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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감과 세(勢) :: 2011/10/10 00:00'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아래와 같은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삶이란 뭘까요?" 내가 물었다. "그냥 이런 거지," 라며 요한이 중얼거렸다. "잠에서 깨어있는 거야. 잠에서 깨어나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또 오줌을 누는 거야. 잠을 삶의 일부라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야. 잠은 분명히 죽음의 영역이라구. 즉 죽어 있는 인간들이 잠깐 잠깐 죽음이란 잠에서 깨어나곤 하는 거야. 그게 삶이지." '깨어 있다'와 '잠을 잔다'는 동전의 양면이다. 또렷이 깨어있음은 깊은 잠에서 기인한다. 깊은 잠은 또렷이 깨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깨어 있음'의 가치는 '잠'을 통해 극대화될 수 있다. 접속의 가치는 단절에 의해 완성된다. 단절이 없는 접속은 불면의 밤을 끝없이 헤매는 것과 같다. 확실한 단절이 있어야 접속감은 극대화된다. 깊은 잠과도 같은 단절이 충만할 때 접속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접속을 즐길 수 있으려면 단절의 감미로움을 맛볼 줄 알아야 한다. 손자병법 兵勢(병세)편의 말미에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故善戰人之勢, 如轉圓石於千仞之山者, 勢也. 고선전인지세, 여전원석어천인지산자, 세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사람의 싸움의 세는 마치 둥근 돌을 천 길이 되는 급경사의 산에서 굴러 내려가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곧 세다. 접속감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일종의 勢(세) 형성이다. 세상엔 수많은 세가 존재한다. 접속과 단절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흘러 다니기 마련이다. 접속을 즐기면서 단절을 살짝 그리워하고 단절을 즐기면서 접속을 살짝 그리워하는 자는 접속-단절의 勢(세)를 향유하는 자이다. 접속과 단절은 결국 하나라는 것. ^^ PS. 관련 포스트 좀비, 알고리즘 real-time web의 늪 휴식감과 세(勢)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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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소환 :: 2011/08/26 00:06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듣던 시공간을 소환(recall)하게 된다. 음악에 얽힌 추억은 그 추억이 약동하던 시공간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악과 시공간을 매핑하는 과정이다.
음악과 시공간의 매핑을 우연에만 맡기지 않고 인위적으로 관리해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철학에 관한 생각을 할 때, 철학에 관한 글을 읽을 때 특정 음악을 계속 틀어놓으면 나중에 그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철학적 씽킹을 자극할 수 있다.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에 주목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책이든 특정 장소이든 말이다. 기억 소환은 새로운 기억의 창출과 다를 바가 없다. 낡은 기억들을 소환해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축조하는 것. 그게 창조다. 기억은 저장보다는 접속에 가까운 개념이다. 창의적 생각이 잘 떠오르는 상황을 잘 기억/분류해 보면 분명 창의 코드와 접목되는 여러 가지 상황 설정이 패턴화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기억의 패러다임을 '저장'에서 '접속'으로 바꿀 때, 나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view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나는 시공간이란 진공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그 상호작용은 기억으로 치환된다. 기억은 항상 나와 진공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다시 인식의 지평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 소환과 잠복을 반복하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접속'을 지속하는 것. 기억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코드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힌트의 하이퍼링크이자 스트림 피드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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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 2011/08/24 00:04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단지 책 제목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2011.8.24) 비밀 코드를 해독할 때,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밝혀낸 만큼 비밀 코드 속으로 숨는 뭔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공은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원자 이하 레벨로 아무리 내려가봐야 얄미운(?) 소립자와의 기약 없는 숨바꼭질만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물의 본질은 입자를 통해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물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진공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글로 뭔가를 표현할 때는 표현되지 못한 뭔가가 표현된 글의 이면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입자와 진공과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체만 실재로 판단할 뿐, 그 물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나누는 진공의 존재를 항상 잊고 살아간다. ^^ PS. 이윤하님의 트윗 멘션 가능성이 아직 원자도 현상도 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1/2 고양이의 공간, 빛이 탄생하지 않은, 아원자의 세계. 무한하고 영원한, 없지만 있는 세계. 경계이전의 공간. 빛이 있으면 꼭 그림자가 있죠. 빛 이전의 무엇이 바로 그 '진공'의 세계겠죠? 아이슈타인이 빛보다 빨리 뛰어 빛 앞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했다는데, 리드리드님도 비슷한 생각중이시군요 ^^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2010.11.5)
서점에서 우연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접하게 되었다. Unweaving이란 단어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읽은 '다윈의 식탁'이란 책이 떠오른다.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다윈'이란 코드를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unweaving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결과물들에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자존심을 듬뿍 실어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할 때 격렬한 사상(?)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 생물학자들은 다윈이란 성전(聖典)을 해독하고 다윈에 대한 각자의 신념을 저작하고 있으며 서로 사상이 맞지 않을 땐 격한 자존심 전쟁을 불사한다. 다윈은 가장 핫한 현대 종교다. 비밀스런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가설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게 되고 그것을 코드 해독에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신념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신념은 자가증식의 경향이 있어서 계속 그것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비밀코드와 신념은 공생 관계다. 바로 이 기반 위에서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작동하고, 과학이란 또 다른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동작한다. 해독은 신념과 만나 교리를 낳는 메커니즘이 과학에서 매우 왕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관전 포인트들이 앞으로 마구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다윈,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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