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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의 환상, 강연과 약연 :: 2011/07/15 00:05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휘발에 대한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세상 전체가 휘발 플랫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휘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휘발은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졌을 뿐이다. 만물은 그저 존재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존재와 존재 사이의 연결 고리의 강도만 세졌다 약해졌다 하는 진동의 양태만 달라질 뿐이다. 휘발은 올바른 표현이 아닐 수 있다. 휘발보다는 약연(약한 연결)이 올바른 표현일 수 있다. 나의 의식적 기억이 휘발되었다고 느끼는 정보는 나와의 연결이 약해졌을 뿐 휘발된 것이 아니다. 그 정보와 나를 잇는 연결 고리가 다소 약화된 것 뿐이다. 약화된 연결고리는 어떤 기회를 통해 다시 강한 연결이 촉발될 수 있다. 결국 핵심은 연결이다. 나와 나를 둘러 싼 외부(?)가 나와 어떤 연결을 맺고 있는지에 포커스해야 한다. 나를 대상과 이어주는 강연(강한연결)과 약연(약한연결)이 나를 형성하고 나를 만들어 간다. 나를 계발하는 것은 나의 강연과 약연을 계발하는 것이다. 휘발(?)은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온다. 휘발되었다고 서운해 할 필요가 없다. 약연은 때가 되면 강연이 되기 마련이다. 무수한 약연들은 의식 관점에선 휘발이지만 무의식 관점에선 거대한 잠복을 의미한다. 거대한 빙산과도 같은 약연 덩어리들에 적절한 자극을 가할 수 있는가가 관건일 뿐이다. 적절한 자극이 가해지면 거대한 잠복의 빙산 속에서 강연은 재생되기 시작한다. 저장에 대한 환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에 오류가 숨어 있다. 정보는 저장이 아닌 접속의 대상이다. 저장하려고 애쓰는 것은 근원적 엔트로피에 대한 헛된 저항이다. 저장이란 무리한 개념보다는 연결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약연'이란 이름의 거대한 빙산은 우아한 성장을 지속한다. 약연은 언젠가 강연이 되고 강연은 약연이 된다. 강연은 강연대로 가치가 있고 약연은 약연대로 매력이 있다. 세상 전체가 연결 플랫폼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 휘발, 알고리즘 거잠, 알고리즘 딜리셔스, 아카이빙, 엔트로피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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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셔스, 아카이빙, 엔트로피 :: 2010/12/20 00:00
대표적 소셜 북마킹 서비스였던 딜리셔스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사실 딜리셔스는 웹 2.0이란 단어가 폭발적 거품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도 그닥 트래픽이 많은 사이트는 아니었다. 그저 소수 유저들의 온라인 북마킹 서비스로 포지셔닝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름 딜리셔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서비스를 종료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좀 서운하긴 하다.
그런데, 막상 서비스가 종료할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어도 그닥 백업할 마음은 잘 안 생긴다. 어차피 웹엔 정보가 널렸고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나름 확보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딜리셔스에 저장해 놓은 정보들을 다 잃는다고 해도 딱히 아쉬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딜리셔스에 저장해 높은 정보들을 나중에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정보의 생성과 휘발이 폭주하는 웹에서 딜리셔스는 참 힘들었을 것 같다. 딜리셔스를 잘 사용하려면 정보의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고 그것을 참조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아카이빙 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한 나머지 자칫 지칠 수가 있는 것이다. 막상 열심히 아카이빙을 하고 난 후엔 기력이 소진되어(?^^) 저장해둔 정보를 나중에 활발하게 조회하지 않게 되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나름 소비하게 될 경우, 책을 읽다가 지친 나머지 책을 읽고 난 후에 무기력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인위적인 개인화 서비스에 한계가 있듯이, 인위적인 아카이빙엔 분명 한계가 있다. 아카이빙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카이빙한 정보를 나중에 다시 참조하는 것도 물 흐르듯 자연스런 사용자 플로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딜리셔스는 아카이빙에 너무 많은 인위적 노력이 수반된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사용자 플로우를 제공해도 뜰까 말까인데 말이다. 그만큼 웹에서의 정보 생성-소멸 프로세스는 아카이빙 서비스로 컨트롤하기엔 넘 압도적이다. 자연스런 아카이빙이 진정한 아카이빙이다. 저장한다는 의식적 노력이 없어도 어딘가에 저장되고, 저장해 둔 정보를 나중에 참조한다는 의식적 노력 없이도 정보를 자연스럽게 다시 소환할 수 있는 매끄러운 사용자 경험이 제공되어야 아카이빙 서비스는 대중적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딜리셔스는 웹의 휘발성이란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서비스이고 트위터는 웹의 휘발성이란 엔트로피에 편승하는 서비스이다. 자고로 엔트로피 같은 초강력 알고리즘에겐 왠만하면 개기지 않고 편승하는 것이 다치지 않는 길이다. 고전하는 딜리셔스의 모습을 보면서 웹의 휘발성이란 거대한 엔트로피에 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몸짓이 가능하기 위한 요건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딜리셔스의 한계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대중적 아카이빙 서비스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 PS. 관련 포스트 휘발, 알고리즘 울겨, 알고리즘 한RSS + 마가린 + 레몬펜 = 스크랩 컨버전스? 언제부턴가 한RSS에서 메타 블로그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한RSS vs 나루 검색에 관한 단상 (http://mars.egloos.com/3520868)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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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의 시대 :: 2010/11/29 00:09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보며 드는 생각.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쓰는 글이므로 완전 봉창이 될 우려가 높지만 책 표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가볍고 단순무식하게 적어본다. 저자의 '엔트로피' 기반 방향성 전개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감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엔트로피가 급증하므로 말이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위는 엔트로피 증가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유지/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감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엔트로피 증가가 두렵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위(無爲) 밖엔 답이 없다. 근데 인간은 태어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우려'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우울한 것이다. 설정 자체가 음울한 상황에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부정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걸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엔트로피. 매우 답답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통제하기 불가능한 대상은 섣불리 공격하는 게 아니다. ^^ 제레미 리프킨의 신간 '공감의 시대'가 내겐 '자충의 시대'로 읽힌다. 제레미 리프킨은 넘 강력한 상대를 골랐다. 엔트로피. 그리 쉽게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헛된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헛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자충수를 두고 있는지. 우린 자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쓰렉, 알고리즘 질서와 무질서 사이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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