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애리얼리'에 해당되는 글 4건 |
||
결정, 알고리즘 :: 2010/01/06 00:06
댄 애리얼리의 TED 강연에서 매우 인상 깊은 차트를 보게 되었다. (댄 애리얼리가 묻습니다. "우리는 결정을 내릴 때 우리 마음대로 하고 있는걸까요?")
위 차트는 존슨/골드스턴 논문에서 인용한 것인데 면허시험장에서 조사한 '국가별 장기기증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나열하고 있다. 왼쪽에 있는 나라들은 비율이 낮고 오른 쪽은 비율이 높게 나오고 있다. 숫자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화? 종교? 마음의 여유? 아니다.. 답은 면허시험장에서 사용된 설문지 양식에 있다.
왼쪽 나라에 사는 사람들과 오른쪽 나라에 사는 사람들 박스에 체크하지 않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달랐던 점은 '참여에 체크하는가 vs 불참에 체크하는가'였던 것이다. 위 차트의 결과를 오로지 피조사자들의 진정한 의사결정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 의사결정의 핵심은 피조사자들의 마음이 아니라 조사의 프레임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인간은 '의사결정의 착각' 속을 살아가는 경우가 꽤 많다고 봐야 한다. 자신이 의사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의 대부분은 자신이 처한 맥락/프레임이 사실상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portion은 냉정히 판단할 때 극히 적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인간은 상황을 통제하고 결정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뿐, 실질적인 통제/결정의 범위는 매우 왜소한 것이라는.. 이런 상황은, 일상 생활 속에서뿐만 아니라 기업 비즈니스에서도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실무자는 의사결정 프레임을 설계하고, 경영자는 프레임 내에서 선택을 하거나 프레임을 거부한다. 일견, 경영자가 의사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실무자가 의사결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경영자는 의사결정한다는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제안된 의사결정 옵션 중에서 하나를 찍은 뒤에 의사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 한마디로 개그맨이다. 의사결정은 프레임을 준비한 사람이 이미 다 한 것이다. 나열된 의사결정 옵션 중에 하나 찍는 것은 영혼 없는 로봇의 행위다. PS. 관련 포스트 앵커, 알고리즘 속뇌,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가격,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964
|
||
앵커, 알고리즘 :: 2009/04/20 00:00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비교행동학자인 콘라드 로렌츠는 오리,거위,백조,기러기 같은 조류들이 부화 후에 가장 먼저 눈에 띈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애착을 갖게 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각인 현상 (imprinting)이라고 하고 그 특정한 시기를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 한다. 금방 부화된 병아리는 어미 닭만을 졸졸 따라 다니며 그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처음으로 눈,귀,촉각으로 경험하게 된 대상을 부모로 생각하고 따라다니는 것. 뭐..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스탠스라고 할 수 있겠다. 우연히 주변에서 접한 것을 바탕으로 최초의 결정을 내리고, 한번 내린 결정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고 고수하는 각인(imprinting) 현상은 인간에게도 통용된다고 한다. '상식 밖의 경제학'의 저자 댄 애리얼리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인간도 첫인상/최초결정이 장기간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행동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앵커(anchor)라고 부른다. 책에서도 얘기하고 있지만, 나 자신도 스타벅스에 우연히 가게 되었을 때 엄청나게 비싼 커피 가격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어리버리 분위기에 휩쓸려 카페라테를 주문하여 마시게 되었고, 다음 번에는 처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스타벅스를 주문하게 되고 어느덧 스타벅스에 대한 구매결정을 위한 판단/고민을 그다지 하지 않고 계속 반복적으로 구매결정을 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내려진 임의적인 결정이 별다른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차기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 임의적 결정을 앵커로 삼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싶어하는 알고리즘이 인간 뇌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으찌 이리 단순무식하고 귀여울 수가 있단 말인가. ^^ 생활하면서 크고 작은 판단과 결정을 무수히 내리게 된다. '앵커' 현상에 대한 글을 보면서 갑자기 내가 최근에 내렸던 결정을 리뷰 해보니, 은근 앵커스러운 판단과 결정이 꽤 있는 것 같다. 첫 결정을 대충 내리고 그런 성의 없는 결정을 소중히 여기면서 다음 결정에 반영하는 깜찍한 행태를 나름 성실하게 지속하고 있는 것 같다. 에혀.. "인간은 절대적인 판단기준에 의해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이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콕 집어 말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상황이 조성되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by 댄 애리얼리) 사람은 비교에 익숙하다. 특히 알기 쉬운 비교에 익숙하다. 사람은 기준에 익숙하다. 알기 쉬운 기준에 익숙하다. 첫 결정 시에는 기준이 없어서 대충 결정한다. 그리고 두 번째 결정부터는 첫 번째 결정을 잣대 삼아 또 쉽게 결정한다. 중요한 결정을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쉽게 결정하려는 귀차니즘 지향이 '앵커' 현상을 낳게 된 것 같다. '비교, 알고리즘'에 이어 '앵커, 알고리즘'에서도 인간이 갖고 있는 비이성적 사고 패턴을 잘 이해하고 이를 반성/지양/실험/활용하는 재미의 기회를 발견하게 된 것 같다. ^^ PS. 관련 포스트 비교,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823
|
||||
가격, 알고리즘 :: 2009/02/02 00:02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아래와 같이 얘기한다. "오늘날 가시 경제에서 세계 화폐 경제의 연간 총생산액은 50조 달러에 이른다. 흔히들 이것을 지구상에서 해마다 창출되는 경제적인 총 가치로 평가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물품과 서비스, 경험을 통해 생산하는 액수가 연간 50조 달러가 아니라 100조 달러에 이른다면 어떻겠는가? 50조 달러 이외에 비공식적인 50조 달러가 존재한다면 어떨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보이지 않는 50조 달러를 찾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다루게 될 주제이다." 이윤창출을 위해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확한 가격이 매겨지고 그 가격에 기반한 왕성한 거래가 일어나는 화폐 경제. 판매/교환을 위해서라기 보단 자신의 사용/만족을 위해 제품/서비스/경험을 생산하는 프로슈머들이 이끄는 비화폐 경제. 앨빈 토플러는 경제학자들이 계량화/모델화가 용이한 화폐 경제에만 매달리는 현상에 비판을 가하면서 비화폐 경제에서의 무보수 프로슈밍 활동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추적/측정하는 노력을 이제부터라도 본격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름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그리 쉽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작업이 의미가 있는 작업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댄 애리얼리는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위가 처가에 방문해서 장모님께서 정성껏 마련해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은 뒤에 "장모님, 이 모든 요리에 담아주신 장모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얼마 드리면 될까요? 500달러면 될까요? 아뇨, 잠깐만요, 400달러는 드려야겠죠?" 순간 장모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하면서 분위기는 급속 냉각되고 만다.... 세상엔 두 가지 컨텍스트가 존재한다고 한다. 사회규범이 우세한 경우와 시장규칙이 우세한 경우. 장모님이 사위에게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사회규범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에다 시장규칙을 들이대면서 장모님께 돈을 지불하려고 하면 그야말로 확 깨는 것이다. 즉, 어떤 제품/서비스/경험에 가격을 매길 것인가 아닌가는 그것이 사회규범에 속한 것인가 시장규칙에 속한 것인가에 따라 판단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 모든 것을 가격으로 환산하려는 시도는 결국 사회규범이란 장벽과 마주치게 된다. 사회규범이 지배하는 context에선 어설프게 매긴 가격이 0원보다 훨씬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온정적인 무보수 노동(대표적 예: 육아/가정교육), 개인의 만족을 위한 열정과 몰입을 수반하는 다양한 무보수 노동은 가격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가치의 의미가 급퇴색할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블로그 포스팅은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무보수 노동이다. 여기엔 적지 않은 시간이 투입된다. 여기에 투입되는 노동을 교환가치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하면 참 민망한 결과가 나온다. Read & Lead 블로그에 애드센스 광고를 붙이면 광고수익이 얼마나 나올까? 아마 버스/지하철 요금도 안 나올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은 가격(교환가치)으로 해석하고자 하면 참 답이 안 나온다. 이건 그냥 자기 만족이다. 나름 흐뭇한 자기 만족을 느끼며 하고 있는 이 행위를 갑자기 돈으로 환산하려고 하면 얼마나 민망한 결과가 나오겠는가? ^^ 앨빈 토플러는 비화폐 경제에 대한 무지와 무계량화를 크게 아쉬워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화폐 경제가 유발한 어설픈 계량화의 비약에 더 주목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화폐 경제에 편입되지 않은 비화폐 경제에서 행해지는 무보수 활동들을 차원이 다른 프레임을 통해 들여다 보고 새로운 의미 발견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놀이, 알고리즘과 같은 포스트를 앞으로도 종종 써볼 생각이다. 이미 심하게 자본화된 행위를 비자본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화폐스럽지 않은 행위가 화폐 기반의 계량화 속으로 어색하게 편입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무엇을 잃어가는 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화폐로 환원시키면 보기엔 시원할 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넘 많다. 가격은 교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엔 교환 가능한 것들이 많다. 만물은 점점 Commodity스럽게 변해가기 마련이니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교환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교환 가치를 계산하려고 하는 행위는 너무 오버스러운 것이다. 교환하기 싫은, 교환해선 안되는, 교환하면 가치가 변해 버리는 그런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 PS. 앨빈 토플러의 프로슈머 경제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내게 강한 지적 자극을 준다. 앞으로도 그가 제시한 '프로슈밍'이란 키워드에 대해 면밀한 관찰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비화폐 경제는 원래부터 거대한 규모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고 오히려 화폐 경제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것은 아닌지.. 어쩌면 관전 포인트는 "비화폐 경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고 "화폐 경제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 것인가?", "화폐 경제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고 비화폐 경제와 어떤 방식으로 공진화를 해나가야 하는가?"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동기부여와 가치 체계를 갖고 있는 양대 경제가 어떤 방식의 포지셔닝을 각각 취하고 서로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관찰과 포스팅을 간헐적으로 해볼 생각이다.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78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