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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존, 알고리즘 :: 2009/12/04 00:04
알랭 드 보통: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알랭 드 보통의 17분 간의 강연을 인상 깊게 보았다. 간단히 느낌을 적어 본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 자본주의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 트랙에 편입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희박하기만 한 물질적 성공을 향한 도전을 부추기는 은근한 유혹은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흔하게 발생한다. TV 드라마는 속물적 관점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우아한 자태를 경쟁적으로 보여주고, 비즈니스/마케팅은 지갑을 크게 여는 소비의 미덕을 극도로 미화한다. 서점엔 수많은 성공 비법을 수록한 자기계발/재테크 서적들이 범람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 물질적 성공을 유도하는 각종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통해 물질적 성공을 규격화/정량화하고 상호 간의 비교를 용이하게 한다. 성공의 크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면서 여기에 집착하는 '속물근성'이 등장하게 된다. (속물: 사람의 작은 일부분만 갖고 사람됨 전체를 정의해 버리는 자) 속물근성이 글로벌 트렌드로 발전하면서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 속에 깊이 임베딩된다. 커리어에 대해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표면적인 성공 크기를 서로 비교하는 과정 속에서 남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가 규격화/정량화된 성공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투명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쪽 팔리지 않게 나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회 전체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원시시대와 현재의 인간을 비교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대한 사고/판단/대응 능력은 현저히 높아졌으나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다. 인간은 두려움의 대상이 있어야만 그제서야 안심하는 동물이다. 일종의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전방위 생명 위협에 수동적으로 시달리던 원시인간을 넘어 현대인간은 능동적으로 주위에 두려움을 적극 배치한다. 원시시대에 비해 생명 위협의 두려움은 현저히 줄어든 대신 타존감 위협의 두려움은 극도로 팽배해져 가고 있다.
자존감보다 타존감이 훨씬 더 중요해진 것은 소비자를 해면동물로 만들어 가는 상업주의의 바다 때문이겠다. 비즈니스/마케팅은 바닷물이고 소비자는 해면동물이다. 해면동물은 바다라는 환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이다. 언제나 비즈니스/마케팅이 제공하는 상업적 바닷물을 흠뻑 흡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 미디어는 비웃음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하고, 비즈니스는 물질적 성공에 대한 환상을 주입한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남의 비웃음을 피하는 외양 만들기에 전력을 다하고 남이 정의한 성공을 좇느라 '나'에 대한 감을 잃어간다. 잃어버린 나. 부/지위와 같은 스펙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가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이 아니라 타존인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과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나'를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나만의 성공 패러다임과 나만의 행복 패러다임을 의도하고 컨셉화해 나갈 것인가.. 타존의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지혜가 상업주의적 메시지를 대폭 흡수하며 살아가는 해면동물과도 같은 내겐 필요하다. ^^ PS. 관련 포스트 알랭 드 보통: 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공 철학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삶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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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알고리즘 :: 2009/10/05 00:05난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는 관심이 갔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책을 주문했고 배송되자 마자 책을 읽기 시작해서 2일만에 책을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아래와 같은 인상적인 문구를 만나게 되었다. "삶이란 뭘까요?" 내가 물었다. "그냥 이런 거지," 라며 요한이 중얼거렸다. "잠에서 깨어있는 거야. 잠에서 깨어나 음악을 듣고 맥주를 마시고.. 또 오줌을 누는거야. 잠을 삶의 일부라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야. 잠은 분명히 죽음의 영역이라구. 즉 죽어 있는 인간들이 잠깐 잠깐 죽음이란 잠에서 깨어나곤 하는거야. 그게 삶이지." 술에 만취해서 무슨 행동을 하긴 했는데 다음날이 되면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흔히 만취형 '좀비'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득.. 인간의 삶 자체가 좀비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 우리는 종종 TV를 리모콘으로 원격 조종한다. 원격 조종 능력의 주체와 객체... 우린 TV인지도 모른다. 유전자에 의해 이리저리 채널링이 되는 TV말이다. 인간은 리모콘을 통해 TV를 원격 조종하고 유전자는 뇌를 통해 인간을 초원격 조종하고..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는 시간적 지연의 제약 때문에 인간이라는 생존 기계를 time telling 형식으로 지배하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 작성자처럼 간접적으로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유전자가 하는 일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이고 그 이후엔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하게 되고 유전자는 그 속에서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머물게 된다고 얘기한다. 또한, 리처드 도킨스는 소설 '안드로메다의 A'를 예로 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구에서 200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성좌에서 지구로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광속의 한계 때문에 상호 간의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지구로부터의 회답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파로 송신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다. 그 메세지는 일종의 프로그램으로써 다양한 메시지 수신자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확장성 높은 방식을 택하고 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안드로메다에서 지구에 대한 메시지 전파와 이를 통한 지구 컨트롤을 위해 지구상에 컴퓨터를 간접적으로 구축했던 것처럼, 인간의 유전자도 뇌를 만들어서 간접적으로 통제를 하게 된 것이고 유전자가 인간을 인형 끈으로 조정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로 유전자의 단백질 합성 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결국, 단백질 합성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인간의 행동은 신속하게 일어나므로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선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처하기 위한 규칙과 충고를 최대한 사전에 많이 프로그램으로 미리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수동적이고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느린 '유전자' 리더는 능동적이고 민첩한 인간을 원격 조종하기 위한 시나리오 경영을 하고 있다는 얘긴데.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실이라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그걸 어떻게 정의하나? 만약 자네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것을 말한다면 그건 단지 자네 뇌가 해석하는 전기적 신호에 불과하다네." 프랜시스 크릭의 '놀라운 가설'에 의하면, 사람은 매사에 자기 의지대로 결정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기 설정된 두뇌 알고리즘의 계산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사람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이유는 두뇌 알고리즘의 과정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산의 결과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강하게 구속하는 유전자/생존 메커니즘은 인간을 끊임없이 잠과도 같은 무의식 세계 속에서 헤매게 한다.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에서 에드워드 윌슨이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 인간은 애당초 수렵채집 생활에 알맞도록 적응되어 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전자 수준에서는 별다른 진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우리 현대인은 사실 능동적으로 변화시킨 환경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원시인들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꾸만 현대를 살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여전히 야생을 살고 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유전자는 여전히 원시시대를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인간은 술에 만취했을 때만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인간은 좀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만취한 사람이 알콜 주도의 좀비가 되듯이, 술에 안 취하고 정신이 멀쩡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유전자 주도의 좀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뇌가 생각만큼 영리하지 못하고 멍청해서 맨날 속고 사는 것이다. ^^ (속뇌, 알고리즘, 앵커, 알고리즘)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은 끊임없이 균형을 추구한다. 자연의 법칙이 추구하는 균형 메커니즘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좀비 라이프를 권유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삶의 시간 동안 인간은 자신에 대한 자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전자에 의해 입력된 생존 알고리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거기서 얼마나 자주 깨어날 수 있는가가 인간 삶의 질을, 인간 존재의 질을 좌우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죽어 있다가 아주 가끔씩 살아나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듯.. 얼마나 자주 살아날 수 있는가, 얼마나 자주 깨어날 수 있는가에 인간 존재의 미학이 있다. 내가 이렇게 지속적으로 블로깅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자주 살아나기 위함'인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속뇌, 알고리즘 앵커, 알고리즘 원격, 알고리즘 확장, 알고리즘 객체, 알고리즘 거잠, 알고리즘 생성, 알고리즘 Communication as a platform - 간접성과 확장성이 강한 침투력을 낳는다. 의식적 선택 vs 무의식적 선택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연재소설 블로그)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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