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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과의 대화 :: 2011/10/26 00:06
생각하는 힘은 잡생각을 버리는 능력이다. 끊임없는 자극을 원하는 뇌 본능을 따라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러가는 잡생각을 차단하고 해야 할 생각을 선 굵게 하는 능력. ^^
대부분의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고, 대부분의 텍스트가 난수표로 보일 때가 있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소리, 하나의 텍스트가 음악과 의미로 다가오는 그 순간. 소음과 난수표의 귀중함을 느끼게 된다. 몰입을 하게 되면 소음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소음은 잡생각으로 가득찬 마음 그 자체이다. 특정 장르의 음악을 들었을 때 소음으로 들리거나 어떤 그림을 보았을 때 무엇을 그린 건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건 패턴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재즈를 매우 좋아하지만 17~18년 전에 재즈 연주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불편한 느낌에 "뭐 이런 게 다 있어"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처음 재즈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정말 소음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지금은 재즈를 편안하고 즐겁게 들을 수 있는데, 재즈가 소음에서 편안함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재즈 음악을 구성하는 멜로디/리듬의 배치에서 나에게 익숙한 어떤 의미덩어리를 패턴으로 묶어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패턴을 먹고 산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다양한 문제 이해/풀이 패턴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경영을 잘한다는 것은 다양한 전략/실행 패턴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에서 패턴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 분야를 소음으로 인지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뇌 기능이 저하되면서 패턴 생성/유지 능력이 떨어진다. 결국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인지할 수 있는 패턴이 점점 줄면서 세상은 소음으로 변해가고 그런 무질서 가득한 소음 속에서 나 자신의 무질서도 덩달아 증가하게 된다. 무질서의 끝은 죽음이다. 소음사회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는 것. 소음을 응시할 때 소음임이 명확해진다. 소음을 응시하면서 소음 아닌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소음을 응시하면서 소음 속에서 패턴화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소음과 대화하는 것이다. 소음은 생각과 몰입의 자양분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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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희소한가? :: 2010/07/21 00:01희소성은 경제에서만 주목 받는 개념이 아니다. 개인 정체성 관점에서도 희소성이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띤다. 나를 둘러 싼 자원 중에서 희소한 것이 무엇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연결 시대엔, '단절'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넘쳐나는 연결 속에서 '단절'을 잘 다뤄야 유니크해질 수 있다. 내가 선택하는 '의식적인' 단절이 나를 결정한다. 언제,어디서,왜,무엇을,어떻게 단절할 것인가? 스마트 디바이스의 시대엔, '스마트 핸드'가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디바이스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디바이스 중독을 통제할 수 있는 '손'의 힘이 유니크함을 만든다. 언제,어디서,왜,무엇을,어떻게 손으로 다룰 것인가? 혁신 로망의 시대엔, '운영에 대한 프라이드'가 최고의 희소 자원이다. 너도나도 혁신을 부르짖고, 기획에 몰입하고 있을 때, 자잘자잘한 운영의 소중함에 눈을 뜨고 소박한 운영 속에서 통찰을 갈고 닦는 기회가 분명히 존재한다. 외모 지상주의 시대엔, 외모에 대한 끝없는 결핍감을 생까는 '외모튜닝 무감증'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외모지상주의의 벼랑 끝으로 줄달음치는 레밍의 무리에서 홀연히 떨어져 나와 내추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뿜어내는 무모함. 스펙의 시대엔, '자존감'이 최고의 희소자원이다. 표면적 성공의 크기를 서로 비교하려 드는 '타존' 만땅의 시대에 '존재(being)'의 과정 자체에 몰입(flow)하는 '자존'의 면모는 우아한 희소성을 띠게 마련이다. 대중성을 확보한 자원의 이면에서 유니크한 기운을 뿜어내는 희소자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희소자원을 어떻게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개인 경영의 최대 화두일 수 밖에 없다.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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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잡, 알고리즘 :: 2010/03/24 00:04
나는 직장에 다닌다. 직장에서 일을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받는다.
나는 블로깅을 한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일을 한다. 블로깅을 하고 재미를 받는다. 2개의 일을 한다는 것. 투잡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돈 버는 일과 돈 안 되는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2006년 12월부터 블로깅을 시작했으니 3년 넘게 블로깅을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블로깅은 적지 않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대신 돈은 한 푼도 안 나오는 일이다. 난 이 일을 왜 지속하는 것일까? 그건 돈 버는 일만으로는 나 자신을 아는데 한계가 있어서인 것 같다. 물론, 특정 분야에 몸을 담고 그 분야에서 프로페셔널답게 일을 지속해 나가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버는 일만 하게 되면, 자칫 '돈'으로 환산되는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쌓여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을 경제적 가치로 홀랑 환원시켜 버리는 프레임 속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왠지 심심하다. 돈과 관계 없이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아이덴티티에 충실한 뭔가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좀더 알아가고 숨겨졌던 자신의 모습 하나 하나를 차곡차곡 꺼내가는 과정 자체에 충실한 '끝없는 여행'을 한다는 것. 그게 내가 블로깅에 부여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블로깅을 하면서 화폐로 좀처럼 환산되기 어려운 생각/노력들이 화폐로 환원되기 어려운 즐거움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재미'가 블로깅엔 존재한다. 그 재미는 화폐경제 관점에선 참 해석이 난해한 개념이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알아 간다. 나는 블로깅을 통해 내게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닦아 나간다. 내 안경에 쌓인 먼지만 닦아선 안 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묻은 먼지를 닦아야 하고, 그 프레임이 낡아지면 새 프레임을 장착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안경은 안 써도 '세상을 보는 프레임'은 반드시 쓰고 다니기 마련이다. 내게 있어 블로깅은 작은 기쁨의 공간이기 보단, 작은 것을 크게 기뻐하는 법을 배우는 공간이다.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작은 것 하나 하나를 발견하고 알아 가면서 그 작은 것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는 경험을 지속하는 공간. 이건 돈이 전혀 안 되어도 반드시 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 것이다. Two jobs를 갖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하나는 돈 버는 일, 하나는 돈과 관계 없이 그저 재미있는 일. 이렇게 2가지 일 사이를 오가는 맛이 '투잡'의 참 맛이다. 1가지 일만 계속하면 질리거나 굶는다.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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