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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소환 :: 2011/08/26 00:06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듣던 시공간을 소환(recall)하게 된다. 음악에 얽힌 추억은 그 추억이 약동하던 시공간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음악과 시공간을 매핑하는 과정이다.
음악과 시공간의 매핑을 우연에만 맡기지 않고 인위적으로 관리해 볼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철학에 관한 생각을 할 때, 철학에 관한 글을 읽을 때 특정 음악을 계속 틀어놓으면 나중에 그 음악을 듣는 것 만으로도 철학적 씽킹을 자극할 수 있다. 기억을 소환하는 매개체에 주목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것이 음악이든 책이든 특정 장소이든 말이다. 기억 소환은 새로운 기억의 창출과 다를 바가 없다. 낡은 기억들을 소환해서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축조하는 것. 그게 창조다. 기억은 저장보다는 접속에 가까운 개념이다. 창의적 생각이 잘 떠오르는 상황을 잘 기억/분류해 보면 분명 창의 코드와 접목되는 여러 가지 상황 설정이 패턴화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어떻게 접속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기억의 패러다임을 '저장'에서 '접속'으로 바꿀 때, 나와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view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나는 시공간이란 진공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고 그 상호작용은 기억으로 치환된다. 기억은 항상 나와 진공 사이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다시 인식의 지평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한다. 소환과 잠복을 반복하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접속'을 지속하는 것. 기억은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코드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힌트의 하이퍼링크이자 스트림 피드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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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 2011/08/24 00:04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단지 책 제목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2011.8.24) 비밀 코드를 해독할 때,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밝혀낸 만큼 비밀 코드 속으로 숨는 뭔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공은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원자 이하 레벨로 아무리 내려가봐야 얄미운(?) 소립자와의 기약 없는 숨바꼭질만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물의 본질은 입자를 통해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물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진공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글로 뭔가를 표현할 때는 표현되지 못한 뭔가가 표현된 글의 이면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입자와 진공과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체만 실재로 판단할 뿐, 그 물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나누는 진공의 존재를 항상 잊고 살아간다. ^^ PS. 이윤하님의 트윗 멘션 가능성이 아직 원자도 현상도 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1/2 고양이의 공간, 빛이 탄생하지 않은, 아원자의 세계. 무한하고 영원한, 없지만 있는 세계. 경계이전의 공간. 빛이 있으면 꼭 그림자가 있죠. 빛 이전의 무엇이 바로 그 '진공'의 세계겠죠? 아이슈타인이 빛보다 빨리 뛰어 빛 앞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했다는데, 리드리드님도 비슷한 생각중이시군요 ^^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2010.11.5)
서점에서 우연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접하게 되었다. Unweaving이란 단어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읽은 '다윈의 식탁'이란 책이 떠오른다.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다윈'이란 코드를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unweaving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결과물들에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자존심을 듬뿍 실어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할 때 격렬한 사상(?)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 생물학자들은 다윈이란 성전(聖典)을 해독하고 다윈에 대한 각자의 신념을 저작하고 있으며 서로 사상이 맞지 않을 땐 격한 자존심 전쟁을 불사한다. 다윈은 가장 핫한 현대 종교다. 비밀스런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가설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게 되고 그것을 코드 해독에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신념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신념은 자가증식의 경향이 있어서 계속 그것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비밀코드와 신념은 공생 관계다. 바로 이 기반 위에서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작동하고, 과학이란 또 다른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동작한다. 해독은 신념과 만나 교리를 낳는 메커니즘이 과학에서 매우 왕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관전 포인트들이 앞으로 마구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다윈,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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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하면 측정당하고 지배하면 지배당한다. :: 2008/05/16 00:06질적 사고방식은 모든 사물이 각기 고유한 본성과 환원 불가능한 본질을 갖고 있다고 규정한다. 반면, 양적 사고방식은 인간이 물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고 시공간 등을 통한 경험으로 현상을 구성한다고 규정한다. 만약, 시간을 연속적인 흐름으로 파악하여 flow 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면 질적 사고방식이 현세를 지배하는 사고방식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시간을 일정하게 분할된 눈금에 의해 파악하고 있다. 눈금 기반의 시간 측정은 표준화와 그에 의한 엄청난 효율증대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눈금은 결코 시간의 본질이 아니다. 모든 상황에 내재한 문제점을 본질 자체에 입각하여 처리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쉽지도 않고 속도도 나지 않는다. 본질적이진 않지만 대략적이나마 동일한 범주로 통일시켜 처리하면 정교한 상호작용, 본질적인 특성은 무시되더라도 높은 효율성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환원주의의 분에 넘친(?) 성공이 시작되었고 그로 인한 딜레마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잘게 쪼개서 컨트롤 가능한 단위로 구성하면 멋지게 보이고 뭔가 문제를 신속/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너무 중요한 것들을 놓치면서 결국 문제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인간은 뭔가를 측정하면 컨트롤할 수 있고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뭔가를 측정하고 지배한다고 느끼는 순간 도리어 인간이 그 뭔가에 의해 측정 당하고 지배당하게 되는 것 같다. (by buckshot ^^) 블로깅을 하면서 측정을 통해 지배를 당하게 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트래픽에 대한 집착이다. 첨엔 내가 쓰는 글이 얼마만큼의 트래픽을 창출하는지 가벼운 관심을 갖고 블로그 히트수를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블로그 히트수에 목을 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 트래픽을 위해 블로그 포스팅의 유형까지 커스터마이징하는 유연함까지 보이게 된다. 처음에 블로깅을 시작하면서 생각해 두었던 태그 목록들이 트래픽 몰이에 적합한 인기 검색어로 가득 대체되는 상황을 맞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맞게 되면.. 내가 블로그 트래픽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 트래픽이 나를 측정하는 것이다. 블로그 트래픽이 내가 얼마나 충실히 히트수를 올리는 지를 측정하고 컨트롤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그런 주객전도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 어느 순간 난 내 블로그에서 히트수 카운터를 지워버렸다... 측정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 공즉시색 색즉시공 트래픽을 측정하고 포스팅 수를 측정하고 추천수를 측정하고 댓글 개수를 측정하고 RSS 구독자수를 측정하고 그리고 나서.. 트래픽을 지우고 포스팅 수를 의식하지 않고 추천수에 대한 관심을 끄고 댓글 개수에 유념하지 않고 RSS 구독자수에 초연해지고 그리고 나서.. 다시 또 다른 측정지표를 도입하고 측정하고 측정하고 또 측정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그것들을 지우고 잊고 의식하지 않고 버리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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