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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루한가? :: 2011/11/28 00:08
필립 짐바르도는 TED 강연에서 재미있는 말을 한다. 남자 학생이 여자 학생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가 인터넷 야동의 범람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나도 1990년대 후반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해 온 인터넷 야동 산업의 범람이 남자 학생의 학습능력 저하와 아마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가설을 농담 삼아 떠올려본 적은 있다. ^^
뇌에 가해지는 자극이 뇌를 더욱 자극지향적으로 만들어 뇌가 자극추구의 무한 루프에 빠진다는 것. 지루함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루함은 자극을 필요로 한다. 자극은 지루함을 달래주긴 하지만, 결국 다시 지루함이 찾아오고 새로운 자극을 추구게 된다. 뇌가 원하는 자극. 그게 과연 내가 원하는 자극인 건가? 나와 뇌는 어떤 관계인가? 나는 뇌가 자극을 원하면 계속 그 자극을 뇌에 공급해 줘야 하는 것이고 그러다가 나라는 존재 자체가 망가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뇌와 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뇌는 결코 나의 온전한 소유물이 아닌 것이라고 봐야 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은 나의 고유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래된 뇌 속성 형성의 역사에 기반한 것이다. 원시시대 생명의 위협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던 시절, 뇌는 다양한 형태의 자극에 대한 빠른 반응을 본능적으로 익혀왔던 것이고 생명의 위협이 사라진 지금에도 뇌는 자극 놀이를 무작정 하고 있는 것이다. 뇌가 가는 길이 내가 가는 길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뇌는 자극을 먹고 사는 기관이고 나는 자극만 맹목적으로 먹고 사면 망가지는 존재인 것이다. ^^ 뇌와 나와의 관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루하다는 것은 뇌가 새로운 자극,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신호다. 그 신호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면서 새로운 자극,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서는 행동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해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자극을 소비하고 싶어하는 뇌가 지루해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와 시장은 인간을 자극의 무한루프에 빠져 사는 멍청한 소비자(뇌)가 되는 것을 원할 지라도 인간은 멍청한 뇌와 주체로서의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누가 지루한 건가? 내가 지루한 건가? 뇌가 지루한 건가? 나는 기꺼이 나의 뇌와 함께 자극의 무한 루프에 빠질 것인가? ^^ PS. 관련 포스트 스토리텔링은 뇌 현혹이다. 앵커, 알고리즘 비교, 알고리즘 결정, 알고리즘 제값, 알고리즘 속뇌,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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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와 창의력 :: 2011/03/11 00:01
문득, 창의력 계발 = 나 자신을 알아가는 끝없는 과정 포스트에 남겨주신 아거님의 댓글이 떠오른다.
창의력은 혼자가 되는 힘이다. 그럼 군중/집단 속에 파묻혀 있으면 창의력이 쇠약해지는가?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군중/집단은 외로움의 역설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군중/집단 속에서, 관계 속에서 인간은 항상 고립을 회피하고자 한다. 고립만큼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없다.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확인하면서 자신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인간의 사회성이다. 어쩌면, 창의력은 은둔이 아닌 군중/집단 속에서 보다 강력하게 발현될 수가 있다. 내가 타인들과 어떻게 다른 지를 민감하게 감지하며 나의 유니크한 특성들을 보다 날카롭게 계발시켜 나가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는 거대한 창의력 극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리적 한계를 극복한 군중/집단 네트워크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블랙홀과도 같은 시공간. 그 속에서 활동하면서 '나'를 망각하지만 않는다면,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와의 극명한 차이가 뭔지를 명확히 알아갈 수만 있다면 한 개인의 창의력은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극적으로 창발할 수 있을 것이다. 군중(群衆) 속의 고독(孤獨). 군독(群獨). 인간의 본질은 군독(群獨)이다. 창의력은 관계와 고독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아의 동적 평형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자 우주에서 가장 역동적인 춤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웹'이란 이름의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 나만의 춤을 춘다. 그 춤의 이름은 '군독무(群獨舞)'이다. ^^ PS. 관련 포스트 혼자, 알고리즘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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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보호 :: 2011/01/10 00:00
자존, 알고리즘 포스트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적은 적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부/지위와 같은 '스펙'에서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스펙을 강하게 의식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가 그닥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이 아니라 '타존'인 것이다. 남이 정의한 성공 패러다임, 남이 정의한 행복 패러다임의 바다 속을 해면동물처럼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나'를 주체적으로 정의하고 나만의 성공/행복 패러다임을 의도하고 컨셉화해 나가는 자존적인 노력이 중요한데 말이다. 스펙에서 자유롭지 않을수록 '자존'은 취약해지고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타존'적 삶이 대세가 되어간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되려는 노력 보다는 남보다 낫고 남에게 창피하지 않는 내가 되려는 마음이 더 강한 타존의 시대. 범람하는 타존의 압박 속에서 자존심은 점점 더 상처받기 쉽고 나약해져 간다. 타존이 강해지고 자존이 취약해진다는 것은 관계의 위기이자 기회이다. 취약한 자존은 항상 자존심이 상처 받을 까봐 두려워하고 그런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힘들어 하고 그런 상황을 발생시킨 대상에게 불쾌한 감정을 갖게 된다. 자존심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 자존심은 가장 민감하게 보호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 가고 있다. 너무나 연약하고 살짝 만져도 흠집이 생기고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와르르 무너지기 쉬운 자존심. ^^ 결국 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이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연하디 연한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나의 자존심과 상대방의 자존심을 모두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충분히 확보되는 셈이다. 우린 자존심 취약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상대방의 취약한 자존심을 존중하고 보호해 주는 노력 속에서 나의 자존은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자존심 보호를 통한 나의 자존 강화라고나 할까. ^^ PS. 관련 포스트 자존, 알고리즘 타존, 알고리즘 Ego vs Ego → We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다시 읽으며)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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