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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악의 힘 :: 2013/03/15 00:05
리더는 조직을 좋게 만들 힘은 그닥 갖고 있지 못하다. 조직은 조직원들이 좋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리더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조직을 나쁘게 만드는 힘. 그 힘이 너무도 크기에 리더란 위치는 매우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리더는 자신이 뭔가를 해서 조직을 좋게 만들려는 의지 보다는 내 자신이 하는 일들이 조직에 어떤 나쁜 임팩트를 미치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는 환상에 가까운 것이다.
문명도 유사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자 문명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구르고 굴러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문명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개악들이 얼마나 많은지. 뭔가를 좋게 만들려는 의지로 구현한 것들이 결국 이전보다 개선한 것이 그닥 없는 허무한 결과들을 낳은 케이스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문명은 진보로 포장된 퇴행일 것이고 문명의 발전은 '오래된 미래'를 뒤늦게야 이해해 나가는 멋쩍은 뒷북형 학습 해프닝에 불과한 듯하다.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의지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의도와는 달리 질서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끊임없이 창발한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풍선효과와도 같아서 한 쪽을 누르면 다른 한 쪽이 튀어 나오는 현상의 무한 반복일 뿐이고 그런 쳇바퀴 속에서 뭔가를 했다는 자위는 공허함만을 더할 뿐이다. 개악은 왜 자행되는가? 개선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본능이 낳은 환상이 인간의 감각기관을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개선보단 개악을, 진보보단 퇴보를, 질서보다는 무질서를 낳는 경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좀처럼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만을 위한 몸부림으로 생 전체를 일관하는 유전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개선과 진보를 향한 기계적 몸부림을 아무런 자기비판적 태도 없이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기계적 행동은 유전자 속에 깊숙이 프로그래밍된 유전형질과도 같이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견고하게 장착된 채 인간을 유린하고 있는 모습. 개악의 중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우선, 맹목적 본능의 기계적 진행을 멈춰야 한다. 본능의 움직임을 느끼고 그것을 제어할 수 있어야 개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가 있다. 어리버리 있다간 본능은 저만치 앞서 달려나가기 마련이다. 이미 달리기 시작한 본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본능이 본격적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감지하고 본능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일단 말을 걸게 되면 본능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 본능이 주춤거리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맹목적 개악의 몸짓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서, 나의 행동이 개악과 개선 중 어느 쪽으로 좀 더 기울었는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대개 개선 만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본능 때문에 개악의 효과를 직시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개악이 개선을 압도하기 쉽다는 인간 존재의 미약함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순간 개악과 개선을 구분할 수 있는 중립적 판단 능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사실, 개선과 개악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개악을 덜 했는가의 문제라고 깨끗이 상황을 시인하고 나면 판단력은 명징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개악을 자제하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한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나빠지기 쉽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프로그래밍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된 프로그램만 평생 죽어라 수행하다가 떠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너무 허무하다. 자신에게 주입된 프로그램 말고 자신이 스스로 주입한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로봇같이 흘러가기 쉬운 기계적 인간 삶에 청량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만 어이없는 뇌 놀음에 평생 유린당하는 바보 같은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천부적으로 타고난 나의 개악 능력을 시인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자제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 수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 살아가다 뭔가를 바꾸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보람 있었다고 자위하는 환상 속 삶은 지양해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개선의 포스가 아니라 개악의 포스이다. 그 포스를 마음대로 휘두르며 끊임없이 세상을 개악할 것인가? 아님 그 포스를 내가 새롭게 창제한 나만의 프로그래밍 기법으로 현명하게 조종할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질서,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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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 2012/11/14 00:04'접수'라는 개념은 직장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서 주인의식을 강렬하게 견지하긴 어렵다. 하지만 누가 시킨 일이라도 그 일에 나의 혼을 불어넣으면 그 일은 어느새 내가 접수한, 내 주인의식 기반으로 작동하는 일이 된다. 거대한 기업경영의 장 속에서 자신을 경영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기업은 결코 한 개인의 성장을 걱정하고 케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기업 특유의 생존 본능에 입각해서 기업의 영속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기업 영속성을 제고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 기업의 영속성을 지키기 위해 개인은 자신의 영속성을 소비하는 것이고 그런 과정 속에서 개인경영의 존재감은 더욱 흐릿해질 수 밖에 없다. 나 자신을 단지 소모품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나 자신 만을 위한 개인경영의 행보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의식적으로 소모품으로 정의되는 삶을 살아가는 한 무기력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고 뭔가를 이뤄간다기 보다는 뭔가를 향해 지쳐간다는 느낌 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 자본의 소모품 입지를 완전히 회피하긴 어렵다. 쩐신이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한 쩐교의 교리 체계를 온전히 거부하는 건 불가능하다. PS. 관련 포스트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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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리더십 :: 2012/06/25 00:05
@gulthee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이 책은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리더의 언어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차근차근 리더 커뮤니케이션의 원칙들을 설명해 나간다. 차분히 자신의 리더십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조직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자만 리더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의 삶을 리드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리더일 수 밖에 없고 리더십은 모두의 숙제일 수 밖에 없다. 리더십은 왕도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나의 리더십을 반추하고 끊임없이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리더십일 것이다. 누구나 현 시점에서 자신의 리더십의 수준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리더십의 측정은 참 용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조직에서 리더가 자신의 리더십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고 싶다면 자신이 이끄는 조직구성원(follower)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된다. Follower들의 모습 자체가 리더십이 발휘된 결과이다. 리더는 정확히 자신이 가진 리더십의 수준만큼 조직을 이끌게 되고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십의 수준만큼 리드를 받게 되고 변화하게 된다. 조직을 이끌지 않는 follower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자신의 리더십을 측정해 볼 수 있다. 리더와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리더에게 영향력을 얼마나 발휘하고 있는가, 나와 협업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자. 내가 영향력을 미치는 크기만큼 나의 리더십이 형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리더십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면서 서로를 비춰주는 상호 거울과도 같은 것이다. 나의 수준을 알고 싶으면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 속에 투영된 나의 모습을 보면 된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떻게 따르게 할 것인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고칠 점을 찾아 나가면 된다. 리더십의 핵심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상호거울의 원칙이 작용되는 영역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간의 생각과 행동이 만나고 화합하고 충돌하고 함께 가거나 평행선을 긋거나 엇갈리면서 상호거울이 형성된다. 함께 일하는 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속에 투영된 나 자신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의 모습이 온전히 상대방의 모습이 아니고 내 모습이 온전히 내 모습이 아닌 것이다. 내가 대하는 모든 것은 나의 거울이다. 나는 그것을 대하면서 나를 발견하고 나를 튜닝한다. 조직을 이끌던 이끌지 않던 모든 사람은 리더이다. 리더는 항상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 사방에 존재함을 느껴야 한다. 거울을 인지하고 그것을 쳐다본 만큼 리더십은 진보해 나갈 것이다. 리더십은 거울이다. ^^ PS. 관련 포스트 평가와 거울반사 비난과 자성 사이 영감을 주는 리더와 일해본 적이 있나요? - 지나간 리더들에 대한 잡담 보스,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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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은 readership에서 나온다. :: 2012/02/01 00:01리더십의 출발은 자성(자아성찰)이다. 자아성찰의 크기만큼 영향력의 크기가 생성되기 때문에 그렇다. 영향력은 내가 변화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 남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변화할 수 있는 힘은 정확한 나의 위치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현재 나의 위치를 알아야 내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나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읽어야 한다. 자아성찰은 나의 현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leadership은 결국 readership으로 귀결된다. 경영/리더십의 궁극은 결국 "나"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이다. 나를 온전히 read하고 나를 온전히 lead하는 자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그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다. ^^ PS. 관련 포스트 리더, 알고리즘 리더십과 에너지 관리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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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리더십 :: 2011/10/24 00:04/음악
슈퍼스타K 심사위원들은 한결 같이 버스커 버스커 리드 싱어의 보컬이 밴드를 강력하게 이끌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버스커 버스커는 보컬이 밴드 사운드의 한 요소에 불과한 세션 리더십 뮤직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동경소녀는 내가 요즘 제일 많이 듣는 음악 중의 하나이다. 보컬 카리스마가 약해도 이 노래는 묘한 매력을 나에게 선사한다. 음악의 주인공이 꼭 보컬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컬이 사운드를 지배하려 하지 않고 전체적인 사운드 속의 조화로운 모듈을 담당하고 기타, 베이스, 드럼이 각자 자신의 소리를 멋들어지게 내는 음악은 보컬 중심의 음악과는 다른 맛을 충분히 낼 수가 있다는 것을 동경소녀를 들으며 알게 되었다. 공간을 강하게 채우려고만 하는 보컬은 때론 듣는 사람에게 피로감과 부담을 주기도 한다. 공간을 꽉 채우는 음악도 좋지만, 비어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사운드는 듣는 자의 영감을 자극할 수 있다. 음악을 만드는 자가 음악을 듣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음악을 듣는 자가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 나갈 빈 공간을 제공해 줄 때, 음악은 새로운 프로슈밍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타를 연주하는 자가 기타 사운드를 부각시키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드럼을 연주하는 자가 드럼 사운드를 부각시키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기타를 연주하는 자가 보컬과 드럼을 배려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드럼을 연주하는 자가 보컬과 기타를 배려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보컬이 기타와 드럼을 배려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이런 음악들이 어우러져서 멋진 앨범을 구성하게 되는 그런 음악. 음악의 모든 요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음악. 음악과 빈 공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음악. 비어 있음이 결코 비어 있지 않고 무엇인가를 수행하는 그런 음악. 슈스케3를 보며 '주인공'에 대해, '비어 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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