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회사 후배에게 자료를 요청했는데 메일로 파일을 보내주지 않고 메신저로 URL을 보내준다. URL을 클릭하니, 후배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린 파일이 로딩된다. 후배에게 사이트를 운영하냐고 물어보니, 걍 블로그라고 한다. 난 블로그는 네이버나 다음에만 있는 줄 알았고 태터툴즈라는 경이적인(^^) 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며칠 후 난 후배에게 어떻게 태터툴즈로 블로그를 만들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후배는 간단치 않다고 나에게 쫑크를 준다. 도메인도 생성해야 하고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혼자 끙끙거리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후배에게 다 알아서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후배는 첨부터 끝까지 거의 다 해주었다. 난 그렇게 어이없게 블로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건 뭐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그때까지 난 블로깅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개인 도메인을 만들어서 태터툴즈로 블로그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내겐 너무도 벅차도록 위험한 시도 그 자체였다. 그저 우연히 후배가 개인 사이트에 파일 올려놓고 있는 것이 부러워서 따라쟁이하다가 너무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된 것이다. 이건 뭐 거의 기적 같은 일이다.
2007년 11월
주말에 코엑스에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 킬링 타임이나 하려고 서점에 들렀다. '부의 기원'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솔직히 속으로 크게 비웃었다. 나~ 원~ 참~ 캐거창하기도 하지 '부의 기원'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되도 않는 얘길 써놓았는지 맥스 5초 정도 훑어 보려고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5초 만에 책을 내려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5분 만에 일단 책을 내려 놓았다. 무거워서.. 책도.. 책 내용도.. 잠시 후, 책을 다시 집어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오프라인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 이 책을 사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많이 좋아하고 있는 책 '부의 기원'은 그렇게 아주 우연한 계기에 발견하고 구입하고 읽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알게 된 보석 같은 책이라 끈기 있게 다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한 번에 포스팅하지 않고 여러 번에 걸쳐 분절화된 형태로 가볍게 올렸다. 한 번에 느낌을 다 적으면 넘 아까울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 그렇게 하다 보니 책을 자꾸 가까이 하면서 자주 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책에 나오는 주요 키워드 중에 유독 '알고리즘'이란 단어가 눈에 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2008년 5월 The Algorithm Economy 포스트를 올리게 되었고 이 포스팅을 계기로 '알고리즘'이란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기약하게 된다.
2008년 11월
2007년 10월부터 월수금 3W 포스팅 체제로 가기 시작했다. (3W = 3 posts per Week, 주 3회 포스팅) 2008년 6월부터는 특정 키워드를 테마로 잡고 월수금 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주에 하나의 키워드를 잡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5개월을 끌다가 11월10일 포스트에 무심코 '알고리즘'이란 키워드를 넣어서 인간, 알고리즘 포스트를 작성하게 되었다. 우연히 시작한 알고리즘은 지금까지도 지리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남루조악한 포스트의 연속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론 나름 흐뭇함을 느낀다. 2009년 6월29일, 오늘로 알고리즘 포스트가 도합 100개가 되었다. 꽤 많네.. ^^
우연..
2006년 10월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본다면 정말 어이없고 경악할 노릇이다. 도저히 블로깅을 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 블로깅을 하게 되었으니..
글을 쓴다는 것, 블로깅을 한다는 것, 한가지 키워드에 천착한다는 것.. 모두 2006년 10월의 내 상태와는 거리감이 상당하다. 정말 우연에 우연을 더하고, 우연에 우연을 곱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2006년 11월 후배의 개인 사이트를 부러워 했고, 그걸 따라 했고, 2007년 11월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에릭 바인하커의 '부의 기원'의 포스를 눈으로 확인했고, 책을 샀고, 전철 속 책의 무게감을 견뎌가며 끝내 책을 다 읽어냈고, 거기서 '알고리즘'이란 키워드가 반짝거리고 있는 것에 주목했고, 2008년 6월에 키워드 시리즈 포스팅을 시작했고 그걸 이어 나갔고, 그러다 11월에 '알고리즘'과 관련한 포스팅을 했고, 그 이후로 계속 '알고리즘' 포스팅을 지속했고..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 중에서
시간을 과거로 돌려서 지금까지 오기 위해 험난한 과정을 마니마니 거쳐야만 했던 것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매우 소중하고 기적과도 같은 그 무엇일 가능성이 높다.
분명, 블로깅은 내겐 너무 소중한 것이다. 조악한 포스팅의 연속이지만 지금 내가 블로깅을 하고 있다는 건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살아 가면서 미천하나마 '나만의 기적' 하나를 이뤄 낸다는 건 보람 있는 일이다. ^^
김동률 & 이소은 - 기적
PS. 오늘 포스트는 재미, 알고리즘 포스트의 댓글에 아래와 같이 답변을 달다가 작성하게 되었다. 아주 우연히.. 그야말로 우연히 우연에 대해 우연하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
신, 결핍되지 않은 존재가 놀이 삼아 하는 일이 창조이고 평범한 사람이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될 때, 신과 같은 느낌을 살짝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제가 하고 있는 블로깅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놀이를 하는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고, 즐거운 이유는 놀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 트랙에 올라타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놀이-즐거움'의 순환 트랙을 경험하게 될 '우연'이 찾아온다고 생각하구요. '우연'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강화시켜야 하는 그런 기회가 '우연'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분명 뭔가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적인 즐김이 대부분이어서 잘 눈치를 못채고 있을 것 같구요. 자신이 뭘 즐기고 있고 자신에게 찾아온 기적과도 같은 '우연'이 뭔지를 이해해 나가는 것.. 그게 인생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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