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유정식님의 트위터 메세지를 보게 되었다.
'행복 = 1 / 욕심'
행복의 핵심을 찌르는 힘 있는 공식이다. ^^

디드로 딜레마라는 말이 있다. 소비가 또 다른 소비를 낳고, 욕망이 또 다른 욕망을 낳는 끝없는 인간 결핍감의 굴레를 의미한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 1713~1784)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디드로는 한 친구로부터 아름다운 진홍색 침실 가운을 선물 받았다. 새 옷을 입고 서재에 앉으니 책상이 초라해 보였다. 책상을 바꾸기로 한다. 새 책상이 들어오자 이번엔 책꽂이가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닌가. 새 책꽂이, 그다음엔 의자…. 결국 서재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기쁘지 않다!
행복은 뭘까?
소비자의 결핍감 극대화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적 마케팅이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 '행복'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 허상적 갈증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판타지에 불과한 게임을 현실 자체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면 허상과 결핍감은 점점 그 사이즈를 키워갈 뿐이다. 허상과 결핍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은 인간의 뇌 속에서 일어난다. 어쩌면 뇌는 그런 가상현실을 먹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
통상 '행복'이라고 부르는 단어 속에서 작동하는 허상적 프로세스를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행복이라는 가상현실감을 키우고 싶다면 욕심이란 또 하나의 허상을 컨트롤하면 된다. 나의 뇌를 휘감고 있는 '욕심'이란 가상현실에 대해 직시를 해볼 필요가 있다. 역설계는 매우 재미있고 가치있는 과정인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역설계 대상 중의 하나가 행복과 욕심이 아닐까 한다.
내 자신이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 그 속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 봐야 한다. 행복은 잘못 정의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행복의 정의를 바로 잡는 과정을 통해 행복을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욕심에 대해 생각해 보면 볼수록 욕심의 덧없음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욕심을 잘 관리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인 것 같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게만 해도 '행복'에 관한 한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행복, 나만의 욕심을 정의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것이고. ^^ (남들이 정의하는 행복은 점점 그 위세를 떨쳐가고 있다. 자본주의,비즈니스,마케팅이 만들어 가는 그 가공할 허상적 행복의 포스는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행복, 욕심.. 다 뇌가 만들어 낸 허구이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도 있고 폐기처분할 수도 있고 가상으로 창조해서 가상현실 속에서 톡톡 튀기면서 갖고 놀 수 있는 것들이다.
以夷制夷(이이제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
以虛制虛(이허제허): 허상으로 허상을 제압한다.
거대한 본능의 굴레 속을 헤매며 너무나 쉽게 마케팅 당해버리는 어리버리한 뇌가 나에게 행복하지 않다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제허, 알고리즘'을 작동시켜야 한다. 욕심이란 허상을 죽여 행복이란 허상을 얻는 가상현실 놀이. 이허제허 놀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하하하. ^^
PS. 관련 포스트
돈, 인생, 그리고 행복
Simple life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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