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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태그 :: 2014/06/13 00:03

일상은 소박하다.
태깅은 약소하다.

일상에 태깅을 한다.
일상이 소박하지만 단단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태깅이 약소하지만 축적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소박하지만 단단한 것과 약소하지만 축적되는 것이 만나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한다.

일상을 살면서 피상에 쩔어 있다가 문득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일상의 시공간에 태그를 제안해 보자.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심상을 하나의 태그로 압축해보자.
길을 걷다가 향긋한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보자.
누워서 TV를 보다가 문득 드라마 속 한 장면에서 인상을 받았을 때 그 느낌을 하나의 그림으로 이름 붙여 보자.
책을 읽다가 문득 하나의 필에 몰입된다는 느낌이 들 때 그 필을 하나의 영화로 형상화시켜 제목을 붙여보자.
밥을 먹다가 문득 김치찌개 맛이 멋지다는 미감이 돌 때 그것을 흘려 보내지 말고 하나의 문장으로 뽑아보자.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 단위로, 분 단위로, 초 단위로
나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무수한 태깅의 힌트들을 쏟아내면서 말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태그의 힌트값들을 너무 많이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가?
그 중의 단 0.000001%만 건져서 표현을 해내도 그것들이 내 인생을, 나를 알게 해주지 않을까?

결국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나서
나 자신, 그 하나를 알지 못하고 지나간 시공간을 문득 마주치게 되면 너무 아쉽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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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쳐, 재회, 태깅 :: 2014/06/11 00:01

포켓이란 앱을 즐겨 사용한다.  PC나 모바일로 웹을 서핑하다가 관심 가는 정보가 있으면 캡쳐한다.  그리고 나중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타이밍에 그것을 열어서 다시 훑어본다.  훑어보면서 그 정보에 어울리는 단어로 태깅을 하고 어떤 경우엔 페이지 내용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도 한다. 캡쳐는 순간이고 리뷰는 차분이다.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던 정보를 다시 만날 때, 특히 그 정보를 잊고 있다가 다시 만날 때, 그 만남은 새로운 맥락 속에서 재조명된다.  태깅을 하면서 그 재조명의 순간을 음미한다.  캡쳐하는 순간 태깅할 수도 있고 나중에 재회할 때 태깅할 수도 있다. 태깅을 한다는 건 접한 정보에 대한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당 웹페이지에 부합하는 단어를 부여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정보를 접했을 때의 순간적 느낌이 태그가 되기도 하고, 정보를 정독하고 난 후 해당 정보를 떠올리기 좋은 단어가 부여되기도 한다. 또한, 정보와는 동떨어진 결을 타고 흐르는 나의 생각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생각의 단면을 단어로 직서하기도 한다. 정보를 만나는 방식을 다변화시키면 정보와의 접점이 다양한 양상을 띠면서 나와 정보가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맥락이 다채로워지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정보에 대한 다채로운 태그를 쏟아낼 수 있고 정보는 나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다양하게 가져가면서 나와의 만남을 다양한 스냅샷으로 변주한다.

컨텐츠와 만나는 나는 일종의 컨테이너다. 컨테이너는 다양한 컨테이너와 상호작용하면서 컨텐츠를 운반한다.  정보 운반은 상품 택배와는 다른 메커니즘을 띤다. 상품 택배는 상품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최대한 상품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채 특정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한다. 반면, 정보는 운반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내용물이 변형될 수 있다. 아니 변형될 수 밖에 없다. 옮기는 사람 자체가 정보에 변형을 가하는 자일 수 밖에 없어서 그렇다.  정보를 옮기는 자가 웹페이지여도, 서비스여도, 사람이어도 정보는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불가피한 변형을 받게 된다. 

암묵적으로 운반되는 정보에 가해지는 변형을 보다 명시적인 맥락 속에서 의식적으로 감지하는 놀이가 흥미롭다. 정보를 처음 만났을 때 받은 느낌. 정보를 캡쳐할 때의 마음. 나중에 정보를 다시 만났을 때 정보에 대한 잔존 기억. 재회를 통해 정보를 새로운 시공간에서 다시 리뷰할 때의 감정. 이런 모든 것들이 정보와 나 사이에서 생성되는 서사이다.  그 서사는 어떤 소설보다도 인간적이고 어떤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하다.

포켓이란 앱을 즐겨 사용한다. 나는 오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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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의 서재이다. :: 2013/11/22 00:02


주말에 교보문고에 갔다.

'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란 표제를 달고 있는 총 9편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을 꺼내 들었다.
(
담요, 폭우, 침묵, 그들에게린디합을, 여자들의세상, 육인용식탁, 과학자의사랑, 달콤한잠, 애드벌룬)

모두 내 취향에 부합하는 내용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흐뭇했다. 누군가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책을 다 읽고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발생하다니. . 내가 왜 이러는 거지.

한참을 고민했다.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을 다 읽었는데 꼭 살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맘에 드는 책을 만났는데 구매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요동치는 마음을 억누르고 일단 서점을 나왔다. 그리고 지금 집에 앉아 다시 마음에게 물어본다. 그 책을 안 사길 잘한 건가? 아님 안 사서 미련이 남는 건가?

마음은 대답한다.
"
세상이 너의 서재이다."

서점에 마음에 드는 책을 두고 왔으면 서점이 나의 서재이다. 세상을 살면서 세상 속에 마음에 드는 구절을 새겼으면 세상이 나의 서재이다. 서재는 팬시한 인테리어의 독서 환경을 집에 구축해 놓은 모습이 아닌 것이다. 서재는 내 마음 속에도 존재할 수 있고 서점에 존재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세상 자체가 서재일 수 있다. 나는 오늘 책 한 권을 놓고 마음의 씨름을 전개했고 그 결과 거대한 교보문고를 나의 서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서재가 집의 외부에도 존재할 수 있구나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나는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란 책을 언젠가는 구입할 수도 있고 구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란 책은 이미 내 서재에 진입한 상황이다. 그 책이 내 서재에 있는 한, 나는 그 책을 통해 받은 느낌과 배움을 언젠가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보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독서와 독서 환경에 대해 어떤 프레임으로 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나는 오늘 '그들에게 린디합을'을 나의 서재 어딘가에 살며시 놓아 두었다. ^^



PS. 관련 포스트
읽었다. 읽지 않았다.
픽업
서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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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 2013/11/27 12: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수집욕심에 빠지기도 하는데 서점,도서관이 또 다른 나의 서재라고 생각한다면 수집욕심에서 한결 자유로워질 수 있겠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3/12/02 09:07 | PERMALINK | EDIT/DEL

      책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오전, 너무 소중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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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었다. 다 읽지 않았다. :: 2013/11/20 00:00


주말에 교보문고에 갔다. 책 한 권을 집어들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2시간 정도 앉아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총 9편의 단편소설을 다 읽었다.

담요
폭우
침묵
그들에게린디합을
여자들의세상
육인용식탁
과학자의사랑
달콤한잠
애드벌룬

그런데 사실 난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맨 마지막에 위치한 '애드벌룬'의 경우, 글을 그야말로 기계적으로만 읽었고 마음으로 읽지는 않았다. 그래서 책을 서점에 두고 나오면서 난 이 책을 다 읽었으나 다 읽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이 책에 미련이 있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어지간해선 그 책을 다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설사 그 책을 구매해서 집에 비치해 놓고 있다 해도 말이다. 한 번 읽은 책엔 손이 잘 가지 않기 마련이다. 물론 좋은 책은 다시 읽게 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주 가끔. 하지만 세상엔 재미있는 소설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한 번 읽은 소설을 다시 읽는 기회를 맞이하는 순간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드벌룬을 읽기만 하고 읽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게 아니란 생각을 몸과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우연히, 억지로 그렇게 한 것 같다. 난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란 책을 다 읽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그 책을 만날 것이다. 그게 내가 이 책에 설정한 나만의 중력이다. 거대한 중력장의 세계를 살아가면서 나는 중력에 의해 끊임없이 규정되고 조종되지만 때로는 나에게만 작동하는 나만의 중력장을 나는 창조하고 설정한다. 그렇게 탄생한 중력은 나에게 나만의 의미가 되어 저장되고 소환된다.

나는 다 읽었다.
나는 다 읽지 않았다.




PS. 관련 포스트
픽업
서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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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하다. :: 2013/11/18 00:08


주말에 교보문고에 갔다.

이곳 저곳을 누비면서 읽을만한 책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다가 책 한 권이 손에 잡혔고 그것을 들고 책을 앉아서 읽는 곳으로 갔다.

'그들에게 린디합을'

2시간 정도 앉아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단편소설집이었는데 짧은 분량의 소설들이지만 제법 마음 속에 남겨지는 뭔가가 있었다.  담요, 폭우, 침묵, 그들에게린디합을, 여자들의세상, 육인용식탁, 과학자의사랑, 달콤한잠, 애드벌룬. 삶의 단편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감싸주고, 살짝 가리워진 흐릿함 속에 명징하게 울리는 메세지.  모두 맘에 들었다.

책을 다 읽고 책을 원래 있던 곳에 두려고 했으나 원래 위치가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 괜찮은 내용인데 다른 사람들도 우연히 발견하기 쉬운 곳에 놓아두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베스트 셀러 코너가 좋을 것 같았다. 베스트 셀러 코너 위에 놓여 있는 '그들에게 린디합을'의 모습이 제법 괜찮아 보였다.

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곧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겠으나 단 잠깐만이라도 '그들에게 린디합을'이 그 책의 가치를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의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동안 흐뭇했다. ^^




PS. 관련 포스트
서점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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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endy | 2013/11/18 00:44 | PERMALINK | EDIT/DEL | REPLY

    서점놀이 ^^ 그들에게 린디합을, 저도 한 번 들여다봐야겠네요, 궁금해졌어요 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11/18 21:01 | PERMALINK | EDIT/DEL

      금주의 월수금 포스트는 모두 린디합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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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자체가 이유이다. :: 2013/11/01 00:01

***한다면 난 행복할거야.

모순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엔 이유가 없는 거다.

이유를 대는 순간 휘발되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키는 게 바람직하다.

행복을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파랑새로 단정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와도 같은 존재인 것으로 간주해 보자. 행복을 파랑새처럼 여긴다면 지금 내가 가질 수 없는 뭔가를 행복으로 규정하게 되고 현재의 나의 상태를 다양한 관점에서 '결핍'으로 형상화하게 된다. 왜 멀쩡하게 잘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을 어설프게 정의된 행복 때문에 자꾸 모자람이란 이름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그렇게 나의 모습을 낮추면서 얻어낸 행복의 상이 결국 나 자신을 갈증으로 휘감을 것이고 나는 그로 인해 끝없는 행복 추구의 여정을 밟아 나가야 할텐데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또한, 그렇게 해서 행복에 준하는 뭔가를 얻어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행복한 것인가? 그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공허함 가득한 행복허상 놀이를 한 것이다. 행복 앞에 뭔가가 선행하면서 이유가 되는 구도를 전제하기 보단, 행복 앞에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행복 자체가 존재하고 행복에서 파생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보자. 그럼 행복 앞에 뭔가가 원인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행복 자체가 이유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행복 자체가 원인이 되면서 이유로서의 행복을 다양한 양상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행복을 인과의 과에서 인으로 포지션 이동시킬 때 행복은 허상에서 실재로 변이한다.

어설픈 이유를 없애는 순간 실체가 명확해지는 게 행복이라서 그렇다.

행복 자체가 이유인 것이다.

모순을 보정할 때 행복허상 놀이는 종료된다.

난 어떤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그것으로부터 어떤 결과가 파생되는가? ^^




PS. 관련 포스트
존재는 이유다.
현재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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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놀이 :: 2013/09/23 00:03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들른다. 아무런 규칙 없이 이리저리 거닐며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러다가 관심이 간다 싶은 책이 있으면 10분 정도 들고 훑어보기 시작한다. 훑어보다가 맘에 드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여러 번 읽어보고 그래도 잔상이 남으려는 조짐이 보이면 그 단어를 기록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3~4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다리가 아파오면 서서히 서점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e북이 활성화되다 보니 e북을 읽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오프라인/온라인 서점에서 종이책을 사는 빈도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e북이 제공되지 않는 책은 e북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님 말고 하는 태도를 견지할 때도 있을 정도이니 세상 참 많이 변한 것, 아니 내가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온라인 서점에서 주로 책을 사면서 느끼는 편의성, e북을 구매하고 읽게 되면서 얻게 되는 새로운 경험과 가치. 그렇게 책을 읽는 행태가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오프라인 서점 나들이는 내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 것일까?

오프라인서점에서 종이책을 보는 경험은 책 소비 행태가 진화되어 가는 현 시점에서 더욱 의미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일반적으로 매장에서 상품을 접하고 경험하는 모습은 대개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기 마련이다. 노트북, 냉장고, 가방, 시계, 옷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기껏해야 그것을 만져보고 작동시켜보고 입어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지 실질적인 상품 소비의 경험을 제대로 하려면 그것을 구매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반면, 서점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수많은 책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나의 시선을 끄는 책을 고르는 재미가 존재한다.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책들이 나의 시선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 나는 자유롭게 책들이 전시된 공간을 거닐며 나의 마음을 동하게 할 책 제목을 스캐닝한다는 것은 어떤 유형의 상품 탐색 경험에서도 손쉽게 얻을 수 없는 특별함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관심이 가는 책을 집어 들어 그것을 펼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온라인 서점에서 종이책, e북을 구매할 때 결코 얻을 수 없는 경이적 경험인 셈이다. 사실 책을 구매해서 집으로 가져가서 주의 깊게 읽는다고 해도 막상 오프라인 서점에서 둘러보던 그 맛이 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거기서 나의 마음을 울리는 단어나 문장을 접하는 경험. 그건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짜릿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프라인 서점에 갈 때는 예전 대비 마음이 한층 더 설레게 된다. 온라인 서점이 등장하기 전에는 이런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기가 어려웠다. e북이 나오기 전에는 서점에서 종이책을 본다는 것이 이렇게나 대단한 것인지 명확히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책 소비의 모습이 진보(?)를 거듭해 나가면서 오프라인 서점은 나에게 새로운 가치로, 혁신적인 시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제발 오프라인 서점이 앞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하면서 오래오래 존재해 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나는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서점에 들른다. 그래서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 보고 예전에 나왔던 책들도 다시 둘러본다. 그렇게 하면서 책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는 것을 흠뻑 즐긴다. 서점 나들이의 즐거움을 선명하게 감각하게 해준 온라인 서점의 발전, e북의 성장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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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예술적 재능의 복원 :: 2013/08/09 00:09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를 요즘 다시 되새기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력과 예술가적 자질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아기 시절에 인간이 보여주는 창의력, 예술가적 자질은 어른들의 환호 속에 힘을 받는다. 하지만 아기가 나이를 먹어 어린이가 되고 또 나이를 먹어 청소년,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창의력, 예술가적 자질을 마음 편하게 펼치기엔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위의 정량화/표준화된 시선에 자신을 순응시키고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나, 남들과 비교해서 뒤떨어지지 않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 속물적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의 색깔과 향기를 잃어간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일종의 범용품과도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적 재능을 타고 났지만 그것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자존이 아닌 타존의 삶을 살아가기 쉬운 세상에서 The Black Ager님의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는 나에게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나'만의 생각과 경험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블로그 포스팅. 그건 나이를 먹으면서 잃어갔던 예술가적 재능을 복원시키는 활동인 것이다. 나를 읽고 표현하고 리드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더욱 나다워지고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나를 더욱 읽고 표현하고 리드하게 하고. 이렇게 절묘한 예술의 무한 루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문명이 발전할 수록 인간은 거대한 문명의 부품이 되어간다. 도구가 발전할 수록 도구는 인간의 몸과 마음 속에 침투하여 인간을 도구화시킨다. 부품으로 작동하고 도구로 기능하는 시간의 축적에 대항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가 예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예술을 하는 순간, 인간은 부품에서 완전체로 변신하고 도구에서 목적으로 격상한다. 예술하는 자는 문명을 부품화시키고 도구의 역습을 봉쇄한다.

모두가 이미 예술가이다. 다만 자신에게 내재한 예술가적 자질을 인지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뉠 뿐이다. 또한, 나이를 먹으면서 예술가적 재능을 속절없이 잃어가는 자와 그것을 복원/증폭시키는 자로 구별될 뿐이다.
타인의 시선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경쟁우위와 같은 헛된 환영에 눈이 멀고 속물적 스펙에 휘말리는 공장 통조림 같은 삶으로 일관하면 예술가적 면모의 복원은 요원해진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최근에 내가 산출한 나만의 작품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가이다. 내가 예술가라는 사실이 내겐 너무도 가슴 벅찬 설레임이고 그 충만한 기쁨은
쩐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쩐봇으로의 전락을 강요 받는 나에게 강력한 돌파구가 되어주고 있다. 블로그는 예술이다. 블로그는 예술 수행 플랫폼이다.  인간은 예술이다. 인간은 모두 예술가이다. ^^



PS. 관련 포스트
블로깅, 경영과 예술
질문 아끼기, 행동으로 답하기

Jam Reading
모두가 예술가다.
상품화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대한 정의 - 창조주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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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8/22 20: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제야 봤어요 ㅠㅠ 언제나 감사하고 황송합니다... 요즘엔 예술가들"만"을 위한 소셜 플랫폼이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인간의 본성과 기술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시대적 발명품인 소셜 네트워크의 다음 단계는 '컬처럴' 네트워크가 아닐까요 ^^

    • BlogIcon buckshot | 2013/08/22 22:12 | PERMALINK | EDIT/DEL

      저의 블로그 라이프는 '블로그는 예술이다' 포스트를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뉩니다. 너무나 감사드리고 싶은 포스트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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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을 통한 시간놀이 :: 2013/07/17 00:07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신의탑'이란 만화 때문에 정주행을 몸소 실천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주행을 마치고 나니까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읽는 재미는 사라지게 되었고 이젠 매주 월요일에 업데이트되는 작은 분량의 만화를 읽고 아쉬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한참 정주행의 드라이브감을 느끼던 시절이 그리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역주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만화를 거꾸로 보는 것이다. 1회,2회,3회,,, 가 아닌 79회, 78회, 77회,, 이런 식으로..  그렇게 읽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발생함을 느낀다. 자꾸 과거를 변형시키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것이다. 예전에 읽은 내용이니 어렴풋이 이전 장면이 잔상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77회 이전에 탄생한 바 있는 76회의 스토리를 내 맘대로 변형시켜 보는 만화 조작 놀이를 즐기게 되었다. 내 맘대로 스토리를 변형시키다 보면 어느새 만화는 저자가 깔아놓은 궤도를 저만치 이탈하면서 안드로메다를 향한 장정을 시작하게 된다. 역주행을 하면서 과거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하다 보면 현재까지 바뀌어 버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토리라인이 붕괴되면서 어느덧 만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더 이상 만화를 저자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는 닫힌 스토리라인이 아닌 독자가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는 오픈된 다차원 스토리 큐브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내맡긴 채 시간의 횡포 속에서 무기력하게 이리저리 휩쓸리는 삶은 그닥 재미가 없다. 나를 일종의 만화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현재의 나를 만화 99회라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98회, 97회, 96회,, 이런 식으로 역주행을 해보자. 그러다가 나름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X회에서 멈춰보자. 그리고 그 상황에서 X회의 만화 내용을 수정해 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현재로 복귀하면 현재의 나는 X회에서 변형을 가한 '역주행 & 편집' 놀이에 의해 살짝 영향을(?) 받게 된다. 즉,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지난 회의 만화들을 쭉 리뷰하면서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 X회를 수정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나를 재구성하는 놀이를 시도하는 것이다. '나'라는 대본, '나'라는 만화는,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특정 경로를 이탈하지 못하고 단선적인 행로의 제약에 갇히기 쉽다. 그런 무기력한 존재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운 다차원 일탈 놀이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란 반문도 가능하지만, 이런 놀이를 직접 해보면 이게 개소리만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뇌는 그렇게 스마트하지 않아서 어처구니 없는 상상을 주입하면 처음엔 저항을 하다가도 어느덧 그 상상의 매력에 도취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병신 같은 상태에 스스로 빠져드는 나약한 판단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뇌의 병맛 판단력에 수시로 휘둘리면서 정작 나를 설레게 할 수 있는 이런 스펙타클한 놀이를 왜 주저해야 하는가? ^^

나는 한 편의 영화이고 만화이고 대본이다. '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시간과 대화하고 공간과 협의하면서 수시로 진동에 진동을 거듭하고 유동에 유동을 반복한다. 우리 뇌에 집요하게 주입되고 있는 단선적 시간의 흐름. 그건 굴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변혁의 놀이를 시도하는 것은 유전자가 리드하는 로봇과도 같은 인간 삶에 있어 싱그러운 돌파구를 열어가는 행위이다. 신의탑을 정주행하다가 문득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역주행을 하다가 문득 배움이 생겼다. 시간을 살아가는 것은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시간을 갖고 노는 것이라는 걸. 시간을 갖고 논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나의 취향대로 설계하고 편집하는 흥겨운 놀이들의 축적이고 그것들이 축적되면서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는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고 협의하는 '시간 희롱'의 희열을 맞보게 된다는 것을..

시간은 앞을 향해 흘러간다. 시간은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을 갖고 놀 수가 있다. 왜? 뇌가 병신이라서. ^^





PS. 관련 포스트
점, 선, 면, 입체, 그리고..
쓰기, 잊기, 읽기, 그리고..
시간 속의 나
역산, 알고리즘
신의 탑을 정주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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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07/17 09: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스스로 생각했을 때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이렇게 정리된 글로 보니 새롭게 다가오네요.

  • rodge | 2013/07/22 16:0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예전에 한번 벅샷님 블로그 정주행 했던때가 생각나네요.
    마치 시를 읽는 듯한 함축적이고 통찰력 가득한 문장들속에 넋을 잃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블로그 역주행까진 필요없겠죠? ㅋㅋ

    • BlogIcon buckshot | 2013/07/22 19:29 | PERMALINK | EDIT/DEL

      헉. 정주행만으로도 넘 감사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정주행이라니요..

      너무 과하게 시간을 내주셔서 읽어주시니 그저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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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에 초연해진 야구팬 :: 2013/05/20 00:00

나는 프로야구를 즐겨 본다. LG 트윈스의 팬이다. 1982년부터 야구를 즐겨 보았으니 야구팬 경력이 31년인 셈이다. LG 트윈스는 1990년, 1994년에 우승을 했는데 그 이후로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최근 10년 간은 포스트 시즌 진출 자체를 못하고 있으며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DTD 이론을 유력한 과학이론(?)으로 굳혀가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올해도 LG트윈스는 7위권의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팬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LG가 이기면 기분 좋고 LG가 지면 기분이 나빴다. LG의 팬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 한화가 개막 13연패를 하며 일찌감치 최하위권의 포지션을 굳건히 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되니 승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되었다. 특히 연패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도 한화 팬들이 야구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짠한 마음도 들게 되니 LG 트윈스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뭔가 변화가 생기고 있는 느낌이다.

솔직히 올해까지는 LG가 언젠가 우승할 것이고 그 날이 과연 언제 올까, 올해는 LG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까란 궁금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한화의 모습과 한화 팬들의 표정을 보면서 LG에 대한 기대가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 LG에게 기대하는 것이 우승이나 포스트 시즌 진출일 필요가 꼭 있을까?란 질문이 처음으로 맘 속에서 생겨났다.

그냥 야구 경기를 보면서 즐기면 안되나? 꼭 이겨야 맛인가? 지면 어떤가? 지는 과정 속에서 뭔가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닌가? 치고 달리고 얻어 맞고 아웃시키고.. 그런 역동적 모습 자체가 좋은 거지 꼭 잘 치기만 하고 잘 막기만 해야 하는 건가?

프로야구를 30년 넘게 지켜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한화의 개막 13연패를 견뎌내는 한화 팬들의 한화에 대한 애정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된 것 같다.  뭐랄까. 기대를 재설정하는 방법을 배웠다고나 할까. 그 동안 프로야구에 관한 한 기대치를 너무 무미건조하게 설정해 왔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야구를 훨씬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치 자체가 너무 딱딱하다 보니 스스로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고 앞으로는 훨씬 더 다양한 관점으로 야구를 즐기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게 다 한화 팬들 덕분이다. 나는 한화 팬들로부터 야구를 어떻게 즐기는가?에 대한 답에 가까운 모습을 보았다.

기대를 OFF시킬 수 있는 능력.
기대치를 자유자재로 설정하는 능력.
그건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한 최고의 핵심 역량이다.

야구에 관한 한 기대치 관리 능력에 있어서 엄청난 허점을 노출해 왔는데
금번에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천만 다행이다. ^^



PS. 관련 포스트
3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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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hoes

    Tracked from toms shoes | 2013/06/13 10:48 | DEL

    My grand father always used to watch YouTube funny video clips, hehehehehe, because he wants to be delighted forever Read & Lead - 승부에 초연해진 야구팬.

  • toms store

    Tracked from toms store | 2013/06/13 10:49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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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QoFALwS

    Tracked from JQoFALwS | 2013/06/13 11:11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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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기적을 알아보기 :: 2013/03/08 00:08

작년에 매우 인상 깊게 본 드라마가 있다.   드라마스페셜  '기적 같은 기적'이다.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이 저려옴을 느꼈다.

의사에게 간암 말기 선고를 받은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상심하고 산속 마을로 잠적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는 자신이 시한부 진단을 내린 환자가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의사는 그를 찾으러 마을로 들어간다. 그 마을은 암이 걸린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곳에 기적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다. 간암말기 선고를 받고도 3년 동안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는 그가 바로 그 환자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마을엔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사기가 기승을 부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신분을 숨기고 마을에 들어 온 방송사 PD도 있다. 결국, 방송사 PD는 그 사내의 행적을 추적하여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혐의로 경찰에 그를 넘기려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내가 암 환자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단지 그 사내와 함께 사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사내가 하루라도 더 자신들의 마을에 남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내의 비밀을 모른 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마을 사람들에겐 그 사내가 암에 걸리고도 잘 살아가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그 사내가 자신과 함께 살면서 병들고 지친 자신들을 웃게 해주는 것이 기적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기적이란 무엇일까?
모두가 깜짝 놀랄만하고 믿을 수 없고 신비로운 사건이 벌어지면 그게 기적인 걸까?

이 드라마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기적은 모두가 깜놀할 특종뉴스감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의미를 선물해 주는 순간이라고. 정말 소중한 기적은 만인에게 대놓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미소 짓게 하는 것이라고. 그런 기적은 지금 이 순간 나의 노력과 진정성으로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적은 내가 정의하는 것이라고. 남들이 인정해 줘야 기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내 마음 속에서 수줍은 듯이 은밀하게 생성되는 것이 기적이라고. 우린 날마다 속물스런 기적을 꿈꾸고 살아가지만 진짜 기적은 항상 우리 맘 속 어딘가에 숨어 있듯이 존재하고 있으며 날마다 우리가 자신을 알아봐주길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그래서 나만의 기적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것을 알아봐 줄 수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것이라고. 상품화된 기적과 상품화된 행복이 우릴 끊임없이 현혹하고 유린하는 세상이지만 상품화되지 않은, 상품화될 수 없는 기적과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짧은 단막 드라마였지만 장편 영화를 본 것보다, 50부작 대하드라마를 본 것보다 묵직한 감동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이런 드라마를 만난 건 내게 기적 같은 일이다.

진짜 기적의 시점이 언제인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의 감각은 상품화 알고리즘에 의해 무뎌져 가고 있다. 학생은 학교에서, 회사원은 회사에서, 사업가는 사업현장에서, 각각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본이 요구하는 상품화된 인간이 되어 기꺼이 로봇처럼 살아간다.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하면, 회사에서 성과를 내면, 사업현장에서 수익을 내면, 자본의 노예로서 획득한 노예적 성과를 흐뭇해하며 노예/로봇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결과가 안 좋으면 노예/로봇의 삶에 불만족하면서 살아간다. 자본을 신으로 모시면서 자본의 신도가 아닌 자본에게 유린 당하는 노예로 살아가는 삶. 자본의 프레임 안에서 기적을 바라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거기엔 인간을 위한 그 어떤 배려도 없다. 그런 기적을, 그런 행복을 얻어봐야 남는 건 허망함 뿐이다. 자신을 기꺼이 상품으로 전락시키면서 얻은 자본의 기적, 자본의 행복. 도대체 그게 뭐란 말인가? ^^

상품화된 기적/행복의 시점이 아닌 정말 나에게 중요한 시점이 언제인지 아는 촉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내 안의 비상품화된 기적/행복의 시점들을 탐색하는 놀이를 일상화해야 한다. 이 드라마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할 수 있다면 비상품화 놀이를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이 드라마를 본 것은 내겐 크나 큰 행운이다. ^^




PS. 관련 포스트
정보의 분열, 행복과 욕심의 분리
행복, 알고리즘
행복, 그리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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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노예: 이기고 웃는 노예, 지고 우는 노예 :: 2013/01/28 00:08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권력/지위/명예와 같은 속물적 덕목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아니 심지어는 그런 속물적 스펙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왜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두려움은 원래 생명 위협 상황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기제인데 문명이 발전하면서 수시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현저하게 줄어든 지금도 '두려움'은 인간 사회를 강하게 압박하며 인간들을 두려움 숭배 로봇으로 만들고 있는 듯하다. 만약 인간의 마음 속에 두려움이 없다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합당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던지듯 로봇처럼 살아가는 행태가 과연 이렇게 만연했을까?

부,권력,지위,명예는 유한 자원이라서 그걸 남보다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마치 속물적 덕목을 남보다 더 많이 획득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마냥 인간은 인생 전체를 걸고 그것을 획득하기 위한 대장정에서 헤어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정말 우주적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런 개그적 대서사시를 누가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이 상황을 주재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보면 볼수록 놀랍고 그 안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놀랍고 이런 체계가 굴러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초대형 블록버스터 판타지 무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이 이렇듯 거대한 영화관인데 뭐 하러 극장에 가는가? ^^)

무엇보다도 이런 놀라운 상황을 가능케 하는 동력인 '두려움'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두려움'은 정말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을 망각하고 오직 자신을 상품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상품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무한 경쟁 상황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인간소외적 행위, 몰지각한 행위를 당연시하며 인간을 살아가게 하다니, 도대체 두려움 너는 인간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

경쟁지상주의 사회가 낳은 가관을 보면서 두려움에 최상급 찬사를 보내지만, 이 게임에서의 승자는 두려움 하나라는 게 참 안타깝다. 무한경쟁에 뛰어든 수많은 인간들은 두려움이라는 유일한 승자의 발 밑에 엎드려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비참한 패배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을 두려움은 계속 즐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경배를 드리면 경배 드린 만큼 그에 합당한 대우나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왜 인간은 두려움에 인생 전체를 건 경배를 드리고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한 희롱을 당하는 것일까?

경쟁의 결과는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일개 범용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고 범용품으로 살아가는 한 승리도 패배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보다 돈을 많이 벌고 남보다 더 좋은 직장에 다니고 남보다 더 좋은 집에 살고 남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남보다 더 많은 존경을 받고...  아뿔싸~ 여기엔 '나'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타인만 존재한다. 이게 나 자신을 위한 삶일까? 아니면 남을 위한 삶일까?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이타적인 존재였을까? 그리고 이게 과연 이타적 삶일까? ^^  

경쟁의 결과는 인간소외이고 완벽한 범용품으로의 전락이다. 그게 경쟁의 본질이다. 경쟁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경쟁에서 중요시 하는 스펙에 목을 매며 살아가는 일상 속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설사 거기서 좋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곧 또 다른 갈증이 찾아오고 근원적 두려움은 점점 나의 목을 조르며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 들어올 뿐이다.

결국 "내가 중요시 하는 덕목 속에 내가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란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고 그 질문 속에 내가 없고 온통 타인이 가득하다면 나는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다는 인정을 해야 할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두려움이 이끄는 삶. 두려움을 경배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유린 당하는 삶. 그리고 그걸 인지 못하는 삶. 참 허무한 거다. ^^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흘러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올 때, 아래와 같이 자문해 보자.

"나는 살아가면서 경쟁 말고 한 게 뭐가 있는가?" 

이 질문에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게임만을 했다라는 답이 나온다면 그건 정말 비참한 것이다. 왜? 경쟁은 이겨도 지는 게임이니까. 왜 지는 게임을 하는가? 왜 유일한 승자인 두려움에게 퍼주기만 하는가? 왜 승리와 패배만 존재하는 유아적이고 치기 어린 이분법 논리가 지배하는 저급한 프레임에서 평생을 보내는가?  과자 하나 주면 헤헤거리고 과자 안 주면 앙앙 우는 유아. 그게 경쟁 프레임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인 건데.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과자 하나 얻어 먹으려고 떼쓰고 헤헤거리고 앙앙 우는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다니. 인간이 그렇게 병신 같은 존재인 건가? 두려움을 숭배하고 두려움에 유린당하는 인간. 그건 노예다.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 노예들이 가득한 세상.  나 자신이 노예임을 일단 인지라도 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언젠가는 노예스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정말 나 자신을 아끼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에서 이기고 웃는 노예들과 경쟁에서 지고 우는 노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쟁은 애니팡, 드래곤플라이트, 다함께차차차를 하듯 걍 가볍게 즐기고 말면 되는 게임이고 그 게임의 유일한 승자는 두려움인 것인데 경쟁의 결과를 놓고 왜 웃고 우는지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렇게 두려움의 지배력을 키워주기 위해 웃고 우는 에너지를 다 허비하면 정작 나를 위한 에너지를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인간은 정녕 두려움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 태어났고 한 평생을 오직 두려움만 경배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블로깅을 하면서 경쟁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개그적 스펙터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난 지금도 여전히 경쟁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을 테니까. ^^



PS. 관련 포스트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욕망은 수동태이다.
사라진 원인, 좀비가 된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우열, 알고리즘
경쟁, 알고리즘
소외, 알고리즘
제허,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범용,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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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The Black Ager | 2013/01/28 19:33 | PERMALINK | EDIT/DEL | REPLY

    사실 두려움은 자본주의 사회 뿐 아니라 공산 사회, 독재 사회, 유목 사회, 봉건 사회 등 체제와 시대를 초월해서 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해온 '존재'인 거죠. 애초에 신의 관념이 생긴 이유도 두려움 때문일텐데, 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현대 문화권에서 이제 두려움은 자기 자체를 신격화함으로서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진짜,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인 듯 합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13/01/28 20:45 | PERMALINK | EDIT/DEL

      제가 너저분하게 늘어놓은 글자들의 어지러움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시네요. ^^

      "경쟁에서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경쟁 시스템을 이기는 게 과제이다."

      존경스럽습니다. 넘 감사드리고 싶구요~

  • 휘리릭킴 | 2013/03/11 15:46 | PERMALINK | EDIT/DEL | REPLY

    그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열등감과 오기로 쓰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실제 적은 우리보다 더 커 보일 때가 많으니까요..특히 저 같은 경우는 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그 벅샷님이 말한 그 두려움을 무작정 이기려만 하다보니, 또 정작 타인이 보는 나와 내 자신이 보는 나와의 거리감도 생기고 있는 중입니다.
    하...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ㅎㅎ

    • BlogIcon buckshot | 2013/03/11 19:50 | PERMALINK | EDIT/DEL

      두려움은 인간유전자에 깊게 새겨진 코드이기도 하고 인간소외의 경쟁시스템을 서포트하는 거대한 동력이기도 해서 감히 제압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하지만, 매번 두려움에 맥없이 제압당하기 보다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두려움을 상대로 멋진 저항, 또는 가벼운 승리를 거두는 경험을 지속하게 된다면 인간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블로깅은 두려움 희롱 놀이를 지속하기 위한 좋은 시공간이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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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용의 최적점 :: 2013/01/04 00:04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가서 여행을 즐기다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여행의 과정을 머리 속에서 그려보자. 어느 시점에서 뇌가 가장 기뻐하는가? 

여행을 가기 전에 여행의 즐거움을 상상할 때 가장 기쁘다. 실제 여행을 하게 되는 순간이 도래하면 계획했던 것을 실행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여행이 일종의 행정처리가 되면서 여행의 기쁨이 체감하는 경우가 많다. 뇌는 끊임 없이 상상을 하고 싶어하고 상상을 통해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고조시키곤 하는데, 여행은 뇌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기대를 고조시키는 기대 촉진제 역할을 한다. 뇌가 가장 기뻐하는 시점은 기대감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불안감이 현재와 미래 간의 부정적 차이라면 기대감은 현재와 미래 간의 긍정적 차이에 해당한다.

모든 경험은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고 경험의 흐름의 곳곳에서 효용의 높낮이가 존재하고 특정 지점에선 효용의 최적점이 형성되고 효용의 최적점을 찍은 후엔 점차적으로 효용이 체감하게 된다. 그렇다면 경험의 흐름 속에서 효용이 최적점을 찍은 상황에서 때로는 경험의 과정 자체를 중단하는 것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는 놀이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를 볼 생각으로 그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읽다가 그 영화의 면모를 다 파악하게 되고 영화를 이미 본 것 같은 느낌과 감동을 얻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는 게 좋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한 편으론,
뇌가 기대를 먹고 살기 때문에 효용의 최적점이 존재하게 되는 원리를 오히려 역이용하는 놀이도 즐겨볼 수 있겠다. 즉, 뇌가 자꾸만 미래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생성하면서 현재와 미래 간의 에너지 준위차를 자꾸 강요하는데 그런 뇌의 장난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성급한 기대감이 나를 지배하는 현상을 줄여나갈 수 있는 것이다. 기대를 한다는 것은 현재에서 벗어나 좋은 경험이 예정되어 있는 미래로 자꾸 달려 나가려는 욕구이다. 불안해 한다는 것은 현재에서 벗어나 좋지 않은 경험이 예정되어 있는 미래로 자꾸 다가가려는 욕구이다. 뇌는 자꾸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예정하고 그것을 향해 시계바늘을 앞당기려는 본능을 갖고 있다. 그 본능이 때로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있어서 뇌의 시계바늘 앞당기기 본능은 적절히 통제될 필요가 있다. 예상에는 2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건전한 예상과 쓸데 없는 헛걱정,헛기대를 위한 예상. 기대 효용의 최적점이 있어서 경험의 흐름에서 멈춰야 할 지점이 있는 것처럼, 예상에도 최적점이 존재한다. 어디까지 예상하고 기대할 것인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예상과 기대를 멈춰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기대를 컨트롤하기 싫다면 경험의 흐름에서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고, 기대를 컨트롤할 수 있다면 기대 자체를 멈출 수 있는 지점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은 것.  효용의 최적점 관리 놀이를 이제부터 즐겨보도록 하자. ^^



PS. 관련 포스트
기대감을 기획하라
기대 속에 최고의 쾌락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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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와 관점 :: 2012/11/21 00:01

경계는 사물과 공간을 분간하는 기준이 되어준다. 경계가 있어서 세상은 뭉개지지 않고 조각조각 나눠진 뷰로 인지가 가능해진다. 경계가 획정되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다 보면 어느덧 경계 안에 갇혀 버리는 부작용도 생기곤 하지만 경계는 무경계 상태의 혼란을 완화시켜주는 안정제 역할을 하곤 한다.

경계를 넘어설 때 관점과 프레임은 변화한다. A 영역과 B 영역이 경계선으로 분할되어 있다면 A 영역에서 편안하게 활용되는 관점이 B 영역에선 수월하게 이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A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고 B 영역에 최적화된 관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관점은 경계에 의해 구별되어지고 경계는 관점을 분할된 영역에 특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계에 의해 배제된 타 영역의 상황과 맥락은 관점을 명확화하는 동시에 구속하게 된다.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은 경계를 허물게 된다. A 영역과 B 영역을 포용할 있는 관점이 탄생하면 A 영역과 B 영역은 동일한 프레임으로 포섭되고 단일 언어로 읽혀지게 되면서 서서히 하나의 영역으로 융합되어 간다.

하나의 영역 속에서 관점이 변형되어 하나의 영역이 복수 영역으로 나눠질 때 새로운 경계가 형성된다. 하나의 영역이 분열의 계기를 맞게 되고 나눠진 복수 영역이 각자의 관점을 발전시키고 개별적인 언어 체계를 진화시켜 나가면 영역은 하나였던 때를 까맣게 잊은 듯한 스탠스를 취하며 서로에게서 멀어져 간다.

경계와 경계를 관통하는 관점을 설정하는 힘과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지점에서 관점을 변형시켜 경계를 설정하는 힘은 경계 구도를 재구성하고 관점의 흐름을 재배치한다.

경계는 관점을 자극하고 관점은 경계를 형성한다.
관점을 자극하기 위해 경계를 의식하고 경계를 형성하기 위해 관점을 리뷰한다.

경계 안에서 편하게 상주하는 동시에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선 경계를 자꾸 터치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 디바이스의 액정만 터치하다 보면 어느덧 스마트 디바이스에 종속된 도구 인간으로 전락하게 되는데 정작 터치해야 할 대상은 액정이 아니라 경계이다. 경계를 터치하고 경계에서 타전되어 오는 신호를 나만의 촉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경계에서 전해져 오는 신호는 경계가 나에게 선물하는 개인화된 메시지이고 나의 관점에 도달된 신호는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게 된다.

일정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관점 상에 전시된 경계 구도가 너무도 안정화된 상태라면 나의 관점을 의심해 봐야 한다. 관점이 진부화되고 박제가 되어간다는 신호라서 그렇다. 관점이 왜 굳어지고 있는지 왜 새로운 경계의 생성을 직시하지 못하는지 반성하고 기존에 존재하는 하나의 영역이 복수의 영역으로 분화될 수 있는 분기점이 어딘지를 탐색해야 한다.

경계를 수시로 터치하고 관점을 정기적으로 의심하는 과정 속에서 경계와 과정 간의 순환 고리는 역동적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나는 경계를 몇 번 터치했는가? 액정을 수백 번 터치할 때 경계를 단 한 번이라도 터치해 보자. 나는 정기적으로 나의 관점을 의심하고 있는가? 쓰잘데기 없는 정보들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말고 1년에 단 한 번이라도 나의 관점을 의심해 보자. 경계와 관점 간의 순환 고리를 강력하게 형성하는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자존의 시간들을 나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경계
시지프스의 링 - 영속발전의 플랫폼 (發展 & 發電)
분류, 막..
세포와 세포 사이
막, 도구, 의도, 양자
태그,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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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uy toms

    Tracked from buy toms | 2013/06/13 10:48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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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ms sale

    Tracked from toms sale | 2013/06/13 10:48 |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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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odge | 2012/11/27 09:00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항상 읽으면서 느끼는거지만 비슷한 주제인듯 하면서도 새롭게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 매번 많은 영감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2/11/27 09:42 | PERMALINK | EDIT/DEL

      하나의 주제를 여러가지 시선으로 포획하면서 음미하는 놀이를 저는 즐기고 있나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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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놀이 :: 2012/10/17 00:07

기억을 기억한다.
기억은 현재 시점에서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동적 편집이다.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는 현재 프레임에 맞게 편집된다. 기억을 기억한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자행(?^^)되고 있는 편집 과정에 에디터로 참여함을 의미한다. 나의 기억을 기억하는 건 나의 과거-현재-미래를 관찰하고 나의 과거와 현재 간의 관계를 관찰하는 것이고 나의 현재와 미래 간의 관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고 나의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나의 정체성을 직조하는 것이다. '나'라는 플랫폼 상에서 행해지는 기억 프로세스를 응시하다 보면 편집의 흐름을 인지하게 된다. 편집의 흐름을 본다는 것은 거대한 우주의 운용을 보는 것과 그닥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주선을 타고 나가 마음껏 우주선을 조종하며 은하계를 빛의 속도로 누비는 것. 그게 기억을 기억하는 행위의 실상이다. 기억을 기억하면 내 안의 우주를 발견하게 된다.

주목을 주목한다.
주목이 희소해져 가는 세상이다. 주목은 끊임없는 방해 요인에 의해 교란당한다. 나의 주목에 주목을 하다 보면 주목이 얼마나 심하게 흩어지는지 알게 된다. 주목이 공기 속의 먼지와 같이 흩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먼지처럼 속절없이 부유하는 주목을 채취/수집하고 그것을 나의 의도에 맞게 활용해 나간다. 주목은 시공간을 메우는 '나'라는 파동을 입자이게, 시공간을 좌표 삼아 산재하는 '나라는 입자를 파동이게 하는 작업이다.

감정을 감정한다.
감정은 쉴 틈 없이 인간을 몰아붙인다. 감정이 파도처럼 인간을 덮칠 때 인간은 감정에 휘둘리며 자신을 잃어버린다. 감정에 빠져 감정을 인지하거나 규정하지 못하고 감정이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것이 인간의 현실이다. 감정을 감정한다는 건, 나의 감정에게 감정을 반사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감정의 방문을 받고 있는지를 아는 순간, 나는 감정을 규정하고 나를 방문 중인 감정과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인지되지 못하는 감정은 쓰나미와 같고 인지된 감정은 순한 양과도 같다. 감정을 규정하고 감정에게 거울이 되어주면 감정은 인간을 컨트롤하고 길 잃은 인간을 유린하던 위치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신이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감정이 길을 잃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자신을 위한 길을 창조한다.

의심을 의심하고 생각을 생각하고 판단을 판단하고 여행을 여행하고..

메타 놀이는 헤매기 좋아하는 인간 뇌를 위한 강력한 보정 기제이다. ^^






PS. 관련 포스트
My Attention에 대한 Attention - 미탄님께 배운다.
정보, 알고리즘
버블,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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