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 알고리즘 :: 2009/07/17 00:07

kelvin님의 우직(迂直)포스트에서 아래 문구를 인용해 본다.

병세에서는 끊임없이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를 우직(迂直)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아군이 진출하는 길을 일부러 우회하여, 적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나 적의 대비가 없거나 약한 지역으로 진출한다. 그리하여 적의 견제를 피하고, 재빨리 빼앗아야 할 작전 목표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먼 거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적이 막지 않는 빈틈을 찌르며 가장 빠르게 '곧을 길'을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조조병법 제7장 '전투' 중에서]  



우직. 참 멋진 표현인 것 같다. 직접 치고 들어가지 않고 간접적으로 에둘러 돌아가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는 것.  커뮤니케이션 부문에선 '우직, 알고리즘'이 쏠쏠히 잘 먹힌다.  아래와 같이. ^^


로버트 그린의 '전쟁의 기술' 에 나오는 일화다.  1939년, 알프레드 히치콕은 조앤 폰테인과 로렌스 올리비에를 주연으로 '레베카'를 감독했다. 당시 21세의 폰테인은 주연을 처음 맡는데다, 천재 배우로 알려진 올리비에의 상대역이라는 사실 때문에 몹시 초조해했다. 다른 감독이라면 그녀의 불안감을 달래주려 했겠지만 히치콕은 정반대로 행동했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주고받는 뒷말을 그녀에게 알려주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그 배역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올리비에마저도 사실은 자신의 아내 비비안 리가 그 역을 맡기를 바랐다는 얘기가 폰테인의 귀에 들어갔다. 그녀는 소외감이 들었으며, 몹시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녀의 배역에 정확히 들어맞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레베카에서 해낸 기념비적인 연기는 그녀의 영광스러운 경력의 시발점이 되었다.

 

말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myth이다. 타인에게 의도된 행동을 유도하는 말을 할 때 그 말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타인은 본능적으로 방어벽을 쌓기 마련이다. Push형 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대상에 대한 우월감이 기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의도된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커뮤니케이션 대상에게 메시지를 단선적으로 push하지 않고 스스로 특정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끄는 pull형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한다면 훨씬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대리석 안에 갇힌 인물을 해방시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엔서니 라빈스는 '성공'을 자신 안에 잠든 거인을 깨우는 것으로 정의한다. 글래디스 테일러 멕게리는 '의사'를 환자 내면에 있는 의사를 깨워서 스스로를 치유케 하는 자로 정의한다. 리더십은 직원들 안에 잠자고 있는 거인을 깨우는 것이다. 결국 창조, 성취, 치유, 리더십은 모두 Pull에 관한 이야기이다.  커뮤니케이션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타인에게 메시지를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타인 내부로부터 끌어내는 것이다. 메시지는 이미 타인 안에 있다.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는 타인 안에 잠재된 메시지를 스스로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타인의 행동과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영향력 행사를 행동경제학에서는 Nudge(넛지)라고 부른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뜻이다.  넛지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국제공항의 남자화장실 소변기이다. 이 소변기 정중앙엔 파리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남자들은 소변을 볼 때 본능적으로 정중앙에 있는 파리모양 스티커를 맞추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열심히 조준해서(^^) 파리를 맞추다 보면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은 현격히(80%^^) 줄어들게 된다. 

"소변이 밖으로 튀지 않도록 근거리 정중앙 사격을 하십시오."
"파리 그림을 맞추시오"

위와 같이 대놓고 직언을 던지는 것 보다는 은근히, 에둘러서 사람의 행동을 촉구하는 장치를 설정해 놓는 것이 행동 변화를 강하게 유발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넛지 효과.  '우직'의 웨스턴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강압적인 메세징보다는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본능과 감정에 호소하는 우직/넛지 효과를 적극 발굴/응용해볼 필요가 있겠다. ^^





PS. 관련 포스트
Pull communication
감정공략을 통해 경험의 변화를 이끌어 내라 - 커뮤니케이션 전략
Communication as a platform - 간접성과 확장성이 강한 침투력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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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지셔닝 -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제?

    Tracked from 파아랑 | 2009/07/24 07:32 | DEL

    포지셔닝 - 잭 트라우트 & 알 리스 지음, 안진환 옮김/을유문화사 [포지셔닝] 너무 유명해서 딱히 별 말이 필요없을 것 같은 책. 거의 마케터나 PR인의 기본서 중에 하나로 꼽힐 정도라고 생각. ..

  • 우연히 지나다가 | 2009/07/17 13:03 | PERMALINK | EDIT/DEL | REPLY

    ㅎㅎ 나이트 화장실에 있는 드라이 아이스도 넛지 일까요?

  • BlogIcon mooo | 2009/07/17 15:51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화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
    물론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경우도 있지만, 본문에서 말씀하신데로 거부감을 야기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7/18 09:52 | PERMALINK | EDIT/DEL

      예, mooo님 말씀처럼 두가지 방법이 모두 장단점이 있으니 적절하게 믹스해서 사용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귀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여~ ^^

  • BlogIcon ego2sm | 2009/07/17 23:4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꼼꼼히 두 번이나 읽었어요. 항상 푸시를 당하다보니
    풀Pull형 인간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저부터 반성해봐야겠어요.
    대화를 할 때, 내 주장만 생각하고 주입하려고 하는건 아닌지.
    말에 쉽게 베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넛지 기술을
    습득해서 꼭 어제보다 나은 풀형 인간이 되고 싶어요.
    비오는 주말, 즐거운 독서 하세요^_^

    • BlogIcon buckshot | 2009/07/18 10:05 | PERMALINK | EDIT/DEL

      와.. 에고이즘님께서 두번이나 읽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이 블로그는 에고이즘님의 관심을 먹고 사는 것 같아여. ^^

      저도 넛지풀 스킬을 잘 익혀서 좀더 매끄러운 커뮤니케이션을 해보고 싶습니다. 언제나 저에게 에너지를 주시는 댓글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구여~

    • BlogIcon ego2sm | 2009/07/20 11:40 | PERMALINK | EDIT/DEL

      저 이 포스트, 오픈캐스트에 담아갈게요.^^
      마음에 들어라~~!!

  • BlogIcon Tony.K | 2009/07/19 08:55 | PERMALINK | EDIT/DEL | REPLY

    직선적인 대화를 선호하는 저로서는 스키폴 공항의 사례를 언급한 넛지라는 책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책은 사고 아직 읽지는 않았습니다만... ㅠㅠ) 커뮤니케이션이란게 참 중요한데... 쉽지 않습니다. ㅠㅠ

    • BlogIcon buckshot | 2009/07/19 09:16 | PERMALINK | EDIT/DEL

      아주 극명하게 넛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평생을 거쳐 습득/발전시켜 나가야 하나 봅니다. ^^

  • BlogIcon 호박 | 2009/07/19 12:06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화의 기술.. 연애의 기술..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싸움의 기술..
    기술에 도가 터야할것 같은 세상살이에요~
    무엇보다 더불어 살고있다는건 명심했으면 좋겠다는^^

    이 글 읽으면서 괜히 나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꾸벅!)

    조용한 휴일아침이예요^^
    모처럼 하늘도 조용하고~ 동네도 조용하네요^^
    (동네 아이들이 많아 조금 시끄러운편인데.. 흐흐)

    호박은 늦은 아.점을 먹고 오늘하루 또 으쌰라으쌰~해야할것 같네욤~
    더불어 으쌰라으쌰~ 호랭이기운 내시길 바랍니다^^b 아잣!!

    • BlogIcon buckshot | 2009/07/19 16:29 | PERMALINK | EDIT/DEL

      정말 '기술(art)'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기술은 일종의 패턴 읽기인 것 같구요. 다양한 패턴을 익히고 응용하는 즐거움에 기술의 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BlogIcon 지구벌레 | 2009/07/19 16:0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넛지...처음 들어본 말인데요..참 좋군요.
    진정 누군가를 움직이고 싶을때 꼭 고민해봐야겠습니다.
    평소 스스로 좀 직설적이라는 생각은 많이 하는데요.
    좀더 간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여러모로 서로간에 좋겠군요.

    • BlogIcon buckshot | 2009/07/19 16:32 | PERMALINK | EDIT/DEL

      감정이입과 간접커뮤니케이션이 넘 난무하면 머리가 복잡해질 것 같기도 합니다. 적당하게 믹스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

  • BlogIcon 이채 | 2009/07/20 10: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미켈란젤로였군요, 그얘기한 사람이.ㅎㅎ PULL형 커뮤니케이션 일색이어도 복잡하겠지만, 일단 넘 부족한 세상인 거 같긴 해요. 뭐, 풀형을 빙자한 푸시형 커뮤니케도 있더군요. "나도 한때는" 시리즈를 만들어내는 누구 이야기입니다.ㅡㅡ;;

  • BlogIcon Jamiepark | 2009/08/17 09:28 | PERMALINK | EDIT/DEL | REPLY

    이게 넛지군요....
    엊그제 이나무님이 넛지얘기를 해서 대체 이게 뭘까 했죠...

    잘읽었습니다 ^^

    • BlogIcon buckshot | 2009/08/17 09:38 | PERMALINK | EDIT/DEL

      Jamiepark님, 블로그/트위터를 통해 멋진 글 항상 감사히 잘 보고 있습니다. ^^

  • BlogIcon 대흠 | 2009/08/17 11:37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모든 건 다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고 만들어진다는 걸 다시한번 깨닫는 아침. ^^
    마케팅하고 떨어져 살가다... 전 직장 동료 한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도움이 되는 포스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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