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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w, 정보의 동적평형 :: 2011/06/10 00:00
경계는 생성되고 허물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들기만 하고 허물지 않으면 경계는 썩어간다. 끊임없는 동적평형의 중심에 경계는 위치해야만 한다.
Bookmark는 덧없는 저장이다. 매번 "다음에 봐야지"하면서 북막해 두지만 나중에 그걸 다시 꺼내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북막의 진정한 의미는 "저장해서 나중에 보기"가 아니라 "접속한 정보의 인덱싱" 정도인 것 같다. Bookmark는 stock과 flow 간 절묘한 중간 지점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부질 없는 저장에 대한 욕망과 다이내믹한 접속에 대한 욕망의 중간 지점에 북막은 위치한다. Bookmark 기능을 흐르는(flow) 정보를 저장(stock)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저장(stock)된 정보를 흐르게(flow) 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흐르는 정보를 저장하는 행위보다, 저장된 정보를 흐르게 하는 행위가 훨씬 순리적이다. 정보의 속성은 'stock'보단 'flow'에 훨씬 더 가깝다. 경쟁적 성격의 재화는 '저장'의 의미가 분명 있다. 하지만 정보는 태생이 비경쟁적이다. '저장'한다는 개념 자체가 정보의 속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보는 flow의 속성을 갖고 있다. 정보를 억지로 저장(stock)하려고 하면 정보는 가치를 잃어간다. 가만히 있느니 차라리 단순 복제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 정보는 흐른다. 사람도 일종의 정보다. 사람이란 이름의 정보는 끊임없이 시공간 좌표 상을 흘러간다. 정보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 모든 시공간은 맥락을 갖고 있다. 정보는 시공간을 흐르면서 맥락과 접속하는 것이다. 정보가 흐른다는 것은 다른 정보와 접속/연결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접속은 경계와 경계가 만나서 새로운 코어가 생성됨을 의미한다. 내가 어떤 정보에 접속한다는 건, 내가 그 정보를 관찰/해석하고 그 정보는 나에 의해 관찰/해석당하는 것이다. 관찰/해석하든, 관찰/해석당하든, 접속은 양 쪽 모두를 변이시킨다. 접속/연결은 단절된 것들의 만남이 아니다. 애초부터 나눠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분리' 환상을 깨는 작업이다. '분리'는 인간 인식/역량의 한계가 낳은 엄연한 착시효과다. ^^ PS. 관련 포스트 나, 시공간, 해체 정보 배설 만물은 고갈한다. ^^ 무엇이 희소한가? 휘발의 흐름, 흐름의 연결 유동, 알고리즘 [지식] Stock vs Flow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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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 2011/03/11 00:01
문득,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포스트에 남겨주신 아거님의 댓글이 떠오른다.
창의력은 혼자가 되는 힘이다. 그럼 군중/집단 속에 파묻혀 있으면 창의력이 쇠약해지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군중/집단은 외로움의 역설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군중/집단 속에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항상 고립을 회피하고자 한다. 고립만큼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없다.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확인하면서 자신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인간의 사회성이다. 어쩌면, 창의력은 은둔이 아닌 군중/집단 속에서 보다 강력하게 발현될 수가 있다. 내가 타인들과 어떻게 다른 지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나의 유니크한 특성들을 보다 날카롭게 계발시켜 나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는 거대한 창의력 극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군중/집단 네트워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블랙홀과도 같은 시공간. 그 속에서 활동하면서 '나'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와의 극명한 차이가 뭔지를 명확히 알아갈 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창의력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극적으로 창발할 수 있을 것이다. 군중(群衆) 속의 고독(孤獨). 군독(群獨). 인간의 본질은 군독(群獨)이다. 창의력은 관계와 고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아의 동적 평형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자 우주에서 가장 역동적인 춤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웹'이란 이름의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나만의 춤을 춘다. 그 춤의 이름은 '군독무(群獨舞)'이다. ^^ PS.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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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배설 :: 2010/10/01 00:01
xmio님께서 선물해 주신 책이다. 후쿠오카 신이치의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터라 기대감을 갖고 책장을 열었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저자가 보여줬던 동적 평형 개념에 대한 애정이 가득 느껴진다. 인간은 끊임없이 인간의 몸을 관통(?)하는 분자의 흐름 자체라는 개념. 잔잔한 수면으로만 보이는 강을 가까이서 쳐다보면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인 것처럼, 생명체는 고정된 형체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계속 정보가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는 흐름체라는 사실. 정보의 유출입이 생명체의 본질이라면, 생명체의 일부인 뇌도, 손도, 발도, 눈도, 배도, 모두 정보의 유출입 흐름으로 규정할 수 있다. 고정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계속되는 정보의 유출입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정보의 흐름이 멈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지혜도 일종의 생명체라 볼 수 있다. 정보의 흐름을 막고 정보를 저장하고만 있으면 정보는 썩게 되고 썩은 정보의 집합체는 죽음을 향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난 후, 그 내용을 고정된 개념으로 머리 속에 통째로 넣고 저장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보는 머리 속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생각이 생명력을 유지하려면 끊임없는 정보의 동적평형 흐름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수용하기만 하면 안되고 수용한 정보를 배설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건 흡수한 정보를 완전 분해해서 맥락을 해체시킨 후에 내 생각 속에 녹여 넣고 나머지 찌꺼기는 내 생각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정보 흡수에만 포커스했다면 이제 패러다임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것에 포커스할 경우, 정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보 속에서 내가 버릴 것을 찾는 작업 속에서 '나'라는 맥락에 가까운 정보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고 그것을 내 안에 또 다른 나로 흡수하는 과정 속에서 동적평형체로서의 내 생각과 지혜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된다. 정보를 배설한다는 건 나와 함께 갈 것과 함께 가지 않을 것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욱 '나'스러워 지는 것이다. 정보를 흡수만 하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간은 정보의 동적평형 흐름 그 자체이다. 정보를 먹기만 하면 안되고 정보를 배설해야 한다. 정보를 먹기 위해 싸고, 정보를 싸기 위해 먹는다. 정보를 먹고 싸는 과정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책은 씹어야 맛이다. 세포와 세포 사이 Birth & Death - 생명은 동적 평형의 흐름 그 자체이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읽고)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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