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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이해 :: 2011/11/11 00:01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책 제목으로 충분히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회사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10가지 유형의 회사어로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1. 긍정어 2. 세심어 3. 겸손어 4. 음성어 5. 조심어 6. 순차어 7. 정치어 8. 유희어 9. 공감어 10. 비전어 사람은 모두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언어는 소통의 툴인 동시에 소통의 단절자이다. 자신만의 언어에 갇혀 사는 자와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 간의 소통 퀄리티 차는 매우 크다. 겸손과 공감은 비단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언어'를 통한 소통의 원활한 작동을 가능케 하는 최고의 OS이다. 겸손/공감이란 OS를 장착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켜 나갈 수 있는 자는 자신이 처한 무수한 상황에 부합하는 최적의 언어들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진정한 언어인이라 할 수 있겠다. 겸손과 배려에서 긍정적인 태도, 사소한 것들을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 오버하지 않는 신중함, 성과 극대화를 위한 네트워킹, 유희의 여유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언어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단어와 문법을 조합한 메시지를 단순히 주고 받는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언어는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 나 자신의 정체성을 표출하고 타인의 정체성을 담은 메시지에 반응하는 '존재의 커뮤니케이션', '삶의 커뮤니케이션'인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존재/삶의 능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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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언어를 구사하기 :: 2011/10/05 00:05
비즈니스북스의 이혜경님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책을 읽다가 매우 인상적인 내용을 만나게 되었다. 내 보스는 아랫사람은 거의 신뢰하지 않는데다 칭찬보다 주로 지적이나 꾸중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었다. 어찌나 화를 잘 내는지 주위에 얼씬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보스는 주로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사용해 커뮤니케이션을 했는데, 가만 보니 그의 이메일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문장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독특했고 유독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그 패턴을 수집 및 분석한 후 그에게 보고할 때 그가 주로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그는 눈에 띄게 나에게 호의를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언어를 구사한다.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서로 다른 언어와 언어가 만나서 이뤄지는 상호작용이다. 한국어라고 다 같은 한국어가 아니다. 나는 나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은 사용하는 언어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 상자 속에 갇혀 있기가 쉽기 때문에,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소통시키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을 갈라 놓기도 한다. 의미는 통하는데도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되지 않고 서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언어로 인한 소통의 시작과 언어로 인한 소통의 단절. 언어 자체가 바벨탑인지도 모른다. 언어가 달라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가 생겨서 뿔뿔이 흩어진 것이 아닐지.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아닐지. 언어는 인간이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어는 나와 타인 사이에서 공진화한다. 나만의 언어를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가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언어는 계속 진화한다. 세상엔 사람의 수만큼의 언어가 존재한다. 살아간다는 건 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교감하는 과정이다. 나와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내 언어를 다른 언어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인생력이다. 타인의 언어를 구사하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타인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타인의 마음에 들어가려면 타인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타인의 언어를 나의 언어로 동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언어의 바벨탑을 어디까지 허물 수 있는가? 인생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큰 질문이다. ^^ PS. 관련 포스트 물리학은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생각의 파동, 언어의 파동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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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의 시대 :: 2010/11/29 00:09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를 보며 드는 생각. 책을 전혀 읽지 않고 쓰는 글이므로 완전 봉창이 될 우려가 높지만 책 표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을 가볍고 단순무식하게 적어본다. 저자의 '엔트로피' 기반 방향성 전개는 자가당착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공감 확산을 위해 노력하면 노력할 수록 엔트로피가 급증하므로 말이다. 사실상 인간의 모든 행위는 엔트로피 증가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증가하는 엔트로피를 유지/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은 마치 흘러가는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감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엔트로피 증가가 두렵다면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위(無爲) 밖엔 답이 없다. 근데 인간은 태어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이 숨을 쉬는 것 자체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엔트로피 증가에 대한 우려'라는 설정 자체가 매우 우울한 것이다. 설정 자체가 음울한 상황에선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시간의 흐름을 부정적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걸 해결하려 노력한다면 어떤 해결책을 얻을 수 있을까? 엔트로피. 매우 답답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통제하기 불가능한 대상은 섣불리 공격하는 게 아니다. ^^ 제레미 리프킨의 신간 '공감의 시대'가 내겐 '자충의 시대'로 읽힌다. 제레미 리프킨은 넘 강력한 상대를 골랐다. 엔트로피. 그리 쉽게 논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엔트로피 증가를 통제하고 싶어하는 헛된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헛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면 자충수를 두게 된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자충수를 두고 있는지. 우린 자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PS. 관련 포스트 무위, 알고리즘 쓰렉, 알고리즘 질서와 무질서 사이 Trackback Address :: http://read-lead.com/blog/trackback/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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