귀에 들어갔다. 그녀는 소외감이 들었으며,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녀의 배역에 정확히 들어맞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레베카에서 해낸 기념비적인 연기는 그녀의 영광스러운 경력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 '레베카' (Rebecca 7/13) 말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myth이다. 타인에게 의도된 행동을 유도하는 말을 할 때 그 말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타인은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쌓기 마련이다. Push형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대상에 대한 우월감이 기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의도된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커뮤니케이션 대상에게 메시지를 단선적으로 push하지 않고 스스로 특정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끄는 pull형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한다면 훨씬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대리석 안에 갇힌 인물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엔서니 라빈스는 '성공'을 자신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글래디스 테일러 멕게리는 '의사'를 환자 내면에 있는 의사를 깨워서 스스로를 치유케 하는 자로 정의한다. 리더십은 직원들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우는 것이다. 결국 창조, 성취, 치유, 리더십은 모두 Pull에 관한 이야기이다. 커뮤니케이션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타인에게 메시지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타인 내부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메시지는 이미 타인 안에 있다.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는 타인 안에 잠재된 메시지를 스스로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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