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함정 :: 2013/10/07 00:07

뭔가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뭔가와 이름 사이에는 괴리가 생겨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는 사실상 둘은 따로 간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실체와는 다른 뭔가를 실체에 붙여놓고 실체를 오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름 함정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에 이름을 붙일 때는 '이름'이 갖고 있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 뭔가를 대해야 한다. 뭔가와 이름을 동일시하면 뭔가를 크게 오해하게 된다. 이름은 뭔가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일 뿐 뭔가 그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폰, TV, 책, 가방, 집, 옷, 하늘, 땅, 자동차, 전기, 영화, 음악, 회사, 돈, 마음, 감정, 시간, 공간, 웹, 우주, 인간, 동물, 생물, 광물, 물, 바람, 공기, 흙, 음식, 스포츠, 만화, 사업, 경제, 컴퓨터, 사진, 여행, 병원, ....

이름은 용도이기도 하고 개념이기도 하고 딱지이기도 하고 착각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고 단면이기도 하다. 이름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이름이 붙어 있는 대상은 이름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이름 이상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유한다. 하지만 이름은 대상에게 의미와 한계를 동시에 부여하기 마련이고 대상에게 부여된 한계는 대상으로 하여금 섣불리 이름의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름의 바깥에 대상을 규정할 수 있는 의미들이 충분히 널려 있는데 대상이 이름 안에 갇히는 현상 속에 기회가 있다. 대상에 부착되어 있는 이름을 지우고 대상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름 이외에 대상에게 부여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면 찾아낼수록 대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 결국 세상을 보는 눈은 대상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다. 이름에 국한된 이해가 아니라 이름 너머의 의미를 인지하고 이름 바깥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세계관을 좌우한다.

이름 붙이기는 분명 편의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편의성에 치우친 나머지 이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이름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름은 붙이고 떼는 벨크로(찍찍이)와도 같은 것이다. 이름을 붙였으면 반드시 이름을 떼야 한다. 그래야 이름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세상에 수많은 이름들을 대할 때 붙어 있는 이름을 내 손으로 떼는 놀이를 즐길 필요가 있다. 이름을 붙이는 능력 못지 않게 이름을 떼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이름을 stock이 아닌 flow로 이해하면 이름과 잘 지낼 수 있다. 

이름을 붙이기 힘든 것에 네이밍을 하기.
이름이 고착된 것에서 이름 떼기.
요 2가지 놀이를 잘하면 이름에 관한 한 숙련가가 될 수 있다. ^^



PS. 관련 포스트
기능과 재능
감정 네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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