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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열, 알고리즘 :: 2010/03/08 00:08타존, 알고리즘에서 아래와 같이 적은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성공의 크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여기에 집착하는 '속물근성'이 등장하게 된다. (속물: 사람의 작은 일부분만 갖고 사람됨 전체를 정의해 버리는 자) 인간 세상은 거대한 비교플랫폼이다.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은 속물근성이 사람들 마음 속에 깊숙히 침투한 이상, 세상을 살아가면서 '비교'라는 거대한 화두를 피해가기가 참 어렵다. 학교에서는 성적으로 비교를 하고, 사회에서는 부와 명예으로 비교를 하고.. 그런데, 세상이란 비교 플랫폼은 참 재미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비교라는 플랫폼의 기본 로직을 충실히 따르는자가 결국 '루저'라는 거다. 비교의 승부처는 비교 후 우열을 가리는 순간이 아니다. 남과의 비교 후 열등함을 인정할 때 진 것이 아니라 남과의 비교 자체를 시작할때 이미 진거다.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타고 난 인간을 기계적인 잣대에 억지로 구겨 넣고 그 안에서 획일적이고 건조한 비교를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인간 소외를 의미하는 것이니까. 남과의 비교를 많이 의식하거나 비교에 몰입한다는 건, 내 안에 나만의 차별점이 별로 존재하지 않거나 아예 없다는 걸 의미한다. 자고로, 차별화된 것은 비교가 불가능하다. 차별화되어 있지 않으니까 비교하고 싶어지는 것이고 비교에 빠지다 보면, 평생 비교의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간 Commodity(범용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남과의 우열을 가리는 '비교'의 늪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비교/우열이란 개념은 사람이 아닌 범용상품 시장에서나 성립가능하다. 사람을 범용상품화하고 상품스펙으로 비교하게 하는 자본주의 알고리즘을 종교로까지 숭배할 필요는 없다. 범용상품적인 '우열'이란 잣대보다는, 나를 '나'이게 만드는 '차이'가 뭔지에 집중해야 한다. 좋고 나쁘다, 나음과 못함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르다'의 문제인 것이다. 나만의 유니크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탐색하고 발견/발전시켜 나가는 놀이와도 같은 노력이 중요하다. 결국, 행복은 우열 프레임에 얼마나 덜 갇혀 있고, 나만의 '차이'를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은 상품이 아니다. 아무리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키는 자본주의 알고리즘이 강력하다고 해도 스스로 상품이 되고자 인생 전체를 걸고 열정적으로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제허, 알고리즘 PS. 관련 포스트 타존,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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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존, 알고리즘 :: 2009/12/04 00:04
알랭 드 보통: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알랭 드 보통의 17분 간의 강연을 인상 깊게 보았다. 간단히 느낌을 적어 본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 자본주의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 트랙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희박하기만 한 물질적 성공을 향한 도전을 부추기는 은근한 유혹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흔하게 발생한다. TV 드라마는 속물적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우아한 자태를 경쟁적으로 보여주고, 비즈니스/마케팅은 지갑을 크게 여는 소비의 미덕을 극도로 미화한다. 서점엔 수많은 성공 비법을 수록한 자기계발/재테크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 물질적 성공을 유도하는 각종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성공의 크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여기에 집착하는 '속물근성'이 등장하게 된다. (속물: 사람의 작은 일부분만 갖고 사람됨 전체를 정의해 버리는 자) 속물근성이 글로벌 트렌드로 발전하면서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속에 깊이 임베딩된다. 커리어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표면적인 성공 크기를 서로 비교하는 과정 속에서 남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규격화/정량화된 성공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쪽 팔리지 않게 나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원시시대와 현재의 인간을 비교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한 사고/판단/대응 능력은 현저히 높아졌으나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다. 인간은 두려움의 대상이 있어야만 그제서야 안심하는 동물이다. 일종의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전방위 생명 위협에 수동적으로 시달리던 원시인간을 넘어 현대인간은 능동적으로 주위에 두려움을 적극 배치한다. 원시시대에 비해 생명 위협의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든 대신 타존감 위협의 두려움은 극도로 팽배해져 가고 있다.
자존감보다 타존감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은 소비자를 해면동물로 만들어 가는 상업주의의 바다 때문이겠다. 비즈니스/마케팅은 바닷물이고 소비자는 해면동물이다. 해면동물은 바다라는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이다. 언제나 비즈니스/마케팅이 제공하는 상업적 바닷물을 흠뻑 흡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미디어는 비웃음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하고, 비즈니스는 물질적 성공에 대한 환상을 주입한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남의 비웃음을 피하는 외양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고 남이 정의한 성공을 좇느라 '나'에 대한 감을 잃어간다. 잃어버린 나.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가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이 아니라 타존인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과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나'를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나만의 성공 패러다임과 나만의 행복 패러다임을 의도하고 컨셉화해 나갈 것인가.. 타존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상업주의적 메시지를 대폭 흡수하며 살아가는 해면동물과도 같은 내겐 필요하다. ^^ PS. 관련 포스트 알랭 드 보통: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삶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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