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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 2011/08/24 00:04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역시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읽지는 않는다. 그리고 올해도 역시 단지 책 제목만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비밀코드 해독과 진공 (2011.8.24) 비밀 코드를 해독할 때,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밝혀낸 만큼 비밀 코드 속으로 숨는 뭔가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진공은 무엇일까? 정말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진공은 우리 인지체계로 파악이 되지 않을 뿐 분명 뭔가를 함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다. 만물의 기본은 원자도 아니고 소립자도 아니다. 만물의 기본은 진공이다. 원자 이하 레벨로 아무리 내려가봐야 얄미운(?) 소립자와의 기약 없는 숨바꼭질만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만물의 본질은 입자를 통해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만물의 본질을 파헤치려면 진공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그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글로 뭔가를 표현할 때는 표현되지 못한 뭔가가 표현된 글의 이면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건 마치 입자와 진공과의 관계와도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체만 실재로 판단할 뿐, 그 물체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나누는 진공의 존재를 항상 잊고 살아간다. ^^ PS. 이윤하님의 트윗 멘션 가능성이 아직 원자도 현상도 되지 않은, 슈뢰딩거의 1/2 고양이의 공간, 빛이 탄생하지 않은, 아원자의 세계. 무한하고 영원한, 없지만 있는 세계. 경계이전의 공간. 빛이 있으면 꼭 그림자가 있죠. 빛 이전의 무엇이 바로 그 '진공'의 세계겠죠? 아이슈타인이 빛보다 빨리 뛰어 빛 앞에 서면 무엇이 보일까 궁금해했다는데, 리드리드님도 비슷한 생각중이시군요 ^^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2010.11.5)
서점에서 우연히 리처드 도킨스의 '무지개를 풀며 (Unweaving the rainbow)'를 접하게 되었다. Unweaving이란 단어에 눈길이 간다. 예전에 읽은 '다윈의 식탁'이란 책이 떠오른다. 위대한 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 박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생물학계의 최고 지성들이 진화론에 대해 한바탕 대 설전을 펼치게 된다는 '가상 논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물학계의 거성들은 진화론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를 중심으로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져 1주일 간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강간도 적응인가?", "이기적 유전자로 테레사 수녀를 설명할 수 있나?", "유전자에 관한 진실을 찾아서", "진화는 1백미터 경주인가, 넓이뛰기인가?", "박테리아에서 아인슈타인까지" 등의 주제를 놓고 리처드 도킨스 진영과 스티븐 제이 굴드 진영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그 동안 쌓아왔던 자신들의 이론과 자존심을 걸고 팽팽한 의견 대립을 선보인다. '다윈'이란 코드를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unweaving하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다른 결과물들에 자신만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자존심을 듬뿍 실어 결정적인 이견이 발생할 때 격렬한 사상(?) 논쟁을 하고 있는 모습. 생물학자들은 다윈이란 성전(聖典)을 해독하고 다윈에 대한 각자의 신념을 저작하고 있으며 서로 사상이 맞지 않을 땐 격한 자존심 전쟁을 불사한다. 다윈은 가장 핫한 현대 종교다. 비밀스런 코드를 해독한다는 것. 비밀을 하나 둘 파헤쳐 가는 과정 속에서 가설과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전하게 되고 그것을 코드 해독에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신념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신념은 자가증식의 경향이 있어서 계속 그것을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려는 노력을 수반하게 된다. 비밀코드와 신념은 공생 관계다. 바로 이 기반 위에서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작동하고, 과학이란 또 다른 종교계의 교리 싸움이 동작한다. 해독은 신념과 만나 교리를 낳는 메커니즘이 과학에서 매우 왕성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관전 포인트들이 앞으로 마구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해독과 신념. 그리고 종교. 다윈,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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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oft-Wired Gene :: 2010/10/22 00:02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아주 오래 전, 스스로 복제사본을 만드는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고 그 복제자는 생존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 복제자는 직접 움직이기 보단 거대한 군체 로봇 안에서 편안하게 거주하면서 원격 조정을 통해 군체 로봇을 교묘하게 다룬다. 복제자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으며, 그것을 보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들은 영속하는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그들의 생존 기계일 뿐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서 받은 느낌은, 그의 가설이 사실 여부를 떠나 굉장히 쿨하고 우아하다는 것이다. 그의 가설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나의 생각을 자극하고 나로 하여금 다양한 사고실험을 하도록 한다. 일종의 가설 증식 플랫폼이라고나 할까.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있으면 유전자에 꽤 많은 결정력이 내포되어 있단 생각이 든다. 유전자의 생존 본능이 인간을 꼭두각시처럼 부리기만 할 뿐, 인간에겐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일까? 물론 저자는 인간에게도 대응력은 존재한다고 얘기하고 있긴 하지만 원체 설정 자체가 강력하다 보니 강력한 유전자 본능에 아무래도 위축감을 느끼게 된다. 세상은 코딩으로 이뤄져 있다. 코딩은 표현이다. 인간도 코딩된 구조물이다. 표현된 코드는 전달/복제/증식된다.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은 증폭을 추구한다. 표현되지 않는 것들은 빙산의 일각 밑에 거대하게 숨어 있다. 표현된 것을 보고 표현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표현되지 않는 것은 증폭되지 않는 대신 압축된다. 증폭과 압축은 동전의 양면이다. 빅뱅을 통해 무한 확산되는 우주가 결국은 한 점보다도 작은 무한 압축 상태를 지향하는 것처럼 말이다. 표현된 것의 증폭과 표현되지 않는 것의 압축이 뫼비우스의 띠를 이루는 다이내믹스 속을 우린 살아가고 있다. 앎의 지평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동시에 오직 한 점을 향해 수렴하는 그 미묘함. 이보다 더 역동적인 춤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로 코딩된 구조물이다. 유전자 코딩은 매우 명시적이고 분명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마치 프로그래밍된 로봇처럼 유전자 코드의 지령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표현된 코드는 빙산의 일각이고 그 밑에 표현되지 않고 숨어 있는 거대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 유전자는 인체에 hard coding 되어 있기 보단 soft-wired에 가까운 상태라고 가설해 본다. 하드코딩이냐 소프트와이어드냐를 가르는 분기점은 질주하는 유전자의 단순무식 생존본능 플로우를 임의로 멈출 수 있는가에 존재한다. 즉, 인간은 자신을 지배(?)하는 유전자를 관찰하고 교란할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 본능에 대해 직시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그것은 증폭 알고리즘에서 의해 인간을 마구 좌지우지하기 마련이다. 유전자는 방관자에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 뿐, 관찰자에겐 철저히 교란 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유전자에 대해 방관자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 관찰자의 스탠스를 취할 것인가. 이건 일종의 게임이다. 유전자 방관자로 살아가는 자에게, 유전자는 강력한 hard-wired 상태가 되어 인간을 지배한다. 유전자 관찰자로 살아가는 자에게, 유전자는 느슨한 soft-wired 상태가 되어 인간에 의해 컨트롤 당한다. 유전자와 내가 상호작용을 하는 게이머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린 유전자 방관자로 살아가면 안된다. 유전자 본능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고 유전자가 제멋대로 나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게임을 전개해야 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유전자는 The Soft-Wired Gene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가설,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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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알고리즘 :: 2010/02/05 00:05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 '지상 최대의 쇼'를 읽다가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실험이란 내가 직접 뛰어들어서 뭔가를 하는 것이다. 내가 조작하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꾸고, 그 결과를 변화가 없는 '대조군'과 비교하거나 다른 변화의 결과와 비교하는 것이다. 실험은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험은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에 어떤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험은 개입이요, 조작이다. 이는 질량을 측정하려고 하면 위치를 측정할 수 없고, 위치를 측정하고자 하면 질량을 측정할 수 없다는 양자역학을 연상케 한다. 개입은 대상에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를 가하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다가 문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노트'] 삶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올 한 해 야구열풍이 의미하는 것 아티클을 트윗에 올렸던 일이 기억난다. 그 트윗에 eustino님께서 주신 댓글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트렌드는 단순한 현상 관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트렌드는 현상 속으로 깊숙히 침투하여 현상 속에 분포되어 있는 롱테일적인 파편들을 수집하고 그 파편들을 실험적으로 연결하여 일종의 가상 트렌드를 창출한다. 이는 트렌드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그 영향이 심대할 경우, 실제 트렌드로 가시화된다. 트렌드 전문가는 트렌드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트렌드의 프레임을 재단하고 트렌드의 흐름을 리드한다. 가장 강력한 트렌드 예측은 트렌드를 직접 만들어서 트렌드 소비자들이 그걸 믿게 만들고 그에 따라 행동하게 세뇌하는 것이다. 트렌드 구루는 정확하게 트렌드를 예측하는 자라기 보다는 트렌드 소비자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유린할 수 있는 자인 것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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