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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net :: 2012/01/06 00:06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종이나 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분명 효율을 높이는 행위다. 하지만, 휘발되기 쉬운 생각을 머리(?) 속 가상 종이/스마트폰에 적는 것은 효율 제고를 넘어 생각 프레임 자체를 혁신시킬 수 있는 행위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도구를 고안해왔다. 하지만 도구는 인간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소외시켜왔다. 도구를 외연화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제 도구를 내연화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뇌(?) 안에 구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스마트디바이스에서 스마트의 주체는 누구인가? 스마트디바이스 사용자? 결코 아니다. 스마트디바이스의 주체는 디바이스 자체다. 디바이스가 스마트해져서 사람을 디바이스의 종속물로 전락시키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도구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가고 도구를 사용하는 자가 도구의 수단이 되어가는 것이 스마트디바이스가 전개하는 새로운 양상이다.

휘발되는 것이 싫어서 기록을 하고 망각하는 것이 두려워서 리마인드를 당하는 것. 휘발을 기피하고 망각을 회피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자세일까? 어디서 어디로 휘발되는 것이고 누가 무엇을 망각하는 것일까? 스마트디바이스가 주고 있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나 자신이 인터넷이고 나 자신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되면 안될까? 이미 내 안엔 인터넷 부럽지 않은 고도의 신경회로가 존재하고 내 몸은 그 어떤 디바이스보다도 더욱 스마트하다. 그것을 내 자신이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스마트도구의 힘을 빌려 스마트해진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도구로부터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각해져만 갈 뿐이다.

나의 외연에 인터넷이, 스마트디바이스가 맘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 내 자신의 사고회로가 인터넷이 되어야 하고 내 몸과 마음의 작동회로가 스마트해져야 한다. 결국 도구 진화의 종착역은 인간 자체일 수 밖에 없다. 문명의 진화, 도구의 진화는 결코 고도화가 아니다. 그저 랜덤 주사위 놀이가 자아내는 수평적 변화일 뿐이다. 아니, 수직강하일 수도 있다. ^^




PS. 관련 포스트
지뇌,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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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데굴대굴 | 2012/01/06 18:40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동안 만날 수 있는 정보가 '나 밖의 자료'였음에 반해,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나의 자료'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전에는 내가 가야하는 맛집의 위치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 주변의 맛집으로 바뀐 것이죠.

    이런 변화는 (이게 과연 스마트인지도 의문 스럽지만)
    스마트한 도구의 힘을 빌어 스마트해지는게 아니라,

    머리 속에 불필요한 것을 스마트한 도구에 밀어넣음으로써
    내 머리 속의 공간을 확보하고 보다 바르게 생각하는게
    스마트 디바이스를 접하는 바른 사용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01/07 10:55 | PERMALINK | EDIT/DEL

      데굴대굴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도구에 대한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스마트 디바이스는 저에게 큰 메세지를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귀한 댓글 주셔서 감사해요~ ^^

  • Wendy | 2012/01/11 15: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외연의 함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이 때에 이 포스팅의 발견이 곧 '오아시스'가 되어주네요. 스마트 디바이스가 진정 내게 일말의 스마트함을 안겨줄 것만 같았었는데, 종속되어가는 이 느낌을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하모니를 이루도록 잘 지휘하는, 더 나아가 나의 브레인 속에서 회로들과 시냅스들을 잘 관리하여 하나의 스마트 디바이스를 만들어야겠단 당찬 다짐도 더불어 해봅니다. 자극받고 숑숑 달려다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2/01/11 20:08 | PERMALINK | EDIT/DEL

      Wendy님께서 제 블로그에 보내주시는 관심이 저에게 진정 스마트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고 계신답니다. 넘 감사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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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 2011/12/23 00:03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말에 쉽게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전 세계가 쓰나미, 블랙스완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해야 한다는 식의 겁주기 메시지에 나름 순응적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세상은 불확실성 급증의 도가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불확실성이 커지는 이유를 외부 환경의 격변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알기 쉬울 수는 있겠으나, 실상은 불확실성이 급증한다기 보다는 불확실성을 급속하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즉, 극적인 변화는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의 수위 보다는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 속 불안감의 수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성은 예측용이성/통제용이성의 반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항상 뭔가를 더 예측하고 싶어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커지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왔다. 문명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외부 환경에 대한 예측력과 통제력은 비약적인 고도화를 거듭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거대한 착각일 수 있다. 자고로 문명이 발전되는 동안 인간이 정말 질적 성장을 기록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쉽게 대답이 잘 되지 않는다. 원시시대 대비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닥 위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양산하며 두려움의 총량을 유지하고 있다. 원시시대나 현대나 인간은 두려울 것이 있어야 안심한다. 인간 뇌는 두려움을 먹고 사는 기관이다. 인간 뇌는 마치 두려움이 유통되지 않으면 심심해서 미쳐버릴 수도 있다는 듯 끊임없이 두려움을 생성하고 소비한다. 문명 발전이 산출한 최대의 성과는 '원시시대의 원초적 두려움을 현대의 세련된 두려움으로 치환시킨 것'이 아닐까. 인간 뇌 속에 똑같은 두려움이 유통되면 인간 뇌가 지루해할까 봐 끊임없이 새로운 두려움을 인간 뇌 속에 주입시킨 것이 문명의 주요 과업이 아니었을까. ^^

예측용이성, 통제용이성을 높여간다는 착각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불안을 생산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다. 그리고 그런 생산-소비의 순환 고리 속에서 불안 BM은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어느 시대나 인간 마음 속에 잠재한 불안을 자극하고 증폭된 불안에게서 돈을 뜯는 불안 BM이 존재했다.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것. 불안감이 커진다는 것. 두려움과 끝없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어하는 인간 뇌를 자극하는 불안 BM의 존재. 불확실성, 불안감, 불안 BM은 매우 견고한 삼각편대 체제를 구성한다. 그 강력한 삼각 압박에 너무 많이 농락당하면 세상은 정말 불확실성의 소용돌이로 보일 것이다. 불안 BM을 직시하면 불안 BM에게 주입을 강요 받았던 내 마음 속 불안감은 실체성 여부를 검증 받게 것이다. 그리고 불확실성이란 단어에서 불필요한 강박은 필터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불확실성이란 단어를 당연한 느낌으로 어리버리 수용해선 안 된다. 확실한 것 하나만 견지해도 불확실성이란 단어는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실체 없는 불확실성과 뜬금 없는 불안감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극단, 알고리즘
예측, 알고리즘
[변화관리] 두려움 vs.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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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선, 면, 입체, 그리고.. :: 2011/12/07 00:07

A는 점에 머무는 자였다.

A는 점이 항상 답답했다. 항상 한 자리에 멍하니 머물러 있는 자신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유를 꿈꿨다. 어디로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움직이고 싶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보고 싶었다. A는 점을 자신의 한계라고 생각했고 점이 자신을 구속하는 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점에서 선이 되었다.
A는 너무나 기뻤다. A는 선 상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예전 점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유감을 맛 볼 수 있었다. A는 선이 새롭게 열어준 진보된 세상 속에서 사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선에서 면이 되었다.
A는 이전의 '선' 시절을 까맣게 잊고 면이 선사하는 꿈같은 신천지를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면에서 생활하다 보니 과거의 선 생활을 돌이켜 보면 너무 끔찍하단 생각이 들기조차 했다. 도대체 선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젠 예전 선 생활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느 날 A를 둘러 싼 공간은 면에서 입체가 되었다.
A는 이제 모든 것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나의 세상은 완성이 되었구나. 이제 나는 이 놀라운 세상 속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겠구나. 예전의 면, 선, 점에서의 생활은 이제 나에겐 흐릿하게 잊혀져만 가는 원시적 과거에 불과하겠구나. A는 입체 속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꿈만 같았다.

A는 입체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A가 머물고 있는 입체는 아주 오래 전에 A가 머물던 점 속에 잠재하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결국 점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빅뱅 이전의 공(空)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것을.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은 발전이 아닌 단지 점이 추는 가벼운 춤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A가 머물고 있고 A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는 '입체'는 점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고 언젠간 꼭 점이 되고 말리란 꿈을 단 한시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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