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의 발명 :: 2013/10/02 00:02

TV를 보면 온갖 유형의 프로페셔널들이 나와서 자신 만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돈은 프로페셔널을 중심으로 흐른다. 프로는 특정 영역을 점유하고 영역은 아마추어가 범접하기 힘든 장벽을 축조하면서 특유의 BM을 작동시킨다.

춤의 프로가 등장하기 전에는 누구나 춤을 출 수 있었다. 아니 누구나 춤을 추어도 쪽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춤이 전문 영역이라고 정의된 후부터는 아무나 춤을 추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림의 프로가 등장하기 전에는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림의 프로가 등장한 뒤로는 아무나 그림을 마구 그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프로는 아마추어에게 명백한 열등감을 부여했고 아마추어는 열등감을 몸과 마음 속 깊이 탑재한 채 프로의 퍼포먼스를 동경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프로는 아마추어의 눈을 모으고 모아서 그것을 돈으로 전환시켰고 아마추어는 프로에게 돈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아마추어의 열등감은 프로가 돈을 벌 수 있게 하는 주요 메커니즘 중의 하나로 당당히 자리잡게 되었다.

열등은 경쟁 시스템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최고의 발명품이다. 열등감이 있기에 치열한 경쟁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그 시스템에 종속된 수많은 경쟁자들은 열등감과 우월감이란 환상을 최대한 실체에 가깝게 느끼며 열등 그룹에 속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우월 그룹에 들어갔을 때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프로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열등감 가득한 눈은 명백한 자기다움 포기의 선언이며 무기력해지겠다는 자기 주문이다. 프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떠해야 하는가? 이건 자존의 삶 관점에선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프로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을 응시해 보자. 그 속에 열등감이 숨어 있는지, 프로의 퍼포먼스를 넘사벽이라고 생각하는지, 프로를 쳐다보는 나의 눈빛에서 돈이 흘러나오고 있는지.

나를 발견하고 나를 정의하고 내가 타인과 어떻게 다른지를 규정하고자 한다면, '열등'에 대한 스탠스를 명확히 해둬야 한다. '열등'은 보편적 인간 감정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에서 주입된 화학약품과도 같은 것이다. 열등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열등해지도록 강요를 받고 그 강요에 자존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아니 주입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린 경쟁에서의 높낮이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허상적 프레임 속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건 자존 관점에선 매우 마이너한 사항이다. 중요한 건 타인과 나를 구별시켜 주는 나만의 '고유성'이다. 중요하지 않은 경쟁에 몰입하고 거기서 이기기 위한 노력에만 집중하다 보니 점점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중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고유성'이고 그것에 집중하다 보면 속물적 관점의 경쟁 체제에서도 어느 정도의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경쟁'은 '고유성'에 둔감해지라는 암묵적 압박을 끊임없이 가한다. 모두 똑같은 선상에서 동일한 게임 룰에 의해 동일한 방식으로 플레이해서 랭킹을 매긴다. '고유성'에 민감해지기 위해서는 게임 룰 안에 함몰되지 않고 게임 룰 밖에서 게임을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을 생성해야 한다.

프로가 이끄는 열등감의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무기력감이 주는 멍청한 쾌락에 현혹되지 않고 나만의 특질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차이를 만들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에 단 5분이라도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열등하지 않은데 열등을 수시로 강요 받고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선택'을 중단하는 시간이 늘어갈 때 '열등'이란 최고의 발명품은 적어도 내 앞에서만큼은 하찮은 쓰레기로 전락해 갈 것이다.

열등이 나를 범용품으로 정의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님 내가 열등을 범용품으로 규정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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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아크몬드 | 2013/10/02 10:11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보다 어린 분들이 높은 업적을 쌓은 모습을 가까이서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열등감에 휩싸이게 되더군요.
    " '열등'은 보편적 인간 감정이 아니라 철저히 외부에서 주입된 화학약품과도 같은 것이다. 열등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열등해지도록 강요를 받고 그 강요에 자존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아니 주입 받게 되는 것이다."
    라는 구절에 새로움을 느끼고 갑니다.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가치에 대해 눈뜰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buckshot | 2013/10/02 23:18 | PERMALINK | EDIT/DEL

      '비교'는 도구일 뿐인데, 그게 목적이 될 때 문제가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에만 비교를 하고 빠져나와야 하는데 비교를 하다보면 비교 자체에 빠져버리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도록 '비교의 함정'에 대한 포스트를 종종 올리려 합니다. ^^

  • | 2013/10/16 12:35 | PERMALINK | EDIT/DEL | REPLY

    " '고유성'에 민감해지기 위해서는 게임 룰 안에 함몰되지 않고 게임 룰 밖에서 게임을 응시할 수 있는 시선을 생성해야 한다."
    정말 좋은 말이고 가슴에 와 닿는 말입니다. 요즘 지나친 경쟁과 열등감에 빠져 허우덕 대며 정신 못차리는 사람으로서 크게 와 닿네요..^^

    • BlogIcon buckshot | 2013/10/17 09:42 | PERMALINK | EDIT/DEL

      댓글로 격려해 주시는 만큼 '고유성'이란 단어를 더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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