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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상상, 그리고 인간 :: 2012/03/26 00:06

난 고소공포증이 있는 편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왜 공포를 느끼는 걸까?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일어날 지도 모를 뭔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공포감은 그리 강하게 출렁거리진 않을 것이다.

공포는 상상에서 비롯된다. 상상은 강력한 공포 발전소이다. 어디 공포만 그럴까? 상상은 많은 감정을 가능케 하고 감정은 사람을 로봇처럼 이리저리 조종한다. 상상 엔진은 대개 부정적인 감정과 연루되어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공포, 불안, 분노, 우울, 슬픔 등은 대개 상상과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증폭되기 마련이다.

상상이 감정과 연결되어 있기에 상상을 멈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감정을 직시하면 된다. 감정을 직시하면 감정이 멈추고 감정이 멈추면 상상이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부정적 감정의 과잉화를 막기 위해선 '나'의 범주를 넓게 설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직 협의의 '나'만 생각하고 협의의 '나'의 지나친 생존만을 의식해서는 부정적 감정과 상상의 시너지 쓰나미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나'를 넓게 규정하고 광의의 '나'의 문제는 무엇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상상하기 시작해야 한다.

창의적/긍정적인 상상을 잘 한다는 것은 본능 깊숙이 새겨진 부정적 감정과 상상과의 시너지 메커니즘을 자신 내부에서 자신의 외부로 꺼내서 타자와 세상과 소통하는데 활용함을 의미한다.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와 그것을 증폭시키려는 상상 에너지를 자신 안에 가두지 않고 자유롭게 바깥 공기를 마시며 유동할 수 있게 방생할 수 있는 능력.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지와 스킬이 상상력의 크기를 좌우한다.

나를 좁게 볼 것인가, 나를 넓게 볼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상상의 용도가 분기점을 타게 된다. 사사롭고 시시각각 발생하기 일쑤인 부정적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테마에 대해 감정을 작동시키고 상상의 트랙을 밟아나갈 수 있어야 한다.

상황에 따라 감정을 직시하기도 하고, 감정을 자극하기도 하는 것.
상황에 따라 상상을 억제하기도 하고, 상상을 증폭하기도 하는 것.

감정과 상상은 지금까지 인간을 지배해온 강력한 로봇 조종자였다. 앞으로 인간이 지금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변모한다면 그 혁명의 기반은 감정/상상과 인간의 관계 전복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감정하고 상상할 자격을 갖고 있다. 그렇게 변해갈 수 있는 인간만이 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PS. 관련 포스트
상상,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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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수동태이다. :: 2012/03/19 00:09

나는 무엇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갖고 싶어 하고 무엇을 누리고자 하는가?
욕망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핍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의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욕망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온전한 나의 결핍감이 아닌 것 같다. 결핍감은 나의 외부에서 내게로 주입된 일종의 강박인 것 같다. 나로 하여금 결핍을 강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욕망을 자가생산하며 그 욕망에 의거해서 행동하고 그 행동이 뭔가에 의욕과 시간과 돈을 투입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나의 욕망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욕망은 인간 스스로가 생산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주입 받는 경우가 많다. 주입된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망 BM'이 굳건히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욕망 BM의 서식처이자 번식처이다. 내 안에서 욕망 BM의 서식/번식이 활발할 수록 나의 욕망은 더욱 요동을 치며 욕망과 결핍감의 뫼비우스 띠는 증폭에 증폭을 더해간다. 거대한 욕망 BM의 쓰나미적 물결이 인간 무리를 덮치면 덮칠 수록 욕망은 인간 관점에선 철저히 수동태적 양태를 띤다.  


욕망은 수동태이다.

욕망이 수동태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걸 인정할 때
질문은 아래와 같이 바뀌게 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은 누가 주입한 것일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결핍감은 누가 입력한 정보일까?
나의 욕망과 결핍감은 무엇을 향해 디자인되고 있는 것일까?

온전한 나만의 욕망과 결핍이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내가 얼마나 속절없이 의도된 욕망/결핍감을 주입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수동태적 욕망 메커니즘에서 빠져 나와 진정한 나만의 욕망을 생산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


PS. 관련 포스트
허위욕구와 백야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소비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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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 2012/03/16 00:06

원시시대를 살던 인간은 생존욕구가 짱이었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원시시대로부터 각인된 생존욕구에 여전히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리고 새롭게 획득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이 욕구에 대한 집착은 실로 거대하다.

왜 쪽팔림에 대한 두려움이 범람하게 된 것일까? 그건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인간은 생명 위협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총량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모습이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걱정/두려움을 무수히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쪽팔림은 불확실성과 함께 두려움에 굶주린 인간 뇌를 가득 채워주고 있는 두렵고 싶은 인간 뇌의 든든한 친구이자 동반자인 것이다.

쪽팔림을 느끼고 싶어지는 순간, 나의 뇌를 점검해 보자. 뇌는 분명 쪽팔릴 수 있는 상황을 인지하고 그걸 피하고 싶은 욕구에 쩔어 있을 것이다. 그걸 피하면서 뇌는 커다란 위험을 피했다고 자위할 것이다. 이건 한마디로 뇌가 주도하는 거대한 사기극이다. 이런 사기극에 매일 놀아나면서 '쪽'을 신격화시키는 인간. 인간은 거대한 종교를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이름하야 '쪽교' ^^ 

감정과 마찬가지로 우상도 직시 당하면 움찔하기 마련이다. 감정을 직시할 때 감정은 인간의 몸과 맘을 온통 지배할 수 있는 파워를 상실한다. 우상도 마찬가지다. 우상의 실체를 직시하는 순간 우상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쪽팔리기 싫어하는 나의 욕구를 지긋이 응시해보자. 그것의 실체가 얼마나 나를 우습게 만들고 있는지 찬찬히 바라볼 때 자존감은 고조된다.

두려움 총량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움이란 감정은 일종의 양자다.  두려움이 엄습하려고 할 때 그 감정을 가만히 관찰해 주면 두려움은 폭주를 멈추고 수줍어하며 순한 양이 된다. 두려움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이다.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계에선 뭐니뭐니해도 관찰이 최고의 덕목이다.

쪽팔리고 싶지 않은 욕구.
여기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인생의 품질이 걸려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불확실성, 불안, 그리고 BM
사라진 원인, 좀비가 결과
타존, 알고리즘
자존, 알고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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