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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 2014/08/18 00:08

시간을 거슬러란 노래가 있다. (해를 품은 달 OST)

이 노래를 가끔 듣는데 정말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다.

시간은 결국 마음의 함수인가 보다.

마음 속에서 스러져간다면 시간을 견디지 못한 것이고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잠재하면서 언제든 소환되어 심금을 울릴 수 있다면 시간을 견뎌낸 것이다.

마음에 착상되어 마음과 하나가 된 듯한 느낌.

이 느낌을 잘 기억해야겠다.

그래야 나도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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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태그 :: 2014/06/13 00:03

일상은 소박하다.
태깅은 약소하다.

일상에 태깅을 한다.
일상이 소박하지만 단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태깅이 약소하지만 축적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것과 약소하지만 축적되는 것이 만나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상을 살면서 피상에 쩔어 있다가 문득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일상의 시공간에 태그를 제안해 보자.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심상을 하나의 태그로 압축해보자.
길을 걷다가 향긋한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보자.
누워서 TV를 보다가 문득 드라마 속 한 장면에서 인상을 받았을 때 그 느낌을 하나의 그림으로 이름 붙여 보자.
책을 읽다가 문득 하나의 필에 몰입된다는 느낌이 들 때 그 필을 하나의 영화로 형상화시켜 제목을 붙여보자.
밥을 먹다가 문득 김치찌개 맛이 멋지다는 미감이 돌 때 그것을 흘려 보내지 말고 하나의 문장으로 뽑아보자.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무수한 태깅의 힌트들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태그의 힌트값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그 중의 단 0.000001%만 건져서 표현을 해내도 그것들이 내 인생을, 나를 알게 해주지 않을까?

결국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나 자신, 그 하나를 알지 못하고 지나간 시공간을 문득 마주치게 되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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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쳐, 재회, 태깅 :: 2014/06/11 00:01

포켓이란 앱을 즐겨 사용한다.  PC나 모바일로 웹을 서핑하다가 관심 가는 정보가 있으면 캡쳐한다.  그리고 나중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타이밍에 그것을 열어서 다시 훑어본다.  훑어보면서 그 정보에 어울리는 단어로 태깅을 하고 어떤 경우엔 페이지 내용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도 한다. 캡쳐는 순간이고 리뷰는 차분이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던 정보를 다시 만날 때, 특히 그 정보를 잊고 있다가 다시 만날 때, 그 만남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조명된다.  태깅을 하면서 그 재조명의 순간을 음미한다.  캡쳐하는 순간 태깅할 수도 있고 나중에 재회할 때 태깅할 수도 있다. 태깅을 한다는 건 접한 정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당 웹페이지에 부합하는 단어를 부여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를 접했을 때의 순간적 느낌이 태그가 되기도 하고, 정보를 정독하고 난 후 해당 정보를 떠올리기 좋은 단어가 부여되기도 한다. 또한, 정보와는 동떨어진 결을 타고 흐르는 나의 생각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생각의 단면을 단어로 직서하기도 한다. 정보를 만나는 방식을 다변화시키면 정보와의 접점이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 나와 정보가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맥락이 다채로워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보에 대한 다채로운 태그를 쏟아낼 수 있고 정보는 나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나와의 만남을 다양한 스냅샷으로 변주한다.

컨텐츠와 만나는 나는 일종의 컨테이너다. 컨테이너는 다양한 컨테이너와 상호작용하면서 컨텐츠를 운반한다.  정보 운반은 상품 택배와는 다른 메커니즘을 띤다. 상품 택배는 상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최대한 상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채 특정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한다. 반면, 정보는 운반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내용물이 변형될 수 있다. 아니 변형될 수 밖에 없다. 옮기는 사람 자체가 정보에 변형을 가하는 자일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정보를 옮기는 자가 웹페이지여도, 서비스여도, 사람이어도 정보는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한 변형을 받게 된다. 

암묵적으로 운반되는 정보에 가해지는 변형을 보다 명시적인 맥락 속에서 의식적으로 감지하는 놀이가 흥미롭다. 정보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 정보를 캡쳐할 때의 마음. 나중에 정보를 다시 만났을 때 정보에 대한 잔존 기억. 재회를 통해 정보를 새로운 시공간에서 다시 리뷰할 때의 감정. 이런 모든 것들이 정보와 나 사이에서 생성되는 서사이다.  그 서사는 어떤 소설보다도 인간적이고 어떤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하다.

포켓이란 앱을 즐겨 사용한다. 나는 오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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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검색 :: 2014/06/06 06:06

검색을 실용적 관점이 아닌 관념적 관점에서 대해본다.

'시간'이란 단어로 검색을 해본다.

본질에 준하는 내용이 검색되어 나온다.
실용적 관점에서 '시간'이란 단어가 들어 있는 페이지가 검색되어 나온다.

본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일상적 삶.

이미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한 검색이란 툴.

일상 속 에서 일상적 툴인 검색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구성하고
내가 읽는 것이 나를 형성하고
내가 보는 것이 나를 직조하듯

내가 검색하는 것이 나를 정의한다.

검색은 내가 뭔가를 찾는 것인 동시에
뭔가가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나에게 찾아올 방문객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그것이 본질에 닿아 있는 것이라면
방문은 본질과의 대화로 이어질 것이다.

본질에 대해 짜투리 시간을 허용해본다.
짜투리 시간을 허용해서 본질의 피상을 훑어보고
짜투리 시간에서 벗어난 시공간에서 본질의 코어를 떠올려 본다.

본질을 검색하면서
본질에 대한 생각을 접하고
본질과 그닥 관련이 없는 일상적 텍스트를 접한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 텍스트 안에도 본질이 깃들어 있음을 직감한다.

본질을 검색하면
여튼 본질과 만날 수 있는 직간접적 기회를 확보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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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버스 :: 2014/06/04 00:04

얼마 전에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집에 가는 버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는 버스로 착각하고 올라탔다. 처음엔 제대로 가는가 싶었는데 이상한 길로 빠지더니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길을 하염없이 가기 시작한다. 집에 가자마자 저녁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집과는 자꾸 멀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자니 배가 더 고파오는 느낌이었다.

결국 버스에서 내렸다.
내겐 완전 새로운 공간이었다.
배는 고프고 새로운 공간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고 눈은 호강을 하고 있었고 배는 주렸다.
근처 식당을 찾아갔다. 갈비탕을 시켰다. 배가 너무 고팠던 지라 갈비탕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자 포만감과 함께 이전과 같은 일상적 패턴에 따라 집에 들어갔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행위를 하게 되었다. 정말 예전과 같은 날이었으면 절대 머리 속에 떠올리기 힘들었을 그런 행위. 내가 왜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나는 그 날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다른 버스를 타고 다른 길을 갔다.
그리고 새로운 장소로 진입했고 그 곳에서 이전의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 나는 그 날 떠올린 생각과 그것에 의해 몸소 움직인 행위만큼 달라졌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기 힘든 존재이다. 
그런데 그 날의 경험은 나에게 변화에 대한 힌트를 주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컨텍스트 속으로 들어가면 그 안의 나는 예전의 나와 사뭇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날을 기념하고자 이렇게 포스팅을 한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앞으로도 종종 전혀 엉뚱한 버스를 타고 그 버스가 나에게 선물하는 여행을 흠뻑 즐겨보자고.

먼 곳으로의 여행도 의미 있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으로의 돌발 여행이 어쩌면 계획된 먼 여행보다 훨씬 더 뇌에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다른 버스.
참 매력적인 공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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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 2014/05/23 00:03

발간된 지 2년 지난 잡지를 읽는다. 
2년 전의 잡지이긴 하지만, 2년 전의 생각이 잘 표현되어 있고 현 시점에서 읽어봐도 전혀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내용들. 아마 시류를 심하게 타지 않는 잡지의 경우, 시간이 흐른 후에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경우가 허다할 것 같다. 잡지의 발간 주기는 독자에겐 심한 압박이 될 수도 있겠다. 정해진 주기에 따라 오차 없이 지속 발간되지 않고 때론 휴간도 서슴없이 단행하고 수년간 쉬다가 예고 없이 불쑥 발간되기도 하는 잡지는 없을까. ^^

오래된 잡지를 읽다 보면, 문득 미래를 떠올리게 된다.
2년 전의 잡지를 읽는 지금은 2년 전 그 잡지가 발간된 시점에선 2년 후 미래일 텐데. 이 잡지는 2년이 지나도 발간 시점의 모습 그대로이고 그걸 지금 내가 읽고 있다는 건 잡지 속 텍스트가 미래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 그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현재란 게 참으로 모호한 개념이어서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재인 건지 정의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반면 과거와 미래는 현재보단 개념적으로 쉽게 머리 속에서 영역화되기 쉽고 현재를 중심으로 구분되기 쉬운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잡지엔 발간시점이 명시적으로 태깅된다. 
발간주간, 발간월, 발간분기 등으로 딱지가 붙는 잡지.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식적 발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나'라는 사람도 수시로 시점 태깅이 붙는 셈이다. 2014년 1월의 나, 2014년 5월의 나, 2014년 12월의 나 등으로 무수히 많은 태그값이 나를 규정한다. 나는 시시각각 무한 형태로 발간되는 잡지인 셈이다. 내 블로그도 일종의 잡지다. 주간단위 잡지로 편집할 수도 있고, 월간단위, 분기단위로도 편집이 가능하다. 나의 생각도 잡지이고, 나의 몸도 잡지이고, 나의 행동도 잡지이다. 나의 모든 것이 잡지이다.

나는 편집장이다.
나는 어떤 취지로 잡지를 발간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내용의 잡지를 구성하고 있는가? 10년 전의 나는 어떤 잡지를 발간했는가? 1년 전의 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는?  2년 전에 발간된 '나' 잡지는 현재의 나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2년 전에 발간된 내용이 현 시점에서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가?  내 마음 속에 투영된 과거의 잡지들, 미래의 잡지들은 지금 이 순간 서로를 향해 어떤 질문과 대답을 피드하고 있는가?  현재 '나' 잡지의 주요 컨텐츠는 무엇인가? 그 컨텐츠들은 과거 잡지의 어떤 내용에 링크를 걸고 있는가? 미래 잡지의 어떤 내용을 표절하고 있는가? 표절과 표절을 통해 발생되는 신규 컨텐츠는 무엇인가? 자기 표절을 통해 나는 성장하는가? 자기 표절을 통해 나는 침잠하는가? 성장도 침잠도 모두 나에게 쾌감을 제공하고 있는가?

무수한 질문, 정답 없는 대답.
그게 '나' 잡지를 구성하는 내용들이다.

발간된 지 2년 지난 잡지를 읽는다.  잡지 속에 내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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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ete, Position :: 2014/04/23 00:03

디지털 세상에선 수시로 삭제를 하곤 한다.  필요 없는 파일을 지우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지운다. 1과 0 사이에서 OnOff를 오가는 디지털 모드에선 삭제는 매우 일상적인 행위이다. 삭제를 하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없어지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고 어렴풋이 추측한다.

삭제란 무엇일까?

삭제는 뭔가를 없애면서 뭔가를 생겨나게 하는 행위이다.  무엇을 지우면 무엇에 연관된 다른 무엇이 변형되거나 생겨난다. 지우는 건 소멸시키는 게 아니라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뭔가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만물은 정보이다. 정보는 완전 소멸되진 않는다. 형태를 바꾸거나 구성이 재편되면서 시공간 상의 좌표 점유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지 완전 없어지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이사를 하면서 책 정리를 할 때, 필요 없을 거라 판단한 책을 내버리는 행위. 그 때 그 책은 정말 나로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일까? 아무리 나로부터 멀어진다고 해도 그 책과 나와의 관계는 분명 존재하는 것일 텐데. 그 책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특정한 계기가 주어지면서 문득 그 책 제목이, 책 내용이 떠오른다면 그 책은 결국 소멸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는 것 아닐까?

삭제를 하면서 삭제 대상으로부터의 거리를 스스로 컨트롤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은 삭제하면서 오히려 그 대상과의 거리가 가까워질 수도 있다. 물론 멀어질 수도 있기도 하겠고, 거리가 새로운 양상으로 재구성될 수도 있다. 거리의 차원이 멀고 가까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상 사이에 놓인 길의 결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여러 가지 차원이 형성되면서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가깝고, 어떤 차원에선 거리가 멀게 형성되는 등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의 장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삭제는 나름 고도화된 창조 행위이다.
무로부터 뭔가를 만드는 게 어렵듯이, 뭔가를 삭제하는 것도 무가 아닌 유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뭔가를 삭제하면서 뭔가가 있던 공간의 기운을 바꾸는 것.
삭제를 단순하게 생각하면 삭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진다.

삭제는 1을 0으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1을 N으로 만드는 행위다.
디지털은 1과 0을 오가는 선형적 진자 놀이가 아니라, N과 N을 오가는 다차원 네트워킹 게임이다.

삭제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그것이 소멸된 게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여 새로운 포지션을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내가 삭제한 수많은 대상들.
그것이 현재 어느 시공간에 어떤 모습으로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도구가 블로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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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새자리 :: 2014/04/11 00:01

2006년 12월4일부터 블로깅을 시작했다.
2007
1022일부터 주 3회 포스팅을 우연히 시작했다. (월수금)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까지 주 3회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포스팅을 적고 바로 올리기 보단 예약 포스팅을 해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리 써놓은 글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예약 걸어놓은 포스트가 무려 6개월 분량에 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번 장난 삼아 시도해 보았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근 6개월 간 신규 포스팅을 거의 하지 않기.

그리고 최근 들어 글을 적기 시작하고 있다. 워낙 써놓은 글이 많아서 그렇게 오랫동안 신규 포스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3회 포스팅 체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원체 오랫동안 쉬다 보니 감각이 떨어져서 새롭게 포스팅을 하는 게 예전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

오랜 기간 동안 애정을 듬뿍 담아 가꿔 오던 나만의 공간을 홀연히 떠나 멀고 긴 여행을 떠난 후 뜬금 없이 돌아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나만의 공간을 다시 살펴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분명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예전과는 사뭇 다른 기분이다. 원래 그 자리라기 보다는 처음 경험하는 공간의 느낌이 강하다. 예전과 유사한 패턴으로 글을 적고 있고 써내려 가는 글의 내용이 이전과 그닥 다를 것도 없는데.. 익숙함 속에 스며있는 낯선 기운.

내가 떠나 있는 동안 나의 분신 'Read & Lead' 블로그는 나와 격리된 채 자신 만의 여정을 떠났던 것 같다.  나만 6개월 간의 여행을 즐겼던 것이 아니라 나의 블로그도 어디론가 떠나서 그 만의 공간 속에서 자신 만의 시간을 즐겼던 것 같다.   결국 나만 돌아온 것이 아니라 나의 블로그도 돌아온 것이고 나와 내 블로그가 만나는 지점은 이전과는 다른 시공간 속 좌표를 점하게 된 것이다.

서로에게서 멀어진 채 오랜 기간을 혼자 걷다가 어느덧 때가 되어 서로를 향해 소환되어 이제 예전처럼 마주보고 서로를 관찰하고 서로의 생각을 응시하면서 대화를 재개하는 모습.

제자리인 줄 알고 돌아왔는데 와보니 새자리였다는. ^^



PS. 관련 포스트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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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 2014/04/02 00:02

나는 회사에 다닌다.

회사엔 규정된 출퇴근 시간이 있다.

출퇴근 시간이 규정된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것.
자연스럽게 일상이 형성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반복과 지루함으로 점철될 수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규정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함정이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결코 고정, 반복, 지루함이 아니다.

특정 시간대에 출퇴근한다는 것은 수동적 행위가 아닌 고도의 능동적 행위이다.
아무 제약조건이 없는 상황은 자칫 무기력한 행동 패턴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뭔가가 정해지면, 뭔가는 유연해진다. 고정된 것을 중심으로 유연한 것들이 발생된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면 수많은 행동패턴들이 다양성의 꽃이 되어 피어난다.
근무 외 시간이란 거대한 자유 공간이 생겨난다.  근무 시간 조차도 자유의 여지는 충분하다.

뭔가가 정해지면,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공간들이 생겨난다.  공간은 경계선을 낳는다. 경계선은 자유를 구속하는 동시에 자유를 자극한다. 경계선 안에서 플레이해야 하는 제약은 경계선 밖을 상상하는 자유의 그림자이다. 경계선은 감옥의 문/벽이 아니라 투과할 수 있는 막이다.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경계 지형을 변주한다. 뭔가가 정해지면,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움직임이 발생한다. 공간은 항상 잠재하고 있다. 공간을 탄생시키는 선언. 뭔가를 정하는 건 잠재하고 있는 공간을 향해 탄생의 방향성을 선언하는 것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서 생성되어 버린 수많은 공간들.
그런 공간들을 인지하지 못하면 일상의 반복과 지루함으로 점철된 상황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고.

일상의 알고리즘 속을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일상을 들여다 보고 또 바라보면 우주와도 같은 공간이 수줍게 형성되어 있고 그것이 끊임없이 자신 만의 길을 지향하며 유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제약은 우주 탄생의 촉매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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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2014/03/28 00:08

어떻게 보면,
하루는 참 쉽게 지나간다.
하루는 참 짧은 시간이다.

어떻게 보면,
하루는 참 어렵게 지나간다.
하루는 참 긴 시간이다.

'하루'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하루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 느껴본다.

하루가 발산하는 소리를 그 동안 어떻게 듣고 있었는지
하루가 표출하는 상을 그 동안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하루의 부피에 대해 새삼 놀라고
하루의 질감에 대해 새삼 안도한다.

내가 지나 보낸 어떤 하루도
나라는 존재를 온전히 드러낸다.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어떤 하루도
나라는 존재를 충만하게 표상할 것이다.

하루는 나이다.
나는 하루이다.

하루는 참 소중하다.
여러 개의 하루와 여러 개의 나.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만의 시선.

하루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오늘 하루가 매우 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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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 :: 2014/02/28 00:08

시간을 쪼개서 붙들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속절없이 흘러간다. 그래서 시간의 지나감이 아쉽고 그런 시간을 붙들고 싶어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시간은 절대 갑임에 분명하다. 인간은 시간이란 갑의 횡포를 고스란히 수용하고 살아가는 절대 을이다.

조급함이 시간 옆에 붙어 있어서 그렇다. 조급함에 돈과 에너지를 허비하다 보니 시간은 계속 귀해질 뿐이다. 시간이 귀해지는 흐름을 살아가다 보니 나 자신의 가치를 챙길 여유가 없다. 시간 앞에 '나'를 계속 초라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들.

지나간 시간은 없어진 것일까?
도래할 시간은 생겨나지도 않을 것일까?

시간에 대해 너무 딱딱한 프레임만을 고수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시계로 확실하게 형상화시켜 놓았다고 착각하는 것 아닐까?
시간이 어디 그렇게 확실한 존재일 수 있을까?

인간이 정의하기 나름인 게 시간일 텐데..

과거를 지나가지 않은 것으로 가정해 보자.
미래를 이미 도래한 것으로 가정해 보자.

과거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미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현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시간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지속적으로 정의 당해야 하는 존재이다.
시간에 대한 믿음. 폐기처분 되어야 한다.

시간을 종교처럼 모시고 살아가는 한,
영원히 시간에 유린당하며 시간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시간의 흐름.
그건 인간이란 존재를 명징하게 배워나가라는 목소리 그 자체다.

시간을 바라본 만큼 나 자신도 분명해진다.
시간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관(바라봄)의 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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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 2014/02/07 00:07

영화 '그랑블루'에 나오는 대사다.
잠수해서 가장 힘든 시간은 맨바닥에 있을 때야.
왜냐하면 다시 올라올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
항상 그걸 찾는 게 어려워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다는 것. 내면 평화의 시간.

표면에선 시간이 흐른다.  뭔가가 분주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심연에선 대략 흐르지 않는다. 시간은 정지한 듯 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촘촘히 짜여진 시간 스케쥴에 의해 로봇처럼 속절없이 휘둘리다가 문득 거기서 벗어나 심연과도 같은 평화의 침잠 속에서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맛보는 것.

소설을 읽을 때, 영화를 볼 때, 명상에 잠길 때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또 하나의 상황 속에 돌입한다.

표면에서만 지내면 로봇이 되고
심연에서만 지내면 광물이 된다.

인간은 표면과 심연을 오가며 질주하는 시간과 멈춰진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세를 호흡하는 존재.
인간은 표면에서 흘러간 시간의 총합인 동시에 심연에서 멈춰진 시간의 총합이다. 

표면에서의 빠른 유동과 심연에서의 정지는 동전의 양면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 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심연에서 멈춰진 시간은 한가지 현상의 다른 모습이다.


'그랑블루'에 나오는 대사를 아래와 같이 리믹스해서 맘에 새겨본다. ^^
난 심연 속에서 잠긴 듯 정지하면서 표면과의 거리감을 즐겨.
난 표면 위에서 분주히 약동하면서 심연과의 거리감을 즐겨.

똑같은 시간이 심연 속에선 멈춘 듯, 표면 위에선 질주하는 듯
저마다의 향기를 발산하거든.

심연에선 심연이 평안하고 표면이 그리워.
표면에선 표면이 흥겹고 심연이 그리워.

그래서 난 항상 심연과 표면 사이를 오갈 수 밖에 없어.
난 표면과 심연을 끊임없이 진동하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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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UL | 2014/03/08 01:53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너무 가슴에 와닿는 말들이네요.
    빠른시간들속에 멈춰진듯한 느낌이 들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랐는데...
    buckshot님의 블로그에있는 모든 글들이 저에게 어떠한 파동을주네요.
    이런 생각을 잘 표현하셔서 부럽기도 합니다..
    자주와서 보고갈께요^^ 글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4/03/08 09:44 | PERMALINK | EDIT/DEL

      억지로 표현하려 하지 않고 표현하기 어려운 그대로의 느낌을 즐기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표현하기 시작하면 있는 그대로의 느낌이 휘발되는 것 같기도 해서요. 표현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여전히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이 저를 더욱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모자란 글을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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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서로를 증명하는 것 :: 2014/02/03 00:03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중혁 외 지음/문학동네

3년 전에 2010 제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e북으로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책엔 재미난 단편소설들이 여럿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드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이후로 부쩍 소설을 읽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요즘도 소설을 종종 읽는다. 이렇게 된 것은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받은 감흥이 매우 컸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문학과 사회 2013년 여름호에 수록된 권여선의 '봄밤'이란 단편소설을 읽었다.  '안녕, 인공존재!'가 갑자기 생각났다. 내게는 '봄밤'이 '안녕, 인공존재!'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고, '안녕, 인공존재!'가 '봄밤'이란 인사에 대한 화답인 것 같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내가 사라졌을 때,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서 뭔가가 증발되었음을 느낄 때.
내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 구멍이 뻥하고 뚫렸음을 누군가가 알아차릴 때.

존재 A는 흘러간다. 존재 A는 흔적을 남긴다. 존재 자체는 '허'일 수 있어도 존재 A는 흐름 속에 자취를 남긴다. 그걸 존재 B가 느낄 때 A가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B 또한 존재했음이 증명된다.

존재는 상대방을 증명하면서 자신을 증명한다. 존재는 증명의 주고 받음이다. 그것은 존재함으로 유지되고 부재함으로 완성된다. 존재는 그런 것이다.

'봄밤'을 읽고 나서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게 되었고, '안녕, 인공존재!'를 소환하면서 봄밤을 망각하게 된다. 내 맘 속에서 두 소설은 소환과 망각을 반복하면서 상호 존재의 증명을 지속할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흔적

부활과 봄밤
존재 확인의 압박
존재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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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의 함정 :: 2014/01/24 00:04

"우주의 시초는 무엇이었을까?"란 질문.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낸 도구인 '시간'을 전제로 한 질문이 아닐까?
시간은 도구일 뿐 그게 도대체 뭔지에 대한 이해는 너무도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우주의 시초를 논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우린 '시간'을 넘 당연시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를 편의성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뭔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유를 펼치는 것은 완전 다른 얘기다. 시간을 도구 관점에서 야무지게 활용하는 것은 무난하겠으나, 시간에 대한 철학/과학적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을 전제로 뭔가 거대한 모델을 구성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쌓을 우려가 충분하다.

'시간'
일상 속에서 너무도 쉽게 쓰여지고 있고,
그 정체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매우 요상한 도구이자 개념이다. 
시간은 거대한 함정을 곳곳에 숨겨 놓고 우리를 넘어뜨리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시간에서 도구적 기능 이외의 거품을 말끔히 제거하고 시간을 바라보도록 하자.  그럴 경우, 시간에게 우주의 시초를 기술하는 개념적 기반이 될 자격이 여전히 존재할까?  '시간'의 정체가 불투명할 때, 우주의 시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될까?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 자체가 사고에서 배제될 때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주의 시초를 찾는 탐구는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아닐지.

시작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쿨하게 인정하는 순간,
만물의 근원이나 만물을 구성하는 원리를 모델로 규명하는 지난했던 과정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다. 현재의 모델링은 마치 양파껍질 까기와도 같다. 뭔가를 찾아내면 또 다른 뭔가가 나타나고 또 다른 뭔가를 규정하려 들면 다른 뭔가가 튀어 나온다. 그런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모형을 도출한다는 건 참 난해하다. 근원에 근접하기 위해선 접근력이 뛰어난 프레임을 설정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근원에 다가가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적 방향성을 도입하던가.

"왜 존재하는가?"란 질문.  존재와 이유가 하나인데 그것을 분리해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도 마찬가지다. 우주와 시초를 분리할 수 없다면 그것을 나눠서 질문을 구성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란 얘기다.

원래 하나였던 존재와 이유를 분리해서 둘 다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놓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분화시켜 나가는 모습.  분리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통해 질문의 경로를 재설정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주의 시초는 무엇인가?"란 질문 대신
"우리가 임의로 분리해 놓은 개념들은 어떻게 합쳐져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차분히 정리해 나가다 보면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게 되지 않을까?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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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인간 :: 2014/01/13 00:03

가끔 IPTV를 본다.

본방사수를 거의 하지 않고
1개월이 경과된 프로그램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본다.

그렇게 하다 보니 1개월이란 시간의 지연이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의 퀄리티를 필터링하게 된다.
시간을 견디는 프로그램만 골라서 보는 습관을 들이는 자는 시간의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시간을 견디는 것들을 가까이 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자신 만의 체계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1개월 후의 시점으로 이동할 수도 있고, 1년 후의 지점으로 훌쩍 날아갈 수도 있다. 심지어는 나의 생명기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미래와 과거로 순식간에 진입할 수도 있다.

나 자신이 시간을 닮아가는 것.

시간을 타자로 바라보지 말고 내가 곧 시간이라고 간주하면, 많은 것들이 명확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책,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제품, 내가 좋아하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행동. 이 모든 것들을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것들의 본질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게 된다.

나는 가끔 IPTV를 본다. IPTV를 보면서 나는 시간이 된다.

인간이 시간이 되는 놀이.

그리고 나는 나를 바라본다. 시간이 인간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본방사수를 하지 않고 1개월이 경과된 '나'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나다움'으로 접수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1개월이란 시간의 지연이 자연스럽게 나의 퀄리티를 필터링하게 된다.
시간을 견디는 '나'만 골라서 접수하는 습관을 들이는 나는 시간이 되고 시간은 내가 된다.

IPTV는 나에게 '시간 인간' 개념을 알려주었다.

IPTV는 시간 기계이고 나는 시간 인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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