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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 2012/05/18 00:08

왜곡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이해의 주체인 인간 자체가 컨텍스트 덩어리라서 그렇다. 이해했다는 건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해는 대상을 '나'만의 컨텍스트로 구성된 '나' 프레임 위에 투영시키는 행위이다. '이해'란 단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뭔가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인지 오류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해. 나를 둘러 싼 모든 것은 결국 '나'의 투영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투영에서의 핵심은 '나'의 인지/통찰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이겠고, 그 수준이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는 한 이해했다는 생각과 안도 속에는 항상 오류 작동의 가능성이 잠재한다. 이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곡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기억한다는 건, 거대한 시간 프레임 상을 흘러가는 수많은 이벤트 조각들 중에 뇌 입장에서 돌출요소로 판명될만한 것들만 추려서 컴팩트하게 저장하는 행위다. 여기서 거대한 왜곡이 발생하는데 이건 사실 자기기만에 가깝다.
기억이 표피적인 돌출/자극 요소에 의해서만 쌓여가고 그런 메커니즘에 인간이 함몰된다면, 인간이 돌출/자극적 기억 창출 이벤트에만 몰입하게 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기억이 경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기억에 의해 지배당하는 경험은 길을 잃은 것이다. 기억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낚시성 컨텐츠로만 기억 창고가 채워지기 쉬워서 그렇다. 기억 컨테이너 안에 무엇을 담을 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저장되는 것만 저장되게 내버려두면 창고엔 기만 더미가 가득 찬다. 기억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다.

왜곡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다.
표현한다는 건, 대상의 수많은 사실관계 중에서 표현하는 자의 인지 체계로 접수된 극히 일부 정보만 표현하는 자의 컨텍스트 체계 안에서 충분히 왜곡된 후에 밖으로 표출됨을 의미한다. 표현은 형식지와 암묵지를 동시에 생성한다. 표현하는 자는 명쾌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표현자의 착각일 뿐, 실제 표현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기 마련이다. 표현으로 인해 심연 속을 떠다니는 모호한 암호 체계는 더욱 활성화되는 것이다. 표현은 풀어헤치는 행위가 아니다. 조금 풀어헤치고 많이 감추는 행위다. 많은 것을 감추고 적은 것을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PS. 관련 포스트
기억, 알고리즘
컨테이너, 알고리즘
담기와 담기기
투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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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기분좋은밤 | 2012/05/18 23: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buckshot님의 글을 읽으면 뭔가 한글 적고싶은데 다 읽고나면 글의 깊이때문에 운만띄고맙니다~
    매번 주옥같은 포스팅 감사합니다. 뭔가 창조하는일을 십수년하다보니 하늘아래 새것이 없다는것을 매번느끼고
    왜곡을 하면서 먼저 만든것이 이렇게 고민했구나도 새삼느끼면서 나중엔 어떻게 기우고 붙이느냐가 관건인것 같습니다~ 오늘은 술한잔하고 벅샷님 블로그보다가 새 포스팅읽고 일등기념으로 올립니다!^^ 편한한 주말되십시오!

    • BlogIcon buckshot | 2012/05/19 08:53 | PERMALINK | EDIT/DEL

      많이 모자란 글에 격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먼저 만들어진 것의 고민을 이해한 만큼 창조의 깊이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주신 것을 보면서 생각의 열쇠를 찾은 느낌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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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 2010/11/10 00:00



서점에서 우연히 폴 핼펀의 그레이트 비욘드란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대충 훑어 보았는데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으리란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

물리학은 만물에 내재한 근본 원리를 탐구한다. 계속되는 물리학의 발전 속에서 인류는 만물의 작동 원리에 대해 하나 둘 새로운 것들을 깨우쳐 갔고 잘못된 믿음을 바로 잡기도 했다. 뉴튼, 아인쉬타인과 같은 획을 긋는 물리학의 대발견은 일반인에게도 제목 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현대 물리학은 거시 영역, 미시 영역을 아우르는 대통합 이론을 만들고 싶어 한다. 상대성 이론으로 과학의 커다란 딜레마를 풀었던 아인슈타인이 평생에 걸쳐 도전했던 최종 이론의 수립은 미결 과제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 지금도 자연의 최종 이론을 찾기 위한 거대한 지적 모험은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의 '물' 자도 잘 모르는 내 눈에는
만물의 원리를 밝히고픈 물리학의 욕망은 거시,미시 영역 모두에서 미궁 속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물리학은 어쩌면 최첨단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반인은 해독이 매우 어려운 그들만의 언어.
물리학의 바벨탑. 그 끝은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언어 자체가 바벨탑인지도 모른다.
언어가 달라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겨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닐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아닐지.
언어는 인간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는지도.

만물의 원리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그건 첨부터 잘못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만물은 언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무식, 알고리즘
가설,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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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찬 | 2010/11/10 01:14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다양성이 없는 분야 같아요. 문화에 다양성이 있듯이, 물리학에도 다양성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 웃는남자 | 2010/11/10 18: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말하면 더이상 '도'가 아니듯이 ..
    물리학이 언어로 표현되는 이상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라는 요지로 이해하면 맞을려나요?
    제가 보기에는 '물리학은 언어로 표현된다'라는 전제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리학은 수학으로 표현되는데
    수학이 기호로 표현된다고 해서 수학을 단순히 '언어'라는 집합개념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요.

    수학에서 사용되는 고도의 추상적개념은 의사전달 목적을 가진 '언어'와는 다른 것입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0/11/12 23:58 | PERMALINK | EDIT/DEL

      언어를 넓게 해석하면 수학까지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만물은 다 언어인지도 모릅니다. ^^

  • BlogIcon 사시미 | 2010/11/12 16: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확실히 인간은 언어에 갇히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에는 길게 풀어서 설명해도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또 다른 바벨탑은 많이 세워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세베루스 | 2011/08/29 03:02 | PERMALINK | EDIT/DEL | REPLY

    글쎄요 저는 물리학의 연구 자체가 신과 인간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창조론을 바탕으로 살펴보면
    신은 이 복잡한 우주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생명체에게
    우주의 비밀을 풀어보라는 숙제를 내주는 것같습니다.
    신을 보통 예술가에 빗대곤 하는데,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정신상태를 표현합니다.
    따라서 신의 창조물인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신이 원하는 게 아닐까요?
    생물학처럼 생명의 존엄성을 해칠수도 있는 위험성을 가진 학문이
    오히려 바벨탑에 빗대기 좋을 것 같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1/08/29 23:12 | PERMALINK | EDIT/DEL

      모든 학문이 대화라 할 수 있겠지요. 다만 그 대화가 서로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서로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지의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대화의 양상을 띠고 있을텐데 그 대화에서 진정한 소토이 이뤄지고 있는지 아니면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에 대해선 각자 스스로 자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요즘 삑사리와도 같은 바벨탑을 많이 쌓고 있는 듯 해요. 반성 많이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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