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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 알고리즘 :: 2010/04/07 00:07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스-게오르크 호이젤의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에 인간 뇌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의 구조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숫자, 측정, 논리.. 뭐 이런 것들은 대상을 장악하고 포섭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뭔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단지 뭔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읽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측정을 계속 하다 보면 측정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측정을 통해 뭔가에 대해 온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의 세계는 비단 미시물리 메커니즘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지 않을까? 뭔가를 장악/포섭/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숫자, 측정, 논리라는 도구를 써서 그럴 듯 하게 뭔가를 규정하고 컨트롤하려 하지만, 측정에 측정을 거듭할 수록 대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측정'이란 프레임에 대한 집착만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핵심은 관계 자체를 통한 정서적 유대감과 같은 것이지, 관계에 대한 정의는 아닌 것이다. 관계를 규정하고 그 규정으로 관계를 바라보려 하는 순간, 관계는 변질되기 시작한다. 관계보다는 관계에 대한 정의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측정'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측정은 대상의 일부만을 포착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측정'이란 행위를 하면서 대상 지배 욕망을 다스릴 수 있어야 측정 프레임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배욕망에 지배되지 않는 무집착 측정. 공즉시색/색즉시공의 마음으로 측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PS. 관련 포스트 측정하면 측정당하고 지배하면 지배당한다. 숫자, 알고리즘 전쟁, 알고리즘 관계의 핵심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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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 알고리즘 :: 2009/02/18 00:08
인간의 확장 2 (2008.2)
마샬 맥루한은 인간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하는 도구나 기술을 미디어로 정의하고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이라고 규정했다. 즉, 책은 눈의 확장, 라디오는 귀의 확장, 옷은 피부의 확장, 자동차는 발의 확장, 인터넷은 중추신경의 확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확장의 꿈을 실현시키고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인간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세상과 다른 인간을 만나기 전에 필연적으로 미디어와 먼저 만나야 한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관계를 형성하면서.. 인간과 세상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미디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기관 확장을 도와주는데 그치지 않고 감각기관에 영향을 주게 된다. 즉, 미디어는 자신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인간에게 주입하게 되고 인간은 무의식 중에 미디어가 가진 특성을 인간 속에 체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객체, 알고리즘 (부제: 인간의 확장 3) 인간의 신체는 급속한 속도로 확장을 거듭해 왔다. 이제 전철/버스/자동차와 같은 교통수단 없는 이동은 생각하기 힘들다. 핸드폰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지극한 불편을 초래한다. 인터넷은 거대한 사이버 세계 속 인간 생활을 이끌고 있다. 옷은 의도적 진부화의 지속을 통해 패션이란 거대한 산업 영역을 구축했다. 인간의 확장은 전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확장은 철저히 인간이 갖고 있는 개별 기능의 업그레이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인간을 주요 개별 기능들의 집합으로 환원시킨 후 각각의 기능들을 기계적으로 발전시킨 끝에 개별 기능들이 인간이 갖고 있는 기능적 한계를 훌쩍 넘어서게 하여 인간 확장을 이끌어 냈다. 문명의 진화를 통한 인간 확장은 결국 아래와 같은 객체화 과정의 산물이다.
기능적 인간의 확장이란 맥락 속에서 '도구'라는 단어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결국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요소 중에서 가장 대상화/객체화하기 쉬운 것이 바로 인간이 수행하는 물리적 기능이고 이를 가볍게 도구로 환원시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이 인간 확장의 모습이다. 인간은 결국 확장이 용이한 것만 쏙쏙 뽑아서 확장시켜 온 것이다. 그 와중에 소외되고 있는 것들의 양상에 대한 관찰과 이해의 수준은 너무 조악하다. 인간 기능의 확장은 결국 수단 자체의 미학을 추구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객체화 알고리즘은 객체화되기 쉬운 요소들의 번성 속에 객체화하기 어려운 그 무엇들이 침잠하는 상반된 흐름을 낳게 된다. 객체는 단순 도구적 지위에만 머물러야 하는데 이제 도구라는 이름의 객체는 주체를 충분히 소외시키고도 남을 만한 파워를 획득했고 이제 주객전도의 양상을 가속화하기 위한 파레토 알고리즘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 같다. 핸드폰 간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킹 속에서 인간은 핸드폰의 신호음에 자동 반응하고 있고 통신/방송 네트워크가 쏟아내는 홍수와 같은 정보의 폭주는 인간을 압박하고 중독시키고 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점점 창대한 기세로 주체를 리드하는 객체 객체의 창발적 주체화, 주체의 창발적 객체화 그게 객체 알고리즘이다. PS. 인간의 확장 1 (2007.1)
자공이 한수 이북을 두루 여행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노인은 물을 대기 위해 도랑을 팠다. 그러고는 우물 속에 내려가 물을 한 통 퍼서 도랑에 붓고 있었다. 그의 노고에 비해 성과는 보잘 것 없었다. 자공은 노인에게 "힘을 조금만 들이고도 하루에 백여 개의 도랑에 물을 대는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에 대해 듣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노인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 보다가 "그 방법이란 게 뭐요?"라고 말했다. 자공은 "앞을 가볍게 하고 뒤를 무겁게 한 나무 지렛대를 사용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물을 빨리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두레 우물이라고 합니다." 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얼굴에 노기를 띠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기계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계처럼 일을 하게 된다고 했소.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의 마음은 결국 기계처럼 됩니다. 그리고 가슴 속에 기계의 심장을 가진 사람은 순수성을 잃습니다. 순수성을 잃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이 하는 일들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영혼이 하는 일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감각도 정직하지 못하게 됩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알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런 것들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습니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신체/감각기관을 증폭/확장시켜준 반면 인간의 사고/감각 기관을 마비시키고 기술에 철저히 종속되게 되었다는... 그리고 기술 발전의 결과물들이 인간 신체/감각기관의 확장이기 때문에 인간은 계속 기술 자체에 대한 수요를 가질 수 밖에 없어 계속 종속의 고리는 강해진다는.... 물자체에 대한 인식을 외면한 채, 기계적인 분할에 따른 controlability만 따지는 환원주의의 폐혜란.... 전기 탄생의 의미, 철도 탄생의 의미, 전화 탄생의 의미... 수많은 기술 발전의 결과물의 의미는 외면되고 결과물에 대한 인간의 종속만 점점 심화되어 간다.. 그게 세상이다. 아직도 세상은 데카르트님의 손바닥 안인 것 같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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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알고리즘 :: 2008/12/29 00:09
삼성경제연구소(SERI)에서 발표한 2008년 10대 히트상품 리스트를 보니 1위가 촉각형 휴대폰(햅틱 등)이다. 손끝으로 느끼면서 조작하는 신감각 휴대폰이라는 설명과 함께..
촉각.. 촉각이란 단어를 보니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 나오는 한 구절이 연상된다. 촉각의 확장과 측정.. 측정하면 측정당하고 지배하면 지배당한다. (2008년 5월 16일자 포스트) 뭔가를 측정한다는 것은 단지 뭔가가 갖고 있는 정보를 단편적으로 읽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측정을 계속 하다 보면 측정 자체에 몰입하게 되고 측정을 통해 뭔가에 대해 온전히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착각은 촉각의 확장인 숫자가 나름의 독자적 생명력을 획득했다는 것이고 숫자가 생명력을 갖고 계속 '자가증식'하면서 다른 감각의 균형 있는 성장/발전을 저해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감각이 넘 발달하면 다른 감각은 진보가 더딜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 시각이 지나치게 발달하면 청각,후각,촉각,미각은 상대적인 열세를 보이기 마련.. 숫자에 밝다는 것은 좋을 수 있는 것이다. 숫자에 밝으면 숫자 간의 관계(Ratio, 비율)에도 밝을 수 밖에 없고, 덩달아 Rational(합리적) 측면에서도 강점을 보일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숫자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숫자의 독자적 생명력에 함몰될 우려가 농후하다. 숫자 자체의 미학에 빠져서 숫자의 우아함만을 지향하게 되면, 숫자의 미로 속에 빠져 정확한 현실 직시를 하기 어렵게 될 수 있고 숫자에 집중한 나머지 숫자의 지배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살아가면서 내가 몰입하고 내가 중요시 하는 숫자에 대해선 가끔씩은 점검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각자만의 중요한 숫자(Key Metrics)를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에 얽매이고 지배를 받기 십상이다. 내가 중요시 하는 숫자, 나를 지배하는 숫자가 뭔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지배관계에 넘 함몰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컨트롤할 필요가 있다. 감각의 확장은 결국 감각의 마비로 돌아오기 마련이니까. ^^ PS. 숫자가 촉각의 확장이라면.. 감각기관에 접수되는 다양한 정보를 장악/포섭하려는 감정적 욕구에 의해 숫자가 탄생하고 논리/합리/이성이 창발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리적/합리적/이성적 사고 프레임의 기저엔 대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감정적 동기가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측정/지배하고자 하는 욕구는 반작용에 의해 측정/지배당하는 역전 현상을 낳게 되는 것이고.. 로지컬 프레임에 기반한 감정적 지배 욕구가 역 지배를 낳게 되는 현상.. 감각-감정 알고리즘에 의해 원격 조정되는 어설피 이성적인 인간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즉, 이성 알고리즘은 감각-감정 알고리즘의 하위 알고리즘인지도.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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